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월 - 열대 오지에서 보낸 한 달
김수영 지음, 박병혁 사진 / 황소자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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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너무 가난했고 열심히 일했지만 먹고 살기도 빠듯했습니다. 소년은 견디다 못해 도시로 나갔고 도시에서 좀 더 나은 보수의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소년에게 운이 좋다고 했지만 소년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이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은 여전히 고된 것이었지만 소년은 더욱 노력했습니다.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었고 그런 청년의 능력을 눈여겨 본 사업가가 그에게 다른 일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청년은 이제 책임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성과를 올리는 그의 모습에 주변에서도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청년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사업가가 은퇴하고 그의 사업체를 인수한 청년, 아니 중년이 되어버린 그는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했고 그는 이제 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만족을 몰랐습니다. 좀 더 자신을 채찍질하고 위로 위로 향했습니다. 이제 그는 노인이 되었고, 죽음이 머지않은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평생을 행복하기 위해 살았지만 행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물어보면 '행복'이라고 답합니다. 간혹 '성공'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지만 성공하면 행복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행복한 인생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 셈입니다. 하지만 막상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만 더 가질 수 있다면, 저 자리까지 승진할 수 있다면 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걸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채워지지 않는 독을 붓다보면 행복하기란 요원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책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살지 말고 지금 당장 행복해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같은 일상을 살다보면 그게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매일 아침 깨어날 수 있음을 감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끔 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됩니다. 가장 소중한 보물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가족'이라고 답하게 됨에도 그 가족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거울로 마주하게 된 자신의 모습이 지치고 초라해 보일 때 더욱 휴식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이 책 '안식월'의 저자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시인임에도 먹고 사느라 대필 작가로 나섰고 그 과정에서 관심도 없었던 수많은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점점 지쳐갔고 어느새 쓰는 힘을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중반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생활에 지쳐갔던 겁니다. 저자의 어머니는 '도시락을 안 싸는 날이 그렇게 오길 바랐는데 막상 도시락을 싸지 않는 날이 오자 젊음이 다 지나갔다'는 한탄을 했다고 합니다. 일이 잔뜩 몰려 있는 것도 알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이 항상 충혈 되어 있고 아이들조차 무겁게 느껴진 그 순간 저자는 한 달간의 안식월을 가지기로 결정합니다.

사실 아이의 엄마라는 입장, 프리랜서로 일감이 몰려 있는 입장, 한 남자의 아내라는 입장에서 한 달간의 안식월을 결정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인생의 중반에 도달했을 뿐이니 아직 생은 길고 한 달을 쉬고 다음 반을 행복하게 지낼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녀는 또 놀라운 선택을 합니다. 안식월이라고 해서 한적한 곳에서 쉬다가 오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니라 고행을 하는 선승 같은 생활을 하고 싶어서 일체의 전자제품이 되지 않는 열대 오지에서 한 달을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살다보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꽤나 이입을 하면서 읽어 나갔습니다. 노트북 전지는 이미 방전되었고 어찌 된 일인지 노트북에서 개미가 나오는 상황에서 저자는 평안을 느낍니다. 현대사회와 완전한 단절이 된 상황이었던 겁니다. 책으로나마 그런 행적을 따라 가면서 잠깐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 특히 좋았습니다. 사진이 그리 많이 들어 있지 않지만 열대 오지에서의 생생한 한 달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마지막은 가족에게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그와 함께 현실로 돌아오면서 책을 덮었습니다. 일상 속의 짧은 휴식을 즐길 수 있었던 '안식월'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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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전 1
이종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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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미 어두워져 버린 골목길, 한 여자가 홀로 그 길을 걷고 있다. 매일 다니는 길인데도 어둠이 깔리고 나면 어둠 속에서 생명력을 얻는 것들이 있는지 골목의 모습조차 달라보였다. 집에만 들어가면, 집에만 들어가게 된다면 전부 별 일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여자는 위안하면서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뒤쪽에서 누군가의 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인적이 드문 한길, 자정이 가까운 시각, 늦은 퇴근자라도 있는 것일까 싶지만 여자의 온 몸은 살짝 경직된다. 더구나 마침 지나치는 곳의 전등은 깨져있다. 불안한 마음이 반영되어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따라오는 자의 발소리도 같이 빨라진다. 여자의 심장도 호흡도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뒤에 있는 자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과 두려움이 머릿속을 헝클어 놓아 버린 것이다.

