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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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에서 표절의혹을 받는 만화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팬은 작품에는 세계관과 그림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가 만든 이야기, 대사에 작가의 생각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작가의 생각 즉 작가 자체는 비슷할래야 비슷할 수 없는 진품이라는 말이었다. 글에는 알게 모르게 쓴 사람의 생각이 담기게 마련이다. 사람을 특정 짓는 것은 이름이지만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나누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생각 역시 그 사람이 자란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결국 지우려 해도 그가 속한 문화의 느낌이 배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 <창비세계문학 미국편 - 필경사 바틀비>에 담긴 것은 11개의 단편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작가 자신이고 동시에 그가 속해있던 나라였다. 영국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것이 안개였다면 미국의 경우에는 흙먼지였다. 누군가 황야를 질주하면서 남긴 것 말이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나라를 일군 역동성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다.

물론 너새니얼 호손의 <젊은 굿맨 브라운>,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샬롯 퍼킨스의 <누런 벽지>,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은 역동성 이전에 기괴한 느낌이 남기는 했다. <젊은 굿맨 브라운>의 경우에는 한 청년이 금지된 숲속으로 접어든다. 그는 지극히 신실한 남자로 그가 왜 그런 곳에 발을 들이기로 결정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페이스라는 이름의 아내를 두고 길을 나선 것으로 보아 그가 신앙에서 발을 돌리기 시작한 것에 대한 은유로 보였다. 청년은 기묘한 남자와 동행을 하는데 남자의 말하는 투를 보아하니 남자는 악마인 것 같았다. 청년은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숱하게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려 하지만 그 믿음은 번번이 깨어진다. 하기야 그렇게 믿는 바가 탄탄하다면 당장 발을 돌려야 할 텐데 청년은 악마와의 동행 길에서 발을 돌리지 않는다.

여러 번 읽어서 익숙한 <검은 고양이>의 경우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 섬뜩한 느낌이 잘 살아 있었고 <누럭 벽지>의 경우 페미니즘을 생각하기에 앞서 믿을 수 없는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점차 비틀린 집에 혼자 남는 것 같은 기분을 맛봤다. 마지막 단편인 <에밀리에게 장미를>은 시대의 흐름에서 낙오되어 혼자 남고만 미스 에밀리에 대한 동정을 품다가 마지막 철회색 머리카락을 발견한 순간의 오싹함이 더해지면서 그녀를 동정해야 할 지 두려워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졌다.

다행히 이 네 편의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유쾌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마크 트웨인의 <캘레바래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는 들려주는 노인의 입담에 허풍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재미있게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찰스 W. 체스넛의 <그래디썬의 위장>이었다. 혼혈로 흑인의 감성을 품고 있던 저자가 남부 노예주와 노예 간의 이야기를 풍자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특히 그래디썬의 철저한 위장과 마지막 부분에 노예주가 종주먹을 들게 하는 부분이 좋았다.

그 외에도 청교도 국가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과 특유의 떠들썩한 허풍이 잘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단편 하나하나는 거장의 솜씨지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저 흥미로웠을 뿐이었던 것이다. 진짜가 오히려 가짜에 밀리는 상황을 독특한 감성으로 그려낸 <진품>도 그런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단편 소설을 좋아한다. 그 휘황한 상상력에 짧은 꿈을 꾸었다가 깨고 난 이후에 남는 여운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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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가든파티 - 영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캐서린 맨스필드 외 지음, 김영희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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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읽었던 추리 소설 중에서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날에 외출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었다. 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집을 나서면 돌아오기 어려울 정도인 몽환적인 이야기였다. 남자는 집을 잘못 찾아 의외의 사건을 목격하게 되지만 안개가 걷힌 이후 사건의 진실에 다가선다는 내용이었다. 때로 단편 소설을 볼 때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단편 소설의 특성상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이야기 전개에 안개 속을 헤매고 다니는 기분이 든다. 더욱이 기상천외한 결말을 맞을 때는 안개에 홀려 엉뚱한 집에 들어간 남자의 기분이 되고 만다.

