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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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눈을 의심했다. 기사가 아니라 소설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사실을 다룬 기사였다. 
p. 417
 
   

 

아니, 김용철씨, 지금 누가 할 소리를 누가 하고 계신거요... 헐.  

이 책은 너무 황당해서 도무지 사실 같지가 않다. 만약 이 책이 소설로 분류되어 나왔다면 완전 쓰레기 3류라고 종이 재활용통에 던져버림이 마땅하다. 인물은 하나같이 비현실적이며, 사건은 어디 도색 잡지에나 나올법한 1%의 진실에 99%의 부풀림이 더해진 과장기사 같고, 그 진행 추이는 돈 꼴리오네 스럽다. 피가 튀지 않는다는 사실만 다르고. 물론, 실행의지가 없기는 했으나 살해에 관한 논의가 나오기는 한다.(마리오 푸조 님하, 미안.) 

더욱 뒷골 땡기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싸구려 3류 도색잡지 기획기사 같은 이 이야기가 100%의 진실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김훈 선생이 여러번 말씀하셨던 바, 팩트만을 전달하는 기사는 있을 수 없듯, 이 책 역시 팩트에 대한 김용철의 판단과 취사선택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이 책에서 가장 '깨는'부분은 2부 10장의 '이건희 일가, 그들만의 세상'과 11장 '황제 경영의 그림자' 였다. 이 장에서 그려지는 이건희와 홍라희의 모습은, 코메디에 등장하는 인물과 거의 흡사하다. 이건 뭐, 과대망상증을 가진 정신병 환자(특히 그 증세를 과장되게 표현해 등장시킨)를 주인공으로 한 코메디적 부조리극의 일종같다. 아니, 정말 미친건 아닐텐데 그런 행태를 보이는 건 미쳤다는 소린지 안미쳤다는 소린지 헷갈린다. 재벌그룹 총수라는 양반이 7년간 단 두번 회사에 출근했다는 기록은 이건 뭐, 어쩌자는 거지? 싶고, 100만원짜리 옷을 만들어서 누가 사입어요? 라고 말했다는 이건희의 차녀 이서현의 발언은 얜 무뇌아일까, 무뇌아인 척 해서 사람들을 웃기려는 걸까, 싶고, 결정적으로, 3명의 통신 담당관을 두고 전 세계의 TV프로그램을 하루종일 시청하신다는 이건희의 이야기는. 음. 육아전문가들에게 데려가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 TV 시청을 너무 오래하면 비디오 증후군에 걸릴수 있습니다. 라고. 가르쳐 줘야 하는데. 아하... 그의 정신병적 행태는 TV 시청을 너무 많이 해서 생긴걸까? 그럼 진짜 치료가 필요한 정신병 환자라는 이야긴데?  

인도네시아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teman(친구)라는 말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한번만 만나도, 무조건 그 사람이랑 나랑 친구다, 라고 말한다. 이 나라 사람들 발은 또 얼마나 넓은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갖 관공서에 친구를 두고 있다. 그리고 도움(bantu)이 필요하면 요청하면 된단다. 그럼 다 해 준다고 한다. 그러하다 보니, 진짜 친구는 또다시 teman yang terdekat (가까운 친구)라고 표현한다. 이 나라 사람들의 인맥에 대한 집착과 과시는 정말 상상이상이다. 참 신기한 나라일세, 했는데, 이 책의 저자가 그 이유를 풀어줬다. 

   
  평범한 이들까지 '마당발'을 동경하게 된 한 원인은 허술한 사회인전망이다. 개인의 삶에 위기가 닥쳤을 때,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었거나, 병이 생겼을 때 누구나 차별 없이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이런 문화가 생겨날 가능성은 적다. 실제로 사회복지가 잘 돼 있는 나라일수록 인맥관리에 지나친 힘을 쏟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반면, 사회복지가 취약한 나라일수록, 마당발을 동경하는 문화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p. 412-413
 
   

 

