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념 - 나와 세상을 바꾸는 힘에 관하여
피트 데이비스 지음, 신유희 옮김 / 상상스퀘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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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와 '전념하기 반문화'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우리는 한 가지에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열광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탐색 모드에만 머무르고 있다. 왜 우리는 망설이는 걸까? 

저자는 세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첫째,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느 하나에 전념했다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둘째, 유대에 대한 두려움이다. 무언가와 관계를 형성하고 헌신하면 그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 평판, 통제감에 혼란이 생길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셋째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나에 헌신하면 책임감 때문에 다른 것은 될 수 없고, 아무 데도 갈 수 없으며 아무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는 우리 경제가 특정한 장소, 사람, 사명 등의 특정 대상에 충실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명예 대신 무관심이 도덕성의 기준이 되고, 기술이나 신념을 갖기 보다 경력을 쌓고 출세하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되었다. 저자는 과거 어쩔 수 없이 헌신하거나 지금의 선택지 열어두기문화를 대체할 수 있는 긍정적 대안으로 '자발적 전념하기'를 제시한다. 자기 스스로 특정 신념과 기술, 장소와 공동체, 직업과 사람에 전념하기로 선택을 하는 것으로 그것들과 충실하게 관계를 맺자고 말한다. 저자는 더 많은 사람이 무한 탐색 모드에서 벗어나 전념하기 반문화에 합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변화에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변화는 느리게,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일에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만약 변화가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것이라면 꾸준한 헌신은 필요없을 것이다. 초반에 느끼는 환희나 분노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변화에 꾸준함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변화를 만드는 일이 전투 전략을 짜는 일보다 관계를 일구고 유지하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변화의 길에는 '단순화'하거나 '조정'하거나 '자동화'할 수 없는 과정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기관과 공동체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뉘앙스를 배우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와 흐름을 가져야 한다. 

만약 우리 세계가 끝을 맞이한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꾸준히 유지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우리를 밤새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은 전쟁이나 폭동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상적인 것 즉 가꾸지 않은 정원, 오갈데 없는 사람들, 무시당하는 대중의 소리 등으로 밤을 지새우곤 한다. 그러나 이런 불안을 실제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전념하기는 개인적인 기쁨, 사회적인 번영, 자신의 존재와 삶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보상을 준다. 전념하기는 우리 안에서 믿음이 유기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하고, 어느 한가지에 몰입하면 두려움이 희미해질 수 있다. 전념하기의 핵심은 시간을 통제하는 것에 있다. 

무한 탐색 모드에도 장점은 있다. 특히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유효하다. 이 시기에는 여기저기 탐색하는 것이 즐겁다. 탐색을 통해 자기에게 맞는 공동체나 정체성을 찾았을 때 느끼는 기쁨 또한 매우 크다. 무한 탐색 모드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많고 재밌으며, 큰 위험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새로운 경험을 아주 많이 할 수 있다. 융통성은 탐색의 가장 분명한 장점이다. 융통성과 탐험의 기회가 가져다 주는 중요한 결실은 진짜 자아를 찾는데 도움을 준다. 또다른 장점은 새로움이다. 삶에서 가능한 많은 새로움을 즐기겠다는 생각은 욜로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반대로 포모는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남들만큼 충문히 경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공포감을 가리킨다. 

언젠가는 이 탐색을 마치고 전념하기를 해야 할 순간이 온다. 무한 탐색 모드의 융통성은 '결정 마비'로 이어진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여기저기 탐색만 하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전념할 자신이 없어진다. 더 많은 선택지를 탐험할수록 선택하지 않은 대안에 미련을 갖고, 존재하는 모든 매력 요소를 결합한 허구적인 대안에도 사로잡힌다. 그 많은 선택지와 노력에도 결과는 언제나 기대만 못하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쾌락의 쳇바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만족감을 좇고 있다는 것이다.

