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금기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1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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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의 사전적 정의는 '꺼려서 싫어하거나 금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그렇기에 무리를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규율이 있다. 가장 흔한 것이라면 살인부터 온갖 죄들도 그렇고 지역마다 금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얼마 전 생각한 것은 '왜 밤에 휘파람을 불면 안된다'고 하는 것일까 였다. 그리고 그런 의문을 가지면서도 어느새 그런 금기에 익숙해져서 누군가 밤에 휘파람을 불면 거슬린다는 느낌을 받는 나 자신에 놀랐다.

이렇게 사회 속에는 수많은 금기가 숨어 있고 납득이 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으면서도 지키게 되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그런 금기를 지키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그런 상상력에 꽃을 피운 것이 바로 이 책 '수많은 금기'다. 일단 금기를 다룬 책이므로 내용은 주로 사람에 관한 것이다. 사람 사이의 금기가 외계인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아서인지 호시 신이치의 작품에서 많이 나오는 외계인의 방문이 이번 책에서는 벌어지지 않는다. 또한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라고 하기에는 한 작품의 분량이 꽤 되는 편이다. 전에는 3~4쪽이었다면 이번에는 10~20쪽 가량 된다. 더구나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는 이름을 N씨라고 붙이거나 해서 익명성을 살리고 모호한 시대, 모호한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번 책에 실려 있는 '도망가는 방'에서는 버젓이 세이지나 나츠코처럼 일본인 특유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렇다해서 호시 신이치 작품 특유의 즐거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책에 실린 첫 번째 이야기 '해결책'에서는 살인을 하고만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자신의 애인에게 도와달라고 전화를 하는데 집에 도착한 애인이 내놓은 해결책은 대담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끝은 기발한 편이고 이야기의 시작과 맞물려서 한 바퀴가 순환된다는 느낌이라서 묘한 감흥을 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도망가는 방'에서는 사랑의 도피를 한 남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남자는 예술가였고 여자는 유부녀, 추격자가 올 것을 두려워한 두 사람은 차라리 자신들의 사랑을 가슴에 안고 함께 죽자고 말한다. 그 후 어떻게 죽을지를 서로 논의하는데 자신들은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이 장면이 또 어쩐지 우스워서 웃게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어떻게 죽어야 낭만적인지를 말하면서 총, 단도, 독약을 차례로 꺼내놓는 것이다. 어설픈 동반 자살시도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 죽음에 낭만적인 것이 어디 있다는 걸까 하는 의문과 냉소가 떠오를 즈음 두 남녀가 묶고 있는 방의 벨소리가 울린다. 첫 번째 방문자는 어린 아이였지만 계속하여 벨이 울리고 어떻게든 낭만적인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두 사람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묘한 방향으로 번져가고 결말을 읽게 된 순간 유쾌하게 웃어버렸다.

책에 실린 마지막 작품은 '머리가 좋은 아이'였는데 부모가 이혼을 하고 나서 그 두 집을 오가면서 살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집에서나 행실이 훌륭한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 아이의 실체가 드러난 순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금기를 말하는 책이라서 이 책에는 수많은 금기를 범한 사람이 등장한다. 살인, 동반자살, 살인의 은폐와 사칭 등 많은 금기를 범한 사람이 나오지만 가장 오싹했던 것은 오히려 도덕적으로는 죄인이되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도 웃고 있는 '머리가 좋은 아이'의 등장인물 렌이었다. 무리 속에 조용히 숨어서 많은 것을 망가뜨리는 괴물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호시 신이치의 책을 잡게 되면 항상 설렌다. 어떤 내용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 책 '수많은 금기'역시 전형적인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 상상력만은 변함없었으며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내려놓을 수 없게 하는 흡입력 역시 그대로였다. 금기라는 주제로 담아낸 호시 신이치의 상상력 '수많은 금기' 정말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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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Watchmen 1 시공그래픽노블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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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살다보면 울화가 치미는 일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백주대낮에 길을 걷다가 갑자기 삿대질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던지 하는 것 같은 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 정도는 짜증나는 일 정도이지만 텔레비전을 켜고 뉴스를 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있다. 특히 내전 지역에서 살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더욱 그렇다. 거기에 피해자가 어린 아이일 때는 마음 한켠이 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 히어로에 열광하게 된다. 현실에 있지 않은 영웅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이제 끝이구나 하고 포기하게 되는 위험한 순간에 짠하고 나타나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영웅을 말이다.

