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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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심지어 유일하기까지 했던 직장은 서울 한가운데, 산 중턱의, 숲 속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23살부터 30살까지 만 7년을 일했고, 처음 2년은 혼자서 일했다.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나의 작은 자취방까지 그 숲근처에 구해놓고 혼자 외따로이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이를 닦고, 걸어서 15-20분쯤 되는 호젓한 산길을 혼자 자박자박 걸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 혼자 일을 하다, 혼자 점심을 먹고, 몇통의 전화를 걸고 받고, 그리고 다시 사무실 문을 닫고 혼자 자박자박 걸어 집으로 갔다. 하루종일 누구도 만나지 않는 날도 종종 있었고, 하루종일 입 한번 떼지 않았던 날도 가끔은 있었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널널한 직업은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없이 많은 전화통화를 해야하는 직업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난 정말 많은 일을 해치웠고, 그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그야말로 새롭게 맺어왔는데, 게다가 처음 2년을 제외하면 내내 일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는 사무실이었는데 왜 내 기억속의 나는 항상 외따로인건지 모르겠다.  

그 숲 속으로 숨어들 때, 그래, 숨어들 때, 나는 내가 '숨어든다'라는 걸 의식하며 숨어들었다. 그 숲의 산 그늘 속에 꼭꼭 숨어 숲과 함께 숨 쉬는 나무이고 싶었다. 숲은 한없이 고요했고, 침묵과 외면에 능했으며, 시침떼기도 잘 했다. 그러면서 숲은 때로 나의 기쁨과 함께 자지러졌고, 나의 슬픔과 함께 통곡해주었다. 20대 중후반의 시기에 나에게 그 숲과, 그 나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그곳은 정말, 현실적인 의미의 '내 젊은 날의 숲' 이었다.  

김훈의 이 책이 나왔을때, 그 표지의 백색과 은청색이 가지런히 섞인 문양은 겨울숲을 연상하게 만들었고, 나는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나의 유폐를 떠올렸다. 내가 혼자서 세상을 왕따시켰던 그때, 그때의 그 평화와 그 외로움과 그때 맺었던 인간관계들의 기묘한 단절감들을. 여전히 세상을 왕따시키고 싶어하는 나를.  

이 책의 내용도 그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세상에서 유폐 시키는 사람. 숲 속의 적막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숲 속의 나무들이 그러하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만을 원하는 사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참 그렇다.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본다와 보인다 사이가 그렇게 머니까 본다와 그린다 사이는 또 얼마나 아득할 것인가
p. 187 
 
   

 

주인공은 본다와 보인다 사이의 간극을 인정한다.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설사 그 간극을 뛰어넘어 본다와 보인다 사이의 거리를 없앤다고 한들 그것을 그려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다.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내가 아는 너는 이미 너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내가 아는 너' 일 뿐이고, 네가 아는 나 역시 마찬가지이니, 내가 너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에 대한 깨달음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그것에서 벗어난다. 나는 내가 아는 너 만큼만 너에게 접근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김훈이 변했다.  

단 한번도 희망에 관한 말을 해 본적 없던 김훈이, 이 글에서 처음으로 마지막의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비록 희망아닌 희망이고 의미없는 희망이라고 해도, 김훈은 처음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을 말하고 있다.  

내 젊은 날의 숲을 통과해 나오며, 숲의 치유력의 영향을 입은 것일까. 주인공이 입은 그런 치유력을 김훈도 입은 것인가. 희망을 말하는 김훈의 문체는 여전히 예리하고 날렵하지만 따뜻해졌다. 아. 김훈의 글이 따뜻하게 읽히는 날이 다 오다니. 김훈선생께서 늙으신 겐가.

나는, 33살, 내 젊은 날의 숲에서 나왔다. 순순히는 아니고 자유의지는 더욱더 아니고, 그럼에도 불가항력으로 나는 내 젊은 날의 숲을 나왔다. 나왔으되 버리지는 않았다. 숲이 준 것들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언젠가 나는,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2010.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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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토끼 2011-01-0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었어요 ^^ 매번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글 솜씨에 비해서 방문자수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블로그 모음 사이트에 가입하셔서 더 많은 분들에게 노출시키면
많은 홍보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요번에 새로 생긴 사이트에 가입해보세요(http://thegle.net )
얼마 전 오픈해서 님의 글쓰기 솜씨면 충분히 메인에 올라갈 수 있을꺼에요 ^^
그리고 오픈 이벤트도 하고 있으니 꼭 같이 참여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 올해도 원하시는 일 이루세요~!!

