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 역사에 휩쓸려간 비극의 경계인
정병준 지음 / 돌베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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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운 세대다. 지금도 고3때 국사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내게 국사는 시험 볼 때 벼락치기로 점수따던 과목이었기 때문에 시험때나 반짝 공부하곤 했는데 고3때는 학력고사(연식이 드러난다 ㅠㅠ)때문에 국사는 무조건 만점을 받도록 해주신다는 전설의 쪽집게 선생님이 등장하셨다.

 

선생님의 수업방식! 일단 수업시간에 초집중을 하게 하신다. 초긴장상태로 양손에 네가지색 필기구를 들고 선생님이 호령하시는대로 줄을 쫙쫙 그어야 했다. 그리고 '받아써!'를 외치면 교과서 여백에 써야한다. 노트도 안된다. 무조건 교과서 한권에 모든 엑기스를 때려넣는다. 교과서를 쭉 읽으면서 시험에 나오는 문장엔 중요도 순서대로 색깔펜으로 밑줄 쫙! 정말 더 중요한건 별 두 개, 세 개, 형광펜!  '이런 건 읽지도 마라! 시험에 안나온다!' 하시는 문장은 과감히 지운다! 한반에 60명씩 모여있던 우리는 일사분란하게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다. 마치 군대에 온 기분이다. 그런 초긴장상태에서 희안하게 국사책의 문장들이 머리에 쏙쏙 와 박혔다. 선생님께서 수업하시고 삼개월만에 처음 치른 모의고사에서 우리반 학생들 거의 대부분이 만점을 받았다. 그 선생님의 신화는 담당하는 학생들 모두를 만점받게 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건, 오십분간의 수업시간동안 삼십분은 그렇게 점수용 수업을 해주시고는 남은 시간동안 "이제 진짜 역사를 가르쳐줄게. 시험에 안나오지만 이게 진짜 중요한거다. 정신차리고 들어라!" 하시는데 적절한 욕까지 섞어가시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너무 재밌고 흥미진진했다. 아무도 졸지 않았다. 아니 졸 수 가 없었다. 항상 시간이 모자랐기에 마무리는  "대학가면 꼭 찾아서 공부해라!"였는데 더 듣고 싶다고 졸라도 얄짤 없었다! 그때 나는 조금 깬 사람이 된 것 같다. 아! 교과서에 나온게 다 사실이 아니구나! 이 문장의 맥락속에는 다른 의미도 숨어있는거구나~ 이런 것들을. 그리고 대학에 가서 근현대사 책들을 다시 읽으며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전교조와 참교육을 위한 시위가  한창일때라 그 놀라움의 동력으로 열심히 투쟁(ㅎㅎ)하러 다녔다. 요즘 교과서를 국정화 하는 세력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다. 역사는 가린다고 가려지는게 아니다. 언젠간 진실을 알게 되고 그 때 내가 배운게 어느 한쪽만 미화해 놓은 역사라는 걸 아는 순간 터져나오게 되는 분노는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가. 그때 우리는 그 기운으로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세대다! 지금 비록 한순간에  과거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지만.

 

 

시국이 어수선하여 이야기가 많이 돌아갔지만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건 이 놀라운 책에 대해서다. 내가 배운 교과서엔 절대 없었던 사실들이 나열되어 있는 책. 그리고 내가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가지게 되었던 의문들이 하나씩 풀리던 책. 한국의 근현대사와 세계가 만나는 순간의 경계면을 따라 부평초처럼 떠돌다 결국은 산산히 부서져버린 여자에 대한 책이다.

 

 이야기는 한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듯 이 사진에 대한 진실을 하나씩 파고 들면서 한 여자의 삶을 따라간다. 그녀는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추방당했고 북한에서는 박헌영의 애인으로 지목되어 간첩혐의를 받고 처형된 현앨리스다. 박헌영의 숙청 소식과 함께 전해져온 그녀의 소문때문에 한때는 남한의 신문에서 '한국판 마타하리'라 불리며 자극적인 가십거리로 소모되기도 했다.

작가는 어떻게 그녀가 미국과 북한에서 그렇게 상반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열심히 독립운동을 하던 그의 가족들이 아버지는 독립유공자로, 그녀는 북한에서 미제의 앞잡이로, 그녀의 형제들은 미국에서 끊임없이 추방의 위기에 몰려야 했는지 궁금해서 모든 자료들을 뒤져 그녀의 삶의 퍼즐을 풀어나간다.

