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필드 파크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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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의 제인오스틴 전집을 사놓고 겨우 오만과 편견 하나 읽었다. 그 외 다른 책은 줄거리 정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냥 책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독서동아리에서 읽을 책을 정할 때 일부러 이 책을 추천했다. 언젠가 읽으려고 사 놓은 책을 읽기 위해서. ^^


쉽지 않았다. 우선 778페이지나 되는 책인데다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 읽기가 좀 더딘 편이다. 감정 이입도 잘 하지 않는 편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당연히 주인공인 패니와 에드먼드에게 집중을 하겠지만, 나는 오히려 크로포드 남매에게 더 눈길이 갔다.


"결혼 문제에 관해서라면 늘 그런 게 아니란다. 사랑하는 메리."


“결혼 문제에서 특히 그래요. 지금 말하고 있는 그 두 사람의 결혼 운에 대해서는 적절한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만요, 친애하는 그랜트 부인, 결혼할 때 기만당하지 않는 사람은 여자건 남자건 백 명 중 한 명도 안 된답니다. 앞으로 제가 처하게 될 입장에서 보면, 정말 언제나 그렇게 보여요. 결혼이라는 것이 모든 거래 중에서 상대에게 가장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가장 정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거래라는 점을

고려해보면요."


“저런! 너 런던의 힐 거리에 살면서 결혼에 대해 정말 잘못 배웠나 보다."


"돌아가신 가엾은 숙모의 결혼 생활은 분명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직접 관찰한 것들만 근거해서 말한다고해도, 결혼이란 책략을 쓰는 작전 같은 일이에요. 결혼하면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인척 관계에서 뭐라도 한 가지 득이 있겠지, 혹은 상대방이 교양과 훌륭한 성품을 갖고 있겠지 하고 철석같이 믿었다가, 자신이 완전히 기만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래서 그 정반대의 상황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게 된 사람들을 제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데요! 바로 이런 게 사기가 아니고 뭐겠어요?"


"얘, 그 생각에는 틀림없이 상상이 어느 정도 가미된 것 같구나. 미안한데 네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어. 내가 장담하는데 너는 절반밖에 못 보고 있어. 안 좋은 면은 보지만 위안이 되는 면은 못 보고 있다고. 어디든 사소한 마찰이나 실망은 있는 법이야. 그리고 우리는 모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경향이 있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한 가지 행복의 계획이 실패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계획 쪽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지. 첫 번째 계산이 잘못되면 두 번째 계산은 더 잘하게 되는 법이야. 어디에서든 위안을 찾아. 사랑하는 메리, 심사가 비뚤어져서 사소한 문제를 중요한 일로 치부하는 제삼자들이 사실은 당사자들보다 더 많이 기만당하고 속아넘어간단다."


"참 훌륭한 말씀이네요, 언니! 언니네 기혼 부인 집단의 단결심에 존경을 표하겠어요. 저도 기혼 부인이 되면 딱 그만큼 심지를 굳게 가질게요. 제 친구들 모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요. 그럼 가슴 아픈 여러 일들을 피하게 되겠죠." (p.77~78)


책을 읽는 동안 잊어버렸었는데, 메리의 결혼관을 이렇게 서두에 말해두었다. 메리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결혼이란 서로가 서로를 기만하는 거래라고 생각하기에 그녀는 그 거래를 훌륭히 해내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그랜트 부인의 대화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행복하게 살기에 그렇게 결혼을 못 시켜 안달인 사람이 많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결혼이 행복하다고만 말할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을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비슷하다.


나는 영악하지만 메리의 행동에 오히려 공감하는 바였다. 내가 닳고 닳아서 그런거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가난한 성직자, 아니면 재산은 있어도 그 재산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도전이나 모험을 할 필요가 없는 에드먼드에게 '성직자'가 아니면 안되냐고 하는 그녀를 나는 이해한다. 도시에서 온 메리와 헨리 남매의 눈에 에드먼드와 패니의 삶이 좋게 보일 리는 없는 것이다.


