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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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꾸준히 변주되어 등장하는 이미지는 바로 살해당하는 신(또는 왕)이다. 모든 신은 궁극적으로 살해당함으로써 그 신성과 강함을 유지해나간다.  

   
  인간신은 그 능력이 쇠약해지는 징후가 보이는 즉시 살해되어야 하며, 그의 영혼은 사체의 부패로 심각한 손상을 입기 전에 원기 왕성한 후계자에게 이전되어야 한다.
(.......중략.........)
인간신을 살해함으로써 숭배자들은 인간신의 영혼이 빠져나갈 때 확실하게 붙잡아서 적당한 후계자에게 옮겨줄 수 있고, 인간신의 자연적인 힘이 줄어들기 전에 그를 죽임으로써 인간신의 쇠퇴와 더불어 세상이 쇠퇴하는 것을 확실히 막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처럼 인간신을 살해하면 그의 영혼이 아직 절정기에 있을 때 원기왕성한 후계자에게 이전할 수 있으므로 모든 목적이 충족되고 모든 위험이 비껴가는 것이다. 
프레이저, 《황금가지》, 한겨레신문사, 2003, 2권 2장 신성한 왕의 살해, p. 296-297 
 
   

은교를 읽는 내내 생각했던 것은 바로 그 부분이다. 시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갈망이 없는 사람이 시를 쓸 수 있는가, 사랑은 평범한 사람조차 시인으로 바꾸어놓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늙어 사랑의 힘을 잃어버린(것으로 짐작되는) 사람이 과연 시를 쓸 수 있을 것인가.  시의 왕이었던 이적요, 늙어버린 그는 여전히 시의 왕일 수 있는가. 그를 죽여 젊고 강대한 새로운 왕을 세워야 하는 것인가. 

이 책은 결국, 노인의 갈망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로 집약된다. 노인의 갈망을 인정할 것인가, 추한 것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  

70을 한해 앞둔 이적요는 젊은 서지우가 은교를 차지했다는 사실보다, 서지우가 자신의 갈망을 사랑을 사랑과 갈망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치매 수준의 노추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더욱 분노한다. 그에게는 아직 갈망을 느끼고 사랑을 느낄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부정당하고, 그것이 그를 살인으로 이끄는 것이다.  

   
 

"눈만 감으면 송장인데, 무슨 짓요? 미쳤어요? 자기 얼굴을 좀 보라구, 씨팔.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거울도 안봐?"
p. 207 

 
   

은교를 향한 그의 순정은 이렇게 철저하게 유린당한다.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갈망 그 자체가 죄가 된다는 사실을 그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결국 그가 분노한 것은 서지우에 대해서였을까 그의 늙음 그 자체에 대해서였을까. 

   
  은교를 만나면서 나는 보다 젊어지고 싶었다. 그게 죄인가. 그 애를 통해 아직도 생피처럼 더운 나의 욕망을 확인했을 뿐, 나는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나의 은닉된 욕망에게 형벌을 선고할 수 있는 자는 그러므로 나뿐이다. 나는 육십대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다른 누가 나의 뺨을 후려칠 권리는 없다. 서지우는 더욱 그렇다.
p. 281 
 
   

이 소설의 중심 등장인물은 셋이다. 이적요와 서지우와 한은교. 제목도 은교다. 그렇다 은교가 없다. 이 소설의 은교는 은교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은교여도 은주여도 혜교여도 상관이 없었다는 말이다. 은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사건과 감정의 객체일 뿐. 서지우 역시 일종의 피드백으로서만 존재한다. 이 소설은 온전히 이적요 혼자의 내면을 위해서 흘러가고, 그의 사랑을 온당화 시키는데 온 힘을 다한다. 누가 그랬던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그 자체가 자신이 정당하지 않음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은교를 물상화 시켜버리는, 은교의 감정에 대해서는 깡그리 무시해 버리고,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만 보려하는 이적요의 시선에서 나는 그의 한계를 본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었다. 그애가 싫다면서 한사코 밀어내는데도 불구하고, 그애의 사타구니를 벌리고, 뱀과 같이 혀를 낼름거리면서, 그 안에 머리를 밀어넣는 서지우까지도 보아야 했을 때, 내가 어떻게 "그애가 싫다면서 한사코 밀어내는 데도 불구하고"라고 쓰지 않고 그 장면을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그애가 '비명을 내지르며' 진저리를 쳤다. 그애는 '당연히' 끔찍하게 고통받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비명을 내지르며' 그애가 '끔찍하게 고통받고'있다고 분명히 보고 느꼈다.
p. 360 
 
   

그러므로 그의 갈망은 정당화 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강간범이 그 여자도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이건 화간이예요, 라고 주장하는 것과 진배없지 않은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을 때, 사랑은 폭력이 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실패다. 노인의 갈망을 갈망으로서 설명하는데 실패했다. 결국은 다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돌아서고 마는 것이다. 노인 그 스스로에 의해. 그러므로 노인은 살해당해 마땅한 것이다, 로까지.  