무한 탐색 모드는 고립을 낳을 수도 있다. 아노미는 경기에서 패배했을 때 느끼는 절망이 아니라, 득점판이 없을 때 느끼는 절망이며, 여행 중에 길을 잃었을 때 느끼는 절망이 아니라, 가치 있는 목적지가 없을 때 느끼는 절망이다. 아노미의 해독제는 진짜 공동체이다. 삶의 의미에 대해 같은 시각을 공유하는 사람들, 우리가 애정을 가지고 또 우리에게도 애정을 가져주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아노미는 공동체의 부족, 규제의 부족, 문화적 규범, 도덕적 지침, 규칙이 부족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같이 어울릴 친구뿐만 아니라 거기에 부여되는 책임, 사명, 기대치, 열망, 명예까지도 원한다. 구성원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집단이 오히려 더 번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책임을 지기 원한다. 책임감이 우리를 의미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현대는 과거에 비해 내가 선택하지 않은 지역, 역할, 생활방식, 기대치와의 관계가 한결 느슨해졌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방식으로 선택지가 다양하고 풍부해졌다. 사람들은 비자발적 헌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속박에서 벗어난 다음 무언가를 하기를, 헌신하기를 원한다. 

전념하려면 '전념하기의 미덕'을 가꿔야 한다. 이루어지지 않은 목표를 마음 속에 그릴 수 있는 상상력,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통합력, 집중할 수 있는 집중력,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는 근성, 관계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열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선택지가 있어도 계속해서 하나에 매달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비자발적 헌신에서 벗어났지만 자발적 헌신을 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탐색과 전념 사이의 긴장감이 계속되면 결국에는 결정 마비, 아노미, 피상적인 삶이 주는 괴로움이 융통성, 진짜 자아찾기, 새로움이 주는 즐거움을 저해한다. 이러한 긴장감을 잠재적 불안, 번아웃, 일방적인 동요, 단순 무기력 상태 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p.83)

전념하기를 향해 가는 길도 여러 갈래로 나뉜다. 우리가 헌신할 수 있는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전념하기 반문화에 합류하는 것이 위대한 운동에 뛰어들거나 공동체를 위한 슈퍼맨이 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신념은 별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스스로 전념할 수 있는 한 가지면 충분하다. 우리의 헌신을 기다리는 기술, 프로젝트, 지역, 공동체, 기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념하기 반문화에 합류하기 위해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다양하다. (p.113)

대의에 헌신하는 것은 시민의 헌신이다. 사회의 운명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이로운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시민은 비전을 행동으로 옮긴다. 자신이 사는 지역과 공동체에 헌신하는 것은 애국자이다. 애국심은 우리나라가 '최고'라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우리나라의 한 부분이기에 사랑한다. 내가 알고 내가 속한 나라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진정한 의미의 애국심은 국가와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마음이다. 건축가의 전념하기는 꿈을 현실로 만든다.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이상적인 방향으로 밀거나 끌어당기는 시민과 달리 건축가는 무언가를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비전을 그려본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유지하려면 누군가는 관리인이 되어야 한다. 혁심은 기술 발전의 첫 번째 단계일 뿐이다. 기술의 대부분은 유지보수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든 작업을 하는 사람은 유지하고 지키는 사람이다. 

친구 하나가 지역 도서관에서 열리는 월간 독서 토론에 갈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유난히 춥고 비가 오는 날이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녀는 코트를 집어들고 "아무래도 내가 가야 할 것 같다."라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내가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세상을 지탱한다. (p.132)

기술을 연마하는 것도 전념하기의 한 갈래다. 오랫동안 노력해서 기술을 갈고닦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수의 경지에 오른 후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전념하기의 마지막 갈래이면서 가장 중요한 헌신은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동료를 말한다. 누군가에게 신뢰할 수 있는 동료가 되는 일은 금세 또는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좋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상대방과 완벽하게 잘 맞는 사람이나 공통점이 아주 많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좋은 친구가 되는 기술을 쌓은' 사람이라는 내용이다. (p.142)

전념하기의 길을 갈 때 무언가에 전념했다가 나중에 다른 것에 전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 두려워한다.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려운 마음을 극복하려면 선택에 대한 부담감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 잘 안 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부담감 없이 전념하고자 결심할 수 있다. 