시골의 삶을 동경하여 귀농을 했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오거나 실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많이본다. 쉽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 시골의 삶이다. '돈'이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다른 여자들이 무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만큼, 너는 주목받고 칭찬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던가."(p.315)


메리는 패니를 정확하게보았다. 물론 패니가 처한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수 있다. 그러나 원래 그녀의 성격도 한몫 했을 것이다. 패니는 비록 노리스 이모의 잔소리와 미움, 구박을 받고 있을지언정 자신의 집에서 나와 이모 집에서 살게 된 것이 엄청난 행운이었다. 환경이라는 것이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 나는 자주 느껴왔다. 패니가 이모집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그 많은 동생들을 돌보며 자랐다면 그녀의 사려깊은 생각과 처신들은 그다지 형성되지 않았을 수 있다. (물론 안 그럴수도 있지만)


패니는 이모집에서 눈에 띄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던 것 같다. 노리스이모가 사랑해마지 않는 언니들을 제쳐두고 자신의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눈칫밥을 먹으며 자란 인물이 그 정도 눈치가 없을 리가 없다.


패니의 행동은 자신감 없고, 마음은 자존감 낮고, 거기에 몸마저 허약했다. 그런 패니를 잘 챙겨주었던 에드먼드도 그녀를 여자로서 느끼지는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런 점이 아닐까. 나라도 메리 같은 여자에게 반할 것 같다. 물론 메리의 사고방식에 깜짝 놀란 에드먼드가 패니와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은 좀 의외였다.


노리스이모는 지금 말로 하자면 '가스라이팅'을 저지른 사람이 아닐까?


"분수도 안 지키고 제 본분을 벗어나 터무니없는 일을 하면서 어리석게 구는 사람들 얘기를 하다 보니 네게 조언을 하나 해주는 게 옳겠다는 생각이 든다, 패니. 네가 우리 누구와도 함께 가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제발 부탁이고 간곡히 바라는데, 너무 나서서는 절대로 안 된다. 네가 네 사촌 언니들이라도 되는 양 함부로 말하면서 네 생각을 밝히면 안 돼. 우리 러시워스부인이나 줄리아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런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내말 명심해. 어느 곳을 가든 네가 제일 미미하고, 네 순서가 제일 마지막이라는 걸 잊지 마. 물론 크로퍼드 양은 목사관이 제집인 양 편안한 태도를 보이겠지. 하지만 네가 그녀의 자리를 차지해선 안 돼. 그리고 밤에 돌아올 때 말인데, 에드먼드가 바라는 시간만큼만 그 댁에 머물러야 한다. 결정을 그 애에게 맡겨"


“네, 이모, 딴생각은 전혀 하지 않을게요."


"그리고 혹시 비가 온다면 말이다.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여, 내 평생 오늘처럼 비가 금방이라도 퍼부을 것 같은 험한 날씨는 본 적이 없구나, 어쨌든 혹시 비가 온다면 너 스스로 알아서 최대한 잘 해결해야 한다. 너를 위해 마차를 보내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말고. 나는 오늘 밤 분명히 집에 안 돌아갈거야. 나 때문에 마차가 나갈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니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비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준비를 철저히 해 가거라."


조카딸은 이모의 말이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은 노리스 이모가 생각하는 만큼이나 안락하게 지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p.350~351)


다행스럽게도 패니는 완전히 넘어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로서는 패니의 행동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데 성격이든 태도든 그렇지 않고 그녀의 생각이든간에 커다란 변화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이라면 역경을 이겨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내면의 변화라도 보일텐데 패니에게서는 그런 점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갔을 때 자기 식구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3부에 넘어가면 책의 내용은 급한 마무리가 된 듯하다. 에드먼드가 메리에게서 패니에게로 마음이 옮겨가는 과정을 오롯이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새 그들의 결혼으로 귀결된다. 헨리와 마리아가 사랑의 도피를 한 후 파경을 맞는 과정도 그렇다. 줄리아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예이츠 씨와 결혼을 하게 되는 과정도 그렇다. 이야기를 마구 풀어놓았다가 급하게 거둬들이느라 앞에 비해 지나치게 생략된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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