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로

향로는 향을 피우는 그릇이다. 향로에 향을 피우는 일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밝혀지지 못하고 있으나, 향로의 유물로는 1916년에 평안남도 대동군의 낙랑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청동으로 만들어진 박산로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기록으로 남겨진 것으로는 '삼국유사'에 "묵호자가 향을 살라 왕녀의 병을 고쳤다"는 대목이나 '삼국사기'에서 "미녀 김정란의 몸에서 향내가 풍기고 있었다"는 것 따위가 있다........

이렇게 옛날부터 향이 널리 피워졌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 내음이 아름다운 데에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어느덧 거기에 뜻이 깃들게 되어서 하늘이나 땅을 받드는 제사에나 부처님이나 공자님을 우러르는 의식에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사(邪)된 귀신이나 온갖 나쁜 재앙을 가져오는 잡귀를 몰아내고 복을 주는 착한 잡신을 맞아오는 힘이 있는 것으로까지 믿게 되었다. 또 향이 스스로의 몸을 태우면서 풍기는 아름다운 향내 때문에 세상살이에서도 긴한 구실을 하였다. 곧, 조정에서 정사를 의논할 때나 선비가 호젓이 마음을 가다듬고 글을 읽거나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나 반가운 벗이 멀리서 찾아왔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향을 피웠다.........

향로 향로는 시대에 따라 생김새를 달리했고 놓일 자리를 좇아 크기를 달리 했으며 형편에 따라 소재를 달리했다.

향로의 생김새나 소재 또는 크기가 다양한 것은 향의 종류가 많은 것과도 상관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향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나 향로에 피우는 훈향만을 놓고 볼 적에 빻아서 가루로 만든 말향이 있고, 빻은 가루를 환으로 빚은 환향이 있는가 하면 국수가락처럼 가락으로 늘인 선향 따위가 있는데, 선향 하나만 보아도 굵기와 길이가 저마다 다르다.......

청동은입사향완 고려시대, 검은 오동 바탕에 화사한 은사 연꽃을 깔고 구름 사이에는 용이 꿈틀대고, 그 사이사이에 영락이 드리워 지고 범자나 완자무뉘가 새겨져 있어 그 시대상과 인심을 보여주고 있다.(영국 런던 대영박물관 소장)

여러 향료 가운데서도 사향은 강원도 고산 지대의 사향노루배꼽의 진에 고산식물의 꽃가루가 묻어서 엉긴 것을 따서 말린 것으로서 그 값은 금보다도 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난한 선비들이 향내를 즐기고자 할 때는 늙은 잣나무의 뿌리와 가지와 잎새 및 열매를 곱게 빻아서 단풍나무 진으로 반죽을 하여 환을 지어서 썼으며, 그것이 번거로우면 향나무 가지를 꺾어서 그늘에 오래도록 말렸다가 그것을 패도로 곱게 저며서 향로에 사르기도 하였다.

향로 쓸데없는 군더더기 장식이 없고 날렵하면서도 힘차고 다부져서, 이렇다할 꾸밈새가 없는 것이 되려 꾸밈새로 여겨질 만큼 아름답다.

사당이나 부처님 앞에 향상을 놓고 향상 위에 왼쪽으로 향로를, 바른쪽으로 향합을 얹고 경건하게 두 번 절을 하거나 세 번 합장배례를 하고 향로에서 향연이 그윽히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깊은 사념에 잠겨 삼매의 경지에 드는 모습이나, 솔바람소리와 물소리를 함께 듣는 산정에서 뜰 앞 푸른 이끼를 밟고 찾아든 벗을 맞아 향을 피우고 따끈한 한 모금의 차를 권하는 정경은 생각만 해도 흐뭇한 것이다.......

부녀자들은 향수를 즐겨 쓰고 있어서 이른바 파티장 같은 데에서는 향수 내음이 물씬할 때가 많다. 그 내음은 때때로 이웃에 두통이나 구토를 일으키게 할 지경인데도 그것만 좋아라 하고 향로에서 피어나는 훈향에는 무관심한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정작 이웃 나라들에서는 혼자만의 즐거움을 위해서 또는 찾아드는 손님을 환대하기 위해서 코언저리에 닿을까말까 하게 은은한 향을 피워두는 멋을 간직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와 같은 습속을 저버린 지 오래다........

깊어가는 겨울밤에 향상 위에 향로와 향합을 가지런히 놓고 거기 재 속에 간직된 불에 좋은 향을 사르는 한 순간을 연상해본다. 며칠에 한 번씩만이라도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된다면, 또 이와 같은 생각이 공감을 얻어서 향과 향로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질 수 있다면 나날의 숨가쁨이 청아하게 누그러질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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