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대
하늬바람이 휘몰아치는 삼동의 밤은 길다. 달이 없는 밤이면 먼 하늘에 별빛도 희미하게 얼어붙어 발 밑도 가릴 수가 없다. 바람소리와 문풍지 우는 소리에 곁들여 외양간에서 여물을 삭이는 소의 풍경소리가 이따금 섞일 뿐 사방은 묵직한 어둠인데, 초가삼간의 봉창 언저리는 달무리처럼 손바닥만하게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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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대 석유나 전등이 들어오기 전까지 등잔은 우리의 밤을 밝혀주었다. |
소나무를 까뀌로 깎아 만든 등잔대에는 사기등잔에 명씨기름을 붓고 거기에 솜을 곱게 꼬아서 적신 심지 끝에서 작은 불꼬리가 촐랑거린다. 가장자리는 군데군데 해어졌을망정 삿자리는 깨끗이 걸레질이 되어 정갈한데, 단칸방 한 모서리에 놓인 희미한 등잔불 아래에서 할머니는 물레질에 여념이 없고 어머니는 씨아를 돌리며 무명씨를 앗기에 바쁘다.........
밤이 이슥하게 되면 그들은 한 차례 밤참을 나눈다. 밤참이라야 움에서 내온 배추 뿌리거나, 얼음이 뜬 국물이 시원스런 동치미거나, 때로는 뒷산에서 주운 도토리로 만든 묵이 고작이지만 모두 달게 먹고 첫닭이 홰를 칠 무렵이 가까워서야 두 방의 불은 조용히 꺼진다. 그때까지도 먼 초당에서는 마을 머슴들이 부르는 노랫가락이 바람결에 들려온다.
오늘날에 가장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등잔이나 호롱이나 초를 제자리에 놓으려고 장만했던 받침이나 걸이다. 등잔받침, 등잔걸이, 호롱받침, 호롱걸이, 등경, 등가, 유경, 촛대 따위로 불리는 이들의 가장 기본되는 생김새는 대나무 마디의 꼴을 한 것이다. 곧 둥글거나 네모난 바탕이 밑에 있고, 가운데 가느다란 토막 기둥에 대나무 매듭을 조각하고 그 위에 네모지거나 둥근 바탕보다는 훨씬 작은 등잔과 호롱이 얹힐 만한 받침을 만들었다. 그러자니 크게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 셈인데, 그 길이와 너비와의 비례라든지 전체 모양에 무리가 없어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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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받침이 달린 등잔대 슴벅이는 등잔이나 호롱불 아래서 한집안 식구끼리, 정다운 이웃끼리 오손도손 정겨운 모습이 지난날의 삶이었다. |
죽절등잔이나 호롱받침 말고도 바탕을 거북으로 삼고, 기둥은 학이 한 다리를 깃에 감추고 서 있는 모양으로 새겨서 그 머리 위에 받침을 놓은 정교한 조각품으로 된 것이라든지, 바탕은 넓은 연잎을 조각하고 기둥은 연꽃대로 되어 자잘한 줄기와 가는 가시까지를 세밀하게 새겨, 받침은 막 피어날 듯한 연꽃으로 가늠한 것에서 옛 장인의 빼어난 솜씨가 보이는 것도 있고, 나무토막을 아무렇게나 깎아서 만든 우악스럽고 힘찬 것도 있으며, 선비가 소일 삼아 장도로 온갖 기하학적인 무늬를 정성들여 아로새긴 것도 있다.
이들의 재료는 오지, 사기, 나무, 벽돌, 놋쇠, 무쇠, 구리, 옥돌같은 갖가지가 있고, 형태가 저마다 다르며, 크기에서도 한 길이 넘는 것에서부터 한 뼘도 차지 않는 것까지 다양하며, 솜씨는 더더구나 천층만층이다.
이와같은 모든 것에 아랑곳없이 실용을 위한 기능의 철저한 추구는 형태의 아름다움을 어김없는 것으로 하였고, 이에 곁들여 하루도 없어서는 안되었을 생활 속의 필요성은 그것을 곱디고운 생활의 때와 애정으로 겹겹이 감싸서 아름답기가 한결같게 했다.
슴벅이는 등잔이나 호롱불 아래가 아니면, 촛대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타들어가던 촛불의 그늘에서 한집안 식구끼리, 정다운 이웃끼리 오손도손한 정겨운 모습이 지난날의 삶이었다. 그랬던 것이 석유에서 전기로, 백열등에서 형광등과 수은등으로, 그것도 모자라서 오색이 현란한 네온싸인의 독버섯이 대낮이 무색하게 우리의 밤을 밝혀도, 저마다의 가슴에는 오손도손함보다는 도리어 차디차고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