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끌려서 보게 된 책이다.
작가 김탁환이 `왜 소설가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한다. 다양한 글씨체가 뒤섞인 <임경업전>의 말미에 짧은 필사 후기가 덧붙었는데, 결혼한 딸이 아우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친정에 와서는 임경업전을 베끼다가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자 아버지는 딸을 위해 종남매와 숙질까지 불러 필사를 마치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아비 그리울 때 보라˝
나는 공들여 필사를 마친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마지막에 아버지가 쓴 글을 읽을 딸이 된 것 같은 마음에 감동이 밀려왔다. 무심한 듯 다정한 저 문장! 그 한마디에 아버지의 정이 그 어떤 다정한 말보다도 더 깊이 느껴진다.
소설이 이렇게 인간과 인간을 잇는 선물이라면 평생 소설쓰는 일에 매진할 만 하다고 작가는 느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렇게 김탁환의 마음을 움직인 책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일반적인 서평과는 좀 다르다.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 그 생각의 한귀퉁이에 한두권의 책을 슬쩍 소개한다. `책은 누가 부여한 생명이 아니라 제 생명으로 거기 있다. 김탁환의 산문집은 책의 생명록이다.` 황현산 선생님의 책소개 또한 멋있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이 책 표지를 펼칠 수가 있게 디자인 되어, 표지를 펼치면 작가가 얘기했던 책들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책에 대해 누군가와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와 술한잔 하며 그의 얘기를 듣는 기분이 되었다. 팟캐스트 `정은임의 영화음악`에 대한 글에서는 같은 대목을 듣고 같은 부분을 공감한다는 반가움에 건배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책을 읽다가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장이 있어 포스트잇에 써서 딸 책상에 붙여놓았다. 카네기맬런대 랜디 포시 교수는 그를 눈물로 부서지게 했고,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 167센티미터의 장벽, 사랑하는 여인 재이의 마음을 얻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재이는 끝내 이별을 통보했다. 그 순간 체념하고 돌아섰다면 재이를 아내로 맞이하는 행복은 없었을 것이다. 상처받은 후에도 그는 재이를 따뜻하게 감싸며 기다렸다고 한다. 그가 말했다.
˝장벽은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려고 존재합니다. 장벽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거기 있는 것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