결연한 의지로 기념사진을 찍던 그 청춘들은 모두 어떤 삶을 살았을까. 다가올 운명의 가혹함을 전혀 몰랐을 그들의 삶이 너무 궁금하여 짠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엄두가 안난다. 정리해서 전달할 능력이 안되니 다들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목사의 딸로 하와이에서 태어났고, 교회와 기독교 학교에서 성장했고,  3.1운동을 겪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고, 1920년대 초반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이념을 수용하면서 미국에서 인종차별과 노동차별에 맞서 싸우고, 해방후 남한에 와서 미군정에서 일하며 통일을 위해 애쓰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녀는 끊임없이 정체성을 의심받아야 했다. 항상 선택을 요구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결국은 북한까지 들어갔지만 이상향인줄 알았던 그곳에서마저 그녀는 사회에 젖어들지 못하고 내쳐졌다. 그녀의 동지들과 가족들의 삶도 제각각 파란만장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녀의 삶을 다룬 제대로된 영화나 소설이 나와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책에서 한줄 암기거리였던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펼쳐지는데 그것은 곧잘 상상을 초월한다.

 

이 시대의 좌편향된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도대체 몇명이나 그런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더욱더 읽어보기 바란다. 그들의 시각에서는 지워버리고 싶은, 또한 부각하고 싶은 장면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대체로 현명하다. 이런 역사를 읽었다고해서 종북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다. 이승만이 비겁하게 정권을 잡는 과정이 그려지고, 미국이 우리가 생각한 만큼의 우방이 아니었다는게 드러나지만 북한도 결국 독재정권을 위해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동지들을 어떻게 피의 숙청을 단행하는지 그 면모가 속속들이 밝혀진다. 이데올로기에 연연해서 얼마나 바보짓들을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또 역사적 교훈을 잊고 이데롤로기의 대립으로 몰아가는 바보짓을 한다.)

그나마 이 책을 읽다가 미국을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건 공산당을 색출한다고 눈에 불을 켜고 쫓아내려고 하는 그 시대의 와중에서도 그들은 헌법에 보장된 인권을 존중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의 과정에서 공산주의자가 된 사람들의 경우, 그들의 이상향을 찾아 북으로 간 경우는 거의 행방을 모르거나 숙청을 당했다. 하지만 미국 시민권자이거나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그당시 정부에서 청문회를 대대적으로 열며 그렇게 쫓아내고 싶어했지만, 내게 불리한 증언은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인정한 수정헌법과 신체적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추방할 수 없다는 매케런-월터법 같은 법적인 장치들이 있어서 버텨낼 수가 있었다. 공산주의자로 몰려 추방 위기에 있을때마다 그들의 이웃들이, 친구들이 법조문을 무기로 탄원해주고 힘을 모으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마침 냉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스파이 브릿지>가 개봉하였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뒤라 그 영화를 더욱 재밌게 볼 수 있을 듯하다. 톰 행크스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는데 소련의 스파이를 변호하는 역할이라고 한다. 그도 수정헌법에 기초하여 스파이를 적극적으로 변호한다고 한다. 영화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나는 이 책에서 보았던 우리의 재미한인동포들의 청문회장면이 떠올랐다. 한참 역사 문제로 시끄러운 이 때, 현앨리스의 시대를 한번 돌아보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교과서가 좌편향 되었다고 걱정이 태산같은 0.1퍼센트의 사람들이여,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 안심하라! 지금은 국민들을 흑백으로 나누어 몰아갈 때가 아니라  여러가지 가능성들을 인정할 때이다. 그렇게도 자신들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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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7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7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걀부인 2015-11-07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꽂히면 여기로 배송합니다요. 책값에 3배.ㅋㅋ

살리미 2015-11-07 09:15   좋아요 0 | URL
으헉..... 참으세요.....!!!
 
빛의 산
겐유 소큐 지음, 박승애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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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11 대지진은 가까이 있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잊혀져 가던 체르노빌을 소환한 것도 이때쯤이었는데, 스베틀라나 알렉세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고 방사능 오염의 실상에 살떨렸고 그런 비극이 다시 되풀이된 것에 대해 분노했다.

당장 우리에게도 경주 핵 방폐장 문제나 노후한 원전 재가동 문제 등 핵발전의 위험성이 항상 노출되어 있는데 그제서야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방송에서는 일본산 수산물이 오염되었다고 했고 일본산 맥주 화장품 심지어 생리대까지 불매운동이 일어났으며 매일 우리가 사는 곳의 방사능 수치가 계산되어 나왔고 음식물의 방사능 오염정도를 측정하는 기계까지 불티나게 팔려서 '저걸 나도 사야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모든것이 그렇듯이 서서히 잊혀져갔다. 일본에서는 정부에서 스리슬쩍 국민들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원전을 재가동했다.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고 재난의 결과는 후쿠시마 주변의 사람들만의 문제가 되었다.