박범신은 풍만한 언어를 가졌다. 박완서와 같은 풍요로운 언어가 아니다. 내게있어 박범신은 공지영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둘 다 풍만한 언어를 가졌고, 둘다 언어에 독특하고 빼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둘다 일정수준의 성취를 이루었다. 박범신과 공지영의 문학은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에 언제나 아슬하게 발을 걸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난 박범신의 소설과 공지영의 소설을 다 좋아하는데도 항상 읽고나면 뭔가 이건 아니야, 싶을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순간이다. 자신이 만들어 낸 인물을 인물로서 살아있게 하지 못하고, 속이 텅 빈 객체로 만들어 버린다.  

소설 전체에 등장하고, 심지어 제목까지 획득한 은교가 도무지 내면을 가진 한 인물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물론 그것을 노리고서 굳이 17세 아이를 등장시킨거라면 할 말은 없지만.  

도대체, 은교 열풍은 왜 불었을까. 알쏭달쏭.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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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7-28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는 들어본적 있고 아직 못본 책인데, 아시마님의 리뷰를 보니 주인공도 소설도 뭔가 묘~한 기분이 드네요.^^;
그런데 은교가 17세였단 말입니까; 나이차 많다는 건 알았는데 70세와 17세,여주가 너무 어린거 아닌가...

아시마 2010-07-28 18:09   좋아요 0 | URL
글쎄요. 남자들이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어요.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성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어떤 상대의 눈 속 번득임을 굉장히 불쾌하게 여기거든요. 제가 만약에 은교라면요, 69세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면, 성별이 거세된 그저 한 사람으로 봤을 것 같거든요. 당연히 상대도 나를 성별이 거세된 한 사람으로 볼 거라고 믿었을 거구요. 이건 늙음이라는 걸 노추로 인식한다는 것과는 달라요. 그냥 성에 있어서 편안해 지는 거죠.

그래서, 굉장히, 불쾌했어요. 정말로요. 사실 따지고보면 대놓고 원조교제를 하는 건 30대 후반의 서지우인데도, 오히려 성관계를 하는 서지우가 더 낫다 그럴 정도로요.

루체오페르 2010-07-28 19:59   좋아요 0 | URL
헛...서지우도 30대 후반, 그는 은교와 성관계까지 했군요.
사랑하는 사이인가 했더니 대놓고 원조교제라니 그것도 아닌것 같고...
음...은교라는 여주가 가장 궁금한 (문제)캐릭터네요. 대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길래 이런 모습일까.

아시마 2010-07-28 19:32   좋아요 0 | URL
이 소설의 문제점을 바로 짚으셨어요. 문제는 은교예요. 아무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_-;;;

다락방 2010-07-28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은교 열풍이 왜 불었는지 모르겠어요. 문장은 아름답고 책장도 빨리 넘어가지만 뭔가 찜찜함을 떨쳐낼 수가 없더라구요. 그것이 어쩌면 17세 은교에게, 아시마님이 지적하셨든 '도무지 내면을 가진 한 인물로 느껴지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읽고나서 그렇게 기분 좋은 소설은 아니었어요.

아시마 2010-07-28 18:01   좋아요 0 | URL
아직은 젊은 여자 사람으로서, 수긍할 수 없는 소설이예요. 말하자면 늙은 남자 사람의 로망을 완성시키고 있는 소설이랄까요. 은교는 늙은 남자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손녀 같고 어린 여자친구 같았으며 아주 가끔은 누나나 엄마 같은' 그런 여자로 묘사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적요가 혼자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건데, 상대가 되는 여자 사람의 감정은 깡그리 무시가 되는거죠. 관계라는게 상호간에 맺히는 건데요. 흠, 뭐랄까, 막판에 은교가 할아버지는 불쌍하고 서지우보다 더 젊고 운운 하는 것조차, 이적요의 바람일 뿐이라는 이야기죠.

황석영 <심청>에서 나오는, 매매춘여성에 대한 환상 같은 것도 여전히 등장해서 사람혀를 차게 만들죠. 매매춘여성에 대한 환상 말예요, 그러니까, "불쌍해, 남자들" 이라며 젖을 물려주는 그런 여자에 대한 환상, 실제로 그러는 여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매매춘을 하는 남자들이 그렇게 믿고 싶은 것 같아요. 사랑으로 몸을 주는 건 아닐테니 남자에 대한 범 인류적 동정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성을 주는 여성상을 만드는 거죠. 그렇게 믿어야 매매춘을하는 자신이 좀 덜 비참해질 것 같아 그러나. 그런 것들이 되게 불편해요, 저는.

blanca 2010-07-2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시마님...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은교라는 인물이 지나치게 실제적이지 못하다는 느낌. 어떤 갈망의 대상으로 인위적으로 설정된 느낌. 그래서 아쉬움이 남더라구요...

