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
한창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다락방님 서재에서 한창훈의 <밤눈>에 관한 페이퍼를 봤다. 한창훈은 26회 이상문학상 후보작이었나 <눈보라콘>밖에 읽어본 게 없어서, 급 궁금해졌다. 책장을 뒤져 홍합을 꺼냈다.  

난 한겨레 문학상 수상 작가들과 그 작품을 좋아한다. 심윤경이며 박민규며. 이 책도 그 맥락에서 산 책이었다. 제 3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  

여수 근처의 홍합 처리 공장을 배경으로 각각의 인물 에피소드를 옴니버스처럼 엮어나가는 이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중심 인물인 여인네들의 건강함이다. 서울서 대학을 다니고, 운동권 생활을 하다 고향인 여수로 낙향해 온 문기사(이름도 안나온다. 그냥 기사일을 하는 문씨), 늘 떠날 생각을 하지만 마지막에 결국 그는 이곳에서 다시한번 살아보기로 한다. 그를 이곳에 붙잡는 것도 이곳 여인의 흐드러진 건강함이다.  

이 소설에서는 상냥하고 잘 배우고 교양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안나온다. 남편에게 수시로 맞아 눈이 시퍼렇게 되어 공장에 나오는 여자들, 마누라를 돈벌이 시켜놓고 자기는 팽팽 놀며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내는 남자들, 며느리가 들어오자 살림에서 손을 놔 버리고 놀러만 다니는 시어머니. 남편이 갑자기 급살을 해 버려 남편도 없는 시집에서 애 둘을 데리고 살고 있는 여자와 극심한 노동으로 잇몸이 다 헐어버린 여자. 들춰보면 들춰볼수록 한숨만 나오는 사연인데도 이 소설은 그다지 슬프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유쾌하다. 

맞아서 눈 주위가 퍼렇게 되어버린 여인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도 이야기는 여전히 웃기고, 일당보다 더 많은 돈을 선생에게 촌지로 찔러주고 와야했던 여인의 이야기에서도 이야기는 여전히 웃기다. 일종의 페이소스이기는 하지만. 음담패설조차 야하지 않고 건강하게 바꿔버리는 그 흐드러진 중년 여인들의 건강함은 그대로 웃음을 자아내기에 족하다. 홍합공장에서 일하는 여인 8명의 사연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춰가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 중 <다섯 색깔 동그라미> 챕터의 이야기는 배를 잡게 한다. 한 마을에서 오입질을 시도하는 한 여자, 그녀의 오입질은 단순하기 그지 없다. 길가던 동네 남자를 길에서 만나 뜬금없이, "저녁에 뒷산에서 좀 봅시다." 해 놓고는 남자가 진짜 뒷산으로 오면 거기서 그냥 옷을 벗고 뒹굴어 버리는 이야기. 그녀가 남편에게 외도를 들키는 과정은 어이없어서 웃음이 난다. 다른 남자와 몸을 섞은 날 그녀는 달력에다 동그라미로 표시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한달에 한두개였던 동그라미가 두세달이 지나자 컬러 싸인펜으로 여러가지 색깔이 등장해 날마다 동그라미의 색이 달라지는 것이다. 즉, 만나는 남자마다 색깔을 정해두고 동그라미를 한 것. 결국 그녀의 오입질은 들키고, 그녀의 남편 보다는 시동생들이 더 난리를 친다. 여기서 더 압권인 것은, 이 일이 덮여가는 과정이다.  

   
 

찾아온 동생들은 다시 내보내라고 성화였다. 사흘을 줄담배질로 보내던 금이 아빠는 드디어 결론을 내었다.
"느그 형수 내보내믄 느그들이 나 새 장가 보내줄래?"
그 소리에 동생들은 고개를 내두르며 채 식지 않은 구두를 다시 꿰신고 총총 돌아갔다.
동생들이 찾아오기 전에 금이 아빠가 금이네와 마주 앉아 결정을 본 바가 있어서 그랬다.
"왜 그랬능가. 왜 서방 놨두고 그랬어?"
"......"
"서방질을 할라믄 멀리 가서 하등가. 누구 하나 하고만 하등가."
"..."
"동생들이 자네 내보내라고 자꾸 하는 거 자네도 들었제? 워쩔랑가. 좀 있다가 또 온다네."
"......"
"속 터져 미치겄네. 아, 뭣이라고 말 좀 해봐."
"인자 안 할라요."
(p.118) 

 
   

완전 압권이지 않은가? 새 장가 못갈까봐 온 동네남자들과 오입질을 한 마누라를 그냥 내버려 두는 남편이나, 사과 한마디 없이 "인자 안 할라요." 이 한마디로 상황을 종결시켜 버리는 사건 당사자나.  