공포가 가장 크게 다가올 때는 언제일까. 그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공격자의 혹은 잠재적 공격자의 정체를 알 수 없을 때다.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단순히 '치한'이라고 한정되어 있을 때와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뒤를 따라온다고 생각할 때의 두려움의 크기는 사뭇 다른 것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공포영화에서 두려움의 대상의 이름이 정해져 버렸을 때 그 공포는 줄어들어 버린다. 흡혈귀라면 십자가와 마늘을, 살인자라면 자신을 지킬 무기를 준비하고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물론 안 통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공포라는 감정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매체는 책이다. 불분명한 정체를 몇 줄의 글로 서서히 전해나가기 때문이다. 반면 영상을 통해 공포를 전달할 때는 서서히 조여 오는 공포라기보다 단순한 놀람과 혐오일 때가 많다. 일단 정체는 밝혀졌으니까 말이다. 이 책 귀신전은 그런 면에서는 좋기도 아쉽기도 했다. 단순 공포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제목이 귀신전이니 공포의 대상은 귀신으로 한정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대상이 귀신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귀신 특유의 특징이 남아 있어서 만족스럽기도 했다.

다른 나라 귀신과 다른 특색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 괴담 속의 귀신은 그렇데 된 원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퇴치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주인공도 퇴마사고 그 사람들의 기본 방침도 무조건적인 퇴치가 아니라 원령이 된 원인을 풀어서 성불시킨다고 하니 그 점은 딱이었다. 말하자면 퇴마사가 등장하기 전 알 수 없는 귀신이 희생자를 덮칠 때는 공포감이 잘 살아났고 정체를 알아버려서 공포감이 반감된 이후에는 퇴마사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되니 가볍게 읽기는 나쁘지 않았다.

더구나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이 '귀신전 1'에는 3가지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이야기가 각 화 별로 짤막하게 마무리가 되지만 그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어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단편의 즐거움도 장편의 즐거움도 다 누릴 수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퇴마사가 등장하는 것 치고는 가벼운 면이 많기도 했다. 일단 시리즈의 1권이다 보니 등장인물이 낯설기도 했고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이야기에서는 전의 이야기에 등장한 인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오는 터라 산만하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물론 재미로 치자면 책을 집어든 후에는 내려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었으니 뛰어난 편이었지만 워낙 기대했던 만큼 아쉬웠던 것이다. 허나 다음 권에는 이미 익숙해진 등장인물들인 도인 같은 느낌의 박영감, 그 제자인 장선일 법사, 사인검의 주인이지만 아직 그 실력이 검에 따라가지 못하는 오용만,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이코메트러인 차수정, 초능력자 홍공표가 힘을 더 해가는 악령들에 대항하기 위해 분주할 테고 그들이 다른 사건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또 그들이 미처 막지 못한 악령들이 어떻게 활개를 칠지 기대가 되기는 한다. 또 신입으로 들어 온 숙희가 어떤 변수가 될 지 궁금해서라도 다음 권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퇴마사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귀신이야기 '귀신전 1' 꽤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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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국가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3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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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주 작은 나라도 국가로 인정 받을 수 있지만 그럴 때 작다라는 기준은 적어도 도시 하나 크기는 되는 법이다. 그런데 그 국가의 크기가 한 사람의 집의 크기라면 어떻겠는가. 문패에 이상한 이름이 쓰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국가명을 적어 둔 것이었고 그 사람의 집에 무심코 들어 갔다가 간첩혐의를 받는다면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황당할 뿐일 것이다. 이번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3번째 권 '마이국가'에서 벌어진 일이 바로 그렇다.

책 한 권이 하나의 세계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의미이지 그 책을 펼쳤다고 해서 이계의 방문자 취급을 받는 일은 없다. 하지만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라면 그런 일은 능히 있을 수 있다.