아시마 2011-01-03 19:12   좋아요 0 | URL
네. ^^ 그렇군요.
올해도 원하시는 일 이루세요. ^^

blanca 2011-01-0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김훈의 문장은 '벼린다'는 용어가 항상 떠올라요. 한겨레21의 편집장 일기를 보니 문체가 거의 비슷해서 기자 문체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아시마님의 문장들도 정결하고 깔끔하고 그래요. 아시마님이랑 저랑 동감 아니면 한 살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올해가 왔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 앉더라구요. 내가 나도 나마저 결국 중년으로 들어가는구나, 싶어서. 게다가 아시마님, 전 아직 둘째도--;; 이렇게 육아로 소진되는 (물론 생산적이고 고귀한 과정이라고 상찬할 수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잖아요) 시간들로 나는 늙어가는 구나, 싶어서요. 아시마님 페이퍼에 또 중언부언하고 갑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가요.

아시마 2011-01-03 22:15   좋아요 0 | URL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예요.. ^^
김훈의 문장은 지우개의 문장이죠. 길게 길게 써 놓고 지우고 또 지우고 지워나간 문장이라는 느낌. 하긴, 김훈의 어느 인터뷰에서였나 에세이에서였나, 여<칼의 노래>에서 죽은 여진을 대하는 대목이요. 그 부분을 원고지 두장쯤 썼다가 싹 지우고 "내다 버려라." 한 마디만 남겨 놓고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날 하루는 글 안쓰고 종일 나가 자전거 타고 놀았다더라구요. ㅎㅎ 그런게 "벼린다" 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듯해요.
결국 벼리는 것도 깎아 내는 거니까.

그리고, 김훈의 글을 볼 때나 조선희의 글을 볼때나 느끼는 거지만, 언론인, 기자로서의 문체가 있는 것 같아요. 최대한 팩트에 근접한, 군더더기 없는 문장. 제 문장이 정결하고 깔끔하다니... 오, 최고의 찬사이십니다. ㅎㅎ

전 아마, 블랑카님과 동갑인 것 같은데요. ^^ 학번은 아마 하나 빠를테고요. 저는 올해가 왔을때 정말 오히려 아무생각도 없었어요. 우리 나이를 벌써 중년이라고 하기엔 전 너무 억울하단 말이죠. 전 아직 중년 안할랍니다. -_-;;;

육아로 소진되는 시간들로 나는 늙어간다는 말, 정말 저도 동감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독서라는 취미를 통해서 그 시간들을 무미하게 보내지만은 않잖아요. 전 지난 5년간 정말 애 둘 임신해서 낳아서 젖먹이고 기저귀 갈다 다시 임신하고 젖먹이고 기저귀 갈고... 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음음, 기억나는 건 육아의 기억 절반과 내가 읽은 책들의 기억 절반인걸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좋아요. ^^아

둘째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제가 님의 방명록에 쓴 그대로입니다, 푸하하하하하하하! 제 둘째는 두돌이 지났습니다아아아아!!! 으쓱으쓱.

저절로 2011-01-0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은 항상 젊어요 그죠, 정작 나는 늙어가는데 말이죠.
언젠가 나는,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왠지 짠해지는걸요.^^

아시마 2011-01-03 22:18   좋아요 0 | URL
옴마나, 그 문장이 뭔가 의미심장해 보였나봐요. ㅎㅎㅎ
젊의 날의 숲과 겹쳐져서 그런가 ^^
숲이 항상 젊지는 않은 것 같아요. 늙은 숲은 없지만, 그래도 어린숲과 젊은 숲, 장년의 숲은 있다는 느낌이거든요. 예를 들면, 제게 지리산의 숲은 젊은 숲이고 설악산의 숲은 장년의 숲이거든요. 그 차이가 뭐냐 물으시면, 음음,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답했는데 왜 홍시맛이라고 했냐 물으시면,

