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귀신전 1
이종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이미 어두워져 버린 골목길, 한 여자가 홀로 그 길을 걷고 있다. 매일 다니는 길인데도 어둠이 깔리고 나면 어둠 속에서 생명력을 얻는 것들이 있는지 골목의 모습조차 달라보였다. 집에만 들어가면, 집에만 들어가게 된다면 전부 별 일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여자는 위안하면서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뒤쪽에서 누군가의 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인적이 드문 한길, 자정이 가까운 시각, 늦은 퇴근자라도 있는 것일까 싶지만 여자의 온 몸은 살짝 경직된다. 더구나 마침 지나치는 곳의 전등은 깨져있다. 불안한 마음이 반영되어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따라오는 자의 발소리도 같이 빨라진다. 여자의 심장도 호흡도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뒤에 있는 자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과 두려움이 머릿속을 헝클어 놓아 버린 것이다.
공포가 가장 크게 다가올 때는 언제일까. 그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공격자의 혹은 잠재적 공격자의 정체를 알 수 없을 때다.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단순히 '치한'이라고 한정되어 있을 때와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뒤를 따라온다고 생각할 때의 두려움의 크기는 사뭇 다른 것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공포영화에서 두려움의 대상의 이름이 정해져 버렸을 때 그 공포는 줄어들어 버린다. 흡혈귀라면 십자가와 마늘을, 살인자라면 자신을 지킬 무기를 준비하고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물론 안 통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공포라는 감정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매체는 책이다. 불분명한 정체를 몇 줄의 글로 서서히 전해나가기 때문이다. 반면 영상을 통해 공포를 전달할 때는 서서히 조여 오는 공포라기보다 단순한 놀람과 혐오일 때가 많다. 일단 정체는 밝혀졌으니까 말이다. 이 책 귀신전은 그런 면에서는 좋기도 아쉽기도 했다. 단순 공포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제목이 귀신전이니 공포의 대상은 귀신으로 한정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대상이 귀신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귀신 특유의 특징이 남아 있어서 만족스럽기도 했다.
다른 나라 귀신과 다른 특색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 괴담 속의 귀신은 그렇데 된 원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퇴치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주인공도 퇴마사고 그 사람들의 기본 방침도 무조건적인 퇴치가 아니라 원령이 된 원인을 풀어서 성불시킨다고 하니 그 점은 딱이었다. 말하자면 퇴마사가 등장하기 전 알 수 없는 귀신이 희생자를 덮칠 때는 공포감이 잘 살아났고 정체를 알아버려서 공포감이 반감된 이후에는 퇴마사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되니 가볍게 읽기는 나쁘지 않았다.
더구나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이 '귀신전 1'에는 3가지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이야기가 각 화 별로 짤막하게 마무리가 되지만 그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어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단편의 즐거움도 장편의 즐거움도 다 누릴 수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퇴마사가 등장하는 것 치고는 가벼운 면이 많기도 했다. 일단 시리즈의 1권이다 보니 등장인물이 낯설기도 했고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이야기에서는 전의 이야기에 등장한 인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오는 터라 산만하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물론 재미로 치자면 책을 집어든 후에는 내려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었으니 뛰어난 편이었지만 워낙 기대했던 만큼 아쉬웠던 것이다. 허나 다음 권에는 이미 익숙해진 등장인물들인 도인 같은 느낌의 박영감, 그 제자인 장선일 법사, 사인검의 주인이지만 아직 그 실력이 검에 따라가지 못하는 오용만,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이코메트러인 차수정, 초능력자 홍공표가 힘을 더 해가는 악령들에 대항하기 위해 분주할 테고 그들이 다른 사건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또 그들이 미처 막지 못한 악령들이 어떻게 활개를 칠지 기대가 되기는 한다. 또 신입으로 들어 온 숙희가 어떤 변수가 될 지 궁금해서라도 다음 권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퇴마사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귀신이야기 '귀신전 1' 꽤 재밌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