부르조아 가정에서 부모의 보호 아래 꽃처럼 자란 루스는 노동계급인 마틴에게
"버틀러란 분이 있어요.... 그분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 다녔어요. 항상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장의 희생을 기꺼이 치렀어요.... 일주일에 겨우 4달러를 받았는데... 그 4달러에서도 일부를 계속 저축했어요."
루스는 마틴이 이 버틀러란 사람처럼 현재를 희생해서 변호사, 회계사 뭐 이런 부르조아가 되라고 격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틴은
"그거 알아요? ..... 난 버틀러씨가 딱해요. 그분은 너무 어려서 잘 몰랐죠. 그래서 아무 쓸모 없는 연 수입 3만달러를 위해 자신에게서 삶을 빼앗아 버린겁니다. 3만달러라는 거액이 지금의 그분에게 어린 시절에 아낀 10센트로 살 수 있었을 사탕이라든가 땅콩, 극장의 싸구려 좌석권을 사 줄 수 없지 않나요?"
와 정말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단어 몇개만 바꾸면 루스의 말은 우리 나라의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현재를 희생시키는 삶의 연속!
좀 더 나은 미래의 상급학교, 더 나은 미래의 성적, 대학, 직장, 승진....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목표들을 완수하기 위해 아둥바둥 살다보면 어느새 퇴직이고 죽어야 할 지도....
죽기 전에 딱 몇 년 행복한걸까?
마틴에 의하면 버틀러씨는 부실한 식사와 엉망인 음식때문에 반드시 소화불량에 시달릴테니 건강이 안좋아 말년에도 행복하지는 못할듯하다. 이렇게 미래의 삶을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는 우리들의 삶도 죽기전에 잠깐 행복할지 않을지도 모르면서 지금 가질 수 있는 행복을 유예시키는건 아닐까?
오래 전 내가 고3때 대입시험 두달전쯤에 마지막으로 친 모의고사 성적을 받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역대 최악의 성적.
내게 관심이 별로 없었던 우리 담임샘이 나를 교무실로 불러 집에 무슨 일 있냐고 물을만큼의 성적하락이었다.
물론 집에도 아무일 없었고, 나에게도 아무 일 없었다. 그냥 성적이 안나왔을 뿐이다.
어쨌든 항상 무사태평이던 나도 나름대로는 좀 심각해졌었다.
남은 두 달이라도 바짝 공부해서 원래 성적은 나와야 되지 않겠냐 뭐 그런 결심을 하며 말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 나는 너무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말았다.
1년 넘게 개봉되기만을 기다렸던 영화 백야가 드디어 개봉했다는 것.
이 시절 나는 영화잡지 <스크린>을 열렬히 구독하던 헐리우드 키드였고,
이 영화는 그 잡지를 통해 알게되어 보고 싶다 보고싶다 외면서 우리나라 개봉만 하면 보러가리라 했던 것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 외화들이 우리나라에 수입되기까지는 최소 1년에서 몇년씩 걸렸었고,
개봉관에서 그 영화를 보면 다시는 못볼 가능성이 아주 많았던 시절이었다.
성적이냐 영화냐?
지금 보면 진짜 별거아닌 고민이지만 그때의 나는 꽤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아니네..... 모의고사 개판 쳐놓고 영화를 볼까 말까 고민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돼지.
그러나 결국 나는 저 영화를 보러갔었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심지어 2번 봤다.(당시 극장은 영화가 끝나고도 안 나가고 자리에 앉아서 개기면 다음 회차를 그냥 볼 수 있었다.)
그럼 이 영화는 나의 삶에서 무슨 역할을 했을까?
뭔가 작품이 될려면 내가 이 영화에서 감동을 받아 영화관련 직업을 가지든가, 아니면 주인공들처럼 춤을 추던가 해야 하겠지만 이 영화는 내 삶에 아무런 눈에 띄는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저 스쳐 지나갔던 많은 날들 중의 하루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내 삶의 순간에서 이 날은 가장 행복했던 날로 떠오른다.
그 큰 극장의 내 자리와 그 어둠, 그리고 뭔가 쿰쿰했던 오래된 극장의 냄새까지 떠오르고, 커다란 화면에 환상처럼 펼쳐지던 주인공 두 사람의 춤은 지금의 나까지도 행복하게 해준다.
내게는 이 날의 기억이 마틴이 말했던 "어린 시절에 아낀 10센트로 살 수 있었을 사탕이라든가 땅콩, 극장의 싸구려 좌석권"인 것이다.
얼마전 딸에게
"어이 딸! 엄마는 가끔 너희한테 공부하란 소리를 너무 안하고 니들 하고싶은대로 내버려둬서, 너네가 원하는 대학에 못간게 아닐까 싶어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해. 넌 그런면에서 엄마가 조금 원망스럽지는 않니?"라고 물었다.
딸이 말하길 "엄마! 엄마가 나를 그냥 내버려뒀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잘 자란거야. 이만하면 괜찮잖아."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자기 삶에 만족하고 자신만만하게 나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딸이어서 고마웠다.
다만 도대체 잘 자랐다의 기준이 뭔지는 우리 사이에 합의되지 않았고, 솔직히 말하면 뭔지 나는 모르겠다. ㅎㅎ
저 질문은 둘째 딸에게 한거였는데, 큰 딸에게는 물어볼 필요도 없을듯하여 묻지 않았다.
걔는 뭐 인생이 너무 즐거운 애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