그런데 한창훈의 힘이 여기에 있다. 이렇게 말을 하고보면 말도 안될것 같은 이런 상황이 한창훈의 소설을 읽다보면 지금도 어디선가 누구는 이러고 있을 것만같은 능청스러움이 있다.  

이 사건의 주범인 금이네는 나중엔 한술 더 뜬다. 자신과 오입질을 한 남편을 둔 여인네들을 향해 일갈하는 것이다.  

   
 

"그래 나 했다 어쩔래. 서방이나 아니나 좆도 아닌 것들하고 사는 것들이. 야, 아싸리 말해서 쓸 만한 놈 하나도 읎드라."
(p. 126) 

 
   

이 구절 읽고 데굴데굴 굴렀다. 이쯤되면 약간 모자란 여인네인가 싶기도 했다.  

알라딘에서 이 책을 농어촌 소설로 분류하는 모양이더라. 난 이런 소설이 참 좋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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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7-22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한창훈은 [밤눈] 들어있는 단편집만 읽어봐서(근데요 아시마님, 그 단편집에서는 [올 라인 네코]도 짱이에요!) [홍합] 읽어봐야겠다 싶었는데 타이밍도 적절하지, 리뷰를 적어주셨네요! 읽어볼래요. 저도 지금 이 리뷰 읽다 뿜었어요.

인자 안 할라요.

(근데 지금 책 살라고 가보니 품절이에요. ㅜㅡ 땡스투도 눌렀는데..)

아시마 2010-07-22 16:49   좋아요 0 | URL
98년 수상작이고, 2008년에 다시 한번 찍어내긴 한 모양인데, 품절이더라구요. 그래도 문학상 수상작은 그럭저럭 팔리는 편이라는데, 흠.

뽐뿌질은 금물이예요. 저 [밤눈]들어있는 단편집 읽고 싶어서 얼마나 환장했는데요. ㅠ.ㅠ

오늘 정미경이랑 신경숙, 박범신책들이 와요. 4권 오는데 배송료만 6만원이래요. 책값은 5만원이었다는데. 우씨. 여튼 와요, 와요, 와요. 정미경과 신경숙과 박범신이라구요!

2010-07-22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3 0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3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절로 2010-07-22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 진짜 내가 몬살아 아시마님땜시.
'난 이런 소설이 참 좋다'라니..하하하..(웃음이 안멈춰)
님이 더 능청시러븐거 알죠?

아시마 2010-07-22 16:44   좋아요 0 | URL
옴마나, 제가 뭘 어쨌다고 이러십니까요오오오오?

지는 그냥 이런 농촌 소설이 좋다는 말쌈이랑께라. 한창훈이만 좋은것이 아니고요, 이문구도 좋아하고 요새는 그 김종광이도 좋아라 허요.

진짜랑께라. 에파타님이 예전에 접신 박완서라고 하셨잖으요? 이문구 그 냥반도 접신의 반열에 올려줘도 갠찬혀요. 을마전에 김종광이 모내기 블루스 읽었는디 것도 솔찬히 괜찮았소. ㅎㅎㅎㅎㅎㅎㅎㅎ

아나, 진짜!!!

Ps. 이 책에 보면 말예요, 경상도 출신 중령댁이랑 여수 토박이 아줌마가 말싸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경상도 사투리도 그대로 전라도 사투리도 그대로 어찌나 맛깔지게 싸우는지... 쓰면서 안헷갈렸을라나. ㅎㅎㅎ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 그해,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 개정판
한강 지음 / 열림원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차에 두고 간단히 읽을 책을 고르다 이 책이 손에 잡혔다. 한강이고, 읽은지도 한참 되었고, 읽었을 때 좋았었다는 기억도 있고... 무엇보다, 나에게 한강이라는 작가를 소개해 준 지인이 2003년 (이 책의 초판이 처음 발간된 해다.)에 읽은 책들 중 가장 좋았던 책으로 꼽았던 책이지만 막상 나는 좋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의아함을 느꼈던 것을 아직도 찜찜하게 기억하고 있던 책이기도 했다.  

판형은 작은데 활자가 크고, 짤막짤막한 에세이라 차 안에서 잠깐잠깐 읽기 좋겠다고 들고 내려가 차 안에서 다시 펼쳐든 이 책을, 나는 차에서 내릴때 도로 손에 들고 나와 끝까지 읽어버렸다.  

