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겨레 영업사원의 끈질긴 구애끝에 결국 `너무나도 어려워서 독자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폐간 위기에 처한(믿거나 말거나)` 씨네 21을 정기구독하고 말았는데, 뭐 어차피 매주 도서관에 가서 읽고 앉았을테니, 집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따박 따박 도착하는 영화잡지를 읽으며 신나하고 있다. (경제관념 따위 갖다버린지 오래이므로)

씨네 21에서 즐겨보는 꼭지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다. 이번 호에는 영화 마션에 대한 얘기다!! 제목은 센스있게 <감자별> ㅎㅎ

며칠전 영화 <마션>에 대해 친구랑 얘기하다가 술상을 뒤엎을뻔 했다. 아직 마션을 보지도 않은 그 친구는 인터넷에 떠도는 리뷰만 보고 (그것도 악성리뷰만 봤는지) 영화를 판단했는데, 너무나 낙관적인 것이 딱 할리우드 코드이며 화성판 삼시세끼 수준이 아니겠냐는거다. 나는 일단 안봤으면 말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으로 그쳤지만 그에 대해 김혜리 기자는 이렇게 우아하게 쓰고 있다.

— 털어놓자면 나는 <마션>을 보는 동안 여론과 예산, 정치적 압력을 의식하면서도 공적 기구가 시민 한명을 구하기 위해 결국은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광경에 매료됐다. 물론 편리하게 이상화된 부분이 있지만 <마션>은 리얼리티를 아예 무시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을 더 솔깃하게 한다. (중략) 극중 항공우주국은 헤르메스호 대원들이 마크를 구조하기 위해 유턴하는 항로를 승인하지 않지만 실제로 폭동에 준하는 결단이 대원들에 의해 이뤄지자 항공우주국의 공식 결정인양 발표하고 지원한다. 요컨대 영화는 세금을 쓰는 기관 종사자로서의 명분과 과학자로서의 의무를 조율하는 능력을 가진 책임자들의 능력을 보여준다. 관료와 전문가 집단의 무능, 직업윤리, 책임감의 집단적 마비로 비극을 겪고 깊은 좌절을 겪어온 한국 관객의 무의식에 <마션>은 유난히 슬픈 판타지다.


아..... 내말이!!!
근데 나는 왜 이렇게 우아하게 말을 못하고 버벅거리기나 했는가. 그것은 술때문이라고 하자. (정말?)

기자는 마지막으로 <그레이엄 노튼 쇼>에 나온 멧 데이먼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역시나 그는 짱이다! (아... 나는 이런 표현밖에...)
오스카 각본상을 받은 스물일곱의 어느 날에 대한 회상. 그는 애인이 먼저 잠든 다음 (오~솔직해!) 여전히 멍한 상태로 거실에서 트로피를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고 한다. 이걸 위해 누구도 엿 먹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일찍 받아서 축복이라고. 평생 이 상을 꿈꾸다 노년에 이르러 받았다면, 그러고서야 오스카로도 채워지지 않는 큰 공동이 있음을 뒤늦게 발견했다면 얼마나 허망했을까 상상하니 마음이 부서지는 듯 했다고. 그는 항상 본인이 즐거워 하는 일을 했고, 인터스텔라에서처럼 동급의 스타라면 하지 않았을 작은 배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오스카 연기상에 거론될 일이 적었고, 고무줄 존재감을 자랑했지만 `사람들과 술렁술렁 어울리다가 필요할 때 조용히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이 맷 데이먼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는 없다`고 김혜리 기자는 말한다!! (정말 너~~므 동감입니다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

말하자면, 그는 <마션>에 나오는 덕트 테이프처럼 영웅적이다. (마션을 읽은 동지들은 알 거다. 덕트 테이프가 얼마나 위대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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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11-02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트 테입 포에버~! (라고 쓰고보니 수많은 범죄영화 장면이 마구 떠오릅니다;;;;)

살리미 2015-11-02 22:42   좋아요 0 | URL
헉!! 그.... 그러네요;;; 우주에서는 그 어떤 최신 장비보다 유용했던 덕트 테이픈데 ㅠㅠ

보슬비 2015-11-0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관에서 보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곧 집에서 만나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궁금하지만 우선 영화로 본후 책을 읽을지는 그때가서 결정할것 같아요. ㅎㅎ

살리미 2015-11-02 23:22   좋아요 0 | URL
영화부터 보고나서 소설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곧 즐감하시게 되길 바랍니다!

qualia 2015-11-03 0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론/방송에서 SF를 유독 사랑하는 한국 국민들 어쩌구 보도하던데요.