부담감을 내려놓았다면 이제 결정마비를 극복해야 한다. 그것은 감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선택지의 장단점을 생각하느라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선택이 가능하다. 그리고 가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자기가 중시하는 가치를 발견하는 방법은 존경하는 영웅의 사례를 수집해서 이 상황에서 '영웅'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대입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장단점 목록은 이때 도움이 된다. 결정을 내렸으면 실천을 해야 한다. 일단 해보고 생각하라. 선택지 고르기의 과제는 '올바른'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미래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니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내 선택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유대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정체성, 평판, 통제감'이 위협받을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자아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자신의 자아를 고정적이고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하면 자신의 개인적 특성이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이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자아를 바라보는 관점을 자신의 자아가 정지된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며, 유기적인 것이라고 보다면 여러 관계를 통해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헌신하는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정체성 형성을 도와준다. 

또한 자신의 자아가 과정적이고 독립적이기 않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평판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보편적인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하기 보다 매력점이 분명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특정 소속을 피하려는 사람을 우리는 실체가 없다고 표현한다. 특정한 것에 헌신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경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명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독립적이고 고립된 상태에 있을 때 통제감을 느낄 수 있기도 하지만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오히려 그보다 더 강한 통제감을 느낄 수 있다. 타인과 함께 공동체를 이룰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 혼자일 때는 스스로 변화하기가 어렵지만 공동체는 그런 불안과 걱정을 이겨낼 수 있게 하여 변화가 가능하게 도와준다. 전통을 바꾸려면 전통이 필요하고, 규칙을 바꾸려면 규칙이 필요하다. 공동체를 변화시키려면 공동체 안에 속해야 한다. 인간 관계는 특히 더 먼저 상대방의 신뢰를 얻어야 조언할 수 있다. 독재정권은 시민들이 자신의 신념에 대해 사유하고 헌신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갈등을 힘으로 다룬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유대를 형성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일에 모두가 참여한다. 전념하기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 

고립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고를 수 없었던 다른 선택을 아쉬워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념하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 없었을 모든 새로운 순간을 아쉬워 하는 것이다. (p.202) 

우리가 새로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만성적인 포모가 찾아온다. 새로운 경험이 주는 보상은 갈수록 줄어들고 즐거움이 지루함으로 변한다. 그러나 목적은 이와 반대로 작용한다. 목적은 지루하게 시작해서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목적이 삶의 원동력인 사람은 깊이 있는 경험을 한다. 그들은 깊이가 곧 새로움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사는 인생이니 깊이 파고드는 것이 낫다. 깊이 파고드는 것이 좋은것임에도 우리가 항상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정이 힘들수록 성취감도 크다. 기다림은 힘들었지만 열매를 수확할 때가 되면 그동안의 기다림은 보상을 받는다. 전문지식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식을 쌓으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사라진다. 전문지식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포착하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능력도 갖출 수 있다. 작은 전념이라도 거기에 깊이가 더해지면 폭발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깊이 파고드는 것을 막는 위협들은 지루함, 산만함, 불확실성, 유혹, 목표 변질, 고통과 피로가 있다. 


과거에 비해 확실히 선택지가 많아졌다. 결정장애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져 있다. 소셜미디어는 점점 더 짧은 컨텐츠로 승부를 본다. 새로운 것을 찾고, 그것이 지루하고 즐겁지 않으면 또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동안 '경험'은 다양해질 수 있을 지 모르나 '깊이'는 전혀 없게 된다. 들어는 봤지만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 본 적은 있지만 그것의 의미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내 삶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지도 않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툴을 이용해서 생각하지 않고도 쉽게 살 수 있다. 쉽게 사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또한 내 한 평생 잘 살았다고 마무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념하기'를 통해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두 가지의 삶을 비교해볼 수 있었으니 그 다음 실천은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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