헉... 나는 도대체, 2003년 11월 1일(이 책을 처음 읽은 날, 책 면지에 기입해 뒀다.)에 뭘 읽은거지? 그래, 내용과 그 사람들은 그대로 선연하게 기억이 나지만, 알고 있던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와 닿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이 책의 서문에서 한강은 말한다.  

   
 

한동안 망설였다. 4년여의 시간이 흘러, 아무래도 이 글들을 나의 것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고쳐 쓸 수도 없었다. 생각과 감정의 틀 자체가 변해, 아예 차음부터 다시 쓰거나 쓰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렇게 여러 날의 여러 마음 끝에 결국 이렇게 책을 묶게 되었다. 최종 원고를 보내기 위해 오래 전의 나와 조우한 며칠동안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이런 나도 있었구나. 꽤 밝았구나. 마음이 가볍고 담담했구나. 단순하고 낙관적이었구나. 심오할 것도 무거울 것도 없이. 고통스럽게 파고들어간 자기 응시의 흔적 없이.
p. 4 

 
   

한강이 서문에서 밝힌 그 말은 오늘 이 책을 읽을때의 딱 나의 마음이기도 했다. 

생각과 감정의 틀 자체가 변해버렸다는 느낌, 이 책을 밝고 화사한 색채로 기억하고 있었던 나에 대한 어리둥절함. 뜻밖이다. 이 책의 저자인 한강조차,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쓸때의 자신을 "꽤 밝았"고 "마음이 가볍고 담담" 했다고 말하는데 막상 이 글을 읽는 나는 이 글들이 너무 아팠다.  

이 책이 무겁고 우울하지는 않다. 그건 아마 이 책이 한강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책이라기 보다는 이 책의 띠지에 적힌 말 그대로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일이 있었고, 내가 만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고.. 하는 것들을 자세한 묘사가 아닌 크로키 하듯 그려나간 글들. 글의 대상이 한강의 내면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연필을 잡고 있는 손은 한강의 것이다. 대상을 한강식으로 해석하고 그려낸다.  

한강의 눈으로 들어와 손을 통해 나온 인물들은 모두가, 엷은 슬픔이 묻어있다. 그리고 그 엷은 슬픔에도 그들은 강하려고 노력한다. 냉정하지만 연약하고, 슬프지만 강한 사람들의 이야기. 고작 160 쪽에 판형은 작고 글씨는 큰 이 책은, 어쩌면 나의 2010년의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너무 없어. 언제 이 책들을 다 읽지? 언제 이 영화들을 다 보지? 언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다 쓰지?"
p. 48 

 
   

내 말이!!! 

 

Ps1. 오늘 새삼 느꼈다. 역시 책은 구입해서 짱박아 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새로 읽고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때의 그 기분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ps.2. 한강이 이 책을 쓰게 되었던 배경인 아이오와 대학 주최의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했다가 그때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긴 작가로는................................... 김연수(여행할 권리 or 청춘의 문장들)와 무라카미 하루키(일상의 여백) 라고 쓰려 하였으나, 지금 책을 들춰 확인해보니 그 세권의 책에서 IWP에 관한 문장을 못찾았다. -_-;;; 김연수는 중국의 대학이고 하루키는 프린스턴 이란다. 에혀. 나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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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해피 스마일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책 이라는 게 시기를 탄다. 특히 일상을 소소하게 다룬 에세이집의 경우엔 더 그런 것 같다. 어떤 책은 특정한 시기에 읽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달라진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한국에서 꽤나 유명하고 인기있는 작가이지만, 개인사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바나나도 그렇고 가오리도 그렇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거의 10년째 똑같은 사진을 써 먹고 있다. 이건 바나나와 가오리의 바램이 반영된 것인지 소담출판사와 민음사의 의지가 반영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여간. 동그란 안경을 쓴 담백한 얼굴의 바나나는 그 얼굴과 작가의 약력 외에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보통은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개인사를 추론해 낼 수 있게 되거나 소설 외에 몇권의 에세이집으로 작가를 추측할 수 있게 되는데 바나나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도대체 그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로 작가의 성장 배경을 추측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고, 그래도 몇권의 에세이집을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했던 가오리와는 달리 바나나는 이번이 처음(내가 아는 한은) 에세이집이다.  

