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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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와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작품이 있다. 대부분은 그 작가의 데뷔작이나 문학상 수상작이 한 독자에게 새로운 작가를 만나게 해 주는 작품이 된다.  

나와 한강을 만나게 해 준 건 <그대의 차가운 손>이라는 장편이었고, 김영하와 나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과격한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김연수와 나는 <여행할 권리>가 첫 만남이었으며 신경숙과 나는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였다. 그 작품 이전에도 신경숙의 작품은 몇개 읽고 있었지만,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기점으로 나는 신경숙을 콜렉션하기 시작했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읽을 때, 나는 종로구 평창동에 살고 있었고, 그 작품을 쓸 무렵 작가 신경숙은 종로구 구기동에 살고 있었다. 이 소설을 읽은 직후 나는 미란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달렸던 세검정 삼거리를 출발하여, 자하문을 지나 광화문을 지나 세종문화회관을 마주 보게 되는 그 길까지 걸어가 세종문화회관 벽면의 비천상을 사진으로 찍어온 일이 있었다. 그리고, 작가 신경숙이 아마, 나와 같은 경로로 그 길을 여러번 걸었으리라 짐작했다. (신경숙은 구기동에서 10여년을 살다 평창동으로 이사했다.) 

   
 

"밤에 잠이 안 올 때면 소설책을 읽곤 하지. 그러다가 파트릭 모디아노며 무라카미 하루키 등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의 소설을 읽으면 말이지, 파리나 도쿄가 가고 싶어져. 그들은 진짜로 파리나 도쿄를 사랑하는 것 같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걸어다니는 거리를 나도 걷고 싶어질 만큼 그렇게 애틋하게 쓰거든."
"우리나라 작가들은 어떤데요?"
"글쎄...... 우리나라 작가들은 서울을 그닥 좋아하는 것 같지 않더군...... 떠나야 할 곳, 사람이 정붙이고 살기에는 좀 살벌한 공간으로 묘사되는 것 같아."
"그럼 할 수 없네. 작가가 되어서 직접 써봐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서울을 사랑하게 되도록." 

신경숙,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문학과 지성사, 1999, p. 65 

 
   

작가 신경숙은 아마도 본인이 직접 쓰기로 결정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러한 결심은 아마도 그녀가 서울예전을 다닐때에 이미 했던 결심같다.  

   
  일 년 만에 이 도시로 다시 돌아오면서 나는 이 도시를 알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 이 도시 구석구석을 내 발로 걸어다녀야겠다고.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문학동네, 2010, p.48 
 
   

신경숙의 그러한 시도는 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서 시작되어 바이올렛(문학동네, 2001)에서 절정을 이루다가 사실 2008년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부암동과 쌍문동을 묘사해 내며 적절한 균형감각을 찾으며 안정기에 접어든다. 물론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서울의 묘사는 다음 로드뷰 못지않게 정확했지만 《바이올렛》에서의 서울 도시 묘사가 실험소설이라해도 좋을만큼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바짝 다가가 있었다면(그래서 묘사와 서사가 따로 노는 경향이 약간은 있었다) 엄마를 부탁해에서부터는 좀더 소설적인 애틋함, 신경숙이 바랐던 그것을 성취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나는 신경숙을 통해 내가 늘 알던 그 길을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고, 원래도 사랑하던 곳이었지만 더 많이 더 애틋하게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서울이라는 도시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었다. 자, 어때 말해봐, 광화문과, 세종 문화회관과 시청과 프라자 호텔 앞에서의 너의 스무살은 어땠니. 라고.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를 만들어 먹는 모임이 있고, 그 요리 레시피 북까지 나왔다는데, 신경숙의 소설에 등장하는 서울거리 걸어보기, 그런 모임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새로운 소설독법이 되지 않을까. 김훈과 남한산성 가보기 이런 것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이제는 잊혀지는 그곳들을 윤이와 미루와 명서의 궤적을 따라 때로는 낙수장의 안내를 받아.  

