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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월 - 열대 오지에서 보낸 한 달
김수영 지음, 박병혁 사진 / 황소자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너무 가난했고 열심히 일했지만 먹고 살기도 빠듯했습니다. 소년은 견디다 못해 도시로 나갔고 도시에서 좀 더 나은 보수의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소년에게 운이 좋다고 했지만 소년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이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은 여전히 고된 것이었지만 소년은 더욱 노력했습니다.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었고 그런 청년의 능력을 눈여겨 본 사업가가 그에게 다른 일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청년은 이제 책임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성과를 올리는 그의 모습에 주변에서도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청년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사업가가 은퇴하고 그의 사업체를 인수한 청년, 아니 중년이 되어버린 그는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했고 그는 이제 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만족을 몰랐습니다. 좀 더 자신을 채찍질하고 위로 위로 향했습니다. 이제 그는 노인이 되었고, 죽음이 머지않은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평생을 행복하기 위해 살았지만 행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물어보면 '행복'이라고 답합니다. 간혹 '성공'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지만 성공하면 행복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행복한 인생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 셈입니다. 하지만 막상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만 더 가질 수 있다면, 저 자리까지 승진할 수 있다면 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걸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채워지지 않는 독을 붓다보면 행복하기란 요원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책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살지 말고 지금 당장 행복해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같은 일상을 살다보면 그게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매일 아침 깨어날 수 있음을 감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끔 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됩니다. 가장 소중한 보물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가족'이라고 답하게 됨에도 그 가족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거울로 마주하게 된 자신의 모습이 지치고 초라해 보일 때 더욱 휴식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이 책 '안식월'의 저자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시인임에도 먹고 사느라 대필 작가로 나섰고 그 과정에서 관심도 없었던 수많은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점점 지쳐갔고 어느새 쓰는 힘을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중반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생활에 지쳐갔던 겁니다. 저자의 어머니는 '도시락을 안 싸는 날이 그렇게 오길 바랐는데 막상 도시락을 싸지 않는 날이 오자 젊음이 다 지나갔다'는 한탄을 했다고 합니다. 일이 잔뜩 몰려 있는 것도 알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이 항상 충혈 되어 있고 아이들조차 무겁게 느껴진 그 순간 저자는 한 달간의 안식월을 가지기로 결정합니다.
사실 아이의 엄마라는 입장, 프리랜서로 일감이 몰려 있는 입장, 한 남자의 아내라는 입장에서 한 달간의 안식월을 결정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인생의 중반에 도달했을 뿐이니 아직 생은 길고 한 달을 쉬고 다음 반을 행복하게 지낼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녀는 또 놀라운 선택을 합니다. 안식월이라고 해서 한적한 곳에서 쉬다가 오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니라 고행을 하는 선승 같은 생활을 하고 싶어서 일체의 전자제품이 되지 않는 열대 오지에서 한 달을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살다보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꽤나 이입을 하면서 읽어 나갔습니다. 노트북 전지는 이미 방전되었고 어찌 된 일인지 노트북에서 개미가 나오는 상황에서 저자는 평안을 느낍니다. 현대사회와 완전한 단절이 된 상황이었던 겁니다. 책으로나마 그런 행적을 따라 가면서 잠깐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 특히 좋았습니다. 사진이 그리 많이 들어 있지 않지만 열대 오지에서의 생생한 한 달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마지막은 가족에게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그와 함께 현실로 돌아오면서 책을 덮었습니다. 일상 속의 짧은 휴식을 즐길 수 있었던 '안식월'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