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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국가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3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아주 작은 나라도 국가로 인정 받을 수 있지만 그럴 때 작다라는 기준은 적어도 도시 하나 크기는 되는 법이다. 그런데 그 국가의 크기가 한 사람의 집의 크기라면 어떻겠는가. 문패에 이상한 이름이 쓰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국가명을 적어 둔 것이었고 그 사람의 집에 무심코 들어 갔다가 간첩혐의를 받는다면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황당할 뿐일 것이다. 이번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3번째 권 '마이국가'에서 벌어진 일이 바로 그렇다.
책 한 권이 하나의 세계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의미이지 그 책을 펼쳤다고 해서 이계의 방문자 취급을 받는 일은 없다. 하지만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라면 그런 일은 능히 있을 수 있다.
우수한 사원으로 그 날에도 업무차 돌아다니고 있던 청년은 한 집 앞을 지나가게 된다. 그런데 집 안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고 젊은 혈기에 그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고통에 찬 환자가 있으면 도우려 했던 것인데 집 안에 들어가 보니 집주인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남의 집을 멋대로 들어갔으니 무례를 저지른 정도가 아니라 무단침입으로 잡혀가도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상황을 넘겨보고자 집주인에게 업무차 온 것 마냥 말을 건넨다. 그런데 집주인은 그의 실수를 눈 감아 주기로 한 것인지 도리어 술을 권한다. 원래대로라면 업무시간이므로 술을 거부해야 했지만 이쪽에서 실수를 한 입장이라 청년은 거절도 못하고 술을 들이켰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 술에는 약이 들어 있었고 집주인의 말에 따르면 이 집은 엄연히 독립국이라고 한다. 한 집이 국가라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고 항변하고 자신은 국경이 있는지 몰랐다고 항변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국경은 현관이며 그 쪽으로 들어왔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실 집이 독립국이라는 것 자체가 궤변이었지만 무단침입을 한 것이 맞기는 하니 그 괴상한 논리에 어느 정도 끌려가게 된 것이다.
거기에 자신은 나름대로 관대해서 국경에서 가까운 지대, 현관 근처까지만 들어오면 실수로 생각하고 풀어줄 수 있지만 국가의 중심까지 들어왔으니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집주인은 말한다. 청년은 어떻게든 그 집에서 도망치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청년의 운명은 독립국의 주인을 자처한 집주인의 손에 있게 되었다.
사실 책 제목이 마이국가라서 국가를 비꼬는 각양각색의 쇼트 쇼트가 가득할 줄 알았다.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 중에서 외계에서 기묘한 손님이 방문하고 국가가 우스꽝스러운 대응을 해서 결국 비웃음을 사는 내용의 것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국가는 이 책에 수록된 쇼트 쇼트 중의 하나이고 어느 정신질환자가 자신이 소유한 독립국이라고 주장하는 곳의 이름일 뿐이었다.
청년의 운명이 기구하기는 했지만 또 몇 번의 뒤집힘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기묘하게 마무리가 된다. 그 외에도 인상적인 이야기는 '변명하는 유키베'가 있었다. 단순히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변명을 하는 유키베라는 남자의 이야기였는데 그 변명의 수준이 가히 예술이라고 할 정도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쇼트 쇼트 치고는 살짝 긴 편이었고 등장인물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특징을 어긴 이야기임에도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다른 기술도 아니고 변명으로 하늘 끝까지 올라갈 것 같은 사람의 이야기라니 흥미로웠던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들도 흥미로웠지만 특히 '죽고 싶어 하는 남자'와 '형사라고 칭하는 남자'는 살짝 추리소설의 냄새가 나서 더욱 신선하게 읽을 수 있었다. 호시 신이치의 짧은 이야기 속에서 절묘하게 상상력을 뒤집는 솜씨를 좋아한다면 이번 '마이국가' 역시 매우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세간에는 결코 인정되지 않을 독립국의 포로가 되어버린 청년의 이야기가 수록된 '마이국가'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