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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말들 - 일상을 다시 발명하는 법 ㅣ 문장 시리즈
이다혜 지음 / 유유 / 2021년 7월
평점 :
내가 먼거리의 여행을 했던건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지만) 5학년때가 처음이었다.
우리집 뒷집의 언니와 외삼촌이 엄마의 중매로 결혼을 했던 것.
그런데 결혼식 장소가 내 외가였는데, 문제는 내가 사는 곳은 경상남도 거제도라는 섬의 궁벽진 시골 섬이었고, 외가는 전라남도의 거금도라는 더 궁벽진 시골 섬이었다는거다.
당시 우리 부모님은 외삼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 먼길을 갈 형편이 안되었던듯하다.
그래서 우리집 대표로 12살로 집안의 어엿한 장녀였던 나를 파견하기로 한것이다.
문제는 갈때는 곧 외숙모가 돌 뒷집 언니와 함께 갔지만, 돌아올 때는 나 혼자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당시 외가를 가기 위해서는
우리집에서 버스를 타고 통영으로, 통영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순천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녹동, 그리고 녹동에서는 배를 타고 거금도로 들어가서 거기서 다시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는거다. (이 여행이 얼마나 인상적이었으면 나는 아직도 그 경로를 다 외우고 있단말이다.)
갈 때의 기억은 사실 잘 안난다.
오히려 처음 가본 외가가 너무 신기했다.(사실 처음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5살 때였으므로 사진으로만 기억에 있지 기억에 남은게 하나도 없으므로 패스!!!)
전라도는 음식의 고장 맞다.
나는 닭으로 그렇게 많은 요리를 할 수 있다는걸 처음 알았고, 보도 듣도 못한 음식들의 향연에 눈이 휘둥그래해질 뿐.
거기다 외가쪽 동네는 김양식을 주로 하는 곳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대나무 발에 김을 말리는 모습은 너무 신기해서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아무것도 없는 동네가 나에게는 마치 엘리스가 들어간 이상하고 신기한 세계였다.
돌아올 때는 녹동까지 누군가 어르신이 데려다줬었다.
그리고 녹동부터 집까지는 몇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어쨌든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온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받은 용돈을 두둑히 안고..... ^^
우리 엄마는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어린 나를 그 먼곳까지 혼자 보냈으며, 나는 또 무슨 배짱으로 혼자서 돌아와야 한다는데 겁도 하나 안내고 갔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돌아오던 길은 경로며 버스안에서 보던 풍경이며, 혼자 다음 행선지 버스를 찾던 내 모습이며가 제법 또렷하게 남아 있는데 하루종일 걸렸던 그 시간들이 지겨웠던 기억은 없다.
그 첫번째 여행이 좋아서였을까?(일단 무사히 왔고, 온 동네 어르신들에게 멀리서 왔다고 귀여움을 잔뜩 받았고 - 그 동네 집성촌이니까 다 친척이다 - 귀여움의 실질적 표현인 용돈도 잔뜩 받았고....ㅎㅎ)
지금의 나는 어디든 떠나는 여행에 대해서는 거의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지금의 팬데믹 이전에는 여행을 위해 1년을 산다고 해도 좋을만큼 1년 내내 나는 여행 준비 중이었다.
한달의 여행을 위해서 1년을 쏟아붓는 준비의 수고가 하나도 어렵지 않고 즐겁기만 하다.
사실은 지금도 여행중이다.
책을 읽는다는건 사실은 실제로 몸이 움직이는 여행보다 더 큰 여행이다.
책속으로의 여행은 시간도, 인물도, 생각도, 풍경도 모든 것이 너무나 다양하고, 심지어 내가 그걸 마음대로 고를 수도 있다.
이 책은 100권의 책들 속에서 여행과 관련된 문장들을 뽑고 이다혜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옆 페이지에 적은 에세이다.
작가는 책의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살아있구나, 여행을 하면서 내가 찾는 경험은 '살아있구나'라는 실감이다. 그게 전부다. 일상이 싫고 여행이 좋아서 여행지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는 뜻이 아니다. 아니라고! - 9쪽
내가 이 가벼운 에세이를 좋아하게 만든 문장이다.
여행은 우리 인생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그렇게 극적인 일도 뭔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은 생각보다 무겁다.
수많은 책임과 직장이든 집이든 해야할 일들은 늘 쌓여있고, 때로는 기습적으로 큰 일들도 생긴다.
대부분 그 일상은 아무리 무거워도 지고가야지 회피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내게 여행은 그 일상의 무게를 잠시 벗어나서 내게 다른 시간을 잠시 주고,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어린날 내 첫 여행처럼 이벤트 같은 것.
누군가에게는 여행이 직업이 되고, 여행이 일상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특별한 소수의 누군가들일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실 그렇게 하고싶지도 않고....
그게 이다혜 작가가 표현한대로 살아있구나라는 느낌, 내식대로라면 아 그동안 나 힘들었구나라며 내 머리를 스스로 토닥여주는 느낌이다.
이 책의 에세이들은 그런 평범한 여행의 느낌들에 대해 조곤조곤 얘기해주고 있다.
그래서 그곳이 어디든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이야기들을 해주고 있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이 팬데믹 시대에 지금이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더 키워주는거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