아마, 바나나의 팬이라면, 바나나의 개인적이고 소소한 일상이 그려지는 에세이집이라는 말에 혹했을법 한데, 막상 읽다보면 실망을 했을 것 같다. 이 책은 에세이집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보통 에세이집에서 상상하는 내면의 표출같은 건 거의 없다. 그야말로 사소한 일상의 나열이다. 바나나의 소설들이 그렇듯 담백하고 단순하다. 이 책으로 작가의 내면을 짚어본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바나나라는 이름을 배제해 놓고, 그냥 이 책을 읽는다면, 더구나, 만 3-4세 가량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읽는다면, 이 책은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있다. 바나나의 아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내 딸도 했다. 소설가 엄마를 가진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일상은 묵정밭이다. 문학이라는 것은 그 묵정밭에서 잡초를 뽑아내고 화초만을 남겨두는 것이다. 바나나는 바로 그 일들을 했다.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일어나는 그 수많은 일들중에 보석같은 순간들을 잡아내어 글로 옮겼다.  

육아 이야기는, 육아 당사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화제이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주제중의 하나가 된다. 도대체 아이가, 오늘 엄마! 라는 말을 했다고 꺄악 꺄악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치고 흥분해 온 동네에 전화를 돌려 대는 걸, 이해할 수 있는 건 오직 엄마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이를 둔 엄마밖에는 없다. 하지만 육아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한템포만 물러서면, 이게, 내 새끼라서 이쁜거지, 라는 걸 알고 있지만, 내 새끼는 나나 이쁘지 남은 안이쁘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그 이야기들.  

이 책은 그 육아 수다의 욕구를 채워준다. 아이고 바나나씨 당신 아들은 두살이 지나서야 엄마소리를 했구먼요? 호호호호호, 내 딸은 9개월에 했다오. 아이고 데이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당신, 육아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당신, 당신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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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2010-07-1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나나,가오리..저는 별로였어요.
샤워하고 막 나온 듯한 단아한 언어들은 매력적이었지만
무지막지한 제게는 웨엔지 흰죽도 못 얻어 먹은 것 같이
'힘달가지?'가 없어보였거든요.(나 이러다 그녀들 팬들에게 생매장?)

킁..그런 바나나가 육아라..급 궁금해지는데요.^^


아시마 2010-07-20 19:37   좋아요 0 | URL
네, 힘달가지 없어보였다는 표현 동의해요. 너무 무기력하죠, 주연급의 인물들이 모두가. 오히려 조연급에서는 강한 인물이 몇몇 나오기도 하는데요. 게다가 인물들만이 아니라 사건도. 님은 "힘달가지가 없어" 라고 표현하고 저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라고 표현했지만 결국 같은 맥락일거예요.

그런 바나나가 육아도 하던데요, 육아자체는 굉장히 흠. 평범했어요. 그야말로. 단지 남편, 즉 아이 아빠와 정식 결혼을 하거나 한 건 아닌 것 같은 구절이 한두군데 나오더군요. 남편은 뭐하는 사람일까 궁금했어요.

아. 저의 이 아줌마스런 호기심이란. -_-;;;

blanca 2010-07-18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오리 사진 10년 ㅋㅋㅋ 너무 동감해요. 저는 최근 모습 보고 허걱했어요. 냉정과 열정사이 그 띠의 사진 보고 정말 대단한 미인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육아,맞아요. 관심없는 사람들한테 세상 지루한 주제일텐데...저는 바나나의 책은 한 권도 못읽어 봤어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아시마 2010-07-20 19:43   좋아요 0 | URL
오호, 정말요? 전 개인적으로 가오리보단 바나나가 더 취향에 맞아요. 바나나를 좀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가오리가 여성적이라면 바나나는 동화적이죠. 유아적인면도 강하고.

ㅋㅋㅋ 가오리 최근모습, 음, 한국 강연회였는지 뭐 그런거 왔을때 보도사진 보신거죠? 저도 완전히 뜨아아아아아아아아 했잖아요. 저 머리 산발한 아노세이메이 적인 용모의 아줌마는 누군가 했다니까요. 저 쑥대머리 귀신형용 아줌마가 그 냉정과 열정사이의 그 콧대가 오똑하고 턱선이 단정했던 그 사람이라니, 음음음, 이건 아무래도 말이죠, 출판사의 농간임이 틀림없다고 결론 내렸잖아요. 사실 가오리의 그 사진에 속아서 등장인물을 가오리의 외면에 겹쳐놓고 책을 사거나 읽은 사람들 많을걸요.