이 그래픽 노블 '왓치맨'에 등장하는 히어로들 역시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다. 단지 보통 사람들이 자신들을 구해줄 영웅을 바랐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이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촉발시킨 존재가 바로 '후디드 저스티스'였다. 그는 뒷골목에서 범죄자들을 만난 사람들을 도와주고 홀연히 사라진 히어로였다. 그 과정에서 범죄자들은 큰 부상을 입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자업자득으로 여긴다. 그리고 시민을 구한 정체불명의 인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두건과 목에 감고 있는 올가미에 착안해서 그의 별명이 붙여진다. 언론에서 그에게 붙인 이름은 '후디드 저스티스'였고 이 사건은 영웅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붙인다.

이어 비리를 폭로한 '더 실루엣'이라는 여성 히어로가 등장하고 경찰관 출신의 '나이트 아울'이 등장한다. 책에 나이트 아울의 자서전이라는 식으로 실린 글에서 나오듯 경찰관 이었던 홀리스는 '후디드 저스티스'의 등장을 보고 자신도 저런 히어로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몸을 단련하고 자신의 신분을 속일 복장을 만들고, 이름을 무엇으로 할 지 고민한다. 그러던 와중에 동료가 빈정거린 '나이트 아울'을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정식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사람들을 위협하는 술주정뱅이를 처리하는 것으로.

이쯤 되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책 '왓치맨'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실은 보통 사람이다. 슈퍼맨처럼 외계에서 날아온 초능력자도 아니고 스파이더맨처럼 특이한 거미한테 물린 적도 없다. 단지 영웅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섰고 자신의 신분을 이상한 복장으로 숨기고 있을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배트맨에 가깝다. 신체능력을 최대한 끌어내고 부족한 부분은 장비로 보완하는.

왓치맨 속에서는 히어로의 전성기인 것 마냥 여러 히어로가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냉전시대가 끝나자 경찰들이 반발하고 정부의 허가가 없이는 범죄자를 처단할 수 없다는 법안이 생겨난다. 이때부터 히어로들이 갈 길은 나누어졌다. 신분을 숨기고 있던 복장을 벗어던지고 언론에 본인의 이름으로 나서던지 아니면 복장을 버리고 히어로에서 은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 외는 정부 쪽 사람이 되어서 그 쪽에서 일해야 한다.

결국 히어로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 법안이 통과된 이유도 있었지만 한 때의 유행이었던 히어로에 대한 인기가 사그라든데다가 정말 초능력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의 이름은 '미스터 맨해튼'이고 원래는 과학자였다. 허나 실험 중의 사고로 그는 사망했고 그 와중에 독특한 힘을 얻었다. 산산조각이 나서 사망한 그는 자신의 몸을 재구성해서 부활한다.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히어로의 등장에 이미 20년이 흘러 나이가 든 히어로들은 대부분 은퇴를 선택한다.

기존에 있던 히어로 중에 남은 자는 로어셰크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로어셰크가 수배자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정부쪽에서 일하고 있던 기존의 히어로 '코미디언'이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그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때부터 히어로들에 대한 위협이 시작되고 그 너머의 진실을 로어셰크가 파고들어간다.