이라는 답을 차용할밖에요. ^^

근데 아잉... 이분들이 왜 새해 벽두부터 늙음을 말하실까나.
저 처럼 철이 없으면 아무 생각 안하고 살 수 있는데요. ㅎㅎㅎ
 
쓸쓸한 사냥꾼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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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용한 적이 있는, 앤 패디먼의 말대로 나는 "책에 관한 책은 사지 않고는 못배기는 성미다."  한동안 미미 여사의 책이라면 덮어놓고 사들인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때 함께 딸려왔다. 나중에 책들을 정리하면서도 살아남았던 것은 이 책의 표지가 책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책에 관한 책이니까. 책과 연관된 서스펜스라니 얼마나 신선한가.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책은 그다지, 미미 여사의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 동일한 주인공을 둔 연작소설이 가지게 되는 한계점을 이 책 역시 피해가지 못한다. 약간은 억지스럽고 우겨대는 구성, 매번 사건에 말려드는 헌책방 주인 등등. 한 인간이 일생동안 겪을 수 있는 사건의 수에 한계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사람은 가는 곳마다 말썽이네, 싶다면. 뭐. 

미미 여사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약간의 휴식을 취하는 기분으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외딴방이나 그 외 다른 장편들에 비하면 그럭저럭 단순한 플롯으로, 심리적인 긴장감도 그다지 강하지는 않으니까. 미미 여사의 소설은 너무 강한데가 있어서, 연달아 읽노라면 숨이 가빠지는 면이 없잖아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독서에 숨구멍을 틔어준다. 억지스럽다는 건 그만큼 허술하단 이야기고, 허술하다는 건 긴장감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소리니까. 미미여사는 사실, 약간 긴장을 늦출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작가와 만날때는 단편으로 가볍게 시작해 작가의 스타일에 맞게 접근해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서스펜스 작가의 경우엔 예외로 해야 할 것 같다. 전반적으로, 서스펜스 작가들의 작품은 대부분은 장편쪽이 나은듯.   

그리고, 재미있는 걸 하나 발견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페이퍼 접기, 뭐 이런거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냥 올린다. 쩝.  

 

 

 

이걸 뭐라고 부르는 지 모르겠는데, 페이지를 써 놓은 옆에 들어가는 소제목이다. 원래는 '거짓말쟁이 나팔'이 들어가야 하는데 저렇게 써 놨다. ㅎㅎㅎ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하셨을까나. 

참고로,  

번역자 : 권일영 
발행편집인 : 김홍민 최내현 

되시겠다. ^^ 편집자 위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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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1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페이퍼 접기는여 리뷰에서는 안 된답니다. ^^
페이퍼 쓰실 때보면, 이미지 삽입이나 따옴표있는 바 옆에 "부분접기"라는 표시가 있어요. 그거 누르고 글이나 이미지 삽입하면 됩니다. 그런데 리뷰할 때는 "부분접기" 표시가 안 보여염~~~ ^^

미미 여사 책을 차례로 훑고 계시는군요? 나두 집에 있는 미미 여사 책들을 소화해야 할텐데 말이죠... 언제할까나. ㅠ
 
인숙만필
황인숙 지음 / 마음산책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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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황인숙에 대한 찬사는 부럽기 그지없다. "황인숙은 기품있는 여자다" 라니. 고종석은 이 말을 황인숙의 책 <인숙만필>의 발문으로 쓰는 것으로 모자라, 그의 책 <고종석의 여자들>에서 또한번 황인숙에 대해 말을 한다. 기품있는 여자라고. 기품이라니, 기품이라니! 그 얼마나 우아한 찬사인가 말이다. 그렇게 우아한 찬사를 듣는 황인숙이 과연 어떤 여자인지 정말 궁금해지지 않는가? 

며칠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아, 이 상투적인 표현이라니. ㅠ.ㅠ) 서정희의 쇼핑몰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피식피식 웃다가, 누군가의 댓글에서 "서정희씨 우아하고 기품있게 사는 것 같아 좋아했는데," 운운 하는 댓글을 읽고서 불현듯 황인숙이 떠올랐다. 황인숙은 서정희와 정확한 대척점에 서 있다. 기품이라는 단어를 아무데나 갖다붙이면 안된다.