공지영 <괜찮다, 다 괜찮다>에 보면 그런 말이 나오더라구요. 사람들이 자기 외모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고. 지가 이쁘다고 주인공도 죄다 이쁜 여자로만 묘사를 한다고, 그런데 왜 가오리의 외모는 이야기를 안하느냐고, 가오리도 예쁜데 사람들이 왜 욕안하는지 모르겠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

흠, 공지영은 진짜로 예쁘고 가오리는 사진만 예뻐서 그랬나 봐요, 라고 대답해주고 싶은 충동이. ㅎㅎㅎ
PS. 근데 전 공지영씨가 별로 이쁜줄을 모르겠어요. 왜 그렇게 이쁘다 이쁘다 자기 외모 이야기를 스스로 많이할까 싶어요. 예쁘장한건 알겠지만 나 외모 이쁜걸로 너무 갈굼받고 살아서 슬퍼, 라고 말하기는 좀, 민망한, 얼굴이잖아요? -_-;;;

마녀고양이 2010-07-2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바나나가 이런 책도 썼군요..
저는 한때 바나나와 가오리에게 홀랑 맛이 가서 줄창 읽어댄 기억이.

그런데여,, 바나나, 가오리,, 이거 우리말로 이름이라 생각하면 정말 웃기잖아요? 과일과 생선... ㅋㄷㅋㄷ. 첨엔 혼자 피식거리면 읽기 시작했더랍니다.

아시마 2010-07-20 19:48   좋아요 0 | URL
이 책 처음 나왔을때 완전 핫 이슈였잖아요. 책 내용으로 이슈가 아니라, 책은 정말 어른 손바닥만한데다가 페이지수는 228페이지인데 가격은 무려 만오천원이라고, 욕을욕을 그렇게 들어먹은 책일걸요, 아마. 저도 무지 욕했지만요. ㅎㅎ

바나나는 어차피 진짜 과일 바나나를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니까 뭐, 가오리는 처음엔 좀 난감했다지요. 하.하.하.

저절로 2010-07-20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떼굴떼굴.마녀님 공분안하세요?

blanca 2010-07-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저랑 생각이 넘 똑같아요. 저도 공지영 이쁜 줄 모르겠어요--;; 그런데 본인이 자꾸 이쁘다고 ㅋㅋㅋ 아무래도 아직 문단에 초절정 미녀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런데 아노세이메이가 뭐예요 ㅋㅋㅋㅋㅋ 제가 함 찾아 볼게요...아시마님이랑 저랑 느끼는 점들이 너무 같을 때가 많아서 깜짝 깜짝 놀라요!

아시마 2010-07-22 16:38   좋아요 0 | URL
아노세이메이는 일본 소설이자 영화 <음양사>에 등장하는 음양사예요. 우리식으로 치면 퇴마사 또는 무당쯤 될라나. 아 교코쿠도 시리즈의 교코쿠도가 이 음양사예요. 이 영화에 보면 머리를 풀어헤치고 머리에 촛불9개를 끼운 관을 쓴 미친여자가 한밤중에 신사 앞에 나타나 신사벽에 못질을 하는 그런 장면이 있거든요. 가오리 보도사진보고 제일먼저 떠올랐던 장면이라... ㅎㅎㅎ

음음, 문단에 초절정 미녀는 몰라도 공지영급은 찾아보면 꽤 되요. 정미경도 나름 곱살한 얼굴이구요, 전경린도 나쁘지 않은 얼굴이고, 심윤경도 단정하고 예쁜 얼굴이예요. 하성란도 있고요. 공지영과 차이라면, 이 사람들은 자기 얼굴타령을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 아, 그러고보니 조경란도 얼굴로 좀 유명해요. 조경란 관련 기사들에보면 빠지지 않고 얼굴관련 이야기가 나오죠.

아니, 나는 진짜, 공지영이 얼굴 이야기 하면 내가 다 좀 민망해져요. 막 그런거 있잖아요. 진짜 당황스럽다니까요. 자기가 예뻐서 이같은 괴로움을 겪고 있는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사람한테, 저기요, 님하? 건 좀 아닌듯? 이럴순 없잖아요? 아마... 그녀가 미녀작가로 여튼저튼 행세를 하는 건, 다들 저와같은 심리의 발로이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단체로, "님하, 건 좀 아닌듯?" 이라고 메일이라도 보내볼까요? ㅎㅎㅎㅎㅎㅎ 그럼 역시나, 아, 나 너무 이뻐서 이런 메일도 받아요, 이러고 나올듯. -_-;;;
 
못된 장난 마음이 자라는 나무 22
브리기테 블로벨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사람이란 극히 제한적인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도저히 이해 못할 범주의 사람은 특정인에 대한 안티들이다. 그들은 주로 인터넷의 닉네임과 유동 아이피 뒤에 서식하고 있다.

