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와 소름마법사 1
발터 뫼르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먹는다는 것은 생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에 하나다. 워낙 기본이라서 소중한 것을 잊고 살기 십상이지만 하루만 굶어봐도 뱃속에서 천둥이 치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유독 배고프다는 소리에 움찔하게 된다. 기본적인 요소조차도 채워지지 않는 것에 대한 연민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사악한 존재일 것이다.

여기 곤란한 상항에 처한 코양이 한 마리가 있다. 고양이가 아니라 코양이 한 마리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코양이는 고양이와 유사한 생김새를 지닌 동물이지만 간을 두 개 가지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말을 할 수 있다. 간이 두 개인 것을 어디에 쓰겠나 싶지만 작은 동물임에도 술을 마셔도 큰 문제가 없으며 나름 두둑한 배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 분명 쓸모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외에도 전개과정에서 밝혀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코양이 한 마리는 굶어죽기 직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에 자신을 매우 귀여워하던 주인 할머니가 죽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놀라워하시기는 했지만 그것에 대해서 크게 괘념치 않고 그를 귀여워하시며 '에코'라는 이름을 붙여 준 할머니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일은 할머니에게도 불행이었지만 에코에게도 큰 불행이었다. 새로 집에 살게 된 사람은 에코를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에코는 거리에 내몰리게 된다. 굶어죽게 생긴 코양이 한 마리, 지나가는 사람 누군가는 동정의 손길을 뻗을 만도 하건만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왜냐하면 에코가 살고 있는 도시 슬레트바야는 병든 자들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도시 밖에 있는 무당개구리 숲에는 죽은 자들의 시체나 묘비가 수두룩했고 도시 안도 사정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죽어가고 있는 자, 앓고 있는 자만 득실거리고 병원과 약국만 가득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이 배고픔으로 죽어가고 있는 가련한 동물에게 관심을 가질리 만무했다. 결국 길 한쪽에 늘어져 죽음을 기다리는 입장이 된 에코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병든 자들의 도시 슬레트바야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인물이라 해도 말이다.

슬레트바야에는 대체의학을 행하는 소름마녀가 있었는데 그런 소름마녀의 관리자가 소름마법사 아이스핀이었다. 굉장히 많은 법률로 소름마녀를 학대하는 소름마법사 아이스핀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부 그를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그런 소름마법사의 앞길을 감히 막은 짐승이 에코였고 에코는 약간의 동정이라도 구해보려 아이스핀에게 말을 붙였는데 놀랍게도 그가 흥미를 보인 것이다.

방금까지는 에코가 죽어가고 있음을 달갑게 느끼던 그가 에코가 말을 했다는 사실에 반색을 한다. 마침 실험에 코양이 기름이 필요했는데 슬레트바야 마지막 코양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가 실험에 쓸 코양이 기름은 코양이의 자발적 동의가 있어야 하고 죽여서 얻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어려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아이스핀은 에코에게 이런 제의를 한다. 다음 소름보름이 될 때까지 한 달 동안 미식이란 미식은 전부 먹을 수 있게 하고 세상의 즐거움을 가득 맛보게 해줄 터이니 코양이 기름을 얻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즉, 한 달 동안을 배부르게 먹여 줄 테니 에코의 목숨과 바꾸자는 것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아직은 미치지 않았던 에코는 처음에는 이 사악한 연금술사의 제안을 거부한다. 그러자 아이스핀은 싸늘하게 비웃으면서 그렇다면 며칠 내로 굶어 죽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사실을 곰곰이 하지만 절박하게 떠올린 에코는 어차피 삼 일 내로 굶어죽느니 차라리 한 달 동안 배부르게 먹은 후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에코는 아이스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의 성에 가서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 이때부터 연금술사 아이스핀과 슬레트바야 마지막 코양이 에코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계약에 의해서 한 달 후 자신을 죽이려는 자와의 동거라니 오싹한 소재였다. 고양이와 비슷한 외모지만 능력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코양이라는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에코와 소름마법사'가 작가의 전작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주인공 미텐메츠가 쓴 책으로 되어 있는 것이 더 특이했다. 미텐메츠가 요리동화집을 다시 쓴 것으로 나와서 그런지 이번 '에코와 소름마법사'는 상당히 동화적인 색채가 짙다. 몇 가지 새로운 느낌을 주는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굶주림으로 인해서 곤란한 상황에 빠져 버린 동물과 그를 죽이려는 사악한 연글술사의 대결구도가 그런 느낌을 더했다.

거기에 에코의 목숨을 사이에 두고 긴장관계가 형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연금술사와 코양이의 관계가 점차 변해가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자기 목숨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인물과의 교감, 그것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쌓아가는 것이라 더 묘한 맛이 있었다. 전작의 감흥을 뒤덮을 정도는 아니지만 흥미로운 소재를 팽팽한 긴장감 속에 풀어나가는 '에코와 소름마법사'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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