 

이 책을 고른 건 한국 독자에게는 처음 소개되는 '후쿠시마 이후 문학'이기 때문이다.

대재해와 원전사고를 겪고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차마 죽음의 땅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 궁금했다.

 

작가 겐유 소큐는 후쿠시마 현내에 있는 사찰의 주지스님으로  3.11 당시 재난의 중심에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생생한 재난의 실상을 표현 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들의 치유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모두 여섯편의 단편을 통해 재난 이후 후쿠시마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굉장히 비극적이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삶의 희망을 붙잡아보려는 모습들이 보인다.

 

 

책을 읽다가 조금 불편해지는 대목이 있는데, 저선량 피폭에 대한 견해에 관한 것이다. 무턱대고 방사능을 무서워하고 피하는게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접근 금지구역이 아니라면 얼마간의 방사능 측정치는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나올 수 있는 수치니까 괜찮다는 태도가 많이 보였다.

 

심지어 [빛의 산]이라는 단편에서는 할아버지가 방사능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에서 나온 방사능 쓰레기들을 자기 마당 한 곳에 모아둔다. 다들 자기 동네에는 쓰레기 가설 처리장이 들어오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점점 할아버지의 마당에는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오는 쓰레기까지 쌓여서 이상한 빛을 내는 방사능 산을 이루게 되는데, 결국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에 그 곳을 자신의 화장터로 삼고, 삼십년이 지난 후에는 그곳이 방사능 투어 관광지가 된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이었다. 그 산에서는 매시 10마이크로시버트가 넘는 방사선이 나오는데, 완전 벨라루시 수준이라고 질겁한 아들에게 할아버지는 말한다.

 

"체르노빌 사고 나고 이십팔년이 지나서야 벨라루스는 그 정도로 내려갔다지. 그래도 죽 사람들이 살고 있었잖냐? 그런데 삼 년 전 같은 방사선량이 나온 이이타테무라는 마을이 통째로 피난을 갔잖냐."(185쪽)

 

뭐야, 방사능 좀 쐬도 죽지 않으니 호들갑 떨지 말라는건가 하고 처음엔 이런 분위기가 좀 이상했는데 마지막에 이 단편 [빛의 산]에서 아들의 입을 빌려 노골적으로 불만을 말한다.  

 

실로 많은 학자들이 양극단의 이야기를 하면서 절대 양보를 안 해. 어떤 사람은 자연 방사선량의 십만배까지는 몸에 좋은 거라며 우주 비행사도 모두 건강하지 않느냐고 주장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몇 조 엔 씩이나 써가며 미량이라도 전부 제거해야 한다고 기를 쓰잖아. 아마 호르메시스(다량의 방사선은 생물체에 피해를 주지만 소량의 방사선은 오히려 생명체의 생리활동을 촉진해 수명을 연장시키거나 성장 촉진 또는 종양 발생률 저하 등 유익한 효과를 준다는 주장)파와 예방의학파라고 했던가? 양쪽 다 차분하게 대화를 했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 부부만 해도 그게 안되더라고.(189쪽)

 

작가가 이 단편을 책의 제일 마지막에 배치한 것도 그렇고  아마도 그곳 후쿠시마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 문제가 제일 심각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학자들이나 정부에서 명확히 밝혀준다면 그들도 혼란이 적을텐데 자기들의 체면만 중시하고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니 결국은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채 결정은 오로지 주민들의 몫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가족들은 재해로 세상을 떠서 해체되었거나 방사능에 대한 극심한 공포로 고향을 버리면서 해체되거나 극심한 우울증으로 서로 소통을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힘을 모으고, 방사능 제거 작업을 하고, 마을의 축제도 열리고 새로 결혼하는 커플도 생긴다. "뭐야,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냐고..."하면서도 "안돼, 안돼. 끝까지 노력해야지. 포기라니 말도 안돼." 라고 한다. 그들이 후쿠시마 이후를 살아가는 모습이 이 한마디에 녹아든것 같다.

 

 

엠마누엘 르파주가 그린 <체르노빌의 봄>을 보면, 시종 무채색이던 그림이 어느 순간 화사한 색을 입는다. 참사를 증언하러 간 작가는 오히려 눈부신 생명력을 보고 온다. 죽음의 땅에도 결국 봄은 왔고 그곳에는 그 땅을 터전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그림이 화사해지면서 삶의 희망이 느껴지던 그 순간처럼 후쿠시마에도 환한 생명의 빛이 퍼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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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03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4년이 지났네요, 우리 나라는 아니지만 멀지 않은 이야기라서 관심있게 리뷰를 읽었습니다,
작가 이름이 낯설어서 소개를 읽었는데, 아쿠타가와 수상작가더라구요,