물론 나도 푸른지붕 쥐색을 싫어하고, 수첩공주는 지나가다 뉴스에서만 봐도 밥맛이 뚝 떨어지며, 아무 이유없이 주는 거 없이 싫은 연예인이 있다. (하긴, 나는 언젠가 "주는 거 없이 싫은" 감정은 질투의 다른 표현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노홍철을 질투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흠.) 정치인은 차치해두고, 정치인을 싫어한다는 감정은 우리의 현실 생활에 너무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넣어둬 넣어둬 라고 대충 무시해서는 안된다. 싫다면 싫다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한다고 본다. 더 좋은 방법은 정치인 누군가에 대한 지지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도 안티로 뜻을 이루기보다는 지지로 뜻을 이루는 편이 좋다. 

차설, 연예인의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면, 나는 몇몇 연예인이 고정으로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버라이어티 쇼에 그 연예인이 나온다면 채널을 돌린다. 신문 기사에 그들의 기사가 나와도 보지 않고, 정확히는 그들이 뭔 짓을 하고 사는지 관심을 안둔다. 두기가 싫다. 나쁜짓을 했다는 신문기사에 그래 넌 내가 상상한 딱 그만큼이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열정도 없다.싫어하니까, 그에 관한 기사를 읽거나 소식을 듣는 것도 고역이다. 착한 일을 했다는 소식에도 별반 관심을 두지 않지만, 그래도 걔 의외로 괜찮은 놈이더라?(이게 언론플레이일지라도 말이다.)라는 말에는 흠, 그래? 라고 마음을 돌려 싫어했던 마음을 지울 정도의 아량도 있다. 오오오. 나 너무 착한거 있지. 

그래서 나는 잘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싫다, 싫다 외치면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추적하여 하나하나 꼬투리 잡아 욕을 하고 그걸 글로 써서 인터넷에 올리기까지 하는 그 정열을. 이건 마치... 얼핏봐서는 초등학교 남자아이들이 관심을 괴롭힘으로 표현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구. 물론, 초등학교 남자아이들의 괴롭힘은 애교스러운데가 있고, 인터넷 안티의 행위는 애교라고는 조금도 없다.  

부처님이 그랬다는데. 사랑하지 말아라. 보지 못해 괴롭다. 미워하지 말아라, 봐서 괴롭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는 괴로움은 그리움이라는 감미가 섞인다. 하지만 미워하는 사람을 봐서 괴로운 감정은, 이건. 그야말로 순수한 괴로움이잖아.

그렇게 싫으면 보지 않아야 정상아닌가.  

한때 내가 열심히 들락였던 여성 커뮤니티의 익명게시판에는 몇몇 연예인에 대한 끈질기고 지치지도 않는 안티가 있었다. 그들의 레파토리는 변하지도 않아서, 닉네임조차 보이지 않는 익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 그때 그 사람이구나,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정도의 정열적인 미움은, 사적인 원한관계가 있어야만 생길수 있지 않을까 싶을만큼 질기고 집요한 욕질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도 보통의 에너지로는 감당이 안되는 일인데.  

이 이야기를 돌려서, 안티질을 하는 사람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안티의 대상이 되는 누군가를 중심에 두고, 관점을 바꾸어보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제3자의 입장에서 흠, 이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 하고 power off 하고 끝낼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안티를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라고 넘어가야 할 것이 아니라 안티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책은 그 안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이야기다.

누군가가 나를 미워한다. 그런데 나를 미워하는 그 사람은 허상이다. MR. blog씨 같은 완전한 제로는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실체도 아닌, 일종의 그림자나 입김같은 실체다. 있기는 있으나 맞붙어 싸울수가 없다. 형체를 가진 나는 상처를 입지만 그림자는 상처입지 않는다. 상처입힐 수 없다. 미움을 받는 나는 온전한 실체인데, 나를 미워하는 너는 그림자인 것이다. 물론 캐고들어가면 본체를 찾을 수 있겠지. 하지만 찾기까지란 너무 지난한 일이고, 너를 찾기 전에 나는 이미 상처입고 있다.  

