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분 1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위대한 조각가는 커다란 암석을 보았을 때 그 안에 숨어 있는 형상을 본다고 한다. 그 모습에 맞게 조금씩 깎아 내다보면 숨어 있는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악이 의외로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무수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그 선택은 자신에게 또는 타인에게 어떤 흔적을 남긴다. 그 행동은 위대한 조각가가 할 만한 행동일수도, 모든 좋은 부분을 도려내고 끔찍한 형상만 남기는 행동일수도 있다. 끔찍한 살인범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한다. 그 악당은 과연 태어나서부터 사악했을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자신이 한 행동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었을까.
이 책 <19분>은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스털링이라는 작은 마을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나 열 명의 고등학생이 사망하고 열아홉 명의 고등학생이 부상을 입었으며 피터 호턴이라는 소년이 범인으로 체포된다. 단순히 사건만을 들여다보자면 피터 호턴이라는 소년은 열 명의 사람을 죽인 살인자다. 마을 사람들은 주저 없이 그를 괴물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부모 역시 그가 그날 아침까지 자신들이 사랑했던 그 소년이란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저자는 그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소설이 하나의 시점과 삶의 단면을 드러낸다면 이 책에서 누가 누구를 용서하거나 선이다 악이다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단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를 시간을 옮겨 다니며 보여준다. 피터 호턴의 엄마 레이시 호턴은 조산사로 수많은 생명을 태어나는 일을 도왔다. 그녀에게 근심이 있었다면 어디든 잘 적응하는 큰 아들 조이에 비해서 피터는 섬세한 아이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조이의 영향으로 피터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극복할 수 있는 일로 생각했다. 피터가 서른 살이 되었다면 그 일들은 극복할 수 있는 일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인생 속의 작은 조각에 불과한 학창시절이 그 안에 있는 동안에는 끝나지 않을 일 같다는 것을 간과했다. 피터는 독특한 아이였고 쉽사리 '주류'인 아이들에게 적응하지 못했다. 유치원에 가는 첫 날 도시락 통이 창밖으로 던져지고 피터는 이후 내내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물론 기회는 있었다. 인기 있는 아이들은 인기 없는 아이들이 없다면 존재하지 못한다.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인기 있는 아이들이 인기 없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행동이야말로 자신의 존재와 권력을 재확인하는 행위인 것이다. 피터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괴롭히며 '주류'에 낄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그것을 거부한다. 그가 독특하지만 좋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점점 모든 게 뒤틀린다. 괴롭힘은 계속되고 복도를 걸을 때 누군가에게 밀쳐지지 않고 걸을 때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12년, 피터는 전대미문의 총기난사 사고를 일으킨다. 자신을 괴롭히고 모욕을 준 아이들 전부에게 총을 쏜다. 그 애가 인기 있는 아이들 중에서 살려주기로 결심한 사람은 단 한 명, 어린 시절의 친구인 조지 코미어뿐이다. 그리고 말한다. 그 애들이 자신을 별종이라면서 괴롭혔고 그 애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움직여 줬다고 말이다. 타인에 의해서, 자신에 의해서 조각된 괴물이 입을 연 순간이었다. 학창시절 교실 안, 그 작은 공간에는 온갖 감정이 휘몰아친다. 성인이 된 이후에 바뀌는 거라고는 그 감정을 능숙하게 숨기는 것뿐이지만 미숙한 아이들은 그 감정을 누르지도 조절할 생각도 없다.
안전핀을 잃어버린 감정을 분출한 19분은 세상을 정지시키고 그 곳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조차도 어딘가 부서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곳에 있던 사람이 아니면 결코 이해하지 못하며 살아남은 모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총기난사범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숨은 의문이 어떻게 터져 나가는지와 살인범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조마조마할 때가 많았다. 아이들의 부모인 어른들조차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터라 읽으면서 불안감에 계속 시달렸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 흑과 백이 아닌 회색의 단면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했던 행동은 과연 어떤 흔적을 남겼을지 점차 두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