오로라님, 편안한 밤 되세요^^

살리미 2015-11-03 21:33   좋아요 1 | URL
저에게도 무척 낯선 작가였어요. 아쿠타가와 상 수상 작가라해도 그런 상이 있나보다~ 했는데 이제 보니 라쇼몽의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념하는 상인가봐요^^ 서니데이님 덕분에 하나 또 챙겼어요^^
고마워요!! 서니데이님도 좋은밤 되세요^^

에이바 2015-11-03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 글을 읽고 떠올랐어요. 이 뉴스를 대학로에 있는 돈까스 집에서 들었어요. 말 그대로 돈까스 먹다가요... 잊고 있었던 기억들...

살리미 2015-11-03 22:05   좋아요 1 | URL
그때 일본에서는 누군가 그렇게 일상의 순간과 단절되어 버렸겠죠..... 그런일이 내게 닥쳤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하면 너무 무서워져요. 그리고 제가 아무리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해도 그 아픔을 십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챔피언 2015-11-04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사능 오염이란것이 현대판 문둥병이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 드네요. 잘 몰라서 더 무서운, 그래서 더 배척하는. 오염 지역은 거대한 소록도가 되어버리는. 오염 지역 사람들의 입장에서 방사능을 생각해본적이 없기때문에 특별한 시선울 빌려주는 소설이란 생각이 듭니다.

살리미 2015-11-04 00:40   좋아요 1 | URL
방사능 오염은 정말 보이지 않는 공포죠. 저도 어느정도까지의 방사선량을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논의 보다는 무조건 원전을 막아야한다는 논리에만 치우쳐 첨엔 좀 불편하게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오염지역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게 시급한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을 신경 쓸 겨를이 그들에겐 없더라고요. 당장 눈에 보이는 질병이 아니니까 방사선량은 무시하고 살아가는데 급급한 사람도 있고, 그 보이지 않는 공포에 질려서 가족도 다 버리고 떠나가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이 원하는게 과연 무얼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2015-11-04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후쿠시마 이후 문학...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제가 워낙 둔감하고 무심한 편이어서 일본에 사는 사람들의 공포가 어떨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비오는 날 같이걷던 친구가 ˝야, 방사능 비다!˝ 이러면 ˝응?˝ 이러고 뒤통수나 긁을 줄 알았지..

맨날 북플로만 돌아다니다가 인터넷으로 오니까 또 느낌이 다르네요. 메인 사진도 크고, 인삿말도 걸려있고.. 메뉴도 다양하고... 신기방기

살리미 2015-11-04 01:10   좋아요 0 | URL
로그인을 안하셔서 누구신지 잘 모르겠어요^^ 저도 거의 북플을 이용해서 가끔 인터넷으로 접속하면 어색해요^^ 찾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인디언밥 2015-11-04 01:12   좋아요 1 | URL
앗 머야 언제 로그아웃 됐지;; -_-

서재 이름 잼있어요 ㅋㅋ 아주 book적book적한 나날들 ㅎ_ㅎ

살리미 2015-11-04 01:13   좋아요 1 | URL
앗!! 인디언밥님.... ㅋㅋㅋㅋㅋ

해피북 2015-11-05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의 글은 정말 글 맛도 좋지만, 다른 분들과 대화를 나눈 댓글을 읽는 맛도 참 좋은거 같아요 ㅎㅎ 인디언밥님 처럼 저도 서재로 들어오는데 `아주 북적북적한 나날들`이라는 서재이름보고 참 좋아했던 기억도 나구요 ㅎㅎ

지난번 다락방님 서재에 놀러갔다가 오로라님과 나눈 댓글을 본 적 있는데 시사인에서 발췌된 기사에 관한 이야기들이었거든요. 오로라님은 다양한 분야(사회적인)까지 두루 두루 생각하시고 견해도 넓으시다는 생각을 했는데 원전에 관한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깊으시다는걸 느끼게 되었어요 ㅎㅎ 저도 오로라님처럼 촉수를 다양하게 뻗어서 다양한 관심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정이 샘솟습니다. 저도 차분히 찾아 읽어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ㅋㅁㅋ~~

살리미 2015-11-05 16:46   좋아요 0 | URL
아고~ 제가 뭘 알겠습니까 ㅎㅎ 다 이웃분들이 좋게봐주시니 멋모르고 까불고 있는건 아닌지.. ㅎㅎ
제가 원래 팔랑귀라 이쪽 저쪽 들여다보길 좋아하고요~ 책을 읽다보면 요즘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나 걱정이 될 때도 많고 그렇더라고요. 저도 아직 내공이 한참 모자라서 다양한 관심사에 대해 더 많이 읽고 더 공부해야죠^^

