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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금기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1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금기의 사전적 정의는 '꺼려서 싫어하거나 금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그렇기에 무리를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규율이 있다. 가장 흔한 것이라면 살인부터 온갖 죄들도 그렇고 지역마다 금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얼마 전 생각한 것은 '왜 밤에 휘파람을 불면 안된다'고 하는 것일까 였다. 그리고 그런 의문을 가지면서도 어느새 그런 금기에 익숙해져서 누군가 밤에 휘파람을 불면 거슬린다는 느낌을 받는 나 자신에 놀랐다.
이렇게 사회 속에는 수많은 금기가 숨어 있고 납득이 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으면서도 지키게 되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그런 금기를 지키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그런 상상력에 꽃을 피운 것이 바로 이 책 '수많은 금기'다. 일단 금기를 다룬 책이므로 내용은 주로 사람에 관한 것이다. 사람 사이의 금기가 외계인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아서인지 호시 신이치의 작품에서 많이 나오는 외계인의 방문이 이번 책에서는 벌어지지 않는다. 또한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라고 하기에는 한 작품의 분량이 꽤 되는 편이다. 전에는 3~4쪽이었다면 이번에는 10~20쪽 가량 된다. 더구나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는 이름을 N씨라고 붙이거나 해서 익명성을 살리고 모호한 시대, 모호한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번 책에 실려 있는 '도망가는 방'에서는 버젓이 세이지나 나츠코처럼 일본인 특유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렇다해서 호시 신이치 작품 특유의 즐거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책에 실린 첫 번째 이야기 '해결책'에서는 살인을 하고만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자신의 애인에게 도와달라고 전화를 하는데 집에 도착한 애인이 내놓은 해결책은 대담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끝은 기발한 편이고 이야기의 시작과 맞물려서 한 바퀴가 순환된다는 느낌이라서 묘한 감흥을 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도망가는 방'에서는 사랑의 도피를 한 남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남자는 예술가였고 여자는 유부녀, 추격자가 올 것을 두려워한 두 사람은 차라리 자신들의 사랑을 가슴에 안고 함께 죽자고 말한다. 그 후 어떻게 죽을지를 서로 논의하는데 자신들은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이 장면이 또 어쩐지 우스워서 웃게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어떻게 죽어야 낭만적인지를 말하면서 총, 단도, 독약을 차례로 꺼내놓는 것이다. 어설픈 동반 자살시도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 죽음에 낭만적인 것이 어디 있다는 걸까 하는 의문과 냉소가 떠오를 즈음 두 남녀가 묶고 있는 방의 벨소리가 울린다. 첫 번째 방문자는 어린 아이였지만 계속하여 벨이 울리고 어떻게든 낭만적인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두 사람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묘한 방향으로 번져가고 결말을 읽게 된 순간 유쾌하게 웃어버렸다.
책에 실린 마지막 작품은 '머리가 좋은 아이'였는데 부모가 이혼을 하고 나서 그 두 집을 오가면서 살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집에서나 행실이 훌륭한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 아이의 실체가 드러난 순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금기를 말하는 책이라서 이 책에는 수많은 금기를 범한 사람이 등장한다. 살인, 동반자살, 살인의 은폐와 사칭 등 많은 금기를 범한 사람이 나오지만 가장 오싹했던 것은 오히려 도덕적으로는 죄인이되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도 웃고 있는 '머리가 좋은 아이'의 등장인물 렌이었다. 무리 속에 조용히 숨어서 많은 것을 망가뜨리는 괴물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호시 신이치의 책을 잡게 되면 항상 설렌다. 어떤 내용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 책 '수많은 금기'역시 전형적인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 상상력만은 변함없었으며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내려놓을 수 없게 하는 흡입력 역시 그대로였다. 금기라는 주제로 담아낸 호시 신이치의 상상력 '수많은 금기' 정말 재밌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