인물 하나하나가 독특하기도 했지만 스마일 배지 위에 흐르는 피로 시작된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단숨에 읽어나갔다. 점차 이어지는 히어로들에 대한 위협과 그들이 실제로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점이 더 흥미를 더했다. 로어셰크의 정체도 궁금했지만 중간에 신문가판대 옆의 아이가 읽고 있는 만화의 내용과 책의 주요 내용이 맞물리면서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공을 들인 티가 나고 이야기도 짜임새 있어서 정말 재밌게 읽었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 궁금한 '왓치맨' 정말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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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 단숨에 읽는 시리즈
한잉신.뤼팡 지음, 김정자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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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적에 대한 이미지는 유독 낭만적인 것이 많다. 육지에 사는 저자의 입장에서는 환상 속의 영웅의 이미지인지 여러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해적의 모습은 독특한 것이다. 물론 피터팬의 후크선장 같은 경우도 있기야 하지만 그 모습은 무섭다기보다 우스꽝스러웠다. 거기에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에서는 자라기를 거부하는 소년 피터팬보다  성인으로 살면서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지는 어른 후크 선장 쪽이 더 멋지게 그려진다. 그가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에 읽은 소설에서도 등장인물 중에 해적이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멋진 인물로 등장했는데 그는 해적이지만 혁명가로 나온다. 엘리트 지식인이었지만 부패한 조국에 절망한 나머지 해적이 되었고 폭력으로라도 나라의 변화를 꿈꾼다는 설정이었다. 더구나 중간에 잔혹하게 살해된 어린 소녀의 복수까지 해주고 마지막에 가서는 여주인공을 구하고 사망한다. 그의 부하 역시 주인공 일행을 구하고 선장을 도와달라고 말하며 죽는 장면이 있었다. 소설이기야 하지만 해적이 과연 그렇게 낭만적일 수 있을까. 현실에 불만을 품고 범죄자의 무리에 들어갔으며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리인데도 말이다.

이 책 '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에서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해적은 어디까지나 범죄자 집단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약탈하는 탐욕스러운 무리가 바로 해적이란다. 요새 뉴스에 나오는 해적의 이미지에 들어맞는 설명이다. 멀쩡한 상선을 숨어 있다가 공격해서 붙잡고 몸값이 올 때까지 노예처럼 부리는 범죄자들. 사실 이 책을 펼칠 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해적에 대해서 어느 정도 낭만적인 이미지를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그런 생각을 이 책은 첫 장부터 무너뜨린다. 책을 펼치고 가장 먼저 읽게 된 부분에 두 장의 사진이 있다. 한 장은 해적과의 전쟁 끝에 잡힌 해적들을 참수한 후에 그들을 참수한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다. 그 사람들 자체는 문제없지만 그들의 발밑에는 목이 잘린 해적들의 시체가 놓여 있으며 당연히 그 주변에 해적들의 잘린 목이 뒹굴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두 번째 사진을 보면 어느 해적의 잘린 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목이 잘린 단면까지 슬며시 보이는 사진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제발 조작된 것이거나 그림이었으면 하는 기분인데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고 잘린 목의 단면이 묘하게 우둘투둘해보여서 더 기분이 안 좋아졌다. 두 장의 사진이 드러내는 것은 한 마디로 이렇다. 문학작품 속에 낭만적인 해적 같은 것은 실제로 없고, 잔인한 해적들과 그들을 잡으려는 군인들이 있다는 것뿐이다.

그 후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해적이 발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다른 도적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해적은 가난했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여유롭다면 누가 목숨을 걸고 도적질을 하겠는가. 해적은 가난해서 혹은 평화로워져서 해고된 선원이나 군인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도적집단이라고 한다. 단지 그 도적질의 장소가 바다인 것뿐이지 더 특별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해적들이 활개를 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나라에서 묵인해주었기 때문이다. 유럽 사람들의 입장에서 신세계였던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이후 당시 바다를 주름잡던 스페인은 그 곳에서 막대한 보물을 실어왔다. 그것을 해적들이 노렸고 스페인의 적대국가 역시 그 점을 노렸다. 해적들에게 정식으로 나포허가증을 주고 해적들이 훔쳐온 보물을 나눠가질 수 있다면 적대국의 부는 줄이고 자신들이 부를 늘릴 수 있다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허나 문제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해적은 애국심이라고는 없었고 자신의 탐욕에 치중했다. 공격대상이 주로 스페인 선박이기는 했지만 궁해지면 어느 나라 선박이든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적대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나면 해적들을 방치해서는 안 되는데 해적들은 통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적들이 늘어나게 된 이유를 설명한 이후에 유명한 해적을 여럿 알려 주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여성 해적인 앤 보니와 메리 리드의 이야기 였다. 해적으로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웠지만 끝내 잡힌 두 여해적은 교수형 선고가 내려지지만 임신 중이라는 이유로 풀려났다고 한다. 다만 메리 리드는 감옥에서 병에 걸려 죽었고 앤 보니는 풀려난 이후 사라졌다고 한다.