우수한 사원으로 그 날에도 업무차 돌아다니고 있던 청년은 한 집 앞을 지나가게 된다. 그런데 집 안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고 젊은 혈기에 그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고통에 찬 환자가 있으면 도우려 했던 것인데 집 안에 들어가 보니 집주인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남의 집을 멋대로 들어갔으니 무례를 저지른 정도가 아니라 무단침입으로 잡혀가도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상황을 넘겨보고자 집주인에게 업무차 온 것 마냥 말을 건넨다. 그런데 집주인은 그의 실수를 눈 감아 주기로 한 것인지 도리어 술을 권한다. 원래대로라면 업무시간이므로 술을 거부해야 했지만 이쪽에서 실수를 한 입장이라 청년은 거절도 못하고 술을 들이켰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 술에는 약이 들어 있었고 집주인의 말에 따르면 이 집은 엄연히 독립국이라고 한다. 한 집이 국가라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고 항변하고 자신은 국경이 있는지 몰랐다고 항변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국경은 현관이며 그 쪽으로 들어왔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실 집이 독립국이라는 것 자체가 궤변이었지만 무단침입을 한 것이 맞기는 하니 그 괴상한 논리에 어느 정도 끌려가게 된 것이다.

거기에 자신은 나름대로 관대해서 국경에서 가까운 지대, 현관 근처까지만 들어오면 실수로 생각하고 풀어줄 수 있지만 국가의 중심까지 들어왔으니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집주인은 말한다. 청년은 어떻게든 그 집에서 도망치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청년의 운명은 독립국의 주인을 자처한 집주인의 손에 있게 되었다.

사실 책 제목이 마이국가라서 국가를 비꼬는 각양각색의 쇼트 쇼트가 가득할 줄 알았다.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 중에서 외계에서 기묘한 손님이 방문하고 국가가 우스꽝스러운 대응을 해서 결국 비웃음을 사는 내용의 것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국가는 이 책에 수록된 쇼트 쇼트 중의 하나이고 어느 정신질환자가 자신이 소유한 독립국이라고 주장하는 곳의 이름일 뿐이었다.

청년의 운명이 기구하기는 했지만 또 몇 번의 뒤집힘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기묘하게 마무리가 된다. 그 외에도 인상적인 이야기는 '변명하는 유키베'가 있었다. 단순히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변명을 하는 유키베라는 남자의 이야기였는데 그 변명의 수준이 가히 예술이라고 할 정도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쇼트 쇼트 치고는 살짝 긴 편이었고 등장인물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특징을 어긴 이야기임에도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다른 기술도 아니고 변명으로 하늘 끝까지 올라갈 것 같은 사람의 이야기라니 흥미로웠던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들도 흥미로웠지만 특히 '죽고 싶어 하는 남자'와 '형사라고 칭하는 남자'는 살짝 추리소설의 냄새가 나서 더욱 신선하게 읽을 수 있었다. 호시 신이치의 짧은 이야기 속에서 절묘하게 상상력을 뒤집는 솜씨를 좋아한다면 이번 '마이국가' 역시 매우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세간에는 결코 인정되지 않을 독립국의 포로가 되어버린 청년의 이야기가 수록된 '마이국가'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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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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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음악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사람에게 음악이 미치는 영향력은 큰 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심코 듣게 된 노래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멤돌고 잊은 줄 알았던 노래가 가사까지 정확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멤도는 것은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다고 치고 음악이 감정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 기분이 좋을 때보다 기분이 나쁠 때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새 기분이 어느 정도 나아져 있다. 듣는 음악이 아주 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음악을 오래 듣다보면 머리가 아플 때가 있다. 음악을 끄면 서서히 가라앉을 수도 있는데 그게 묘하기도 하다. 음악이 두통을 유발하는 거라면 음악을 듣고 싶지 않을 텐데 무심코 음악을 틀고 또 그런 일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람은 태어나서 수많은 음악을 들으면서 살아간다. 근엄한 어른이 묘한 CM송을 흥얼거리기도 하고 음악에 숨은 메시지가 숨어 있다면서 자살한 사람들이 나오기도 한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음악과 그 음악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책 '뮤지코필리아'다. 저자가 신경과 전문의라서 주로 음악과 뇌에 관한 이야기에 국한되어 있는데 그것이 아주 흥미롭다. 그저 흘려듣는 음악에 '홀린'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음악을 소음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음악에 의해 잃어버린 기억을 잠시 떠올리는 사람들 같이 특이한 경우가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 중 몇 가지만 예로 들자면 윌리엄스 증후군에 걸린 아이들이 나온다.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윌리엄스 증후군 아이가 등장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사람에 대한 과도한 친화력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었다. 자신이 만나게 된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으며 청각이 매우 예민하다. 드라마에서는 증언자로 등장한 아이가 들은 이야기에 과도한 이입을 하면서 그대로 말하는 것이었지만 그 아이의 지능이 부족해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윌리엄스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의 지능은 높지 않고 음악이 없다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무리가 있다. 그런데 음악이 있어서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 돌보아주는 사람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이 뇌의 많은 부분과 관계하고 있고 어느 한 쪽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예로는 음악을 매우 즐기는 사람이었지만 어느 날 음악을 들으니 그것이 거대한 소음으로 들린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인간의 뇌 중에서 많은 부분이 음악을 듣기 위해 정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면 만약 어느 작은 부분의 이상이 생기면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소음에 지나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음악증에 걸린 사람들은 음악을 분간하지 못한다. 음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으며 그 사람에게 음악은 무의미한 소음덩어리일 뿐이다. 그나마 그들이 구분할 수 있는 음악은 가사가 있는 노래에 한정되는데 그것도 음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로 간신히 따라갈 뿐이다. 매일 아무렇지 않게 누리고 있는 음악의 즐거움이 고통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신선하기도 하고 두려운 느낌이었다. 뇌의 많은 부분이 음악을 위해 움직여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라면 누구든 실음악증에 걸릴 확률도 있다는 것 아닌가.

