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전 2
이종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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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귀신이야기를 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귀신이야기에서 귀신을 보는 사람보다 귀신을 못 보는 사람이 오히려 강한 것 같다. 귀신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귀신에게 휘둘릴 일도 없는 것이다. 어느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사람들에게 이런 실험을 했다. 실험대상자인 사람들은 귀신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실험을 한 건물은 귀신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허나 어둑어둑한 건물인데다가 그 안에는 이런 저런 물건이 놓여 있는 터라 충분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실험 결과는 귀신을 믿는다고 말한 사람 대부분은 귀신을 봤고 귀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들 대부분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든 생각은 귀신에 대한 것보다 귀신을 믿지 않는 사람과 믿는 사람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었다. 귀신을 믿는 사람은 그 분위기에 휩쓸려 보는 사람이 조마조마하게 건물 안을 탐색한 반면 귀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두워서 약간 무서워 보이는 건물을 성큼 성큼 돌아다녔다. 그 사람의 행동이 과감해서 오히려 그 사람이 무서워 보일 정도로 말이다.

이 책 '귀신전 2'에 등장하는 주인공 여섯 명은 어떤 의미로는 약한 사람들이다. 귀신을 보기 때문에 인생에 불편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장선일 법사의 경우에는 퇴마사로 일하기는 하지만 귀신을 보는 체질 때문에 아이들을 마음껏 만나지도 못하는 처지고 전 권에 비해서 이번 권에는 등장도 적은 공표의 경우에는 귀신을 보기 때문에 왕따까지 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귀신을 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놓였음을 한탄하지 않는다. 도리어 귀신에 의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고 죽은 이들이 악령이 되기 전에 좋은 쪽으로 이끌어주는 것이다.

전 권에서 주인공 여섯 명에 대한 소개로 바쁜 느낌이었다면 이번 권에서는 본업으로 바쁜 여섯 명을 볼 수 있다. 덕분에 오싹함도 더해졌지만 읽는 즐거움도 더해졌다. 전 권에서 활개 치던 악령의 무리를 해치우지 못한 가운데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등장한다. 신혼부부인 두 사람은 몇 달 후면 한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임신을 한 탓인지 아내 쪽인 경희는 매일 밤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끼기긱, 끼기긱'하는 소리가 매일 밤 들려오니 경희는 점차 신경이 곤두선다. 남편인 한석에게 말해보지만 이상하기도 그 소리는 경희에게만 들리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소리에 남편을 깨우면 잠잠해졌다가 남편 한석이 잠들면 소리가 다시 나니 이상할 뿐 아니라 무서운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이상한 소리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 매일 밤 그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던 경희는 꺼림칙하지만 위층에 올라가보기로 한다. 위층에는 주인집이 살고 있었는데 왠지 집주인 아주머니를 볼 때마다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가능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소음에 대한 항의를 하러 경희는 위로 올라간다. 그런데 집의 분위기도 묘하고 경희 자신도 그 집은 위험하다는 강렬한 불안감을 느낀다. 경희가 그 소리를 듣는다고 하니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는 주인집 여자를 뒤로 한 채 경희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별 소득도 없이 오싹함만 더한 방문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 날 밤 하필이면 한석이 야근을 한다는 전화를 걸어온다. 경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지만 두렵게만 느껴지는 집안에서 뱃속의 아기와 단 둘이서만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남편에게서 걸려온 것이려니 하고 받았는데 위층 아주머니였다. 자신이 너무 아파서 그러는데 위로 올라올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경희는 순간 갈등한다. 아주머니를 도우러 올라가 볼 것인지 아니면 119에 전화를 걸고 말 것인지를 말이다. 본능은 절대 그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지만 애써 그런 감정을 지우고 경희는 위층으로 향한다. 아픈 사람이 도와달라는 것을 모른 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다.