그러니까 계속 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 느낌이 어디서 왓는데 아시마님의 리뷰를 읽으며 깨닫고 갑니다.

그런데 아시마님! 오늘 지금 확인해 보니 박완서샘의 신간이 나왔어요, 소설은 아니지만 너무 기쁘네요!!

아시마 2010-07-29 22:28   좋아요 0 | URL
오늘 정미경 아프리카의 별 읽으면서 느꼈어요. 남성 작가와 여성작가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지만, 정미경은 2차 성징이 막 시작된 사춘기 여자애를 정말 살아있는 인물로 잘 그려내고 있거든요. 보라를 보면서 은교가 얼마나 텅비어있는 허상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는.

박완서 샘 신간! 저도 봤어요.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요. 박완서 샘은 산문도 소설만큼이나 좋아요. 블랑카님 나중에요,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문학동네에서 나온 박완서 샘의 단편전집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한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산문집들도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어보시구요. 그러면, 박완서도 자라고 있구나 라고 느껴지실 거예요. 사람이 제대로 나이 먹는다는 게 이런거구나 싶기도 하고, 생각이 폭과 깊이가 달라지는 게 확확 보여요. 물론 소설적 성취도도 점점 높아지구요. 박완서 샘도 처음부터 달인 박완서는 아니었더라구요... ^^ 물론 아무리 그래도 기본은 하지만요.

이제... 장편을 기대하긴 힘들겠죠? 예전에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추천사에서 그런 말씀 하셨더라구요. 쓰고 싶었는데 힘이 딸리는 것 같아 포기했던 소재인데 써 줘서 고맙다고요.

짧은 꽁트도 참 좋은데 말이죠, 동화도 좋고. 아. 정말... 요절했건 천수를 누렸건 간에, 예술가들의 그 많은 재주는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2010-07-29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9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30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30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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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와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작품이 있다. 대부분은 그 작가의 데뷔작이나 문학상 수상작이 한 독자에게 새로운 작가를 만나게 해 주는 작품이 된다.  

나와 한강을 만나게 해 준 건 <그대의 차가운 손>이라는 장편이었고, 김영하와 나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과격한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김연수와 나는 <여행할 권리>가 첫 만남이었으며 신경숙과 나는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였다. 그 작품 이전에도 신경숙의 작품은 몇개 읽고 있었지만,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기점으로 나는 신경숙을 콜렉션하기 시작했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읽을 때, 나는 종로구 평창동에 살고 있었고, 그 작품을 쓸 무렵 작가 신경숙은 종로구 구기동에 살고 있었다. 이 소설을 읽은 직후 나는 미란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달렸던 세검정 삼거리를 출발하여, 자하문을 지나 광화문을 지나 세종문화회관을 마주 보게 되는 그 길까지 걸어가 세종문화회관 벽면의 비천상을 사진으로 찍어온 일이 있었다. 그리고, 작가 신경숙이 아마, 나와 같은 경로로 그 길을 여러번 걸었으리라 짐작했다. (신경숙은 구기동에서 10여년을 살다 평창동으로 이사했다.) 

   
 

"밤에 잠이 안 올 때면 소설책을 읽곤 하지. 그러다가 파트릭 모디아노며 무라카미 하루키 등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의 소설을 읽으면 말이지, 파리나 도쿄가 가고 싶어져. 그들은 진짜로 파리나 도쿄를 사랑하는 것 같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걸어다니는 거리를 나도 걷고 싶어질 만큼 그렇게 애틋하게 쓰거든."
"우리나라 작가들은 어떤데요?"
"글쎄...... 우리나라 작가들은 서울을 그닥 좋아하는 것 같지 않더군...... 떠나야 할 곳, 사람이 정붙이고 살기에는 좀 살벌한 공간으로 묘사되는 것 같아."
"그럼 할 수 없네. 작가가 되어서 직접 써봐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서울을 사랑하게 되도록." 

신경숙,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문학과 지성사, 1999, p. 65 

 
   

작가 신경숙은 아마도 본인이 직접 쓰기로 결정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러한 결심은 아마도 그녀가 서울예전을 다닐때에 이미 했던 결심같다.  