2015-11-05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5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5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5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5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한겨레 영업사원의 끈질긴 구애끝에 결국 `너무나도 어려워서 독자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폐간 위기에 처한(믿거나 말거나)` 씨네 21을 정기구독하고 말았는데, 뭐 어차피 매주 도서관에 가서 읽고 앉았을테니, 집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따박 따박 도착하는 영화잡지를 읽으며 신나하고 있다. (경제관념 따위 갖다버린지 오래이므로)

씨네 21에서 즐겨보는 꼭지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다. 이번 호에는 영화 마션에 대한 얘기다!! 제목은 센스있게 <감자별> ㅎㅎ

며칠전 영화 <마션>에 대해 친구랑 얘기하다가 술상을 뒤엎을뻔 했다. 아직 마션을 보지도 않은 그 친구는 인터넷에 떠도는 리뷰만 보고 (그것도 악성리뷰만 봤는지) 영화를 판단했는데, 너무나 낙관적인 것이 딱 할리우드 코드이며 화성판 삼시세끼 수준이 아니겠냐는거다. 나는 일단 안봤으면 말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으로 그쳤지만 그에 대해 김혜리 기자는 이렇게 우아하게 쓰고 있다.

— 털어놓자면 나는 <마션>을 보는 동안 여론과 예산, 정치적 압력을 의식하면서도 공적 기구가 시민 한명을 구하기 위해 결국은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광경에 매료됐다. 물론 편리하게 이상화된 부분이 있지만 <마션>은 리얼리티를 아예 무시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을 더 솔깃하게 한다. (중략) 극중 항공우주국은 헤르메스호 대원들이 마크를 구조하기 위해 유턴하는 항로를 승인하지 않지만 실제로 폭동에 준하는 결단이 대원들에 의해 이뤄지자 항공우주국의 공식 결정인양 발표하고 지원한다. 요컨대 영화는 세금을 쓰는 기관 종사자로서의 명분과 과학자로서의 의무를 조율하는 능력을 가진 책임자들의 능력을 보여준다. 관료와 전문가 집단의 무능, 직업윤리, 책임감의 집단적 마비로 비극을 겪고 깊은 좌절을 겪어온 한국 관객의 무의식에 <마션>은 유난히 슬픈 판타지다.


아..... 내말이!!!
근데 나는 왜 이렇게 우아하게 말을 못하고 버벅거리기나 했는가. 그것은 술때문이라고 하자. (정말?)

기자는 마지막으로 <그레이엄 노튼 쇼>에 나온 멧 데이먼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역시나 그는 짱이다! (아... 나는 이런 표현밖에...)
오스카 각본상을 받은 스물일곱의 어느 날에 대한 회상. 그는 애인이 먼저 잠든 다음 (오~솔직해!) 여전히 멍한 상태로 거실에서 트로피를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고 한다. 이걸 위해 누구도 엿 먹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일찍 받아서 축복이라고. 평생 이 상을 꿈꾸다 노년에 이르러 받았다면, 그러고서야 오스카로도 채워지지 않는 큰 공동이 있음을 뒤늦게 발견했다면 얼마나 허망했을까 상상하니 마음이 부서지는 듯 했다고. 그는 항상 본인이 즐거워 하는 일을 했고, 인터스텔라에서처럼 동급의 스타라면 하지 않았을 작은 배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오스카 연기상에 거론될 일이 적었고, 고무줄 존재감을 자랑했지만 `사람들과 술렁술렁 어울리다가 필요할 때 조용히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이 맷 데이먼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는 없다`고 김혜리 기자는 말한다!! (정말 너~~므 동감입니다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

말하자면, 그는 <마션>에 나오는 덕트 테이프처럼 영웅적이다. (마션을 읽은 동지들은 알 거다. 덕트 테이프가 얼마나 위대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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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11-02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트 테입 포에버~! (라고 쓰고보니 수많은 범죄영화 장면이 마구 떠오릅니다;;;;)

살리미 2015-11-02 22:42   좋아요 0 | URL
헉!! 그.... 그러네요;;; 우주에서는 그 어떤 최신 장비보다 유용했던 덕트 테이픈데 ㅠㅠ

보슬비 2015-11-0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관에서 보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곧 집에서 만나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궁금하지만 우선 영화로 본후 책을 읽을지는 그때가서 결정할것 같아요. ㅎㅎ

살리미 2015-11-02 23:22   좋아요 0 | URL
영화부터 보고나서 소설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곧 즐감하시게 되길 바랍니다!

qualia 2015-11-03 0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론/방송에서 SF를 유독 사랑하는 한국 국민들 어쩌구 보도하던데요.

