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반

나라를 앗겼을 때에 북간도로 가는 기차는 이민 열차와 같았다. 3등칸은 늘 고향과 선산과 이웃과의 정의를 끊고 눈물을 흘리며 스산한 낯선 땅을 찾아 나서는 유민들로 가득 찼다.

한결같이 겨울이면 흰 무명옷을, 여름이면 누런 삼베옷을 입고 남정네는 지고 아낙네는 이고 코흘리개들을 앞세우고 나라를 떠났다. 모든 것을 훌훌 떨어버리고 나서는 길이었지만 그래도 대를 이어 물려받은 손때 묻은 소반만은 얼마 크지 않은 봇짐 위에 소중히 얹어 가는 것이 약속처럼 되었다.

소반은 생활 속에서 그토록 긴하고 소중하였다. 우리들은 예부터 음식을 땅바닥에 놓고 먹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알았다. 심지어는 남의 문전마다 찾아다니며 음식을 빌어먹는 거지에게조차 맨바닥에 음식을 주는 일이 없었다.

사람이면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소반에 받쳐 음식을 들기 마련이었고 따라서 거기에 따르는 범절도 여느 일용품을 쓸 때에 비겨서 까다로웠다. 이를테면 소반 모서리에 앉아서는 안된다든지, 수저를 쓸 때에는 소반에 소리가 나도록 해서는 안된다든지, 또 소반에 칼을 얹어서는 안된다든지, 처마끝 밑에 상을 올려서는 못쓴다든지 하는 따위와 같은 여러 금기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소반을 중히 여기고 그럼으로써 스스로에게도 소홀함이 없기를 기약하는 일이었다.

소반은 그냥 반이라고도 했고 상이라고도 했으며 쓰임새에 따라 반상, 주안상, 다반, 향상, 번상, 제상, 교자상, 대궐상, 돌상, 약반 따위로 이름을 붙였다. 그 뿐만 아니라 소반의 천판 생김새에 따라 열두모반, 여덟모반, 네모반, 책상반, 반달반, 연엽반, 두리반의 구분이 있고, 또 다리의 꾸밈새를 좇아 개다리소반, 범다리반, 죽절반, 외다리반 따위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은 산지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서 전국에서 가장 이름이 있는 것은 경상남도의 통영반과 전라남도의 나주반과 황해도의 해주반이라 할 수가 있다. 이 세 고을에서 만들어졌던 소반들은 천판과 다리를 이어 만든 꾸밈새의 바탕은 같으나 저마다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해주반 천판은 통영반과 같으나 좌우로 널을 써서 다리로 삼았으며 천판 밑의 앞뒤에는 운각을 받쳐서 짜임새를 갖추게 했다.

생각해보면 소반만큼 지난날에 우리 삶과 깊이 어울린 공예품도 드물었던가 싶다. 어머니는 이미 아기를 배스리기 전부터 소반에 정화수를 떠놓고 첫새벽마다 해와 달과 별들에 옥동자를 점지해주기를 빈다. 이윽고 아기가 들어선 다음에도 열 달 순산을 바라는 기원이 소반위에서 이루어지고 아기가 태어나면 태어난 대로 세 이레를 소반에 미역국을 올려놓고 삼시랑님에게 아기가 명복과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백일이 지나고 돌이 되면 돌상을 차린다. 소반 위에는 책과 활과 엽전을 놓는데 아기가 그 가운데서 먼저 잡은 것으로써 아기의 장래를 점치며 희망을 걸어보기도 한다.

지체와 형편에 따라 왕가에서는 주칠과 흑칠을 하여 용, 봉황, 모란 따위의 온갖 호화로운 무늬를 한결 돋보이도록 새기고 파고 뚫어 만든 대궐반으로 호사를 누렸고, 여염에서는 소반에 나비, 박쥐, 완자, 구름, 아자, 초룡 등 무늬에 생칠을 하여 형세대로 소반을 쓰는 기쁨을 누렸다. 또 끼니를 잇기가 어려운 가세에서는 조각도 칠도 못한 백골반일망정 들기름을 곱게 먹여 아침저녁으로 행주질에 정성을 쏟아 옻칠 못지않는 윤이 나게 된 소반을 아꼈다.......

개다리소반 소반은 다리의 꾸밈새를 좇아 개다리소반, 범다리반, 죽절반, 외다리반 따위로 나누기도 한다.

또 먼 길을 찾아온 반가운 벗과 더불어 마른안주 한 접시와 놋주전자와 놋잔이 놓인 자그마한 연엽반 주안상을 끼고 향기로운 가양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거나하게 취하는 정경은 우리 살림에서 볼 수 있었던 멋의 집약이었다고 할 수가 있겠다........

소목들은 소반의 쓰임새와 그 아름다움을 위해서 사랑스런 아기의 볼을 어루만지듯이 나무를 다룬다. 그들의 일에는 노동의 괴로움보다는 새로 이루어지려는 소반에 대한 기쁨과 애정이 괴어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른다. 입에 길게 문 장죽에 연신 군침이 타고 흐르는 것도, 또 어느덧 콧등에 얹은 돋보기가 콧부리로 처져내리는 것도 잊고 저도 모르게 양산도 가락을 흥얼거리게 된다. 그럴 때면 그들은 일의 노예가 아니라 아름다움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된다.

그래서 나무소반 뿐만 아니라 놋쇠소반이나 나전칠기반이나 노엮개반이나 할 것 없이 심지어는 상주들이 쓰는 아무런 칠도 장식도 없는 백골반에 이르기까지 소반의 아름다움은 한결같다.

지난날의 소반들은 쓰면 쓸수록 아름다움은 더해가고 세워이 가면 갈수록 추억과 생색을 더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소반은 어떤가? 얼마 동안 쓰다가 아무런 미련과 애착도 느낌이 없이 손쉽게 버리기에 안성맞춤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소반의 황폐는 오늘날의 생활과 마음의 가난함에서 빚어졌다고 서슴없이 말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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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아저씨 2004-03-27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북한에서 마구잡이로 들여오는 해주 소반중엔, 쉬운 반입을 위해 해체해서 갖고 와 남한에서 재조립 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더군요.
온전한 아름다움을 위해 잠시 영리를 위한 마음을 접을 수 있다면 좋을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