이 책 <창비세계문학 영국편 - 가든파티>는 그런 단편 11편을 모아둔 단편집이다. 찰스 디킨즈부터 버지니어 울프까지 익숙한 작가들의 단편이라 마음 편하게 책장을 열게 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안개 속을 헤매게 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 와중에도 시대의 흐름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니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든 셈이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개성적인 인물구성이 더 놀라운 찰스 디킨즈의 <신호수> 같은 경우에는 유령을 등장시켜 호기심을 고조시킨다. 외딴 곳에 위치한 오두막과 그 안에서 신호수로 일하고 있는 남자의 기괴한 경험담을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충격적 결말에 이르기까지 안개 속의 벼락이란 느낌이었다.

앞부분에 실린 <신호수>와 <오그라든 팔>같은 경우 초자연적인 것을 소재로 끌어들인 것이 특색인데 <신호수>에서는 알 수 없는 유령이 미래를 경고한다면 <오그라든 팔>에서는 몽마가 등장한다. 연적을 꿈에서 만나고 그녀를 요괴라 판단한 여인은 자신이 살기 위해 몽마를 공격한다. 그런데 현실의 연적이 자신이 반격한 바로 그 곳을 다쳐 있고 그 부분이 오그라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연적이 악마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사악한 술수를 부려 낫지 않는 병을 그녀에게 덧씌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더 곤란했던 것은 두 여인이 서로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호감이 차가운 증오로 바뀌고 운명은 그들을 비틀린 곳으로 끌어다 둔다.

반면 <유품>, <차표 주세요>, <가든파티>, <지붕 위의 여자> 같은 경우에는 현실감이 잘 살아 있어 안개 속을 헤매다 이웃집 창문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유품>에서는 아내의 일기장을 통해 아내가 숨기고 있던 비밀을 발견하고 만 남자의 이야기를, <차표 주세요> 같은 경우 바람둥이 남자를 처단하려고 나선 여인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가 거장의 숨결을 담고 풀려나간다는 느낌이었다.

현실성과 시대색을 강하고 담고 있었던 것은 <가든파티>와 <지붕 위의 여자> 쪽이었다. <가든파티>같은 경우에는 어린 소녀 로라는 이웃해 있는 빈민굴에서 사는 남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로라는 이웃이 죽었다고 할 수 있는데 악단을 불러 파티를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긴다. 그래서 언니와 어머니에게 말해보지만 그들은 오히려 로라의 태도를 비웃는다. 자신의 정원에서 죽은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죽는 것은 더없이 일상적이라는 투였다. <지붕 위의 여자>에서는 옆 건물의 지붕을 수리하는 인부들이 다른 건물에서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하는 여자에게 휘파람을 분다. 하지만 여자는 그들을 무시하고 인부들은 점점 더 분개한다.

<가든파티>에서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면 <지붕 위의 여자>에서는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남자와 여자의 시각차이 뿐만 아니라 유한계층과 노동자층의 적대감마저 담겨 있었다. 시대의 변화하는 흐름이 보였던 것이다. 어느 것 하나 걸출하지 않은 것이 없는 터라 읽으면서 꽤 즐거웠다. 단편을 소개하기에 앞서 작가의 짤막한 이력이 실려 있는 게 좋았다. 단지 단편마다 짤막한 소개 글이 실려 있었는데 거기에서 결말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것은 다소 아쉬웠다. 모른 채 끝에 가서 결말을 알았다면 읽는 즐거움이 한층 더 컸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꼭꼭 씹어 삼킨 단편들은 보는 시각에 따라 새로운 면모를 더해줬기 때문에 몇 번이라도 다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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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홈즈걸 2 : 출장 편 - 명탐정 홈즈걸의 사라진 원고지 명탐정 홈즈걸 2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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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잘 다니던 곳에 오랜만에 갈 일이 생겼다. 학교나 빌라 같은 것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많은 가게들이 다른 업종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히려 그대로 있는 금은방이 반가울 정도였다. 그런 흐름에 밀린 것인지 시장 옆에 있던 작은 서점도 복덕방으로 변해 있었다. 그 서점에서 선물로 줄 책을 사기도 했었고 책을 고르다 도둑이 잡힌 걸 보고 놀라기도 했었다. 게임기 대신 책을 사달라고 부모님의 손을 잡아끌었던 곳, 익숙해서 사라진다는 것이 놀라운 곳이라 그 서점이 문을 닫았다는 것도 몰랐다는 데에는 꽤 충격을 받았었다.

