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 그해,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 개정판
한강 지음 / 열림원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차에 두고 간단히 읽을 책을 고르다 이 책이 손에 잡혔다. 한강이고, 읽은지도 한참 되었고, 읽었을 때 좋았었다는 기억도 있고... 무엇보다, 나에게 한강이라는 작가를 소개해 준 지인이 2003년 (이 책의 초판이 처음 발간된 해다.)에 읽은 책들 중 가장 좋았던 책으로 꼽았던 책이지만 막상 나는 좋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의아함을 느꼈던 것을 아직도 찜찜하게 기억하고 있던 책이기도 했다.  

판형은 작은데 활자가 크고, 짤막짤막한 에세이라 차 안에서 잠깐잠깐 읽기 좋겠다고 들고 내려가 차 안에서 다시 펼쳐든 이 책을, 나는 차에서 내릴때 도로 손에 들고 나와 끝까지 읽어버렸다.  

헉... 나는 도대체, 2003년 11월 1일(이 책을 처음 읽은 날, 책 면지에 기입해 뒀다.)에 뭘 읽은거지? 그래, 내용과 그 사람들은 그대로 선연하게 기억이 나지만, 알고 있던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와 닿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이 책의 서문에서 한강은 말한다.  

   
 

한동안 망설였다. 4년여의 시간이 흘러, 아무래도 이 글들을 나의 것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고쳐 쓸 수도 없었다. 생각과 감정의 틀 자체가 변해, 아예 차음부터 다시 쓰거나 쓰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렇게 여러 날의 여러 마음 끝에 결국 이렇게 책을 묶게 되었다. 최종 원고를 보내기 위해 오래 전의 나와 조우한 며칠동안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이런 나도 있었구나. 꽤 밝았구나. 마음이 가볍고 담담했구나. 단순하고 낙관적이었구나. 심오할 것도 무거울 것도 없이. 고통스럽게 파고들어간 자기 응시의 흔적 없이.
p. 4 

 
   

한강이 서문에서 밝힌 그 말은 오늘 이 책을 읽을때의 딱 나의 마음이기도 했다. 

생각과 감정의 틀 자체가 변해버렸다는 느낌, 이 책을 밝고 화사한 색채로 기억하고 있었던 나에 대한 어리둥절함. 뜻밖이다. 이 책의 저자인 한강조차,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쓸때의 자신을 "꽤 밝았"고 "마음이 가볍고 담담" 했다고 말하는데 막상 이 글을 읽는 나는 이 글들이 너무 아팠다.  

이 책이 무겁고 우울하지는 않다. 그건 아마 이 책이 한강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책이라기 보다는 이 책의 띠지에 적힌 말 그대로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일이 있었고, 내가 만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고.. 하는 것들을 자세한 묘사가 아닌 크로키 하듯 그려나간 글들. 글의 대상이 한강의 내면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연필을 잡고 있는 손은 한강의 것이다. 대상을 한강식으로 해석하고 그려낸다.  

한강의 눈으로 들어와 손을 통해 나온 인물들은 모두가, 엷은 슬픔이 묻어있다. 그리고 그 엷은 슬픔에도 그들은 강하려고 노력한다. 냉정하지만 연약하고, 슬프지만 강한 사람들의 이야기. 고작 160 쪽에 판형은 작고 글씨는 큰 이 책은, 어쩌면 나의 2010년의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너무 없어. 언제 이 책들을 다 읽지? 언제 이 영화들을 다 보지? 언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다 쓰지?"
p. 48 

 
   

내 말이!!! 

 

Ps1. 오늘 새삼 느꼈다. 역시 책은 구입해서 짱박아 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새로 읽고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때의 그 기분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ps.2. 한강이 이 책을 쓰게 되었던 배경인 아이오와 대학 주최의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했다가 그때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긴 작가로는................................... 김연수(여행할 권리 or 청춘의 문장들)와 무라카미 하루키(일상의 여백) 라고 쓰려 하였으나, 지금 책을 들춰 확인해보니 그 세권의 책에서 IWP에 관한 문장을 못찾았다. -_-;;; 김연수는 중국의 대학이고 하루키는 프린스턴 이란다. 에혀. 나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