 수순은 똑같다. 처음에는 분노하고, 그 그림자를 만든 몸뚱아리를 찾으려 한다.  

   
 

이들 중에 누가 '강철 심장 왕자' 일까? 흰 셔츠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뛰어다니는 레나르트인가? '섹스 피스톨'은 또 누굴까? 남자아이일까, 아니면 여자아이일까?
- p. 192 

 
   

그림자의 실체찾기는 당연히 실패로 끝나고, 다음 수순은 미움의 원인 찾기와 제거로 들어간다. 이쯤되면 이미 집요한 공격으로 자아는 파괴되어 판단이 흐려졌다고 보아야 한다. 안티의 원인은 언제나 안티쪽에 있다. 그 원인을 이쪽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니 매번 틀린 답만 내놓게 되는 것이다.  

   
 

혹시 좋은 옷을 입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 
오로지 비싸고 멋진 옷을 입어야만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 p. 218 

 
   

그 불가능한 노력은 얼마나 눈물겨운가. 하지만 밟아도 밟아도 밟히지 않는 존재에 대한 증오는 점점더 커져가게 마련이다. 인간이란, 집단의 가면 뒤에서는 얼마나 어리석고 잔인한 존재인가.  

   
 

이런식의 정신적인 폭력은 소량의 독이 담긴 음식을 매일 먹는 것과 같다. 한두 번은 몸이 정화해 낼 수 있다. 그러나 독이 오랫동안 몸속에 쌓이면 나중에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
- p. 242 

 
   

이런식의 집단의 괴롭힘은 한도가 없다. 마치 컴퓨터 슈팅게임 처럼, 한단계를 지나면 또 한단계가 나오고, 괴롭힘의 대상이 강해질수록 강도도 점점 세어진다. 그 게임의 끝을 보려면 대상이 끝장이 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공격에 대한 죄책감은 모두가 함께 나누어 가진다. 마치, 군대 총살형에서 실탄은 단 한방이지만 아홉명의 사수가 총을 들고 누구의 총에 실탄이 들어있는지는 누구도 모르는 것처럼. 아홉명 모두가 내 총은 공포탄이었을거라고 굳게 믿는다. 처음엔 그저 험담이었고, 그 다음엔 가짜 합성사진이었으며, 마지막은 실제의 사진이었다. 누구나, 나는 그저 한줄 답글을 달았을 뿐이고, 나는 그저 침묵했을 뿐이며, 나는 약간 웃을 뿐이었다. 나의 책임은 딱 거기까지라고 믿는다.   

그리고 주인공 스베트라나는 정말로 끝장이 난다. 그리고, 아마도. 스베트라나가 끝장이 난 것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저 사진을 올렸고, 나는 그저 웃었고, 나는 그저 답글 한줄, 나는 그저 외면했을 뿐. 그 이상의 책임을 묻는 것은 나도 억울하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온다. 물론 이 책은, 청소년 소설답게 해피엔딩을 보여준다. 우리의 똑똑한 스베트라나는 건강하게 다시 일어섰고, 다시는 누구도 그녀를 괴롭힐 수 없겠지만, 제2 제3의 스베트라나는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고 그 중 누군가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데 성공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진실 언니처럼.  

난 정말. 궁금한 게. 그들의 심리다. 누군가를 그렇게 집요하게까지 따라와 괴롭힐 수 있는. 하지만 책은 언제나 피해자의 시선에서만 쓰인다. 왤까. 누군가 가해자의 입장에서 글을 한번 써 봐 줬으면 좋겠다. 읽고 좀 이해라도 해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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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찬란한 나날
조선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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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참 읽다 문득, 2002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었던 정미경의 《장밋빛 인생》이 떠올랐다. 더 정확히 표현을 하자면, 그 책의 뒤 추천사가 실린 부분에 있던 심사 위원의 심사평이 떠올랐다. 이청준의 평으로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확인해보니 김화영이다. 김화영의 심사평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이 작가의 글 솜씨는 노련하다 못해 눈부시다. 그래서 때로는 이 화려함의 광도를 다소 낮추었으면 싶을 정도다." 

(아니다, 내 기억속의 어딘가에서는 분명, 이청준 선생님이 정미경의 소설에 대해서 지나치게 계산을 해 너무 꽉 짜여 있다는 것이 오히려 단점이라는 말씀을 한 일이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어느 소설에 대해서 언제 말씀하신거지? 이상 문학상 수상작에 대해서 하신 말씀인가 하고 찾아보니 그것도 아니다. 아 환장해. 이청준 선생님이면 동인상 심사위원이니까 그쪽을 뒤지나... 조선희 리뷰쓰다 말고 웬 정미경 뒤지기냐고. ㅠ.ㅠ 덴당. 일단 다시 조선희로 돌아가자. 자자자자. 