박완서의 《도시의 흉년》이나 《엄마의 말뚝》에서 "처녑같이 구불구불하고 구질구질한 달동네"를 묘사해 내는 것은 그것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그 일반화 될 수 있는 묘사력에서 박완서가 일종의 일가를 이루었다면 신경숙은 박완서와는 다른 의미로, 개별화 된 묘사력에서 일정 수준의 성취를 이루었다. 나는 그 점을 높이 산다.  

파트릭 모디아노가 묘사하는 파리의 뒷골목과 하루키가 묘사하는 도쿄의 거리, 그리고 신경숙이 묘사하는 서울, 강북의 구 도심 오래된 거리들. 신경숙이 있어서, 서울에겐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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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7-25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평창동...부암동....아, 이런 동네 너무 좋아요. 저는 강북에 이사와서 침만 흘리고 있어요. 언젠가는...이라면서.

참, 책이 왔군요!!! 안그래도 여기 많이 등장하는 지명들, 걷기.. 저도 꼭 한 번 이런 길을 이렇게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길치라 길에 대한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서 길에 대한 얘기를 읽으면 참 부러워요.

파트릭 모디아노 어때요? 궁금한 작가인데 아직 못 접해봐서요.

먼 곳에서 리뷰 읽으며 아시마님 근황을 아니 참 좋아요....

아시마 2010-07-26 00:59   좋아요 0 | URL
평창동 부암동 구기동 성북동 북악스카이웨이 꼭 가보셔야 해요! 얼마나 좋은데요. 강북 어디로 이사오셨어요?(아, 오셨어요, 라니. ㅠ.ㅠ)
특히 봄날 벚꽃필때, 여기는 산중이라 윤중로보다 며칠 늦게 피거든요, 그때 화창한 오후시간에 북악스카이웨이 드라이브하면, 이길 따라 무릉도원이 저만치 있겠구나 싶을때가 있죠. 봄이내 아롱아롱 피어오른 꼬불탕한 길 따라 오르면.

에혀. 나 결혼 왜 했을까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파트릭 모디아노, 저는 흠. 아주 좋지는 않았어요. 어쩌면 블랑카님하고는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요.

지금 정미경을 읽을까 박범신을 읽을까 겨누는 중이예요. ㅎㅎㅎ

2010-07-25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5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6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절로 2010-07-26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문 김연수씨와 신경숙씨는 제게는 뭐랄까, '우물'같아서(제가 곧잘 빠져 헤어나오질 못해요) 접근경보를 내려놓았지요.

그런데, 어,나,벨이 자꾸 춘향이 그네타듯 왔다리갔다리하네요.
아시마님까지 이러하니..빠지더라도 함 봐봐요?

마녀고양이 2010-07-26 15:50   좋아요 0 | URL
헉, 에파타 님이 첨이예요.
나랑 똑같은 접근 경계 경보를 내린 분은..... 아아, 절대공감.

난 이상하게 신경숙 님 힘들어요. 문체도 힘들구,,
김연수 님은 더 힘들어요. 질식할거 같아서.

아시마 2010-07-27 00:20   좋아요 0 | URL
흠... 엄마를 부탁해 만은 못해요. 그래도 신경숙이니 평균은 했는데요. 거의 다시쓰다시피 했다고 하는데도 연재소설 특유의 단점이 여전히 남아있어요. 이야기가 좀 산만하게 흐르는 거죠. 주인공 윤의 시점으로 전체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중간에 명서의 일기장 같은 노트를 끼워넣는 방식으로 다른 관점, 또는 윤이 알지 못했던 일들에 관한 설명을 시도하는데... 이게 약간. 좀. 막 산만하다 따로논다 이건 아닌데요, 한번쯤 더 개작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기대가 남죠.

이런 형태가 매력적이기는 한데요, 아주 잘 쓰지 않으면 뭔가 좀. 싶어져요.

마녀고양이 2010-07-27 11:42   좋아요 0 | URL
잘 쓰는 것에 대한 문제보다는,,,
찐득함이랄까.... 읽고 나면 떨쳐지지 않는 어떤 것.
안 그래도 맘이 심란한데, 더 심란한 그런 것.
저는 신경숙 님이 그래여.

김연수님은........ ㅠㅠ 진짜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