해적의 역사를 처음부터 훑어주기 때문에 내용이 풍부했던 것은 아주 좋았다. 하지만 읽을 때 내용이 조금 딱딱했고 첫 부분의 사진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거슬리기도 했다. 그래도 풍부하고 상세한 내용, 다양한 삽화가 곁들여져서 읽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낭만적 이미지로 덮여 있지만 실상은 잔혹한 범죄자일 뿐인 해적과 그들의 역사 '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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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무] 서평단 알림
눈물나무 양철북 청소년문학 13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 양철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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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수님이 강의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시던 교수님은 여러 나라를 돌아보셨는데 한 나라에서 이런 일을 겪으셨다고 하시더군요.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마주 오던 사람이 아무 이유없이 교수님 얼굴에 침을 뱉고 가더랍니다. 단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말이지요. 그러면서 인종차별이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끔찍한 범죄 중에 하나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잘 해줘야 한다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사실 국적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주류에 들어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주류에 있는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염두에 두지도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상상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불편한 것은 없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종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 그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 책 '눈물나무' 속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미국인 역시 그렇습니다. 토마토를 저렴하게 사먹을 수 있는 것을 좋다고 생각할 뿐이지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저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경제학 도서의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맛있는 식당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것이었는데요. 가령 프랑스에 가서 프랑스 요리 전문 식당을, 미국에 가서 미국 요리 전문 식당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합니다. 세계적 수준의 정말 뛰어난 요리사가 운영하는 곳이 아닌 다음에야 어느 정도 숙련된 요리사라면 그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식의 품질은 비슷비슷한 편입니다. 즉,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요리사의 실력이 아니라 그 요리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가에 달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인 요리사가 이주 노동자나 불법 체류자 요리사보다 인건비가 훨씬 높습니다. 그렇다면 가격대비 저렴하고 인건비가 낮기 때문에 음식에 많은 공을 들일 수 있는 요리사가 있는 식당이 맛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가면 멕시코 요리 전문 식당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인건비 문제인 것이지요. 힘든 일, 낮은 임금을 감수한 이주 노동자 혹은 불법 체류자를 부유한 나라의 기업주는 원하게 되고 경제가 기울어서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나라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부유한 나라 쪽의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이 책에 등장한 주인공 루카의 가족 역시 그렇습니다. 일자리만 있다면 그들은 목숨을 건 국경 넘기를 감행하지 않았을 겁니다. 성실하게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일할 자리가 없어서 굶게 생긴 마당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거지요. 그 와중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막내 루카가 제일 마지막까지 멕시코에 남아 있다가 15살이 되자 먼저 미국에 도착한 가족을 찾아 떠납니다. 그 와중에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안내하는 코요테가 된 큰 형 에밀리오를 만나게 되고 소식이 끊긴 아버지에 대해서 묻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전부 미국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는데 가장 먼저 집을 나간 큰 형 에밀리오와 두 번째로 떠난 아버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에밀리오는 수표라도 보내왔지만 아버지는 전혀 연락이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코요테로 일하고 있으니 그가 무언가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물어 본 것이었는데 웬일인지 에밀리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버립니다. 차마 말하지 못한 진실이 터져 나오고 후에 진실을 알게 된 루카는 형을 외면하게 됩니다.