그녀는 미혼이고, 가난하며, 크리스천이 아니고, 친구가 많고, 솔직하다. 인테리어하고는 상관 없는 남산 어귀의 옥탑방에 살고 있고, "내" 고양이를 기르고 있지는 않지만 동네 고양이를 거둬먹이는 일도 한다. 이 책은 그런, 고종석의 표현을 빌자면 "기품있는 황인숙 아씨"의 소소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다. 특별난 일도 없고, 그냥 어제 만난 친구 오늘 또 만나 따뜻한 아랫목에 발묻고 고구마라도 까먹으며 도란도란 하는 이야기다. 이야기들은 전혀 두서없이 흘러나온다. 그야말로 꼭 친구들간의 수다처럼. 어린시절의 이야기, 날씨 이야기, 가족 이야기, 나이 이야기, 건강 이야기, 체중 이야기, 하고 있는 일에 관한 이야기, TV 이야기도 나오고, 만난 사람들 이야기. 그런거 있지 않은가. 친구들끼리 만나서 또는 전화로 막 이야기하다 문득 시계를 보고, 어머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어! 우리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하자, 라고 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끓인 물을 큼지막한 사발에 붓는다. 잠시 식힌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에 분유를 넣고 젓는다. 평화롭고 달콤한 냄새가 김을 타고 올라온다. 사발 가장자리에 잘 풀어져 녹은 분유의 순한 거품이 자디잔 레이스처럼 둘러쳐진다. 뜨거운 물에 탄 분유는 데운 우유와 또다른 맛이다. 우윳빛 맛, 유순하고 무구한 맛, 따듯하고 바보같은 맛이다.
p. 57 

사실 나는 황인숙 선생님을 직접 뵌 적이 있다. (이럴때는 차마 '황인숙을'이라고 말을 못하겠다.) 직접 뵈고 말을 해 본 황인숙 선생님은 바로 저 글의 분유같은 분이셨다. 유순하고 무구한 눈매의 따듯하고 좋은 의미의 바보같은 그런 분이셨다. 이런 친구 하나 있으면 참 좋겠구나, 싶은. 가식이 없고 솔직하니까 사람을 깊이 끌어당긴다. 한편으로는 한없이 천진한 느낌이기도 했다. 아마도 고종석이 말한 기품이란 여기서 온 것 아닐까. 아무런 꾸밈이 없이도 매력적인 그 천부의 무엇. 서정희에게 기품이라니... 말도.

특별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책이다. 무언가 대단한 곳, 유명한 곳에 여행을 가지도 않았고, 스스로도 말하는 바 글쓰는 것 외에는 직업도 없고 산책을 취미로 가지고 있는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가난한 노처녀의 일상인데도, 마치 분유처럼 그렇게 그리운 무언가가 있다.  

아랫목에 발을 묻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친구가 없거나, 지금당장 만날수 없는 곳에 있다면,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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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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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눈을 의심했다. 기사가 아니라 소설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사실을 다룬 기사였다. 
p. 417
 
   

 

아니, 김용철씨, 지금 누가 할 소리를 누가 하고 계신거요... 헐.  

이 책은 너무 황당해서 도무지 사실 같지가 않다. 만약 이 책이 소설로 분류되어 나왔다면 완전 쓰레기 3류라고 종이 재활용통에 던져버림이 마땅하다. 인물은 하나같이 비현실적이며, 사건은 어디 도색 잡지에나 나올법한 1%의 진실에 99%의 부풀림이 더해진 과장기사 같고, 그 진행 추이는 돈 꼴리오네 스럽다. 피가 튀지 않는다는 사실만 다르고. 물론, 실행의지가 없기는 했으나 살해에 관한 논의가 나오기는 한다.(마리오 푸조 님하, 미안.) 