《인터스텔라》나 《마션》의 한국 흥행 수익이 (미국 빼고) 세계 2위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정작 우리 한국의 SF 문학이나 SF 영화는 거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여서 너무나 아쉽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우리들 자신이 쓰고 만든 SF 소설이나 영화에는 잘 ‘감정이입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TV에서 어린이 시간대에 한국 SF 드라마를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었는데, 너무 어설퍼서 전혀 감정이입하지 못했었거든요. 한국인/한국배우들의 일상적인 느슨한 모습/이미지가 첨단 미래 세계의 우주적 이미지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한국인/한국배우들의 반SF적인 이미지를 일거에 뒤집어놓을 역량 있는 연출자/감독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살리미 2015-11-03 07:09   좋아요 1 | URL
좋은 의견 잘 들었습니다. 전에 과학수다2 를 읽을때 SF에 대한 주제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열심히 활동하는 SF작가들이 있더라고요. 그 층이 두텁진 않지만. 1957년 <금성탐험대>를 발표한 한낙원 작가에 대해서도 나오든데 사실 저는 어렸을때도 과학소설쪽엔 관심이 없어서 이름이 낯설었습니다. 소설분야는 그래도 명맥을 유지해가고 있나본데 영화쪽은 워낙 자본도 많이 들고 하니 작품성 있게 나오기가 어렵겠죠. qualia님 말씀처럼 예전부터 첨단 미래하면 미국을 떠올리는 관습이 굳어져버려서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SF는 상상하기 어려운것도 사실이고요. 사실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이제 한국 영화의 수준도 높아져서 관객을 만족시킬수 있지만 SF분야는 아직도 헐리우드를 못따라간다고 생각하니 헐리우드 영화를 열광하며 보게 되는 거죠. 갑자기 예전 <디워> 사태가 생각이 나기도 하는데 ㅎㅎ 좋은 아이디어로 승부한다면 한국관객이 무조건 외면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역량있는 감독들이 많이 도전을 해야 할텐데... 또 영화판도 자본의 힘이 잠식하고 있으니 감독의 힘만으로는 힘들것 같기도 하고요... 에효...;;

챔피언 2015-11-03 0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마션 꼭 봐야겠습니다. 그나저나 판매에 성공한 씨네 21 영업사원이나, 선뜻 정기 구독을 신청한 오로라 님이나 둘다 대단합니다! 님의 씨네 21 구조 영웅담에는 정말이지 헐리우드적인 낭만이 흐릅니다^^ 마션의 정신을 실제로 실천하시는 의인이십니다.

살리미 2015-11-03 08:1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그렇게 말씀하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전 그저 의지약한 소시민일뿐입니다^^

인디언밥 2015-11-03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간 안돼요.. ㅠㅜ 씨네21 구독신청 하러 갑니다

살리미 2015-11-03 19:27   좋아요 0 | URL
헉! 인디언밥님 통이 크시군요^^ 저는 몇번의 고민끝에 결국...ㅋ
씨네 21은 이제 마지막 남은 영화전문잡지가 되었죠. 저는 한겨레 독자라 발목이 잡혀서 도와달란 전화를 너무 많이 받았답니다. 제가 호구란게 소문이 났는지 심지어 경향에서도 자주 전화가 와요 ㅠㅠ 경향에 비하면 한겨레는 양호하다고 하면서 말이죠 ㅠㅠ

인디언밥 2015-11-04 00:46   좋아요 1 | URL
18만원 보고 멈칫 했는데요. ㅋㅋ 학생증을 쓰면 8만원 할인 -_-v

근데 너무 재밌네요. ㅋㅋㅋ 경향에 비하면 한겨레는 양호하다는 말을 경향이 얘기하는게 ㅋㅋㅋ 담에 또 전화오면 ˝저에 비하면 경향도 양호해요..ㅠ˝ 해보는 건 어떨까요... 힣

해피북 2015-11-05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신랑이 유일하게 보는 책이 요거(두리번 두리번 어디서 신랑이 지켜보고 있을거 같은 따가움이 느껴집니다 ㅡㅡ;;;; ㅋㅋㅋ)인데 기차나 버스탈때면 늘 사서 읽곤했죠. 그런데 저는 요게 주간지인줄은 몰랐어요. 저도 인디언밥님처럼 구독이나 해볼까 하다가 18만원이란 댓글보고 왜이렇게 비싸지 했거든요 ㅋㅋ

워낙 영화를 잘모르고 안봐서인지, 이런 글보면 마구마구 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습니다 ㅎㅎ
`인스텔라`도 본다본다 하면서도 아직 못봤는데 ㅜㅜ 일단 책으로 읽고 영화를 보는걸로 목표를
정해야겠어요 ^^(꼭 덕트 테이프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내고야 말겠습니다 쿄쿄쿄쿄!! )ㅋㅋ

