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 단숨에 읽는 시리즈
한잉신.뤼팡 지음, 김정자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해적에 대한 이미지는 유독 낭만적인 것이 많다. 육지에 사는 저자의 입장에서는 환상 속의 영웅의 이미지인지 여러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해적의 모습은 독특한 것이다. 물론 피터팬의 후크선장 같은 경우도 있기야 하지만 그 모습은 무섭다기보다 우스꽝스러웠다. 거기에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에서는 자라기를 거부하는 소년 피터팬보다  성인으로 살면서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지는 어른 후크 선장 쪽이 더 멋지게 그려진다. 그가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에 읽은 소설에서도 등장인물 중에 해적이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멋진 인물로 등장했는데 그는 해적이지만 혁명가로 나온다. 엘리트 지식인이었지만 부패한 조국에 절망한 나머지 해적이 되었고 폭력으로라도 나라의 변화를 꿈꾼다는 설정이었다. 더구나 중간에 잔혹하게 살해된 어린 소녀의 복수까지 해주고 마지막에 가서는 여주인공을 구하고 사망한다. 그의 부하 역시 주인공 일행을 구하고 선장을 도와달라고 말하며 죽는 장면이 있었다. 소설이기야 하지만 해적이 과연 그렇게 낭만적일 수 있을까. 현실에 불만을 품고 범죄자의 무리에 들어갔으며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리인데도 말이다.

이 책 '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에서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해적은 어디까지나 범죄자 집단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약탈하는 탐욕스러운 무리가 바로 해적이란다. 요새 뉴스에 나오는 해적의 이미지에 들어맞는 설명이다. 멀쩡한 상선을 숨어 있다가 공격해서 붙잡고 몸값이 올 때까지 노예처럼 부리는 범죄자들. 사실 이 책을 펼칠 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해적에 대해서 어느 정도 낭만적인 이미지를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그런 생각을 이 책은 첫 장부터 무너뜨린다. 책을 펼치고 가장 먼저 읽게 된 부분에 두 장의 사진이 있다. 한 장은 해적과의 전쟁 끝에 잡힌 해적들을 참수한 후에 그들을 참수한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다. 그 사람들 자체는 문제없지만 그들의 발밑에는 목이 잘린 해적들의 시체가 놓여 있으며 당연히 그 주변에 해적들의 잘린 목이 뒹굴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두 번째 사진을 보면 어느 해적의 잘린 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목이 잘린 단면까지 슬며시 보이는 사진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제발 조작된 것이거나 그림이었으면 하는 기분인데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고 잘린 목의 단면이 묘하게 우둘투둘해보여서 더 기분이 안 좋아졌다. 두 장의 사진이 드러내는 것은 한 마디로 이렇다. 문학작품 속에 낭만적인 해적 같은 것은 실제로 없고, 잔인한 해적들과 그들을 잡으려는 군인들이 있다는 것뿐이다.

그 후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해적이 발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다른 도적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해적은 가난했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여유롭다면 누가 목숨을 걸고 도적질을 하겠는가. 해적은 가난해서 혹은 평화로워져서 해고된 선원이나 군인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도적집단이라고 한다. 단지 그 도적질의 장소가 바다인 것뿐이지 더 특별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해적들이 활개를 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나라에서 묵인해주었기 때문이다. 유럽 사람들의 입장에서 신세계였던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이후 당시 바다를 주름잡던 스페인은 그 곳에서 막대한 보물을 실어왔다. 그것을 해적들이 노렸고 스페인의 적대국가 역시 그 점을 노렸다. 해적들에게 정식으로 나포허가증을 주고 해적들이 훔쳐온 보물을 나눠가질 수 있다면 적대국의 부는 줄이고 자신들이 부를 늘릴 수 있다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허나 문제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해적은 애국심이라고는 없었고 자신의 탐욕에 치중했다. 공격대상이 주로 스페인 선박이기는 했지만 궁해지면 어느 나라 선박이든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적대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나면 해적들을 방치해서는 안 되는데 해적들은 통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적들이 늘어나게 된 이유를 설명한 이후에 유명한 해적을 여럿 알려 주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여성 해적인 앤 보니와 메리 리드의 이야기 였다. 해적으로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웠지만 끝내 잡힌 두 여해적은 교수형 선고가 내려지지만 임신 중이라는 이유로 풀려났다고 한다. 다만 메리 리드는 감옥에서 병에 걸려 죽었고 앤 보니는 풀려난 이후 사라졌다고 한다.

해적의 역사를 처음부터 훑어주기 때문에 내용이 풍부했던 것은 아주 좋았다. 하지만 읽을 때 내용이 조금 딱딱했고 첫 부분의 사진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거슬리기도 했다. 그래도 풍부하고 상세한 내용, 다양한 삽화가 곁들여져서 읽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낭만적 이미지로 덮여 있지만 실상은 잔혹한 범죄자일 뿐인 해적과 그들의 역사 '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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