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물을 마시고 자란다는 눈물나무가 제목인 만큼 순탄한 내용은 아닙니다. 목숨을 건 국경 넘기와 불안한 불법 체류자 생활, 사람들의 멸시의 시선까지 우울하지만 실제 있을 법한 내용이 담겨 있거든요. 허나 이야기는 양쪽의 입장을 모두 보여줍니다. 살기 위해 불법이라도 남의 나라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치안을 위협하고 일자리를 가져가기 때문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을 고루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쁘다기보다 세계의 상대적 빈곤이 초래한 문제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살아남기 위해 불법 체류자의 삶을 선택한 가족의 이야기 '눈물나무'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알라딘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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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만납시다
지그 지글러 지음, 이은정 옮김 / 산수야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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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떤 학교에 새로 선생님이 두 명 부임해왔다. 그런데 그 선생님 중 한 명에게 다른 선생님이 이렇게 귀뜸해주었다. '선생님이 이번 맞게 된 아이들은 전부 천재에요. 어떤 것을 가르쳐주어도 능히 소화해낸다니까요. 배우는 것도 전부 빠르고 잘 이해하고 따라오더군요. 단지 아이들이 너무 똑똑해서 선생님한테 장난을 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혹은 게으름을 부리는 아이도 있을 수 있어요.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거나 너무 어려워서 못 따라가겠다고 할 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 전부 무시해버리세요. 그 아이들은 천재니까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시면 전부 소화해낼 수 있어요. 잘못을 하면 혼내고 잘하면 칭찬을 아끼지 말고 가르쳐주세요. 선생님은 잘 하실 수 있으세요.'라고 말이다.

반면 다른 선생님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맞게 된 반 아이들은 전부 평범한 아이들이에요. 그저 보통으로 하시면 되요.'라고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을 가르친 두 선생님, 그렇게 일 년이 흘렀고 천재로 구성된 반 아이들의 진도가 평범한 반 아이들의 진도보다 일 년 이상 앞서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어떨까. 두 반의 아이들은 모두 평범한 아이들이었고 천재라고 부를 만한 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없었다. 다만 선생님이 아이들을 천재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대했으며 가르쳤다. 그것이 차이를 만든 것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재능이 숨어있다. 어디까지나 '숨어' 있어서 그 사람이 그것을 찾아내지 못한 다면 '평범'한 일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마저 자신의 두뇌에서 10%이상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럼 나머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숨은 잠재력은 어느 정도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어머니가 자식을 구하기 위해 무거운 자동차를 던져버릴 괴력은 어디서 나올까. 단지 숨어 있어서 찾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아이들이 천재로 변모했던 것처럼 말이다.

위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 '정상에서 만납시다'에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제목부터가 '정상에서 만납시다'라서 어떤 내용일까 꽤나 궁금했었다. 내용은 그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자신이 만들어낸 밑바닥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도록 하나하나 조언을 해주는 것이었다. 저자 지그 지글러는 원래 세일즈맨이었다고 한다. 마침 1만 달러가 필요했고 1만 달러를 연봉으로 주는 세일즈맨을 모집하기에 그 일에 뛰어든 것이었다. 열정만 있을 뿐 어떤 기술도 지식도 없었던 터라 처음 그는 실패를 거듭한다. 본인은 농담조로 많은 것을 팔았다고 말하는데 '돈이 너무 없어서 아이 병원비를 내려고 세간을 팔았다'는 부분이 있었다. 그야말로 인생이 바닥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지면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하던가. 그런 세일즈맨 생활 2년을 보내고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 강연자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낭비를 하고 있군요.'라고. 지그 지글러는 이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자신이 세일즈의 재능이 없으니 그만 두라고 말하는 건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강연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재능을 낭비하고 있어요. 내가 보기에 당신은 뛰어난 세일즈맨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에요.'라고 말이다. 이 갑작스런 칭찬에 지그 지글러는 놀랐지만 매우 기뻤다. 여기서부터 그의 인생이 전환되었으면 일 년이 지나지 않아서 그는 미국 내 세일즈맨 중에서 판매 2위에 올랐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지그 지글러 자신이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나쁜 사고방식이 어떤 것인지 잘 지적해주고 그 부분을 바꿔서 성공으로의 계단을 오르라고 말해준다. 그 과정은 여섯 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기이미지, 대인관계, 목표, 자세, 일,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예문과 재치 있는 저자의 글을 따라 가보면 자신의 사고가 어떻게 굳어 있었는지 알아볼 수 있고 책 자체도 재미있어서 읽는 재미가 꽤 있었다. 오백페이지가 넘는 자기계발서를 재밌게 읽을 수 있고 생활의 변화를 생각해보게 되었다면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좋은 구절이 많기 때문에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5년에 초판이 발행되고 아직까지 팔리고 있다는 것이 능히 이해가 갈 정도였다. 자신의 한정된 시간을 그리고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면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 '정상에서 만납시다' 정말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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