그것 외에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의 이야기였다.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그는 항상 같은 날을 살아간다. 예전의 기억도 대부분 사라졌고 평범한 일상이란 있을 수 없다. 자신이 말하듯 그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지도 모른다. 항상 변해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만이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도 변할 수도 없는 처지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뇌 깊은 곳에 자리해버린 것인지 그의 아내만은 그가 잊지 않는다는 것과 노래할 때만은 그가 정상인처럼 보인다는 것은 서글프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나이 든다는 것이 두려운 이유 중에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들 수 있는데 그런 치매 환자가 대부분의 행동을 '잊었지만' 음악을 틀고 어느 행동을 하게 하면 무심결에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음악은 뇌의 많은 부분을 이용해서 듣게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근육으로 듣기도 한다는 것이다. 걷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에게 예전처럼 걷게 할 때 음악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좋아하는 편이지만 간과하고 있던 음악의 위력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잊어버린 행동을 하게하고 손상된 본성을 회복시키고 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 책 '뮤지코필리아'에서는 음악과 뇌의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 허나 책의 모든 부분이 이론에 대한 것이기보다 다양한 사례로 채워져 있어서 읽기고 쉬운 편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음악의 거대한 힘이 얼마나 인간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는지에 놀라고, 그 음악을 누릴 수 있다는 기쁨을 떠올리다보면 책은 마지막 장에 와 있었다. 뇌와 음악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 '뮤지코필리아'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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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와 소름마법사 1
발터 뫼르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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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먹는다는 것은 생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에 하나다. 워낙 기본이라서 소중한 것을 잊고 살기 십상이지만 하루만 굶어봐도 뱃속에서 천둥이 치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유독 배고프다는 소리에 움찔하게 된다. 기본적인 요소조차도 채워지지 않는 것에 대한 연민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사악한 존재일 것이다.