서점은 언뜻 생각하기에는 그저 책을 사는 곳이지만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 대개 그렇듯 각 서점마다 느낌의 차이가 있다. 그러니 동네의 작은 서점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걸 볼 때마다 섭섭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이 책 <명탐정 홈즈걸의 사라진 원고지>에서도 홈즈걸들이 그런 상황에 직면한다. 물론 그들의 직장인 세후도 서점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방에 있는 마루우도라는 고풍스러운 서점에 유령이 나타난다. 지방에 있는 중소서점들이 약세를 면치 못하는 가운데에도 마루우도는 굳건하고 주민들을 반기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유령이 나타나고 주민들 자체는 그리 동요하지 않지만 마루우도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점주가 흔들리고 만다. 그 유령의 존재가 유별났던 것이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나타난 유령이 옛 사건과 관계있다고 말한다.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27년 전 그 지방에는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친 작가가 살고 있었다. 제자가 되고 싶다는 사람, 편집자, 예술가들이 몰려들었고 작은 도시도 덩달아 호황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작가가 자신의 집에서 참혹하게 살해되고 만다.

유력 용의자로 몰렸던 사람은 그의 제자 중 한 명으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체포되어 죄를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다가 정황증거만으로 유죄가 확정되고 2년 간 옥살이를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 제자가 마루우도 서점에 유령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전부 그 제자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눈치인지 진범이 잡히지 않아 억울해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고, 자신은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한다. 이 모든 소동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홈즈걸을 교코의 전 동료인 미호가 호출한다.

명탐정이 와서 사건을 풀어 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유서 깊은 서점 마루우도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목이었다. 모처럼의 휴일에 타 지방으로 가서 사건을 해결해달라니 모르는 척 하려던 교코였다. 문제는 미호가 내려오지 않으면 직접 나타날 기세인데다가 편지가 계속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데에 있었다. 더구나 다에 마저 그 사건에 호기심을 품는다. 유령의 출현과 서점 존폐의 위기, 27년 전의 옛 사건이 더해지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이제 홈즈걸은 기차를 타고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출장에 나선다.

첫번째 권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은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이번 <명탐정 홈즈걸의 사라진 원고지>는 홈즈걸의 다른 지방으로 원정을 가는데다가 심지어 장편으로 되어 있다. 책을 기반으로 했고 서점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라는 기반을 다르지 않다. 소설을 시작하자마자 홈즈걸이 책을 실마리로 한 사람의 알리바이 수수께끼를 풀어내기도 해서 전작의 느낌이 잘 살아있었다. 다만 단편에 비해서 장편은 다소 처지는 느낌이 남아서 아쉬웠다. 하지만 새로운 등장인물 미호라든지 기차역에 아예 명탐정을 환영하는 인파가 나타나는 것처럼 소도시 특유의 가족적인 느낌이 살아있어서 따뜻한 느낌은 더 강했다. 현재의 유령 사건이 과거의 사건을 다시 떠오르게 하고 그 사건을 풀어나간다는 소재도 매력적이었고 홈즈걸의 출장기를 볼 수 있다는 것도 기분 좋게 느껴졌다. 다음 권은 단편집이라는데 빨리 홈즈걸의 활약을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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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분 1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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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조각가는 커다란 암석을 보았을 때 그 안에 숨어 있는 형상을 본다고 한다. 그 모습에 맞게 조금씩 깎아 내다보면 숨어 있는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악이 의외로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무수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그 선택은 자신에게 또는 타인에게 어떤 흔적을 남긴다. 그 행동은 위대한 조각가가 할 만한 행동일수도, 모든 좋은 부분을 도려내고 끔찍한 형상만 남기는 행동일수도 있다. 끔찍한 살인범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한다. 그 악당은 과연 태어나서부터 사악했을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자신이 한 행동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었을까.