   
  일 년 만에 이 도시로 다시 돌아오면서 나는 이 도시를 알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 이 도시 구석구석을 내 발로 걸어다녀야겠다고.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문학동네, 2010, p.48 
 
   

신경숙의 그러한 시도는 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서 시작되어 바이올렛(문학동네, 2001)에서 절정을 이루다가 사실 2008년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부암동과 쌍문동을 묘사해 내며 적절한 균형감각을 찾으며 안정기에 접어든다. 물론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서울의 묘사는 다음 로드뷰 못지않게 정확했지만 《바이올렛》에서의 서울 도시 묘사가 실험소설이라해도 좋을만큼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바짝 다가가 있었다면(그래서 묘사와 서사가 따로 노는 경향이 약간은 있었다) 엄마를 부탁해에서부터는 좀더 소설적인 애틋함, 신경숙이 바랐던 그것을 성취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나는 신경숙을 통해 내가 늘 알던 그 길을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고, 원래도 사랑하던 곳이었지만 더 많이 더 애틋하게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서울이라는 도시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었다. 자, 어때 말해봐, 광화문과, 세종 문화회관과 시청과 프라자 호텔 앞에서의 너의 스무살은 어땠니. 라고.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를 만들어 먹는 모임이 있고, 그 요리 레시피 북까지 나왔다는데, 신경숙의 소설에 등장하는 서울거리 걸어보기, 그런 모임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새로운 소설독법이 되지 않을까. 김훈과 남한산성 가보기 이런 것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이제는 잊혀지는 그곳들을 윤이와 미루와 명서의 궤적을 따라 때로는 낙수장의 안내를 받아.  

박완서의 《도시의 흉년》이나 《엄마의 말뚝》에서 "처녑같이 구불구불하고 구질구질한 달동네"를 묘사해 내는 것은 그것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그 일반화 될 수 있는 묘사력에서 박완서가 일종의 일가를 이루었다면 신경숙은 박완서와는 다른 의미로, 개별화 된 묘사력에서 일정 수준의 성취를 이루었다. 나는 그 점을 높이 산다.  

파트릭 모디아노가 묘사하는 파리의 뒷골목과 하루키가 묘사하는 도쿄의 거리, 그리고 신경숙이 묘사하는 서울, 강북의 구 도심 오래된 거리들. 신경숙이 있어서, 서울에겐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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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7-25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평창동...부암동....아, 이런 동네 너무 좋아요. 저는 강북에 이사와서 침만 흘리고 있어요. 언젠가는...이라면서.

참, 책이 왔군요!!! 안그래도 여기 많이 등장하는 지명들, 걷기.. 저도 꼭 한 번 이런 길을 이렇게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길치라 길에 대한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서 길에 대한 얘기를 읽으면 참 부러워요.

파트릭 모디아노 어때요? 궁금한 작가인데 아직 못 접해봐서요.

먼 곳에서 리뷰 읽으며 아시마님 근황을 아니 참 좋아요....

아시마 2010-07-26 00:59   좋아요 0 | URL
평창동 부암동 구기동 성북동 북악스카이웨이 꼭 가보셔야 해요! 얼마나 좋은데요. 강북 어디로 이사오셨어요?(아, 오셨어요, 라니. ㅠ.ㅠ)
특히 봄날 벚꽃필때, 여기는 산중이라 윤중로보다 며칠 늦게 피거든요, 그때 화창한 오후시간에 북악스카이웨이 드라이브하면, 이길 따라 무릉도원이 저만치 있겠구나 싶을때가 있죠. 봄이내 아롱아롱 피어오른 꼬불탕한 길 따라 오르면.

에혀. 나 결혼 왜 했을까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파트릭 모디아노, 저는 흠. 아주 좋지는 않았어요. 어쩌면 블랑카님하고는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요.

지금 정미경을 읽을까 박범신을 읽을까 겨누는 중이예요. ㅎㅎㅎ

2010-07-25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5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6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절로 2010-07-26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문 김연수씨와 신경숙씨는 제게는 뭐랄까, '우물'같아서(제가 곧잘 빠져 헤어나오질 못해요) 접근경보를 내려놓았지요.

그런데, 어,나,벨이 자꾸 춘향이 그네타듯 왔다리갔다리하네요.
아시마님까지 이러하니..빠지더라도 함 봐봐요?

마녀고양이 2010-07-26 15:50   좋아요 0 | URL
헉, 에파타 님이 첨이예요.
나랑 똑같은 접근 경계 경보를 내린 분은..... 아아, 절대공감.

난 이상하게 신경숙 님 힘들어요. 문체도 힘들구,,
김연수 님은 더 힘들어요. 질식할거 같아서.