그런데, 이런 친구는 그냥 반뚜해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 친구라면, 당연히 해줄만한 일도, 이들은 태연하게 돈을 받는다. 이들의 "도와줄게" 라는 말은 내 도움을 돈 주고 사라, 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마당발의 인맥은 우정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어느쪽에서든 아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권력이 없는 서민의 경우에 안면을 터 놓은 경찰이 있다면 당연히 도움을 받게 될테니 그들과의 인맥에 집착을 하는 것이고, 경찰의 경우에는 인맥이 많으면 많을수록 잠재적 고객층이 넓어진다는 이야기니까 새로운 사람과 뜨만 뜨만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처음에 그 돈은 그저 '급행료'라는 이름이었다. 일 처리를 좀 더 빨리 해 준다거나 약간의 서류 미비를 눈감아주는 대가였다. 그러다 그 급행료는 이제 변질되어 그 돈을 주지 않으면 일을 해주지 않는 수준으로 이르렀다. 세관은 웃돈을 얹어주지 않으면 이삿짐을 통관시켜주지 않고, 주거 확인 도장을 찍어주는 동네 통반장은 돈을 받지 않으면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우체부는 우편물을 주지 않기도 한다. 이 나라에서 기업을 하려면 자세한 상납목록을 만든 장부를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다. 그 상납 장부에 들어가는 사람은 위로는 관련 관청의 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담당 경찰서의 경찰관들과 그 상부, 동네에 하나씩은 있게 마련인 어깨들, 심지어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상납의 대상이 된다. 상납은 한달에 한번씩 돈을 줘야하는 대상부터 6개월, 1년에 한번씩 쥐어줘야 하는 대상들로 분류되고, 한번에 주는 돈도 지위마다 다 다르다. 뇌물공여에 죄책감이 없기 때문에 서로간 자기가 받은 뇌물을 공개하는 것도 예사여서 세심하게 조절해줘야 한다. 이것은 인도네시아의 관행이어서, 주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러하다보니 나라 전체가 썩어들어간다. 수돗물의 수질은 최악이고, 도로는 10년째 전혀 확충되지 않았다. 평소라면 10분 거리가 차가 막히면 2시간이 보통이다. 도무지 대책이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도로는 비만 내리면 잠긴다. 주거환경은 끔찍하고 빈부격차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교육은 말할 것도 없으며 사회 복지는 없다. 그냥, 간단하게, 없다. 모든 재원은 그 뇌물로 다 들어가는 것이다. 회사는 설립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생필품은 해외에서 수입된다.   

   
 

생필품의 블랙홀이라는 거지. 생각해봐. 그곳에선 하루 다섯 번 시간 맞춰 기도를 하러 가야 하는데, 제조업이란 가능하지가 않아. 
유선전화 시대를 건너뛰고 사막 한가운데서도 휴대폰이 터져. 

정미경, <아프리카의 별>, 문학동네, 2010, p.187

 
   

  

이 상황은 인도네시아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생필품의 블랙홀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 나라는 얼마전 지진이 일어났던 칠레였다. 남미의 칠레에 지진이 일어나고, 곧이어 사회는 통제불능에 빠졌다. 세계 각국과의 FTA를 통해 거의 대부분의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했던 칠레는 지진으로 항만과 공항이 마비되고 도로 운송이 중지되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슈퍼마켓이 약탈당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각 나라의 내수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그걸 보며 생각했다. 대기업의 횡포에도 꿋꿋히 살아남아 제품을 만들어내는 쿠쿠가 참 고맙고, 해피콜도 고맙고, 온갖 잡다구리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 각종 중소기업들이 다아 고마웠다.

돈을 기반으로 한 인맥 정치는 나라를 이렇게 완벽하게 망쳐놓는다. 정부가 개판이 되면 국민의 생활이 얼마나 고달파지는지는 살아봐야 실감이 난다. 삼성이 하고 있는 짓이 이것이다. 그리고 김용철이 걱정하는 것도 그것이다. 유전무죄를 실감한 사람들, 그놈의 우정이 아닌 돈을 뿌린 것으로 만들어 진 인맥의 힘을 우리는 두눈으로 확인했다. 그러고 나면 너도 나도 돈을 뿌려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뿌리고 싶어도 못뿌리는 사람들은 둘째치고, 뿌릴 수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여기저기 줄을 대서 돈을 뿌리게 될 것이고, 마침내는, 우편물 하나도 웃돈 없이는 받지 못하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군사정권의 그 각종 리베이트를 어떻게 뚫고 여기까지 온 우린데.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지다 못해, 깔깔깔깔 웃었다. 이건 뭐, 거짓말이 아니라는 건 아는데, 하도 말이 안되니까, 도무지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참, 우습기만 해서, 읽는 내내 깔깔 웃었다.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우스운 건, 이 나라, 인도네시아에서도 삼성 제품군은 그게 무엇이 되었건 모두 최고급으로 취급된다는 거. 특히 TV를 비롯한 가전 부문과 핸드폰은 삼성이 석권해 버렸다. 그 뒤를 바짝 추격하는 게 LG고. 에혀. 에혀. 에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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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 2010-07-3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s. 이 책은 충무공과 내가 둘 다 읽은 몇 안되는 책 중의 한권이다. 중무공의 반응은 대략 나와 비슷했다. 야~ 코메디다!!!

