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링컨 하이웨이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7월
평점 :
길 위에 삶이 있다고 주장하는 8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대목이다.
뉴욕에 도착한 직후 20대 후반의 황금기에 애버커스는 세 명의 훌륭한 친구를 사귀었다. 두 남자와 한 여자였는데, 그들은 가장 강한 동지이자 마음과 영혼의 모험을 추구하는 동료였다......... 그러나 최근 5년 사이에 첫번째 친구는 시력을 잃어 앞을 못보게 되었고, 두번째 친구는 폐공기증에 걸렸고, 세 번 째 친구는 치매에 걸렸다.........그런데 실은 그 세가지 질환은 다음과 같은 동일한 문장에 해당한다. 다이아몬드 형태의 저 끝점에 선 삶의 협소함. 이 친구들의 활동 영역은 세계 그 자체에서 자기 나라로, 이어 자기 카운티로, 자기 집으로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방 한 칸으로 단계적으로 줄어들어서, 그들은 눈멀고, 숨이 가쁘고, 기억하지 못하는 육신으로 그 방에서 생을 마감할 운명을 맞는다. (713쪽)
애버커스는 아직 이렇다할 질환은 없어지만 그의 세계 역시 줄어들고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의 삶의 외연이 넓은 세상에서 맨해튼 섬으로, 맨해튼 섬에서 책이 가득한 사무실로 좁아지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 사무실에서 그는 철학적인 체념으로 자신의 종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때 이.....(714쪽)
그는 숨을 헐떡이며 율리시스의 뒤를 따라 나무들 사이를 걷고, 경사면을 오르고, 잠시 후 유개화차로 들어갔다. 그들을 미지의 장소로 데려다 줄 화차였다.
나이 들고 병들어간다는 것을 공간의 축소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그런데 진짜 나이들고 병든다는 것은 내가 누릴 수 있고, 활동할 수 있고, 전유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드는거겟구나라는 실감이 팍 온다.
순간 나이들고 늙는다는 것에 대해서 딱히 싫다는 감정이 없었는데, 갑자기 너무너무 싫어지는거다.
나는 지금도 내가 원할 때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길에서 새로 만날 다채로운 공간을 예감하며 황홀해한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감이 항상 내 삶의 자극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니라고?
이 책의 가장 어린 주인공인 빌리가 24번이나 읽은 책 <영웅, 모험가 및 다른 용감한 여행자 개요서>를 쓴 저자인 에버커스 교수 역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한켠 작은 사무실에 자기 몸을 우겨넣고, 이제 이 작은 공간이 자기 삶의 마지막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어디서 어떤 장면을 맞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에버커스 교수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자신의 어린 팬을 무시하지 않고, 불쾌해하지도 않고 친절히 대하며 이야기를 들어줌으로 해서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기차 레일로 이어진 삶, 이름만으로도 모험과 여행의 상징인 율리시스라는 흑인 남자와 함께 떠나는 화물 유개화차로 이어질 삶은 어디서 어떻게 종말을 맞을지 모르지만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또 그곳에서 만날 어떤 인연과 삶의 경이로운 순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것이다.
용감한 애버커스 교수에게 행운을, 그리고 율리시스에게는 잘못 선택했던 한 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부디.....
또 하나 아름다운 인물은 주인공 울리의 친구 샐리다.
그녀는 울리의 옆 농장에서 살고 있으며 울리의 어린 동생 빌리를 돌봐주기도 하는 마음씨좋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아가씨다.
하지만 일찍 엄마가 돌아가시고, 남은 아버지를 위해 농장을 보살피고 끊임없는 가사노동에 시달리고, 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유일한 일인양 살아야 하는 아가씨다.
그녀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
과감하게 자기 삶을 시작할 어떤 기회를......
하지만 이 책의 배경이 1954년이라는걸 명심하자.
어린 아가씨가 길을 아무렇게나 길을 떠날 수 있는 때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샐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있으므로.......
예측할 수 있는 가까운 장래에 내가 꾸리고자 하는 유일한 가정은 나 혼자만의 1인 가정이야. 내가 하는 모든 요리와 청소가 나 자신을 위한 곳인 그런 가정이란 말이야. 내 아침 식사, 내 점심 식사, 내 저녁 식사를 만들거야. 내 식사를 설거지하고, 내 옷을 세탁하고, 내 방바닥을 쓸 거란 말이야. (744쪽)
혹시 너 나 좋아하냐라는 에밋의 착각에 바로 강력한 한 방을 날려버리는 샐리의 저 말에 매혹당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심지어 이 책은 다양한 주인공들의 시점으로 쓰여졌는데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3인칭 시점이다.
3인칭 시점이 아닌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두 인물이 바로 이 샐리와 더치스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이 두 인물이 자존감이 굉장히 강한 인물이어서 이런 식으로 썼다는데 일면 수긍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쩌자고 이 책의 그 많은 등장 인물 중에 저 두 사람에게 꽂혔지 싶지만 실제로 이 소설은 캐릭터의 힘이 밀고 나가는 소설이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굉장히 생생하고 매력적이다.
과연 이 인물이 이 다음에 어떻게 행동할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건 자체의 전개보다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더 궁금해지며 과연 이들은 어떤 사람인가가 계속 궁금해서 하나씩 하나씩 보여주는 인물들을 뒤쫒다보면 어느새 8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다 읽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 중 어떤 인물들이 독자의 마음을 더 파고들지는 알 수 없다.
각자의 취향과 상황과 뭐 이런 것들에 의해 좌우될테니 말이다.
그러나 장담하건대 여기 등장 인물 중 어느 누구 하나는 분명히 당신을 매혹시킬 것이다.
그것이 주인공 중의 한명이 될 수 도 있고, 나처럼 주변 인물이 될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약간의 불만 - 소년원을 도망쳐나와 울리와 빌리의 여행을 방해하기도 하고 함께 하기도 하는 더치스라는 인물 역시 굉장히 매력적인데 소설의 결말에서 더치스가 직면하는 상황은 굉장히 맘에 암든다. 꼭 결말을 이랬어야 됐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나는 결단코 이 소설의 옥의 결정적인 티가 더치스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님 다시 써주세요라고 영문메일이라도 보내야 할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