전 권을 읽을 터라 어떤 내용이 전개될 지 궁금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밤 12시가 넘어서 책을 읽기 시작한 터라 살짝 졸리기도 했는데 다 읽지 않고는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어떤 결말을 맞게 될 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1권은 상대적으로 그리 무섭지 않았었는데 2권은 꽤 오싹한 부분이 있었다. 무서운 상황에 직면해야 하는 사람이 임신부여서 그렇기도 했지만 악령의 무리들이 그 기세를 강화하기도 했고 액귀라는 소재가 섬뜩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퇴마사들로서도 속수무책인 부분이 많아서 더 긴장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궁금했던 귀사리의 악령들은 옆의 지역인 무풍면을 뒤덮었고 찜찜한 캐릭터였던 숙희는 그 본색을 드러낸다. 이제 무리 속에 적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인데 퇴마사들이 어떻게 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갈지 궁금하기만 하다. 악령의 무리들과 맞서는 퇴마사들의 이야기 '귀신전 2' 정말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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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미로
엠마 캠벨 웹스터 지음, 하윤숙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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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상물에 비해서 책은 상상이 끼어들 여지가 큰 매체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을 때는 종종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만약 주인공이 저쪽으로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이야기 자체는 주인공이 선택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지만 주인공이 가지 않은 길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좋아하는 이야기는 몇 번이나 읽게 되지만 주인공이 가지 않은 길은 알 길이 없다.

이런 고정되어 버린 이야기가 또 다른 생명력을 얻어 주인공이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결과를 보여준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실제로 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이 책 '제인 오스틴의 미로'다. 읽는 사람은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베넷의 입장에서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읽는 사람이 엘리자베스 베넷이라고 가정하고 적절한 재능을 쌓아가며 원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이루면 성공이다. 이야기의 주요 기둥은 '오만과 편견'이지만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의 인물들이 읽는 사람의 선택에 따라서 모습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제인 오스틴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게임북인 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가는 책과 달리 책은 여러 가지의 분기점으로 나누어져 있고 선택한 안에 따라 다른 페이지로 넘기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계는 5단계로 되어 있고 선택에 따라 끔찍한 결말을 맞을 수도 있고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인 다아시나 '엠마'의 주인공 나이틀리와 결혼하는 결말을 맞을 수도 있다. 단순히 다아시와의 결혼을 꿈꾸는 책이라면 이 책은 그저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 나오는 분기점이 꽤나 흥미롭다. 가령 엘리자베스의 언니 제인이 말을 타고 나갔다가 몸이 아파져서 빙리가 머무는 저택에서 요양하는 부분에 도달했을 때 엘리자베스는 언니를 만나러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간다. 이 때 분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왼쪽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오른쪽 길로 갈 것인지 말이다. 제대로 선택을 한다면 '오만과 편견'의 원래 이야기대로 저택에 도달할 수 있지만 잘못 선택한다면 집시 아이들에게 둘러싸이고 만다. 더구나 아이들이 돈을 달라고 요구하자 겁에 질려서 조금 내밀고 도망치려다 잡혀서 얼굴이 망가진다는 결말로 끝이 난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강제종료인 셈이다.

원래대로라면 선택한 페이지만 가서 읽는 식으로 진행해봐야겠지만 가지 않은 길은 어떤 결말일지 궁금해서 다른 길도 대부분을 다 살펴봤다. 그 가지 않은 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엘리자베스가 콜린스의 청혼을 받아들였을 때의 결말이었다. '오만과 편견'을 읽을 때 느낀 것이지만 콜린스는 말이 너무 많다. 높은 사람의 비유를 맞추려는 태도도 지나쳐서 역겨운 정도이다. 그가 청혼을 해왔을 때 당연히 거절하는 선택을 했지만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면 어떤 결말이 나올지 궁금해서 넘겨봤다.

엘리자베스가 콜린스와 결혼을 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와 자매들이 집에서 쫓겨날 필요가 없기는 하다. 이 결과를 엘리자베스의 엄마는 기뻐하지만 아버지는 한탄한다. 엘리자베스 역시 착잡한 심정으로 굳건히 참으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점차 불행해 하고 있었다. 거기에 엘리자베스에게 끊임없이 주절대는 콜린스, 엘리자베스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다 손에 든 책을 콜린스에게 집어 던지고 만다. '이제 좀 그만해!'라는 말을 외치면서 말이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콜린스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엘리자베스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이제 저 지겨운 인간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고 남자 상속인이 없으니 롱본의 집을 잃을 일이 없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단지 콜린스를 자연사한 것처럼 위장할 필요가 있었다. 잠깐의 기쁨을 누린 엘리자베스였지만 곧 불쾌한 스캔들의 대상이 되고 자매들의 원망을 산다. 집을 지켰지만 남편을 죽였을 지도 모르는 여자를 자매로 둔 언니와 동생들은 결혼 가능성이 막혀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서 결국 엘리자베스가 불행해진다는 결말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안 좋은 결말이지만 끊임없이 떠드는 콜린스를 참다못해 엘리자베스가 그를 죽이고 만다는 것이 약간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더구나 콜린스를 죽인 책의 제목은 '설교집'이었다. 그 외에도 다아시와 피츠윌리엄 대령이 엘리자베스를 사이에 두고 결투를 벌인다든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엠마 우드하우스의 방해공작 등 원작에는 결코 없을 부분들이 많아서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다.

