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독서단을 보는데 조승연 대신 이우성 시인이 나왔다. 아! 한겨레 신문에 칼럼을 쓰는 그 시인이구나. 근데 그가 책을 소개하며 운다. 남자의 눈물은 흔한 법이 아닌데, 그는 무슨 사연으로 우는걸까.
그가 소개하는 책이 솔깃하다. 알고보니 저자와 이우성 시인은 친구사이였다. 저자의 삶을 잘 알고 있으니 한구절 한구절 가슴에 꽂힐테지. 갑자기 서효인이란 사람의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도 있었지만 빌려보니 않을테야! 저 책은 무조건 사야겠다. 이건 내가 서효인을 응원하는 방법이다.
책을 펼쳤다. 작가가 이야기한다. 나와 밤새 야구 얘기 할래요?
나는 좋다고 한다. 야구를 좋아하지도 않고, 심지어 남편이 야구보는 걸 제일 싫어하지만 왠지 당신의 이야기는 밤새 들을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경기가 시작된다. 삶이 시작된다.
˝시작은 되는 것이 아니야. 하는 것이지.˝
아! 이사람, 벌써 좋아진다.
그는 야구를 핑계로 인생 이야기를 한다. 어릴적 엄마가 두고 간 외가집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며 철이 들었고, 외삼촌이 들고온 라디오에서 야구중계를 첨 듣고는 야구장은 요강처럼 동그랗다고 상상하던 소년. 글을 모르던 할아버지와 야구장에 갔던 추억을 되새기며 아직도 시를 쓰면 혹 할아버지가 들을지도 모르므로 반드시 소리내어 읽어보는 사람. 그는 야구용어를 인생용어로 바꿔놓는 재주가 있다. 하긴 삶이랑 야구랑 비슷한 면이 있긴 하다. 세상이라는 팀과 싸우는 우리는 거의 지고 가끔 이긴다. 그래도 괜찮다. 야구경기는 내일 또 있고, 우리는 내일 또 기회가 있으니까.
— 하지만 당신이 세상에 둘러싸여 대거리를 주고받을 때, 내가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갈게. 어깨를 걸칠게. 당신은 나와 마찬가지로 정직하게 살아왔고, 우리 모두는 그걸 잘 안다. 나는 당신의 편이다. 당신은 어떤가. 어디든 마음으로, 혹은 정신으로, 끝내는 몸으로, 우리는 같은 편.
광포한 무리들에 맞선 지금, 우리는 벤치클리어링 하러 간다.
당신과 나의 동해바다같은 오지랖으로 펼쳐진 위아래 없는 연대의식. 이를 줄여서 `벤치클리어링`이라고 부른다. (32쪽)
이런 다정한 말을 하는 책을 나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가 하는 말은 왠지 다 들어주고 싶다. 그의 말을 들으며 그려본 그는 정말 착하고, 성실하고, 야구를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멋진 홈런을 한방 날리는걸 보고 싶다. 하지만 그는 `번트`를 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번트는 공을 달래야 한다. 자신을 숙여야 한다. 주자를 살려야 한다. 파울라인을 살펴야 한다. 주위를 배려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껴야 한다. 세상을 두루두루 살펴야 한다.`
아! 야구가 이렇게 멋진 운동이었어?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울고 웃었다.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 우리의 시간은 아직 마지막이라는 글러브에 들어가지 않았다.
˝당신도 나도 아직 죽지 않았어. 그러니까 힘내˝
이런 말을 줄여서 `파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58쪽)
— 수많은 청춘들이
삶의 드래프트, 그 현장에서
묵묵하고 뜨거운 이닝을 함께 버티고 있다.
그 이닝의 끝에 있을
`역전만루홈런`을 기대한다. (133쪽)
— 내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서 끝내 응원할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었다. 나는 죽지 않고 태그를 피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움직이는 동작은 반짝이게 마련이다. 유니폼은 더러워지겠지만, 뭐 어떤가.
그런 반짝반짝한 더러움을 `런다운`이라고 한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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