아시마 2010-07-27 00:20   좋아요 0 | URL
흠... 엄마를 부탁해 만은 못해요. 그래도 신경숙이니 평균은 했는데요. 거의 다시쓰다시피 했다고 하는데도 연재소설 특유의 단점이 여전히 남아있어요. 이야기가 좀 산만하게 흐르는 거죠. 주인공 윤의 시점으로 전체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중간에 명서의 일기장 같은 노트를 끼워넣는 방식으로 다른 관점, 또는 윤이 알지 못했던 일들에 관한 설명을 시도하는데... 이게 약간. 좀. 막 산만하다 따로논다 이건 아닌데요, 한번쯤 더 개작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기대가 남죠.

이런 형태가 매력적이기는 한데요, 아주 잘 쓰지 않으면 뭔가 좀. 싶어져요.

마녀고양이 2010-07-27 11:42   좋아요 0 | URL
잘 쓰는 것에 대한 문제보다는,,,
찐득함이랄까.... 읽고 나면 떨쳐지지 않는 어떤 것.
안 그래도 맘이 심란한데, 더 심란한 그런 것.
저는 신경숙 님이 그래여.

김연수님은........ ㅠㅠ 진짜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예요.
 
유령의 일기 - 황경신 장편소설
황경신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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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신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가 않더군요. 그럼 이렇게 물어보아야 겠습니다. 페이퍼(paper)라는 잡지를 아십니까? 그 잡지의 편집장이 황경신입니다. 황경신은 이미 10권이 넘는 책을 출간한 중견급 작가이고,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대신 매니아층이 약간 있지요.  

굉장히 화려하고 수식적인 문장을 쓰는 작가입니다. 은유와 직유에 능하고, 참신한 표현을 해 낼줄도 알구요, 사랑이 갓 시작될 때의 그 간질간질한 감정을 표현해 내는 데 아주 능숙한 작가이기도 하지요. 연애소설에 정말 정석 그대로 어울리는 작가입니다. 그녀의 소설 <모두에게 해피엔딩>은 정말 제대로 된 연애소설로는 몇손가락 안에 꼽아도 괜찮을 겁니다. 소설 그 자체로는 모르겠지만, 연애할 때의 그 간질간질하고 동글동글한 심리와 예리하고 팽팽한 감정선을 잘 잡아내는 재주가 있지요.

일본에 요시모토 바나나가 있다면 한국에는 황경신이 있지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뜬구름잡는 이야기 그대로 천연덕 스럽게 잘 하는 게 특징입니다.  

이 책, 유령의 일기는 그 연장선에서 생각하면 됩니다. 이 책에도, 바나나가 자주 써먹는 유령이 나옵니다. 이 책의 "유령"은 보통 뇌사 상태의 사람들의 영혼입니다. 아직 죽음으로 넘어가지는 않았고, 그렇지만 육체에 깃들이지는 못한 혼을 유령이라고 지칭하는 군요. 큰 틀은 주인공 유령 소이의 사고와 그 이후의 이야기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자잘자잘한 옴니버스 형식으로 개별 유령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짚어줍니다. 이야기를 서사의 틀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에피소드의 나열로 겨우겨우 이어나갑니다. 우연의 남발이라는, 바나나와 황경신 공통의 문제점도 역시나 가지고 있구요. 서사가 강한 소설을 쓰는데는 여엉, 재주가 없어요. 하지만 장면 장면을 묘사하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죠.

저는 뭐, 나름 황경신의 매니아층에 들어간다고 해도 좋을만한 터라 황경신의 다른 책을 샀듯 이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만, 사실 이 책에서는 황경신 특유의 매력이 좀 떨어지는 편입니다. 이 사람은 정말 복문의 복문의 복문을 만드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수사적 문장이 가장 큰 매력인데요, 이 책에서는 그런 면이 좀 떨어집니다. 문장이 전체적으로 많이 평범해 졌어요. 98년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책에서 보이는 그 놀랍도록 화려하고도 참신하면서 독창적이던 동화적 상상력이 많이 죽었어요. 

이쯤되면, 문학도 나이를 먹는가, 라고 한탄하던 1920년대 염상섭의 신문칼럼이 떠오르죠. 65년생이니 올해 벌써 마흔다섯인가요?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상상력의 글을 쓸 힘이 떨어진 건가 느껴지는 순간이예요. 작년 재작년, 황경신은 숨가프게 몇권의 책을 출간했는데요, 힘이 좀 딸린다 싶네요. 역시나.  