더욱 뒷골 땡기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싸구려 3류 도색잡지 기획기사 같은 이 이야기가 100%의 진실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김훈 선생이 여러번 말씀하셨던 바, 팩트만을 전달하는 기사는 있을 수 없듯, 이 책 역시 팩트에 대한 김용철의 판단과 취사선택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이 책에서 가장 '깨는'부분은 2부 10장의 '이건희 일가, 그들만의 세상'과 11장 '황제 경영의 그림자' 였다. 이 장에서 그려지는 이건희와 홍라희의 모습은, 코메디에 등장하는 인물과 거의 흡사하다. 이건 뭐, 과대망상증을 가진 정신병 환자(특히 그 증세를 과장되게 표현해 등장시킨)를 주인공으로 한 코메디적 부조리극의 일종같다. 아니, 정말 미친건 아닐텐데 그런 행태를 보이는 건 미쳤다는 소린지 안미쳤다는 소린지 헷갈린다. 재벌그룹 총수라는 양반이 7년간 단 두번 회사에 출근했다는 기록은 이건 뭐, 어쩌자는 거지? 싶고, 100만원짜리 옷을 만들어서 누가 사입어요? 라고 말했다는 이건희의 차녀 이서현의 발언은 얜 무뇌아일까, 무뇌아인 척 해서 사람들을 웃기려는 걸까, 싶고, 결정적으로, 3명의 통신 담당관을 두고 전 세계의 TV프로그램을 하루종일 시청하신다는 이건희의 이야기는. 음. 육아전문가들에게 데려가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 TV 시청을 너무 오래하면 비디오 증후군에 걸릴수 있습니다. 라고. 가르쳐 줘야 하는데. 아하... 그의 정신병적 행태는 TV 시청을 너무 많이 해서 생긴걸까? 그럼 진짜 치료가 필요한 정신병 환자라는 이야긴데?  

인도네시아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teman(친구)라는 말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한번만 만나도, 무조건 그 사람이랑 나랑 친구다, 라고 말한다. 이 나라 사람들 발은 또 얼마나 넓은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갖 관공서에 친구를 두고 있다. 그리고 도움(bantu)이 필요하면 요청하면 된단다. 그럼 다 해 준다고 한다. 그러하다 보니, 진짜 친구는 또다시 teman yang terdekat (가까운 친구)라고 표현한다. 이 나라 사람들의 인맥에 대한 집착과 과시는 정말 상상이상이다. 참 신기한 나라일세, 했는데, 이 책의 저자가 그 이유를 풀어줬다. 

   
  평범한 이들까지 '마당발'을 동경하게 된 한 원인은 허술한 사회인전망이다. 개인의 삶에 위기가 닥쳤을 때,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었거나, 병이 생겼을 때 누구나 차별 없이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이런 문화가 생겨날 가능성은 적다. 실제로 사회복지가 잘 돼 있는 나라일수록 인맥관리에 지나친 힘을 쏟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반면, 사회복지가 취약한 나라일수록, 마당발을 동경하는 문화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p. 412-413
 
   

 

그런데, 이런 친구는 그냥 반뚜해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 친구라면, 당연히 해줄만한 일도, 이들은 태연하게 돈을 받는다. 이들의 "도와줄게" 라는 말은 내 도움을 돈 주고 사라, 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마당발의 인맥은 우정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어느쪽에서든 아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권력이 없는 서민의 경우에 안면을 터 놓은 경찰이 있다면 당연히 도움을 받게 될테니 그들과의 인맥에 집착을 하는 것이고, 경찰의 경우에는 인맥이 많으면 많을수록 잠재적 고객층이 넓어진다는 이야기니까 새로운 사람과 뜨만 뜨만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처음에 그 돈은 그저 '급행료'라는 이름이었다. 일 처리를 좀 더 빨리 해 준다거나 약간의 서류 미비를 눈감아주는 대가였다. 그러다 그 급행료는 이제 변질되어 그 돈을 주지 않으면 일을 해주지 않는 수준으로 이르렀다. 세관은 웃돈을 얹어주지 않으면 이삿짐을 통관시켜주지 않고, 주거 확인 도장을 찍어주는 동네 통반장은 돈을 받지 않으면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우체부는 우편물을 주지 않기도 한다. 이 나라에서 기업을 하려면 자세한 상납목록을 만든 장부를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다. 그 상납 장부에 들어가는 사람은 위로는 관련 관청의 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담당 경찰서의 경찰관들과 그 상부, 동네에 하나씩은 있게 마련인 어깨들, 심지어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상납의 대상이 된다. 상납은 한달에 한번씩 돈을 줘야하는 대상부터 6개월, 1년에 한번씩 쥐어줘야 하는 대상들로 분류되고, 한번에 주는 돈도 지위마다 다 다르다. 뇌물공여에 죄책감이 없기 때문에 서로간 자기가 받은 뇌물을 공개하는 것도 예사여서 세심하게 조절해줘야 한다. 이것은 인도네시아의 관행이어서, 주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러하다보니 나라 전체가 썩어들어간다. 수돗물의 수질은 최악이고, 도로는 10년째 전혀 확충되지 않았다. 평소라면 10분 거리가 차가 막히면 2시간이 보통이다. 도무지 대책이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도로는 비만 내리면 잠긴다. 주거환경은 끔찍하고 빈부격차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교육은 말할 것도 없으며 사회 복지는 없다. 그냥, 간단하게, 없다. 모든 재원은 그 뇌물로 다 들어가는 것이다. 회사는 설립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생필품은 해외에서 수입된다.   