이 책 <19분>은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스털링이라는 작은 마을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나 열 명의 고등학생이 사망하고 열아홉 명의 고등학생이 부상을 입었으며 피터 호턴이라는 소년이 범인으로 체포된다. 단순히 사건만을 들여다보자면 피터 호턴이라는 소년은 열 명의 사람을 죽인 살인자다. 마을 사람들은 주저 없이 그를 괴물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부모 역시 그가 그날 아침까지 자신들이 사랑했던 그 소년이란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저자는 그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소설이 하나의 시점과 삶의 단면을 드러낸다면 이 책에서 누가 누구를 용서하거나 선이다 악이다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단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를 시간을 옮겨 다니며 보여준다. 피터 호턴의 엄마 레이시 호턴은 조산사로 수많은 생명을 태어나는 일을 도왔다. 그녀에게 근심이 있었다면 어디든 잘 적응하는 큰 아들 조이에 비해서 피터는 섬세한 아이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조이의 영향으로 피터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극복할 수 있는 일로 생각했다. 피터가 서른 살이 되었다면 그 일들은 극복할 수 있는 일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인생 속의 작은 조각에 불과한 학창시절이 그 안에 있는 동안에는 끝나지 않을 일 같다는 것을 간과했다. 피터는 독특한 아이였고 쉽사리 '주류'인 아이들에게 적응하지 못했다. 유치원에 가는 첫 날 도시락 통이 창밖으로 던져지고 피터는 이후 내내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물론 기회는 있었다. 인기 있는 아이들은 인기 없는 아이들이 없다면 존재하지 못한다.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인기 있는 아이들이 인기 없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행동이야말로 자신의 존재와 권력을 재확인하는 행위인 것이다. 피터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괴롭히며 '주류'에 낄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그것을 거부한다. 그가 독특하지만 좋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점점 모든 게 뒤틀린다. 괴롭힘은 계속되고 복도를 걸을 때 누군가에게 밀쳐지지 않고 걸을 때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12년, 피터는 전대미문의 총기난사 사고를 일으킨다. 자신을 괴롭히고 모욕을 준 아이들 전부에게 총을 쏜다. 그 애가 인기 있는 아이들 중에서 살려주기로 결심한 사람은 단 한 명, 어린 시절의 친구인 조지 코미어뿐이다. 그리고 말한다. 그 애들이 자신을 별종이라면서 괴롭혔고 그 애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움직여 줬다고 말이다. 타인에 의해서, 자신에 의해서 조각된 괴물이 입을 연 순간이었다. 학창시절 교실 안, 그 작은 공간에는 온갖 감정이 휘몰아친다. 성인이 된 이후에 바뀌는 거라고는 그 감정을 능숙하게 숨기는 것뿐이지만 미숙한 아이들은 그 감정을 누르지도 조절할 생각도 없다.

안전핀을 잃어버린 감정을 분출한 19분은 세상을 정지시키고 그 곳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조차도 어딘가 부서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곳에 있던 사람이 아니면 결코 이해하지 못하며 살아남은 모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총기난사범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숨은 의문이 어떻게 터져 나가는지와 살인범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조마조마할 때가 많았다. 아이들의 부모인 어른들조차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터라 읽으면서 불안감에 계속 시달렸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 흑과 백이 아닌 회색의 단면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했던 행동은 과연 어떤 흔적을 남겼을지 점차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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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 스타를 부탁해
박성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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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죽기 위해 사는 법>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사람은 누군가를 부양하거나 부양을 받으면서 살아간다고 말했다. 매니저와 자신의 관계도 자신이 부양을 하는 대신 그에 필요한 조력을 받는다 부부와 같은 관계라고 했다. 사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매니저와 담당 연예인의 관계는 모호하다. 누가 부양을 하고 부양을 받는 것인지 서로의 관계는 돈 문제 이전에 얽히고 설힌 밀접한 것으로 보여서 기타노 다카시가 말한 부부같다는 말에는 공감이 갔었다.

예전에는 신문에 난 외국의 어느 할머니가 우리나라 배우에 열광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게 생경하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누군가에게 그렇게 열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그 열정이 부러울 때가 있다. 덕분에 누군가에게 열광하고 그것에서 활력을 얻는 사람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위광을 가진 스타 그리고 그 뒤에서 그 위광의 조력자인지 조정자인지 때로 알 수 없는 매니저까지 가끔은 관심이 갈 때도 있다.

