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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짇고리
지난날에 우리 여자들이 지녀야 했던 여러 가지 덕목 가운데서 바느질 솜씨는 길쌈 솜씨, 음식 솜씨와 더불어 가장 무겁게 여기던 터였다. 그래서 여자 아이를 낳으면 철이 들까말까 한 나이부터 바느질을 가르쳤다. 바느질, 이른바 '침선'을 배운다기보다는 자연히 그 세계로 젖어든다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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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팔각반짇고리 |
양장이 없었던 때에도 옷맵시를 아름답게 가꾸고자 하는 마음에는 다름이 없었다. 꽃답고 값진 중국 비단으로 만든 옷에 대한 동경은 그지없어도 여염 살림에서는 어림이 없어 옷감으로는 겨울이면 무명, 여름이면 삼베가 고작이었다. 명주나 세목, 아니면 모시를 철따라 입을 수 있으면 큰 호사로 알았다.
어려운 살림살이를 규모 있게 꾸려가야 하는 터수로는 분수에 넘치는 사치는 감히 하늘이 두려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비록 옷의 사치는 못한다손 쳐도 짇고리만이라도 곱고 예쁘게 가꾸고자 했던 여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유물은 흔하게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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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나전칠기반짇고리 옷의 사치는 못한다손 쳐도 반짇고리만이라도 곱고 예쁘게 가꾸고자 했던 여자의 마을을 읽을 수 있는 유물은 흔하게 볼 수 있느데 반짇고리가 바로 그런 것이다. |
화려한 반짇고리로는 통영 지방에서 즐겨 만들던 나전칠기가 있다. 오동나무나 은행나무처럼 나뭇결이 순하고 가벼운 것으로 반짇고리의 바탕을 만들고, 검거나 붉은 칠을 두껍게 올려 전복 껍질로 온갖 무늬를 놓은 것이다......
그러나 가장 가벼우면서 또 가장 흔하게 쓰였던 것은 대로 견 반짇고리다. 참대를 곱게 다스려내어 둥글게 결어 겉을 삼고 속대를 납작하게 다듬어 삿자리처럼 곱게 엮어서 안을 받쳐 마무리 변죽은 까만 오죽으로 두른 대반짇고리는, 이렇다 할 무늬도 없으나 새것일 때는 대가 지니는 깨끗함으로 하여 처녀의 속살처럼 정갈한 멋이 있고, 해가 묵으면 곱게 손때가 올라 반질거려서 그런대로 다소곳이 늙어가는 금방의 중년처럼 품위 있게 아름답다.
규방에서 언제나 한 모서리를 차지했던 반짇고리도 재봉틀이 들어오고 화학섬유들이 판을 치게 되면서는 점차로 저버려지고 있어서 지금은 시장에서 나도는 반짇고리를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또 희미한 호롱불 아래에서 한쪽 무릎을 세우고 단정히 앉아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첫닭이 홰를 칠 무렵까지 바느질을 하던 아낙의 모습도 보기가 드물게 되었다.
이와 아울러 우리 여자들의 손끝에서도 맵짠 바느질 솜씨는 점차로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다. 이 모두가 세월의 변천과 거기에 따르는 생활 양식의 변모의 소치로서 그것을 새삼스럽게 탓할 수도 없고 그럴만한 까닭도 없으나, 그렇다고 하여 반짇고리에 어린 향수가 쉽게 지워지지도 않으니 딱하다.
문득 흥보타령의 비단타령에 오른 허다한 옛 비단들의 생각이 나곤 한다.
일광단, 월광단, 송백단, 대단, 와룡단, 영초단, 화초단, 함포단, 장원주, 가겨주, 상사단, 공단, 호피단, 인조사, 복수단, 궁초단, 꾀초단, 모초단, 새발광릉, 노방주, 청사, 홍사, 통견, 백납릉, 월하사주, 당포, 윤포, 세양포, 수주, 통오주, 성천 분주, 경산도 횡저포, 갑사, 옥구 자주, 길주, 명천 세마포, 강진 나주 극상세목, 해남포, 도리마, 장성 모시, 한산 세모시, 생수삼팔, 갑회, 고사, 관사, 청공단, 홍공단, 백공단, 흑공단.......
이렇게 판소리에서는 비단들의 이름이 두루 섬겨져서 이름이나 남았고, 또 그것을 마름질하여 꿰매는 데에 쓰인 바늘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순조 때 사람인 유씨부인이 '조침문'을 지어, "......오호 통재라.......천은으로 집을 하고 오색으로 파란을 놓아, 곁고름에 채였으니 부녀의 노리개라. 밥 먹을 적 만져보고 잠잘 적 만져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낮에 주렴이며 겨울밤에 등잔을 상대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하고, 오랜 동안 아껴 쓰던 바늘이 부러진 것을 슬퍼하는 글을 남겨서 규방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