읽으면 읽을수록 선택을 조금만 잘못해도 안 좋은 결말을 낳는 것이 많아서 그 과정을 잘 헤쳐나간 엘리자베스의 영리함이 돋보이는 느낌이기도 했다. 마지막 5단계에 들어섰을 때 의외의 결말도 숨어 있고 악령 같이 등장하는 '맨스필드 파크'의 패니까지 만나 볼 수 있어서 읽으면서 정말 즐거웠다. 제인 오스틴의 많은 작품들을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만나볼 수 있는 '제인 오스틴의 미로'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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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커넥션] 서평단 알림
기후 커넥션 - 지구온난화에 관한 어느 기후 과학자의 불편한 고백
로이 W. 스펜서 지음, 이순희 옮김 / 비아북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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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뉴스를 보다보면 불안감이 가중된다. 세상이 정말 험하구나라는 말이 무심코 나올만큼 끔찍한 사건이 줄을 이어 보도된다. 거기에 믿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물가도 계속 오른다고 한다. 그리고 단골로 등장하는 기사가 지구온난화에 대한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거듭되어서 말라붙어 버린 땅이라든지 폭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런 뉴스만 보자면 마치 세상이 내일 멸망해버릴 것만 같다. 하도 많이 봐서 그 때만 잠시 그 생각을 하다가 잊어버리는 수준이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뉴스에서는 세상이 당장 무너져버릴 것 같이 떠들지만 실제 밖을 내다보면 세상은 평안하다. 지구온난화로 남극의 모든 얼음이 녹아서 인류가 쓸 수 있는 대부분의 토지가 당장 물에 잠겨 버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빙하는 이미 물에 떠 있는 부분이니까 그 부분이 녹아서 물이 된다고 해도 해수면이 그리 높아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얼음물의 얼음이 녹아도 전체 잔의 부피가 크게 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책 '기후커넥션'도 그런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언론부터 정치인, 환경주의자들이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고 떠들어대지만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류의 활동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구는 그 정도로 문제가 될 만큼 약하지 않다는 것이다. 적당히 열을 발산하고 있기도 하고 시스템적으로 보완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구가 따뜻해진다고 해도 추운 날이 줄어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최고 기온이 높아지는 식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갑자기 지구 전체가 사막이 되거나 먹을 물이 없어서 난감한 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재해는 매번 있어왔는데 그것이 전부 지구온난화의 탓인 양 호들갑을 떠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 가령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통해서 DDT가 생태계에 악영향을 준다고 알렸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환경주의자가 목소리를 드높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 자체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런데 그 이후에 각국 정부가 많은 약품의 다발적 금지를 시키기 시작했고 말라리아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생태계의 악순환을 막아서 알 껍질을 얇게 하는 상황을 피했을지 모르지만 그 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천연자원이 급격히 줄어서 인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일명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허나 천연자원을 줄이고 싶지 않다면 해결책 자체는 간단하다. 그냥 천연자원을 캐내지도 쓰지도 않으면 된다. 하지만 공해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해서 혹은 자원을 남겨두고 싶어서 모든 산업시설을 정지시켜서야 빈대잡자고 초가삼간 불태우는 격이라는 것이다. 즉, 썼을 때의 효용이 더 크니까 그것을 감수하고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환경이 마치 종교인양 신봉하면서 그 경제적 가치에 대해서 따지지 않는 것은 미련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것은 과장된 것이 많다고 한다. 자원이 부족해질 것을 생각해서 가능하면 자원을 적게 소비하거나 다시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듯이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무분별하게 벌벌 떨 것이 아니라 좀 더 깨끗한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식으로 눈을 돌리라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온도 0.1도를 낮추기 위해서 거대한 자금을 퍼붓는 것보다 좀 더 경제적인 방안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을 겁주면서 모으는 돈, 마구 퍼부어대는 돈 역시 보통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니까 말이다. 기업체의 막대한 후원금으로 유지되는 환경단체, 사람들을 겁줘서 거대한 돈을 모으려는 정치인들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런 생각을 해봤음에도 막상 날이 더워지자 지구온난화가 정말 무서운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던 행동을 반성하게도 되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알기 쉬운 설명과 그것의 과장을 보여주는 책 '기후커넥션' 인상 깊게 읽었다.