뭐, 여전히 황경신을 좋아하고, 새로운 책이 나오면 또 살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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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7-26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헙,,, 순전히 아시마 님의 리뷰에 홀랑 넘어가 황경신님 책에 도전 결심합니다. 진짜 읽고 싶어져버렸어요.. 아시마님, 책임지세여! 흐흐~

아시마 2010-07-27 17:23   좋아요 0 | URL
오, 혹시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분위기 좋아하시는 거예요? 한때 바나나(와 가오리)에 홀릭하셨다니 아마 황경신도 좋아하실수 있겠지만, 이 책은 별로예요, 진짜로. 이 책으로 황경신을 시작하신다면 실망 많이 하실텐데요.

몽환적, 동화적이라는 특성상 어릴때 썼던 글들이 훨씬 간질간질한데,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랑 <모두에게 해피엔딩>은 절판이네요.

<초콜렛 우체국>이나 최근에 쓴 프로방스 여행기는 괜찮았어요. 최근 소설 중에 고르라면 <17세>요. 이게 이 책보단 훨 나아요. 17세가 훨 나은데 리뷰는 왜 이 책을 썼냐면, 음, 17세를 읽을때는 미친듯이 몰아서 읽을 때라(뭐 지금이라고 안그러냐... 마는) 리뷰 쓰는 게 귀찮았거든요.

황경신 읽어보고 괜찮으면 그 다음으로 연결되어 넘어가야 할 작가가 이충걸 이예요. 이 친구도 "PAPER 類" 라고 할 수 있는 글을 쓰거든요. 실제로 페이퍼 출신 작가이기도 하구요. 이충걸 작품으로 괜찮은건 <슬픔의 냄새>예요. 어느해였던가 무려 동인상 후보까지 올랐던.

근데 진짜 주의하셔야 해요. 좋아하면 환장하고 빠져들수 있는 게 이쪽 무리(-_-;;;)들인데 안맞으면 정말...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느끼하고 유치해서 토할 것 같다더군요. 쩝...
 
홍합
한창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다락방님 서재에서 한창훈의 <밤눈>에 관한 페이퍼를 봤다. 한창훈은 26회 이상문학상 후보작이었나 <눈보라콘>밖에 읽어본 게 없어서, 급 궁금해졌다. 책장을 뒤져 홍합을 꺼냈다.  

난 한겨레 문학상 수상 작가들과 그 작품을 좋아한다. 심윤경이며 박민규며. 이 책도 그 맥락에서 산 책이었다. 제 3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  

여수 근처의 홍합 처리 공장을 배경으로 각각의 인물 에피소드를 옴니버스처럼 엮어나가는 이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중심 인물인 여인네들의 건강함이다. 서울서 대학을 다니고, 운동권 생활을 하다 고향인 여수로 낙향해 온 문기사(이름도 안나온다. 그냥 기사일을 하는 문씨), 늘 떠날 생각을 하지만 마지막에 결국 그는 이곳에서 다시한번 살아보기로 한다. 그를 이곳에 붙잡는 것도 이곳 여인의 흐드러진 건강함이다.  

이 소설에서는 상냥하고 잘 배우고 교양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안나온다. 남편에게 수시로 맞아 눈이 시퍼렇게 되어 공장에 나오는 여자들, 마누라를 돈벌이 시켜놓고 자기는 팽팽 놀며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내는 남자들, 며느리가 들어오자 살림에서 손을 놔 버리고 놀러만 다니는 시어머니. 남편이 갑자기 급살을 해 버려 남편도 없는 시집에서 애 둘을 데리고 살고 있는 여자와 극심한 노동으로 잇몸이 다 헐어버린 여자. 들춰보면 들춰볼수록 한숨만 나오는 사연인데도 이 소설은 그다지 슬프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유쾌하다. 

맞아서 눈 주위가 퍼렇게 되어버린 여인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도 이야기는 여전히 웃기고, 일당보다 더 많은 돈을 선생에게 촌지로 찔러주고 와야했던 여인의 이야기에서도 이야기는 여전히 웃기다. 일종의 페이소스이기는 하지만. 음담패설조차 야하지 않고 건강하게 바꿔버리는 그 흐드러진 중년 여인들의 건강함은 그대로 웃음을 자아내기에 족하다. 홍합공장에서 일하는 여인 8명의 사연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춰가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 중 <다섯 색깔 동그라미> 챕터의 이야기는 배를 잡게 한다. 한 마을에서 오입질을 시도하는 한 여자, 그녀의 오입질은 단순하기 그지 없다. 길가던 동네 남자를 길에서 만나 뜬금없이, "저녁에 뒷산에서 좀 봅시다." 해 놓고는 남자가 진짜 뒷산으로 오면 거기서 그냥 옷을 벗고 뒹굴어 버리는 이야기. 그녀가 남편에게 외도를 들키는 과정은 어이없어서 웃음이 난다. 다른 남자와 몸을 섞은 날 그녀는 달력에다 동그라미로 표시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한달에 한두개였던 동그라미가 두세달이 지나자 컬러 싸인펜으로 여러가지 색깔이 등장해 날마다 동그라미의 색이 달라지는 것이다. 즉, 만나는 남자마다 색깔을 정해두고 동그라미를 한 것. 결국 그녀의 오입질은 들키고, 그녀의 남편 보다는 시동생들이 더 난리를 친다. 여기서 더 압권인 것은, 이 일이 덮여가는 과정이다.  