여기 곤란한 상항에 처한 코양이 한 마리가 있다. 고양이가 아니라 코양이 한 마리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코양이는 고양이와 유사한 생김새를 지닌 동물이지만 간을 두 개 가지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말을 할 수 있다. 간이 두 개인 것을 어디에 쓰겠나 싶지만 작은 동물임에도 술을 마셔도 큰 문제가 없으며 나름 두둑한 배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 분명 쓸모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외에도 전개과정에서 밝혀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코양이 한 마리는 굶어죽기 직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에 자신을 매우 귀여워하던 주인 할머니가 죽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놀라워하시기는 했지만 그것에 대해서 크게 괘념치 않고 그를 귀여워하시며 '에코'라는 이름을 붙여 준 할머니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일은 할머니에게도 불행이었지만 에코에게도 큰 불행이었다. 새로 집에 살게 된 사람은 에코를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에코는 거리에 내몰리게 된다. 굶어죽게 생긴 코양이 한 마리, 지나가는 사람 누군가는 동정의 손길을 뻗을 만도 하건만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왜냐하면 에코가 살고 있는 도시 슬레트바야는 병든 자들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도시 밖에 있는 무당개구리 숲에는 죽은 자들의 시체나 묘비가 수두룩했고 도시 안도 사정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죽어가고 있는 자, 앓고 있는 자만 득실거리고 병원과 약국만 가득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이 배고픔으로 죽어가고 있는 가련한 동물에게 관심을 가질리 만무했다. 결국 길 한쪽에 늘어져 죽음을 기다리는 입장이 된 에코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병든 자들의 도시 슬레트바야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인물이라 해도 말이다.

슬레트바야에는 대체의학을 행하는 소름마녀가 있었는데 그런 소름마녀의 관리자가 소름마법사 아이스핀이었다. 굉장히 많은 법률로 소름마녀를 학대하는 소름마법사 아이스핀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부 그를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그런 소름마법사의 앞길을 감히 막은 짐승이 에코였고 에코는 약간의 동정이라도 구해보려 아이스핀에게 말을 붙였는데 놀랍게도 그가 흥미를 보인 것이다.

방금까지는 에코가 죽어가고 있음을 달갑게 느끼던 그가 에코가 말을 했다는 사실에 반색을 한다. 마침 실험에 코양이 기름이 필요했는데 슬레트바야 마지막 코양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가 실험에 쓸 코양이 기름은 코양이의 자발적 동의가 있어야 하고 죽여서 얻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어려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아이스핀은 에코에게 이런 제의를 한다. 다음 소름보름이 될 때까지 한 달 동안 미식이란 미식은 전부 먹을 수 있게 하고 세상의 즐거움을 가득 맛보게 해줄 터이니 코양이 기름을 얻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즉, 한 달 동안을 배부르게 먹여 줄 테니 에코의 목숨과 바꾸자는 것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아직은 미치지 않았던 에코는 처음에는 이 사악한 연금술사의 제안을 거부한다. 그러자 아이스핀은 싸늘하게 비웃으면서 그렇다면 며칠 내로 굶어 죽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사실을 곰곰이 하지만 절박하게 떠올린 에코는 어차피 삼 일 내로 굶어죽느니 차라리 한 달 동안 배부르게 먹은 후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에코는 아이스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의 성에 가서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 이때부터 연금술사 아이스핀과 슬레트바야 마지막 코양이 에코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계약에 의해서 한 달 후 자신을 죽이려는 자와의 동거라니 오싹한 소재였다. 고양이와 비슷한 외모지만 능력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코양이라는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에코와 소름마법사'가 작가의 전작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주인공 미텐메츠가 쓴 책으로 되어 있는 것이 더 특이했다. 미텐메츠가 요리동화집을 다시 쓴 것으로 나와서 그런지 이번 '에코와 소름마법사'는 상당히 동화적인 색채가 짙다. 몇 가지 새로운 느낌을 주는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굶주림으로 인해서 곤란한 상황에 빠져 버린 동물과 그를 죽이려는 사악한 연글술사의 대결구도가 그런 느낌을 더했다.

거기에 에코의 목숨을 사이에 두고 긴장관계가 형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연금술사와 코양이의 관계가 점차 변해가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자기 목숨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인물과의 교감, 그것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쌓아가는 것이라 더 묘한 맛이 있었다. 전작의 감흥을 뒤덮을 정도는 아니지만 흥미로운 소재를 팽팽한 긴장감 속에 풀어나가는 '에코와 소름마법사'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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