   
 

생필품의 블랙홀이라는 거지. 생각해봐. 그곳에선 하루 다섯 번 시간 맞춰 기도를 하러 가야 하는데, 제조업이란 가능하지가 않아. 
유선전화 시대를 건너뛰고 사막 한가운데서도 휴대폰이 터져. 

정미경, <아프리카의 별>, 문학동네, 2010, p.187

 
   

  

이 상황은 인도네시아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생필품의 블랙홀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 나라는 얼마전 지진이 일어났던 칠레였다. 남미의 칠레에 지진이 일어나고, 곧이어 사회는 통제불능에 빠졌다. 세계 각국과의 FTA를 통해 거의 대부분의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했던 칠레는 지진으로 항만과 공항이 마비되고 도로 운송이 중지되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슈퍼마켓이 약탈당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각 나라의 내수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그걸 보며 생각했다. 대기업의 횡포에도 꿋꿋히 살아남아 제품을 만들어내는 쿠쿠가 참 고맙고, 해피콜도 고맙고, 온갖 잡다구리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 각종 중소기업들이 다아 고마웠다.

돈을 기반으로 한 인맥 정치는 나라를 이렇게 완벽하게 망쳐놓는다. 정부가 개판이 되면 국민의 생활이 얼마나 고달파지는지는 살아봐야 실감이 난다. 삼성이 하고 있는 짓이 이것이다. 그리고 김용철이 걱정하는 것도 그것이다. 유전무죄를 실감한 사람들, 그놈의 우정이 아닌 돈을 뿌린 것으로 만들어 진 인맥의 힘을 우리는 두눈으로 확인했다. 그러고 나면 너도 나도 돈을 뿌려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뿌리고 싶어도 못뿌리는 사람들은 둘째치고, 뿌릴 수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여기저기 줄을 대서 돈을 뿌리게 될 것이고, 마침내는, 우편물 하나도 웃돈 없이는 받지 못하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군사정권의 그 각종 리베이트를 어떻게 뚫고 여기까지 온 우린데.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지다 못해, 깔깔깔깔 웃었다. 이건 뭐, 거짓말이 아니라는 건 아는데, 하도 말이 안되니까, 도무지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참, 우습기만 해서, 읽는 내내 깔깔 웃었다.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우스운 건, 이 나라, 인도네시아에서도 삼성 제품군은 그게 무엇이 되었건 모두 최고급으로 취급된다는 거. 특히 TV를 비롯한 가전 부문과 핸드폰은 삼성이 석권해 버렸다. 그 뒤를 바짝 추격하는 게 LG고. 에혀. 에혀. 에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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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 2010-07-3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s. 이 책은 충무공과 내가 둘 다 읽은 몇 안되는 책 중의 한권이다. 중무공의 반응은 대략 나와 비슷했다. 야~ 코메디다!!!

마녀고양이 2010-07-3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보다 더 믿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지요... ㅠㅠ
예전에 소설은 소설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현실로 일어날 법한 일이다 라고 생각을 바꿨답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그져.

아시마 2010-08-07 14:06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예요. 근데 이건 너무 유치해서, 상상을 할수도 없는 일들이었다는 게 그저 기가막힐 뿐이죠.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인간이란 존재가 너무 고차원적인 존재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는.