   
 

찾아온 동생들은 다시 내보내라고 성화였다. 사흘을 줄담배질로 보내던 금이 아빠는 드디어 결론을 내었다.
"느그 형수 내보내믄 느그들이 나 새 장가 보내줄래?"
그 소리에 동생들은 고개를 내두르며 채 식지 않은 구두를 다시 꿰신고 총총 돌아갔다.
동생들이 찾아오기 전에 금이 아빠가 금이네와 마주 앉아 결정을 본 바가 있어서 그랬다.
"왜 그랬능가. 왜 서방 놨두고 그랬어?"
"......"
"서방질을 할라믄 멀리 가서 하등가. 누구 하나 하고만 하등가."
"..."
"동생들이 자네 내보내라고 자꾸 하는 거 자네도 들었제? 워쩔랑가. 좀 있다가 또 온다네."
"......"
"속 터져 미치겄네. 아, 뭣이라고 말 좀 해봐."
"인자 안 할라요."
(p.118) 

 
   

완전 압권이지 않은가? 새 장가 못갈까봐 온 동네남자들과 오입질을 한 마누라를 그냥 내버려 두는 남편이나, 사과 한마디 없이 "인자 안 할라요." 이 한마디로 상황을 종결시켜 버리는 사건 당사자나.  

그런데 한창훈의 힘이 여기에 있다. 이렇게 말을 하고보면 말도 안될것 같은 이런 상황이 한창훈의 소설을 읽다보면 지금도 어디선가 누구는 이러고 있을 것만같은 능청스러움이 있다.  

이 사건의 주범인 금이네는 나중엔 한술 더 뜬다. 자신과 오입질을 한 남편을 둔 여인네들을 향해 일갈하는 것이다.  

   
 

"그래 나 했다 어쩔래. 서방이나 아니나 좆도 아닌 것들하고 사는 것들이. 야, 아싸리 말해서 쓸 만한 놈 하나도 읎드라."
(p. 126) 

 
   

이 구절 읽고 데굴데굴 굴렀다. 이쯤되면 약간 모자란 여인네인가 싶기도 했다.  

알라딘에서 이 책을 농어촌 소설로 분류하는 모양이더라. 난 이런 소설이 참 좋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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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7-22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한창훈은 [밤눈] 들어있는 단편집만 읽어봐서(근데요 아시마님, 그 단편집에서는 [올 라인 네코]도 짱이에요!) [홍합] 읽어봐야겠다 싶었는데 타이밍도 적절하지, 리뷰를 적어주셨네요! 읽어볼래요. 저도 지금 이 리뷰 읽다 뿜었어요.

인자 안 할라요.

(근데 지금 책 살라고 가보니 품절이에요. ㅜㅡ 땡스투도 눌렀는데..)

아시마 2010-07-22 16:49   좋아요 0 | URL
98년 수상작이고, 2008년에 다시 한번 찍어내긴 한 모양인데, 품절이더라구요. 그래도 문학상 수상작은 그럭저럭 팔리는 편이라는데, 흠.

뽐뿌질은 금물이예요. 저 [밤눈]들어있는 단편집 읽고 싶어서 얼마나 환장했는데요. ㅠ.ㅠ

오늘 정미경이랑 신경숙, 박범신책들이 와요. 4권 오는데 배송료만 6만원이래요. 책값은 5만원이었다는데. 우씨. 여튼 와요, 와요, 와요. 정미경과 신경숙과 박범신이라구요!

2010-07-22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3 0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3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절로 2010-07-22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 진짜 내가 몬살아 아시마님땜시.
'난 이런 소설이 참 좋다'라니..하하하..(웃음이 안멈춰)
님이 더 능청시러븐거 알죠?

아시마 2010-07-22 16:44   좋아요 0 | URL
옴마나, 제가 뭘 어쨌다고 이러십니까요오오오오?

지는 그냥 이런 농촌 소설이 좋다는 말쌈이랑께라. 한창훈이만 좋은것이 아니고요, 이문구도 좋아하고 요새는 그 김종광이도 좋아라 허요.