마녀고양이 2010-07-3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보다 더 믿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지요... ㅠㅠ
예전에 소설은 소설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현실로 일어날 법한 일이다 라고 생각을 바꿨답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그져.

아시마 2010-08-07 14:06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예요. 근데 이건 너무 유치해서, 상상을 할수도 없는 일들이었다는 게 그저 기가막힐 뿐이죠.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인간이란 존재가 너무 고차원적인 존재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는.

삼성 전자 들어갔다고 모가지(여기서는 꼭 목이 아닌 모가지, 라고 해 줘야 함.)에 힘주고 돌아다니던 친구놈이 생각났어요. 에혀.

blanca 2010-07-3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이 책이 제 남편이랑 같이 읽은 거의 유일한 책이었어요. 이건희가 거울을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대목. 자기들은 냉장 푸아그라 먹고 손님들은 냉동 준다는 대목 등. 진짜 소설도 이런 웃긴 소설이 없더라구요. 그게 현실이니 그리고 그런 기업이 우리 경제의 생명줄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다들 맹신하고 있으니 너무 슬프죠. 사실 저도 은연중 삼성은 대단하다,는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까요. 아시마님, 그래서 저는 삼성 제품 불매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서요 ㅋㅋㅋ 되도록이면 사지 않으려고 해요. 비겁한 타협 정도겠지만요.

생필품. 안그래도 남미에 있는 친구가 공산품 구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서 토로하더라구요. 치약, 생리대 이런 것들 가격이 엄청나다면서요. 부패가 용인되는 사회는 성장도 결국 정체하게 된다는 걸 다들 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아시마 2010-08-07 14:16   좋아요 0 | URL
생필품이요. 여기 식모들이 가장 많이 훔쳐(?)가는 품목중에 하나가, 뇨냐(마님 정도의 의미예요. 기혼 여성에 대한 존칭이라는데, 보통 일본이나 한국인 유부녀들에게 통칭으로 사용되는 단어.)들이 한국에서 공수해 온 생리대라죠. 현지인들이 쓰는 것과 비교가 안되는 품질이라고 그러더라구요.
더 웃긴건, 이 나라는 펄프 생산국가라는 거. -_-
기저귀도 비슷해요. 우리 작은 놈 아직 기저귀를 안떼서 여기서 사서 쓰는데 하기스가 하기스가 아니예요. 현지 생산 하기스는 오줌 한번 싸면 완전 뭉쳐서, 이건... 뭐. -_-;;; 한국선 하기스 쓰다가 여기와서는 군 쓰는데요, 제가 쓰는 군 기저귀는 일본 생산품을 수입해다 파는 거라... ㅎㅎㅎ 한국서 쓰는 가격과 거의 맞먹거나 더 비싸요. 근데 도무지, 현지생산품을 쓸수가 없어요.

그러니 악순환인거죠. 현지 생산 공장이 있기는 한데, 품질이 떨어지니 판매가 되지 않고, 이익이 떨어지니 품질 향상에 돈을 쓸 수도 없고... 뭐 그런 일들의 악순환.

저 대학 1학년때, 삼성이 대대적으로 이미지 재고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나요. 막 대학가를 돌면서 설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죠. 몇몇 대기업 이름이 나열되고, 이미지가 가장 좋은 기업은 어디입니까, 운운운. 그때 저도 온통 삼성을 나열했었더랬죠. 같이 했던 동기들도 대부분. 흠. 그러고 보니 그시기는 삼성 이미지 재창조의 거의 마지막 시점이기도 했던 모양이네요. 그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했던 걸 보면. 대국민 사기극이 따로 없죠. 에혀.

2010-08-26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