살리미 2015-11-05 17:05   좋아요 0 | URL
신랑분께서 `유일하게` 보는 책이라고 하셔서 빵터졋어요 ㅎㅎ
저도 구독료가 너무 비싸서 몇번이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어요 ㅋㅋ 아무리 제가 호구라도 비싼건 비싼거고 도서관에 가면 따박따박 들어와있거든요^^
그래도 영화보는 눈을 그나마 뜨게 해준 잡지가 씨네 21이고, 오랫동안 보던 잡지라 폐간 위기라며 막 겁주시는 바람에 그만 질러버리고 말았.....ㅋㅋㅋㅋ

고양이라디오 2015-12-13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의 씨네21을 구한 영웅적인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ㅎㅎ
저도 <마션>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ㅎ 나중에 책으로도 읽어봐야겠어요. 그나저나 김혜리씨 글 잘쓰시네요. 저도 영화 참 좋아하는데 구독해야할까요ㅠㅠ?

살리미 2015-12-13 09:43   좋아요 1 | URL
제가 구했다기엔 .... ㅎㅎ
전 아마 상술에 넘어간 귀얇은 소비자일테고요.... 요즘 잡지가 다들 어렵다고, 폐간 위기에 있는 잡지가 많다는 출판계 동향을 들은 적이 있네요. 사실 책도 잘 사보질 않는데 잡지를 구입해서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김혜리 기자님은 정말 글을 잘 쓰시죠. 팁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페북에서 김혜리 기자님 팔로우만 해도 기자님이 쓰시는 글을 페북에 자주 링크해 주시더라고요 ㅎㅎ
 

비밀독서단을 보는데 조승연 대신 이우성 시인이 나왔다. 아! 한겨레 신문에 칼럼을 쓰는 그 시인이구나. 근데 그가 책을 소개하며 운다. 남자의 눈물은 흔한 법이 아닌데, 그는 무슨 사연으로 우는걸까.
그가 소개하는 책이 솔깃하다. 알고보니 저자와 이우성 시인은 친구사이였다. 저자의 삶을 잘 알고 있으니 한구절 한구절 가슴에 꽂힐테지. 갑자기 서효인이란 사람의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도 있었지만 빌려보니 않을테야! 저 책은 무조건 사야겠다. 이건 내가 서효인을 응원하는 방법이다.


책을 펼쳤다. 작가가 이야기한다. 나와 밤새 야구 얘기 할래요?
나는 좋다고 한다. 야구를 좋아하지도 않고, 심지어 남편이 야구보는 걸 제일 싫어하지만 왠지 당신의 이야기는 밤새 들을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경기가 시작된다. 삶이 시작된다.

˝시작은 되는 것이 아니야. 하는 것이지.˝

아! 이사람, 벌써 좋아진다.

그는 야구를 핑계로 인생 이야기를 한다. 어릴적 엄마가 두고 간 외가집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며 철이 들었고, 외삼촌이 들고온 라디오에서 야구중계를 첨 듣고는 야구장은 요강처럼 동그랗다고 상상하던 소년. 글을 모르던 할아버지와 야구장에 갔던 추억을 되새기며 아직도 시를 쓰면 혹 할아버지가 들을지도 모르므로 반드시 소리내어 읽어보는 사람. 그는 야구용어를 인생용어로 바꿔놓는 재주가 있다. 하긴 삶이랑 야구랑 비슷한 면이 있긴 하다. 세상이라는 팀과 싸우는 우리는 거의 지고 가끔 이긴다. 그래도 괜찮다. 야구경기는 내일 또 있고, 우리는 내일 또 기회가 있으니까.


— 하지만 당신이 세상에 둘러싸여 대거리를 주고받을 때, 내가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갈게. 어깨를 걸칠게. 당신은 나와 마찬가지로 정직하게 살아왔고, 우리 모두는 그걸 잘 안다. 나는 당신의 편이다. 당신은 어떤가. 어디든 마음으로, 혹은 정신으로, 끝내는 몸으로, 우리는 같은 편.
광포한 무리들에 맞선 지금, 우리는 벤치클리어링 하러 간다.
당신과 나의 동해바다같은 오지랖으로 펼쳐진 위아래 없는 연대의식. 이를 줄여서 `벤치클리어링`이라고 부른다. (32쪽)