김화영의 정미경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2006년 출간 단편집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에 또 한번 실린다. 정미경의 글에 대한 김화영 선생님의 평가에는 대체로 나 역시도 동의하는 편이지만, 나는 사실 그런 느낌을 정미경의 글에서 보다 조선희의 글에서 더 많이 느낀다. 

조선희, 라는 이름은 일반독자(?)에게는 약간 낯선이름이다. 뜬금없지만, 아주아주 옛날에 이은혜의 만화책 <댄싱러버>에서 주인공 서지우를 두고 연예인들이 "스타들의 스타" 라는 표현을 하는데 그게 조선희에게 가면 딱 맞춤하다는 느낌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데, 글밥 좀 먹는 다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스타같은 작가. 물론 김훈이나 박완서나 박경리도 작가들의 스타같은 작가이지만, 그들은 일반 독자에게도 충분히 유명한 작가이니까 조선희와는 느낌이 좀 다르고.  

이 책은 소설책으로는 조선희의 두번째 작품이다. 2002년 내가 처음 알게된 조선희는, 소설 그 자체보다 소설을 쓸 것이라는 것으로 더 유명한 사람이었다. 직장에서 한참 문학 관련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던 무렵의 한 시기에 조선희의 이름은 거의 모든 신문에서 며칠동안이나 다루어졌었다. 씨네 21의 편집장이었던, 한겨레 신문의 기자였던 그녀가 소설을 쓴다는 것으로, 그녀는 이미 소설 그 자체보다 더 유명한 작가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나온 첫 소설 <열정과 불안>은 오, 꽤나 괜찮았지만, 흠. 

그야말로 "이 작가의 글 솜씨는 노련하다 못해 눈부시다. 그래서 때로는 이 화려함의 광도를 다소 낮추었으면 싶을 정도다." 라고 말하게 된다. 단어하나, 쉼표하나까지도 모든것이 완벽하게 계산되어 딱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다. 단어와 쉼표가 이럴진대, 인물과 구성과 사건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다시, 작가의 약력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신문기자 시절의 김훈이 소설가 김훈을 만들었듯, 조선희에게로 넘어오면 역시나 언론인 조선희가 소설가 조선희를 만들었다 싶다. 문체는 단정하고 빼어나고, 단순하고 평범할 수도 있었던 소재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솜씨도 훌륭했으며, 기 승 전 결에 대한 부분도 잘 짜여져 흘러가는데, 그래서 좀 답답할 정도다. 

우와, 이건 너무 잘 썼잖아, 싶은. 그 압도. 이건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잖아.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다는 게 흠이라니 이건 너무하다.

어떤 부분 정미경과 닮은데가 있다. 정미경이 좀 더 날카롭고 개인적인 느낌이라는 것이 차이랄까. 작품의 기저에 깔고 있는 냉소나 차가운 관찰자라는 느낌도 닮았다.  

   
 

자신의 현실을 떠나 있는 것은 모두 판타지다. 우주전쟁뿐 아니다. 비참이나 남루도 그렇다. 
 

누구나 자기 동네에 갇혀 살기는 마찬가지다. 울타리 바깥은 그저 책이나 신문이라는 종이 위에 건설된 판타지일 뿐이다.

 
 

<서울의 지붕 밑> p.97, 116

나는 이 말을, 니가 고생을 안해봐서 세상을 몰라,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알아야 니가 복받은 줄 알고 정신을 차리지. 라는 남편의 타박에 대꾸하는 말로 내질러 줬다. 내가 막말로 말이지, 그러는 니는 아느냐고, 그리고 니가 나에 관해 그렇게 잘 아느냐고 안 한게 다행이다. 당신이 아는 내가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지. 날 다 알고 있다는 그 오만은 어디서 튀어나오냐, 응?

   
  한국 사회가 좁아서 한두 사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건 학연과 지연이 엮어내는 범주 안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 얘기다. 징검돌 몇개로는 건너갈 수 없는 아득한 바다가 K와 정자 씨 사이에 가로 놓여 있었다.  
 

<서울의 지붕 밑> p.114

 

이러한 현실인식, 그것이 조선희다.  

왜 이 작가가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글 진짜 끝내주게 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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