삼성 전자 들어갔다고 모가지(여기서는 꼭 목이 아닌 모가지, 라고 해 줘야 함.)에 힘주고 돌아다니던 친구놈이 생각났어요. 에혀.

blanca 2010-07-3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이 책이 제 남편이랑 같이 읽은 거의 유일한 책이었어요. 이건희가 거울을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대목. 자기들은 냉장 푸아그라 먹고 손님들은 냉동 준다는 대목 등. 진짜 소설도 이런 웃긴 소설이 없더라구요. 그게 현실이니 그리고 그런 기업이 우리 경제의 생명줄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다들 맹신하고 있으니 너무 슬프죠. 사실 저도 은연중 삼성은 대단하다,는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까요. 아시마님, 그래서 저는 삼성 제품 불매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서요 ㅋㅋㅋ 되도록이면 사지 않으려고 해요. 비겁한 타협 정도겠지만요.

생필품. 안그래도 남미에 있는 친구가 공산품 구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서 토로하더라구요. 치약, 생리대 이런 것들 가격이 엄청나다면서요. 부패가 용인되는 사회는 성장도 결국 정체하게 된다는 걸 다들 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아시마 2010-08-07 14:16   좋아요 0 | URL
생필품이요. 여기 식모들이 가장 많이 훔쳐(?)가는 품목중에 하나가, 뇨냐(마님 정도의 의미예요. 기혼 여성에 대한 존칭이라는데, 보통 일본이나 한국인 유부녀들에게 통칭으로 사용되는 단어.)들이 한국에서 공수해 온 생리대라죠. 현지인들이 쓰는 것과 비교가 안되는 품질이라고 그러더라구요.
더 웃긴건, 이 나라는 펄프 생산국가라는 거. -_-
기저귀도 비슷해요. 우리 작은 놈 아직 기저귀를 안떼서 여기서 사서 쓰는데 하기스가 하기스가 아니예요. 현지 생산 하기스는 오줌 한번 싸면 완전 뭉쳐서, 이건... 뭐. -_-;;; 한국선 하기스 쓰다가 여기와서는 군 쓰는데요, 제가 쓰는 군 기저귀는 일본 생산품을 수입해다 파는 거라... ㅎㅎㅎ 한국서 쓰는 가격과 거의 맞먹거나 더 비싸요. 근데 도무지, 현지생산품을 쓸수가 없어요.

그러니 악순환인거죠. 현지 생산 공장이 있기는 한데, 품질이 떨어지니 판매가 되지 않고, 이익이 떨어지니 품질 향상에 돈을 쓸 수도 없고... 뭐 그런 일들의 악순환.

저 대학 1학년때, 삼성이 대대적으로 이미지 재고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나요. 막 대학가를 돌면서 설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죠. 몇몇 대기업 이름이 나열되고, 이미지가 가장 좋은 기업은 어디입니까, 운운운. 그때 저도 온통 삼성을 나열했었더랬죠. 같이 했던 동기들도 대부분. 흠. 그러고 보니 그시기는 삼성 이미지 재창조의 거의 마지막 시점이기도 했던 모양이네요. 그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했던 걸 보면. 대국민 사기극이 따로 없죠. 에혀.

2010-08-26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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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느 글에선가 평론가 김윤식은 작가들을 두고 "들린 영혼"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여기서의 '들린'이란 '신들린'이라는 말을 할 때의 그 들린이다. 무언가에 들린 영혼이 작가가 된다고. 

책을 읽는 내내 그 말이 떠올랐다. 무언가에 들린 사람들이 자신을 들리게 만든 것을 따라 떠돌고 있는. 그건 마치 모래 같았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가벼운 바람에도 이리저리 휩쓸려 날아다니며 주변의 누구와도 융화하지 못했다. 모래는 천만의 모래가 함께 모여있어도 하나하나가 여전히 고독하다.  

고독. 

고독이라고 써 놓고보니 정미경의 소설을 이 단어보다 더 잘 요약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고독한 사람들에게 사막보다 더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모래는 사람과 사람의 포옹을 막아선다. 내 살갗에 묻은 모래는 그 위로 누군가와의 접촉이 생겨날 때 도저히 못견딜 무언가가 된다. 사막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손조차 잡아주지 못한다.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그 사막에, 증오와 복수에 들린 승, 아름다움에 들린 로랑, 사막에 들린 탕헤르 여자 등등이 모여든다. 그들은 모두 이방인이다. 무엇이 그들을 '아무것도 없는(사하라)'로 불러들였을까. 처음엔 각각의 이유로 사막에 왔던 그들은 결국 사막 그 자체에 들린다.  