이 책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는 스타의 뒤가 아닌 옆을 지키는 매니저에 관한 책이다. 텃세가 심한 남자들의 세계처럼 보였던 매니지먼트의 세계에, 운전도 하지 못했으면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여성 매니저의 이야기다. 김혜수와 15년 동안 동반자로 함께 했고, 영화 <접속>이후에 전도연을 만나 '징글징글'하다면서도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잘생긴 청년 지진희를 배우 지진희로 인생을 바꾼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카리스마가 넘치는 유형의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들어가는 회사마다 전부 망했다면서 자신의 불운을 의심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매니저 생활 역시 처음부터 그 일을 선택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처음 입사한 회사가 망해서 퇴사하고 일자리를 찾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입사지원서를 넣었던 곳이 합격해서 매니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인의 말에 따라 지원했던 곳이라 운전가능자야 했다는 것도 몰랐고 염정아의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이 알려져서 회사가 발칵 뒤집어 졌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랬기에 운전사가 따로 있는 김혜수의 매니저로 낙점되는 특혜 아닌 특혜를 받았고 거기서 김혜수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첫 만남에서 저자가 워낙 튀게 입고 가는 바람에 유독 냉담했던 김혜수와의 관계는 그들이 같은 음악 취향을 가지고 있고 동갑이라는 부분에서 술술 풀려나갔다. 회사가 망한 이후에도 김혜수의 매니저로 그리 어려운 것 없이 해나갔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불러주는 사람이 있고 친한 척 구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지 시행착오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김혜수 어머니와 부딪히자 자신이 손을 털고 나왔는데 그때부터는 사람들이 그녀를 피해 다니기 바빴다고 한다. 누가 도와달라고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후 수없이 고생했고 실패하고 깐깐한 동생 전도연을, 잘생기고 어딘가 신비해 보이는 지진희를 배우로 만들면서 그녀는 점차 성공한 매니저의 길을 걸어간다. 그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배우들, 미처 붙잡지 못했던 배우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그리고 가장 성공한 시점에서 재충전을 위해 떠났다는 부분에 이르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스타에 둘러싸였고 정점을 찍으려는 참에 또 한 번 손을 털고 나온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후회하면서도 다시 부딪힐 각오를 한다. 매니저 일에 대해서 부모 자식과 같다고 자신의 동반자인 연예인은 그녀가 일을 잘해서 성공적인 길을 걷게 할 수록 아티스트와 비즈니스맨이라는 본질 때문에 멀어져만 간다고 말한다. 수없이 실패하고 부딪혔으며 만나고 이별했던 사람의 이야기라 읽으면서 놀라기도 많이 했고 공감도 꽤 했다. 스타에 대한 흥미 이전에 매니저라는 일이라는 소재를 통해 한 개인의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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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박성혜) : 스타를 부탁해
    from 프렌치플라이-들렀다가 갈때는 흔적을 남기는 곳.^^ 2010-01-18 17:10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불을 켠다. 그리고 TV를 켠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는다. 책을 읽는다든가 음악을 듣는 다던가 하는 다른 곳에 시선을 둬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TV는 내가 시선을 두든 말든 혼자서 계속 깜빡거리며 깔깔거리고, 중얼거리고, 노래를 한다. 자기 직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TV를 끈다. 인간에게(현대인은 대부분 그러하기에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표현을 써도 큰 무리는 없겠지) TV는 생활의 일부 그 이상이다. 내가 박성혜(그녀는 김혜수..
  2. 영국의 면도기 광고
    from 프렌치플라이-들렀다가 갈때는 흔적을 남기는 곳.^^ 2010-02-01 18:28 
    영국의 면도기, Wilkinson Quattro Titanium 의 CG 에니메이션 CF입니다.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한 아빠와 아기의 엽기코믹한 스토리네요. 아기에게만 관심과 사랑을 주는 와이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기 피부처럼 만드는 면도기를 사용하는 아빠. 참 재미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