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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Watchmen 1 ㅣ 시공그래픽노블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살다보면 울화가 치미는 일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백주대낮에 길을 걷다가 갑자기 삿대질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던지 하는 것 같은 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 정도는 짜증나는 일 정도이지만 텔레비전을 켜고 뉴스를 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있다. 특히 내전 지역에서 살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더욱 그렇다. 거기에 피해자가 어린 아이일 때는 마음 한켠이 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 히어로에 열광하게 된다. 현실에 있지 않은 영웅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이제 끝이구나 하고 포기하게 되는 위험한 순간에 짠하고 나타나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영웅을 말이다.
이 그래픽 노블 '왓치맨'에 등장하는 히어로들 역시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다. 단지 보통 사람들이 자신들을 구해줄 영웅을 바랐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이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촉발시킨 존재가 바로 '후디드 저스티스'였다. 그는 뒷골목에서 범죄자들을 만난 사람들을 도와주고 홀연히 사라진 히어로였다. 그 과정에서 범죄자들은 큰 부상을 입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자업자득으로 여긴다. 그리고 시민을 구한 정체불명의 인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두건과 목에 감고 있는 올가미에 착안해서 그의 별명이 붙여진다. 언론에서 그에게 붙인 이름은 '후디드 저스티스'였고 이 사건은 영웅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붙인다.
이어 비리를 폭로한 '더 실루엣'이라는 여성 히어로가 등장하고 경찰관 출신의 '나이트 아울'이 등장한다. 책에 나이트 아울의 자서전이라는 식으로 실린 글에서 나오듯 경찰관 이었던 홀리스는 '후디드 저스티스'의 등장을 보고 자신도 저런 히어로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몸을 단련하고 자신의 신분을 속일 복장을 만들고, 이름을 무엇으로 할 지 고민한다. 그러던 와중에 동료가 빈정거린 '나이트 아울'을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정식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사람들을 위협하는 술주정뱅이를 처리하는 것으로.
이쯤 되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책 '왓치맨'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실은 보통 사람이다. 슈퍼맨처럼 외계에서 날아온 초능력자도 아니고 스파이더맨처럼 특이한 거미한테 물린 적도 없다. 단지 영웅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섰고 자신의 신분을 이상한 복장으로 숨기고 있을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배트맨에 가깝다. 신체능력을 최대한 끌어내고 부족한 부분은 장비로 보완하는.
왓치맨 속에서는 히어로의 전성기인 것 마냥 여러 히어로가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냉전시대가 끝나자 경찰들이 반발하고 정부의 허가가 없이는 범죄자를 처단할 수 없다는 법안이 생겨난다. 이때부터 히어로들이 갈 길은 나누어졌다. 신분을 숨기고 있던 복장을 벗어던지고 언론에 본인의 이름으로 나서던지 아니면 복장을 버리고 히어로에서 은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 외는 정부 쪽 사람이 되어서 그 쪽에서 일해야 한다.
결국 히어로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 법안이 통과된 이유도 있었지만 한 때의 유행이었던 히어로에 대한 인기가 사그라든데다가 정말 초능력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의 이름은 '미스터 맨해튼'이고 원래는 과학자였다. 허나 실험 중의 사고로 그는 사망했고 그 와중에 독특한 힘을 얻었다. 산산조각이 나서 사망한 그는 자신의 몸을 재구성해서 부활한다.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히어로의 등장에 이미 20년이 흘러 나이가 든 히어로들은 대부분 은퇴를 선택한다.
기존에 있던 히어로 중에 남은 자는 로어셰크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로어셰크가 수배자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정부쪽에서 일하고 있던 기존의 히어로 '코미디언'이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그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때부터 히어로들에 대한 위협이 시작되고 그 너머의 진실을 로어셰크가 파고들어간다.
인물 하나하나가 독특하기도 했지만 스마일 배지 위에 흐르는 피로 시작된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단숨에 읽어나갔다. 점차 이어지는 히어로들에 대한 위협과 그들이 실제로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점이 더 흥미를 더했다. 로어셰크의 정체도 궁금했지만 중간에 신문가판대 옆의 아이가 읽고 있는 만화의 내용과 책의 주요 내용이 맞물리면서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공을 들인 티가 나고 이야기도 짜임새 있어서 정말 재밌게 읽었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 궁금한 '왓치맨' 정말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