   
  두고 온 곳으로의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큰 사람들은 혀뿌리에 감기는 모래를 묵묵히 삼킬 수 있다. 극한의 황량함에 조응하는 폐허를 가슴에 감추고 있는 사람만이 그 지독한 사막 자체를 견뎌낼 수 있다. 눈을 뜨고 있되 아득히 먼 곳에 시선이 못 박혀버린 자들만이 눈알을 파고드는 모래를 견딜 수 있다. 어떤 불로도 태워지지 않는 응어리를 병든 췌장처럼 달고 와서는 그걸 태워야 살 수 있다고 그걸 태워버릴 수 있다면 지옥불이라도 견뎌보겠다는 이들만이 진짜 사막까지 들어간다.
(p. 104)
 
   

 

폐허와 응어리를 가진 사람. 세상의 끝에 혼자 서 보았던 사람, 그 사람들이 흔히 정미경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한 인물은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에서의 중호를 시작으로 이상문학상 수상작이었던 단편 <밤이여 나뉘어라>의 P와 단편 <무화과 나무 아래>의 주인공 남자 킴을 거쳐 이 소설의 인물들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철저하게 정미경류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 지나치게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그런 단점을 넘어서는 것이 정미경의 문장이다.  

정미경의 문장은 잘 벼른 칼날위에 어룽어룽 피어나는 쇠무지개 같은 느낌이다. 지독하게 아름답고, 철저하게 단련되어 군더더기라고는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는, 그 자체로 완결된 문장이다. 정미경 또한 문장에 들렸다 싶다. 한권 한권의 소설이 발표될 때마다 문장은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매번 최고다!라고 외쳤는데 다음 소설은 더 나아진다는 게 정말 최고다. 인물이 반복되고 주제가 반복되어도 정미경의 소설이 늘 새로운 것은 그 형식과 문장이 날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발단 전개 위기를 거쳐 절정에서 끝이 나 버린다. 뻥, 하고 터지는 빅뱅을 마지막으로. 소설의 중심 사건은 해결은 커녕 종결조차 되지 않고, 인물들의 미래는 모래 폭풍 속에 들어간 듯 위험천만한 오리무중 상태로. 나는 이렇게 불친절한 소설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절정이 그대로 결말인 것에 동의한다. 고독에는 언제나 허무라는 감정이 따라오게 마련이므로. 

정미경은 언제나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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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2010-07-30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미경은 언제나 최고다.

저는 아시마님이 좋아라하는 작가들을 따라가보고 있어요. 물론 그 시작은 접신 박완서였구요. 지금은'조선희'작가를 젤 앞줄에, 다음은 정 떨어지게 완벽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정미경'이 되겠군요.
아~나는 언제 이렇게 나이들어 버렸지. 이 즐거운 사람들을 언제다 맛 보나.

아시마 2010-07-31 16:08   좋아요 0 | URL
정미경하고 조선희는 비슷한 문장을 구사해요. 정미경이 약간 더 감각적이라는 점이 차이겠지만. 조선희는 그야말로 언론계에서 훈련받은 언어구나, 하는 게 느껴져요. 읽어보면 어떤 느낌인지 실감이 나실듯.

제가 에파타님에게 어떤 작가를 데려다 줄 수 있었다면, 그 또한 영광이어요. ^^

stillyours 2010-08-09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오자마자 찾아 읽었는데, 여직 아무 것도 기록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시마 님 리뷰를 보며 답답함을 해소합니다.
추천도 꾹- 누르고 가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아시마 2010-08-11 12:07   좋아요 0 | URL
달님의 리뷰도 보고 싶어요. 여러방향으로 해석의 여지가 많은 소설이라고 생각되요. 그런 소설이 좋은 소설이겠지요.

정미경 작품이 그런 것 같아요. 참 많은 말들이 생각나는데 정말, 리뷰어조차 압도해버리는 문장이라는. 이런 문장을 읽고나면 내 문장이 너무 허접쓰레기 같아 쓸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