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가든파티 - 영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캐서린 맨스필드 외 지음, 김영희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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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읽었던 추리 소설 중에서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날에 외출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었다. 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집을 나서면 돌아오기 어려울 정도인 몽환적인 이야기였다. 남자는 집을 잘못 찾아 의외의 사건을 목격하게 되지만 안개가 걷힌 이후 사건의 진실에 다가선다는 내용이었다. 때로 단편 소설을 볼 때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단편 소설의 특성상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이야기 전개에 안개 속을 헤매고 다니는 기분이 든다. 더욱이 기상천외한 결말을 맞을 때는 안개에 홀려 엉뚱한 집에 들어간 남자의 기분이 되고 만다.

이 책 <창비세계문학 영국편 - 가든파티>는 그런 단편 11편을 모아둔 단편집이다. 찰스 디킨즈부터 버지니어 울프까지 익숙한 작가들의 단편이라 마음 편하게 책장을 열게 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안개 속을 헤매게 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 와중에도 시대의 흐름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니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든 셈이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개성적인 인물구성이 더 놀라운 찰스 디킨즈의 <신호수> 같은 경우에는 유령을 등장시켜 호기심을 고조시킨다. 외딴 곳에 위치한 오두막과 그 안에서 신호수로 일하고 있는 남자의 기괴한 경험담을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충격적 결말에 이르기까지 안개 속의 벼락이란 느낌이었다.

앞부분에 실린 <신호수>와 <오그라든 팔>같은 경우 초자연적인 것을 소재로 끌어들인 것이 특색인데 <신호수>에서는 알 수 없는 유령이 미래를 경고한다면 <오그라든 팔>에서는 몽마가 등장한다. 연적을 꿈에서 만나고 그녀를 요괴라 판단한 여인은 자신이 살기 위해 몽마를 공격한다. 그런데 현실의 연적이 자신이 반격한 바로 그 곳을 다쳐 있고 그 부분이 오그라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연적이 악마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사악한 술수를 부려 낫지 않는 병을 그녀에게 덧씌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더 곤란했던 것은 두 여인이 서로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호감이 차가운 증오로 바뀌고 운명은 그들을 비틀린 곳으로 끌어다 둔다.

반면 <유품>, <차표 주세요>, <가든파티>, <지붕 위의 여자> 같은 경우에는 현실감이 잘 살아 있어 안개 속을 헤매다 이웃집 창문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유품>에서는 아내의 일기장을 통해 아내가 숨기고 있던 비밀을 발견하고 만 남자의 이야기를, <차표 주세요> 같은 경우 바람둥이 남자를 처단하려고 나선 여인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가 거장의 숨결을 담고 풀려나간다는 느낌이었다.

현실성과 시대색을 강하고 담고 있었던 것은 <가든파티>와 <지붕 위의 여자> 쪽이었다. <가든파티>같은 경우에는 어린 소녀 로라는 이웃해 있는 빈민굴에서 사는 남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로라는 이웃이 죽었다고 할 수 있는데 악단을 불러 파티를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긴다. 그래서 언니와 어머니에게 말해보지만 그들은 오히려 로라의 태도를 비웃는다. 자신의 정원에서 죽은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죽는 것은 더없이 일상적이라는 투였다. <지붕 위의 여자>에서는 옆 건물의 지붕을 수리하는 인부들이 다른 건물에서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하는 여자에게 휘파람을 분다. 하지만 여자는 그들을 무시하고 인부들은 점점 더 분개한다.

<가든파티>에서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면 <지붕 위의 여자>에서는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남자와 여자의 시각차이 뿐만 아니라 유한계층과 노동자층의 적대감마저 담겨 있었다. 시대의 변화하는 흐름이 보였던 것이다. 어느 것 하나 걸출하지 않은 것이 없는 터라 읽으면서 꽤 즐거웠다. 단편을 소개하기에 앞서 작가의 짤막한 이력이 실려 있는 게 좋았다. 단지 단편마다 짤막한 소개 글이 실려 있었는데 거기에서 결말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것은 다소 아쉬웠다. 모른 채 끝에 가서 결말을 알았다면 읽는 즐거움이 한층 더 컸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꼭꼭 씹어 삼킨 단편들은 보는 시각에 따라 새로운 면모를 더해줬기 때문에 몇 번이라도 다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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