이런 다정한 말을 하는 책을 나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가 하는 말은 왠지 다 들어주고 싶다. 그의 말을 들으며 그려본 그는 정말 착하고, 성실하고, 야구를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멋진 홈런을 한방 날리는걸 보고 싶다. 하지만 그는 `번트`를 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번트는 공을 달래야 한다. 자신을 숙여야 한다. 주자를 살려야 한다. 파울라인을 살펴야 한다. 주위를 배려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껴야 한다. 세상을 두루두루 살펴야 한다.`

아! 야구가 이렇게 멋진 운동이었어?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울고 웃었다.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 우리의 시간은 아직 마지막이라는 글러브에 들어가지 않았다.
˝당신도 나도 아직 죽지 않았어. 그러니까 힘내˝
이런 말을 줄여서 `파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58쪽)

— 수많은 청춘들이
삶의 드래프트, 그 현장에서
묵묵하고 뜨거운 이닝을 함께 버티고 있다.
그 이닝의 끝에 있을
`역전만루홈런`을 기대한다. (133쪽)

— 내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서 끝내 응원할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었다. 나는 죽지 않고 태그를 피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움직이는 동작은 반짝이게 마련이다. 유니폼은 더러워지겠지만, 뭐 어떤가.
그런 반짝반짝한 더러움을 `런다운`이라고 한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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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2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5-11-0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월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살리미 2015-11-02 17:27   좋아요 0 | URL
이제 2015년도 한달밖에 안남았네요... 왜이리 시간은 훌쩍 지나가는지... 후애님도 남은 한달 보람차게 보내시길 바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1-02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야겠네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

살리미 2015-11-02 17:28   좋아요 0 | URL
야구를 좋아하신다면 더욱 공감하실까요?? 전 야구는 하나도 모르지만 재밌게 읽었어요 ㅎㅎ

2015-11-05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5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5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5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책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끌려서 보게 된 책이다.
작가 김탁환이 `왜 소설가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한다. 다양한 글씨체가 뒤섞인 <임경업전>의 말미에 짧은 필사 후기가 덧붙었는데, 결혼한 딸이 아우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친정에 와서는 임경업전을 베끼다가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자 아버지는 딸을 위해 종남매와 숙질까지 불러 필사를 마치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아비 그리울 때 보라˝

나는 공들여 필사를 마친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마지막에 아버지가 쓴 글을 읽을 딸이 된 것 같은 마음에 감동이 밀려왔다. 무심한 듯 다정한 저 문장! 그 한마디에 아버지의 정이 그 어떤 다정한 말보다도 더 깊이 느껴진다.

소설이 이렇게 인간과 인간을 잇는 선물이라면 평생 소설쓰는 일에 매진할 만 하다고 작가는 느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렇게 김탁환의 마음을 움직인 책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일반적인 서평과는 좀 다르다.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 그 생각의 한귀퉁이에 한두권의 책을 슬쩍 소개한다. `책은 누가 부여한 생명이 아니라 제 생명으로 거기 있다. 김탁환의 산문집은 책의 생명록이다.` 황현산 선생님의 책소개 또한 멋있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이 책 표지를 펼칠 수가 있게 디자인 되어, 표지를 펼치면 작가가 얘기했던 책들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책에 대해 누군가와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와 술한잔 하며 그의 얘기를 듣는 기분이 되었다. 팟캐스트 `정은임의 영화음악`에 대한 글에서는 같은 대목을 듣고 같은 부분을 공감한다는 반가움에 건배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책을 읽다가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장이 있어 포스트잇에 써서 딸 책상에 붙여놓았다. 카네기맬런대 랜디 포시 교수는 그를 눈물로 부서지게 했고,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 167센티미터의 장벽, 사랑하는 여인 재이의 마음을 얻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재이는 끝내 이별을 통보했다. 그 순간 체념하고 돌아섰다면 재이를 아내로 맞이하는 행복은 없었을 것이다. 상처받은 후에도 그는 재이를 따뜻하게 감싸며 기다렸다고 한다. 그가 말했다.

˝장벽은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려고 존재합니다. 장벽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거기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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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10-30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정말 책표지 독특하고 좋았어요.^^
표지를 벗겨 쫙 펼치면 52 권의 책들이 도표처럼
멋지게 나타나지요~~

살리미 2015-10-30 09:10   좋아요 0 | URL
생각지도 못했다가 깜짝 놀랐어요^^ 마치 책 52권을 선물받은 느낌이랄까 ㅎㅎ 참 좋은 아이디어에요^^

해피북 2015-10-30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얏. 정말 표지도 멋지구 내용도 뭉클하네요 ㅎㅎ

살리미 2015-10-30 14:18   좋아요 1 | URL
ㅎㅎ 아마 저 책 사놓고도 표지 안펼쳐보실 분이 계실까봐 일부러 사진까지 찍어올렸어요^^

2015-10-30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0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0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