《인터스텔라》나 《마션》의 한국 흥행 수익이 (미국 빼고) 세계 2위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정작 우리 한국의 SF 문학이나 SF 영화는 거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여서 너무나 아쉽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우리들 자신이 쓰고 만든 SF 소설이나 영화에는 잘 ‘감정이입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TV에서 어린이 시간대에 한국 SF 드라마를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었는데, 너무 어설퍼서 전혀 감정이입하지 못했었거든요. 한국인/한국배우들의 일상적인 느슨한 모습/이미지가 첨단 미래 세계의 우주적 이미지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한국인/한국배우들의 반SF적인 이미지를 일거에 뒤집어놓을 역량 있는 연출자/감독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살리미 2015-11-03 07:09   좋아요 1 | URL
좋은 의견 잘 들었습니다. 전에 과학수다2 를 읽을때 SF에 대한 주제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열심히 활동하는 SF작가들이 있더라고요. 그 층이 두텁진 않지만. 1957년 <금성탐험대>를 발표한 한낙원 작가에 대해서도 나오든데 사실 저는 어렸을때도 과학소설쪽엔 관심이 없어서 이름이 낯설었습니다. 소설분야는 그래도 명맥을 유지해가고 있나본데 영화쪽은 워낙 자본도 많이 들고 하니 작품성 있게 나오기가 어렵겠죠. qualia님 말씀처럼 예전부터 첨단 미래하면 미국을 떠올리는 관습이 굳어져버려서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SF는 상상하기 어려운것도 사실이고요. 사실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이제 한국 영화의 수준도 높아져서 관객을 만족시킬수 있지만 SF분야는 아직도 헐리우드를 못따라간다고 생각하니 헐리우드 영화를 열광하며 보게 되는 거죠. 갑자기 예전 <디워> 사태가 생각이 나기도 하는데 ㅎㅎ 좋은 아이디어로 승부한다면 한국관객이 무조건 외면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역량있는 감독들이 많이 도전을 해야 할텐데... 또 영화판도 자본의 힘이 잠식하고 있으니 감독의 힘만으로는 힘들것 같기도 하고요... 에효...;;

챔피언 2015-11-03 0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마션 꼭 봐야겠습니다. 그나저나 판매에 성공한 씨네 21 영업사원이나, 선뜻 정기 구독을 신청한 오로라 님이나 둘다 대단합니다! 님의 씨네 21 구조 영웅담에는 정말이지 헐리우드적인 낭만이 흐릅니다^^ 마션의 정신을 실제로 실천하시는 의인이십니다.

살리미 2015-11-03 08:1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그렇게 말씀하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전 그저 의지약한 소시민일뿐입니다^^

인디언밥 2015-11-03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간 안돼요.. ㅠㅜ 씨네21 구독신청 하러 갑니다

살리미 2015-11-03 19:27   좋아요 0 | URL
헉! 인디언밥님 통이 크시군요^^ 저는 몇번의 고민끝에 결국...ㅋ
씨네 21은 이제 마지막 남은 영화전문잡지가 되었죠. 저는 한겨레 독자라 발목이 잡혀서 도와달란 전화를 너무 많이 받았답니다. 제가 호구란게 소문이 났는지 심지어 경향에서도 자주 전화가 와요 ㅠㅠ 경향에 비하면 한겨레는 양호하다고 하면서 말이죠 ㅠㅠ

인디언밥 2015-11-04 00:46   좋아요 1 | URL
18만원 보고 멈칫 했는데요. ㅋㅋ 학생증을 쓰면 8만원 할인 -_-v

근데 너무 재밌네요. ㅋㅋㅋ 경향에 비하면 한겨레는 양호하다는 말을 경향이 얘기하는게 ㅋㅋㅋ 담에 또 전화오면 ˝저에 비하면 경향도 양호해요..ㅠ˝ 해보는 건 어떨까요... 힣

해피북 2015-11-05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신랑이 유일하게 보는 책이 요거(두리번 두리번 어디서 신랑이 지켜보고 있을거 같은 따가움이 느껴집니다 ㅡㅡ;;;; ㅋㅋㅋ)인데 기차나 버스탈때면 늘 사서 읽곤했죠. 그런데 저는 요게 주간지인줄은 몰랐어요. 저도 인디언밥님처럼 구독이나 해볼까 하다가 18만원이란 댓글보고 왜이렇게 비싸지 했거든요 ㅋㅋ

워낙 영화를 잘모르고 안봐서인지, 이런 글보면 마구마구 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습니다 ㅎㅎ
`인스텔라`도 본다본다 하면서도 아직 못봤는데 ㅜㅜ 일단 책으로 읽고 영화를 보는걸로 목표를
정해야겠어요 ^^(꼭 덕트 테이프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내고야 말겠습니다 쿄쿄쿄쿄!! )ㅋㅋ

살리미 2015-11-05 17:05   좋아요 0 | URL
신랑분께서 `유일하게` 보는 책이라고 하셔서 빵터졋어요 ㅎㅎ
저도 구독료가 너무 비싸서 몇번이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어요 ㅋㅋ 아무리 제가 호구라도 비싼건 비싼거고 도서관에 가면 따박따박 들어와있거든요^^
그래도 영화보는 눈을 그나마 뜨게 해준 잡지가 씨네 21이고, 오랫동안 보던 잡지라 폐간 위기라며 막 겁주시는 바람에 그만 질러버리고 말았.....ㅋㅋㅋㅋ

고양이라디오 2015-12-13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의 씨네21을 구한 영웅적인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ㅎㅎ
저도 <마션>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ㅎ 나중에 책으로도 읽어봐야겠어요. 그나저나 김혜리씨 글 잘쓰시네요. 저도 영화 참 좋아하는데 구독해야할까요ㅠㅠ?

살리미 2015-12-13 09:43   좋아요 1 | URL
제가 구했다기엔 .... ㅎㅎ
전 아마 상술에 넘어간 귀얇은 소비자일테고요.... 요즘 잡지가 다들 어렵다고, 폐간 위기에 있는 잡지가 많다는 출판계 동향을 들은 적이 있네요. 사실 책도 잘 사보질 않는데 잡지를 구입해서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김혜리 기자님은 정말 글을 잘 쓰시죠. 팁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페북에서 김혜리 기자님 팔로우만 해도 기자님이 쓰시는 글을 페북에 자주 링크해 주시더라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