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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자고로 좋은 글이란 끝부분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자신없는 말투라니....아무도 공감해주지 않을 거 같아서....)
어쨌든 내생각!
예전에 좋아하던 만화들 중 와 너무 재밌어. 천재야 이러고 열광하면서 보다가 마지막회에서 그 열기 전체에 확 찬물을 끼얹어버리는 수습불능형 잔반처리 불가능형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냐하면 윌리엄 트레버 이 사람 진짜 이야기 끝문장 만들기의 천재다.
별거 아닌 이야기를 쭈욱 늘어놓는데 아 심심해, 도대체 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는 뭐야 하면서 하품하며 책 보다가 이야기가 마지막에 이르는 순간 아! 하면서 이 주옥같은 문장은 뭐지? 내가 심심해하던 순간들을 이 사람은 이렇게 보고 이렇게 묘사한단 말이야? 하면서 소설을 다시 찬찬히 되짚어보게 한다.
그 때 보이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결국 사건과 사물과 사람을 보는 눈이다.
얼마나 깊이있게 진심으로 사건과 사물과 사람을 즉 세상을 대하는가?
그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이야기 <고인 곁에 앉다>에서 에밀리는 자신이 아니라 말을 기를 수 있는 땅을 가진 자신을 사랑했던 남편의 주검 앞에 있다. 그저 병에 걸려 죽었을 뿐.... 지역의 종교단체 사람 둘이 와서 에밀리 홀로 지내는 밤을 위로한다. 간간히 에밀리는 남편과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아주 흔한 이야기....비록 앞에 앉은 종교단체 사람들은 에밀리가 고인의 흉을 보는 듯하여 당혹스러울지 몰라도 이야기 자체는 특별할게 하나도 없다.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사느냐 말이다.
그러나 새벽이 밝아오고 이야기는 끝나고, 종교인 여성들은 돌아가고 이제 에밀리가 혼자 남는 시간이다.
에밀리는 조금 더 앉아 있다가 커튼을 걷었고, 하루가 밀려들었다. 그날 밤이 불러낸 유령이 이곳에 있었다. 한때 그녀 자신의 모습으로.(28쪽)
이 짧은 단편의 마지막 3줄은 소설을 완전히 반전시켜 버린다. 죽은 남편의 흉을 보며 넋두리하던 그저 흔한 여자 에밀리는 사실은 껍질을 벗고 있었음을, 비록 남편이 다 말아먹어 땅이 없을지라도 오늘의 에밀리는 어제의 에밀리가 아님을. 이제 에밀리에게는 그것이 어떤 형태라 할지라도 에밀리 자신의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유령은 이제 떠났음을 이토록 짧은 문장에서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해버리는 작가 윌리엄 트레버는 정녕 뭐지? 위대한 작가 맞구나....
단편 <전통>에서는 명문 기숙학교를 둘러싼 잡다한 전통들이 이리저리 등장하고 비웃음당하고, 소년들에 의해서 은밀하게 신봉되고 하지만 진짜 전통이 무엇인지는 글의 마지막 문장에 가서야 드러난다. 또한 그것은 기숙학교가 존재하는 한, 소년들이 이곳을 거쳐가는 한 언제나 어디서나 은밀하게 존재하고야 말 전통이며, 그래서 살짝 얼굴 붉히며, 사는게 그런거지, 아이들은 다 그렇게 크는 거라고라고 수긍하게 된다.
<그라일리스의 유산>은 책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다. 잘나가던 은행원이 책이 좋아 지역도서관 분관을 맡는다. 수입이야 이전과 비교할 수 없으므로 아내는 당연히 싫어한다. 그런데 이 곳에서 책을 빌리러 오는 여성을 만나고 둘은 자주 만나 같이 책얘기를 한다. 그녀의 집에서 만나는 둘의 모습은 남들에게 보일 때는 불륜이겠지만, 책 좋아하는 나같은 이가 보면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녀가 커피를 내오고 둘은 내리는 비나 차가운 봄의 햇살을 함께 바라보고 그리고 책속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의 순간
비밀의 그림자 속에 겨울 꽃이 흩어져 있었고, 기만이 조용한 사랑을 기렸다.(120쪽)
제대로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고, 같이 해본 것이 너무나 적은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이토록 아름다운 조사(弔詞)를 본적이 없다. 기만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아름답게도 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런 사랑의 아름다운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마지막 단편이자 표제작인 <밀회>에서도 반복되는데 쇼윈도에 비치는 연인들의 마지막 포옹을 기가 막히게 아름답게 묘사한다. 흔한 불륜이 그 장면 하나로 세기의 사랑이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언어가 가지는 힘이 무엇인가를 절절히 깨닫게 하는데 만약 윌리엄 트레버라 이런 불륜에 대한 소설을 좀 더 많이 썼더라면 나라도 멋진 불륜을 찾아 어디 거리로 헌팅을 나가지 않을까?
모든 이야기들이 마지막 순간을 예비하고 그려지는 것만은 아니다.
다른 결로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저녁 외출>이다. 데이트 업체 매칭을 통해 만난 남녀의 저녁모습에 대한 스케치 같은 단편이다. 혼자 사는 여성이 이 만남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우정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공감받고 호감이 가면 저녁식사를 함께하기도 하고..... 서로가 원하는 것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각자 하고 싶은 또는 할 수 있는 말만 하며 빙빙도는 하루 저녁의 외출은 문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외롭다는 느낌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읽어가다보면 책속의 단어들이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모든 말이 외로워 외로워로 치환되는 듯한 느낌. 그래서 주인공 여자를 꼭 안아주고싶은 느낌이다.
많은 단편들 중 어느 것도 윌리엄 트레버가 삶이 편하고 좋은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없다.
산다는 건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다. 또한 누구든지 은밀한 비밀 하나쯤 꼭꼭 숨기고 있으며 그로 인해 외로움은 배가 된다.
그럼에도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을 읽는 일은 절망과 전혀 관계없다.
외롭고 쓸쓸하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을 소망하고 노력하고, 그럼으로써 삶은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목소리 높이지 않아도 작가는 그의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인 나는 조금 외로워도 돼 괜찮아 이렇게 나를 다독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