진짜랑께라. 에파타님이 예전에 접신 박완서라고 하셨잖으요? 이문구 그 냥반도 접신의 반열에 올려줘도 갠찬혀요. 을마전에 김종광이 모내기 블루스 읽었는디 것도 솔찬히 괜찮았소. ㅎㅎㅎㅎㅎㅎㅎㅎ

아나, 진짜!!!

Ps. 이 책에 보면 말예요, 경상도 출신 중령댁이랑 여수 토박이 아줌마가 말싸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경상도 사투리도 그대로 전라도 사투리도 그대로 어찌나 맛깔지게 싸우는지... 쓰면서 안헷갈렸을라나. ㅎㅎㅎ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 그해,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 개정판
한강 지음 / 열림원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차에 두고 간단히 읽을 책을 고르다 이 책이 손에 잡혔다. 한강이고, 읽은지도 한참 되었고, 읽었을 때 좋았었다는 기억도 있고... 무엇보다, 나에게 한강이라는 작가를 소개해 준 지인이 2003년 (이 책의 초판이 처음 발간된 해다.)에 읽은 책들 중 가장 좋았던 책으로 꼽았던 책이지만 막상 나는 좋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의아함을 느꼈던 것을 아직도 찜찜하게 기억하고 있던 책이기도 했다.  

판형은 작은데 활자가 크고, 짤막짤막한 에세이라 차 안에서 잠깐잠깐 읽기 좋겠다고 들고 내려가 차 안에서 다시 펼쳐든 이 책을, 나는 차에서 내릴때 도로 손에 들고 나와 끝까지 읽어버렸다.  

헉... 나는 도대체, 2003년 11월 1일(이 책을 처음 읽은 날, 책 면지에 기입해 뒀다.)에 뭘 읽은거지? 그래, 내용과 그 사람들은 그대로 선연하게 기억이 나지만, 알고 있던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와 닿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이 책의 서문에서 한강은 말한다.  

   
 

한동안 망설였다. 4년여의 시간이 흘러, 아무래도 이 글들을 나의 것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고쳐 쓸 수도 없었다. 생각과 감정의 틀 자체가 변해, 아예 차음부터 다시 쓰거나 쓰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렇게 여러 날의 여러 마음 끝에 결국 이렇게 책을 묶게 되었다. 최종 원고를 보내기 위해 오래 전의 나와 조우한 며칠동안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이런 나도 있었구나. 꽤 밝았구나. 마음이 가볍고 담담했구나. 단순하고 낙관적이었구나. 심오할 것도 무거울 것도 없이. 고통스럽게 파고들어간 자기 응시의 흔적 없이.
p. 4 

 
   

한강이 서문에서 밝힌 그 말은 오늘 이 책을 읽을때의 딱 나의 마음이기도 했다. 

생각과 감정의 틀 자체가 변해버렸다는 느낌, 이 책을 밝고 화사한 색채로 기억하고 있었던 나에 대한 어리둥절함. 뜻밖이다. 이 책의 저자인 한강조차,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쓸때의 자신을 "꽤 밝았"고 "마음이 가볍고 담담" 했다고 말하는데 막상 이 글을 읽는 나는 이 글들이 너무 아팠다.  

이 책이 무겁고 우울하지는 않다. 그건 아마 이 책이 한강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책이라기 보다는 이 책의 띠지에 적힌 말 그대로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일이 있었고, 내가 만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고.. 하는 것들을 자세한 묘사가 아닌 크로키 하듯 그려나간 글들. 글의 대상이 한강의 내면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연필을 잡고 있는 손은 한강의 것이다. 대상을 한강식으로 해석하고 그려낸다.  

한강의 눈으로 들어와 손을 통해 나온 인물들은 모두가, 엷은 슬픔이 묻어있다. 그리고 그 엷은 슬픔에도 그들은 강하려고 노력한다. 냉정하지만 연약하고, 슬프지만 강한 사람들의 이야기. 고작 160 쪽에 판형은 작고 글씨는 큰 이 책은, 어쩌면 나의 2010년의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너무 없어. 언제 이 책들을 다 읽지? 언제 이 영화들을 다 보지? 언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다 쓰지?"
p. 48 

 
   

내 말이!!! 

 

Ps1. 오늘 새삼 느꼈다. 역시 책은 구입해서 짱박아 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새로 읽고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때의 그 기분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ps.2. 한강이 이 책을 쓰게 되었던 배경인 아이오와 대학 주최의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했다가 그때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긴 작가로는................................... 김연수(여행할 권리 or 청춘의 문장들)와 무라카미 하루키(일상의 여백) 라고 쓰려 하였으나, 지금 책을 들춰 확인해보니 그 세권의 책에서 IWP에 관한 문장을 못찾았다. -_-;;; 김연수는 중국의 대학이고 하루키는 프린스턴 이란다. 에혀. 나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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