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리뷰를 쓰면서 남편과 나의 옛날 이야기를 살짝 들춰봤더니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남편이 군대에 가 있을 때 나는 딱 2번 면회를 갔었다.
그것도 혼자 갔으면 뜨거운 밤을 보냈을지도 모르지만,
그 때 내 나이에 혼자서 가기에는 남편은 너무나 먼곳에 있었다.
논산의 신병훈련소 다음에 뭔지 모르는 후반기 교육을 받는다고 한달간 배치된 곳이 경기도 어디였다.
어디였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하여튼 그 때 친구들과 5명이서 용감하게 면회를 갔었다.
새벽 첫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아침에 도착했었다.
당시에는 예매 시스템이라는게 없었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건 밤에 내려갈 기차표를 역에서 미리 예매하는 것이었다.
저녁 7시쯤 기차를 매표창구에 가서 당당하게 얘매하고 - 내가 예매했다. 이게 중요하다. - 우리는 남편, 그 때는 애인이의 군부대를 찾아갔고, 잘 놀았고, 넉넉하게 시간맞춰서 서울역으로 돌아왔다.
아니 그런데 기차를 탈려고 개찰구에 간 순간 우리는 기차 탑승을 거부당했다.
아니 왜요? 왜왜왜~~~~~
내가 예매했던 기차표는 오후 7시 기차표가 아니라 오전 7시 기차표였던 것이다.
내가 예매할 때 예매창구에서는 내가 그냥 7시라고 하니까 좀 있으면 떠날 아침 7시 기차표를 끊어 주었던 것.
그걸 확인도 안하고 룰루랄라 하루종일 놀았던 것이다.
아 진짜! 이 때는 신용카드도 없고, 계좌로 돈 보낸다는 개념도 없고, 기차는 이미 떠나서 환불 0원이고....
우리는 주머니의 개인 돈들을 탈탈 털었다.
정말 천만 다행히도 기차표를 살 돈이 되었다.(아니었으면 누구 하나 부산 집에 전화걸어서 서울역으로 돈 들고 오라고 해야할 상황...ㅠ.ㅠ)
그나마 기차표도 마지막 기차인 밤 11시 30분꺼밖에 안 남았고, 우리는 거지가 되었고....
서울역에서 거지가 된 우리는 남아있는 잔돈으로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 수 있는지를 고민하다가 서울역 근처 만화방에 들어갔다. 거기서 컵라면 2개인가로 5명이서 끼니를 때웠고, 만화 1권씩을 빌려서 3시간 동안 아끼고 아끼며 봤다.
내 일생 가장 정성스럽게 본 만화였다.
아 그러고보니 나의 친구들은 다들 나를 잠시 한심스럽게 보기는 했지만 아무도 욕을 안했고나.
평소에는 입에 욕을 달고 다니는 것들이 말이다.
고맙다 친구들아! 그래서 내가 아직도 너네들이랑 노는가보다.
대망의 2번째이자 마지막 면회는 그 1년쯤 뒤였던 것 같다.
1월 아주 추운 날이었다.
아직도 생각나는 그 동네, 강원도 화천군 사창리 이기자 부대!
1990년대 초반 부산에서 저기까지는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미지와 고난의 길이었다.
또 나의 절친 여자애와 같이 이번에는 밤기차를 타고 새벽 4시 반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면회간다고 하니까 애인이가 부산 촌놈 너는 여기 못찾아온다고, 마침 서울에서 대학다니는 친구가 같이 와준다니까 서울역에서 만나서 같이 오라고 하더라...
서울역에 도착하니 아직 잠이 안깨서 부스스한, 어제 술먹은것 같은 퉁퉁 부은 얼굴의 애인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전에 몇번 본 적은 있지만 내친구는 아니니까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근처에서 국밥을 먹었던 것 같다.
강원도 부대쪽 가는 버스는 아침 9시 넘어야 있다길래 그 때까지 갈곳이 없어서 그냥 서울역 대합실에서 죽치고 기다리다 버스 타러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애인이 친구가 나한테 "바람돌이씨 광릉 수목원 안가봤죠? 거기 진짜 좋은데 거기 갔다 가면 동선도 맞고 시간도 맞을 것 같은데 어때요?"라고 하는거다.
"거기 이 아침에 열어요?"
"에이 안열었으면 담넘어 가면 되죠."
그래 그래 내가 뭘 알겠는가? 담을 넘자면 넘고, 개구멍으로 들어가자면 가야지.
또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우리 셋은 광릉 수목원으로 갔다.
어쨌든 담을 넘어 광릉 수목원안으로 들어간 것 까진 좋았는데....
추웠다.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올정도로 추웠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싶게 추웠다. 애인이의 친구를 죽이고 싶도록 추웠다.
뛰어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추웠다.
어디가 좀 덜 추울까를 찾아서 우리는 그 넓은 광릉 수목원을 헤매고 다녀야 했다.
그 때 갑자기 직원 한 분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개장도 안한 시간에 입장권도 안 끊고 들어온 우리를 기가 차다는 듯이 바라보며 "아니 어떻게 들어왔어요?"라고 하는 그 분께 우리는 "살려주세요. 너무 추워요"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 진정 그분은 우리의 구세주셨다.
우리를 별로 나무라지도 않고 온실로 안내해주셨으니....
그러면서 날 밝을 때까지 여기서 쉬다가 가요 하면서 사라지셨다.
진짜 훌륭하신 분! 우리는 인사를 90도 폴더폰으로 하며 생명의 은인을 보내드렸다.
지금도 나는 간절하게 기원한다. 부디 복받으세요. ^^
어쨌든 애인이의 2번째 면회도 무사히 다녀왔다. 그러나 나는 그 후로 다시는 면회를 가지 않았다.
아 늙나보다.
자꾸 옛날 생각나면서 피식거리는 거 보면....
생각난 김에 주말에 여러분도 그냥 웃으라고 쓴 글인데 웃어주시면 다행, 아니면 어쩔 수 없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