 

이 책은 알라딘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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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여인의 속삭임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6
알론소 꾸에또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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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거울과 대화를 나눈다. 거울 속에 비치는 것은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닌 존재다. 거울 속의 여인은 아름답지만 무심한 태도를 가장하고 있다. 특이한 부분이라고 해야 눈빛이 형형하다는 정도다. 거울을 마주보고 있는 여인은 거울 속의 여인이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울 속의 여인은 자신이 움직이는 데로 몸을 움직이게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다. 여인은 벌써 몇 번이나 거울의 부름에 따라 거울이 있는 곳으로 끌려 왔다. 거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보려고 하지만 그 때뿐 여전히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그 날 만큼은 뭔가 달랐다. 어느 새 여인이 거울 속에 들어가 있고 거울 속의 여인이 자신이 원래 서 있던 위치에 서 있었다. 무언가가 비치지 않는 이상 아무 것도 없는 거울의 세계에 갇혀 버린 여인은 망연자실해 한다.

하지만 점차 거울 속의 여인이 여인에게 영향력을 미쳤던 방식 그대로 그 여인을 거울 앞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영향력이 최고치에 달했을 때 거울 속의 여인을 거울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곧장 거울을 천으로 덮고 집 밖으로 내보낸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비롯되었다. 여인은 정신병원에 갇힌 채 단 한 번만 거울을 보게 해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곳에 있는 것이 진정 자신인지 아니면 거울 속의 여인이 그녀의 기억마저 가져갔기 때문에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단 한 번만 거울을 본다면 확인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여인의 말과 함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얼마 전에 읽은 단편 소설의 내용이다.

이 책 '고래여인의 속삭임'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거울이었다. 한 여인은 다른 여인에게 집착하고 그 집착에 다른 여인은 몸서리를 치지만 동시에 그녀를 그리워한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축은 어느 날 갑자기 옛 친구를 만나는 데에서 시작된다. 우연처럼 비행기 안에서 만나게 된 베로니카와 레베카였다. 아름다운 베로니카와 거대한 몸짓의 레베카는 예전에 비밀친구 관계에 있었다. 베로니카와 레베카는 마음이 맞는 친구였지만 레베카는 학교 친구들의 놀림거리였고 베로니카는 그 상황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친구관계는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해서 부서져 내린다. 그렇게 끝나버린 관계가 비행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레베카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베로니카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예전부터 말이다. 어느 순간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고 그래서 일부러 그녀와 같은 비행기를 예약했다는 것이다. 허나 베로니카는 과거의 일로 그녀가 불편했고 그 자리를 그저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레베카는 그녀의 회사로 연락을 해온다. 베로니카는 그녀를 만나려 하지 않지만 레베카는 끈질기게 그녀를 기다렸고 베로니카가 잠시 쉬려고 카페에 오자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때 특이했던 것은 베로니카였는데 한 때 친구였던 여자를 만난 것 치고는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마냥 레베카를 피하고 싶어 했다. 결국 참지 못한 베로니카는 레베카에게 심한 말을 쏟아낸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의 만남은 끝이 난 것처럼 보였지만 레베카는 다시 베로니카의 주위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가 참가하는 모임에서 무례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베로니카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베로니카가 일하는 신문사에 글을 싣기도 한다. 베로니카는 자신을 내버려두라고 말하지만 레베카는 이제 베로니카의 아들을 몰래 데려가기까지 하는 등 그녀의 주위를 계속 맴돈다. 이 사실을 친한 사람에게 말해보지만 베로니카는 레베카를 강경하게 떼어내지 못한다. 베로니카는 레베카의 집착에 진저리를 치는 동시에 점차 과거의 기억에 빠져든다.

애증의 관계에 있는 두 여인의 이야기가 흘러 갈수록 묘한 감상에 빠져들게 되었다. 레베카의 집착이 섬뜩하게도 느껴지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베로니카의 태도도 기묘한데가 있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더 호기심이 생겨났다. 이야기가 급진전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점차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단순히 섬뜩한 집착만을 보여줬다면 공포소설 같았겠지만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두 여인의 애증관계를 보여준 터라 마지막 장면이 더욱 인상적이었던 책이었다. 친구였지만 엇갈려버린 두 여인의 관계에 대한 '고래 여인의 속삭임'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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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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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보지 못한 시대에 향수를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빵집에서 빵을 먹는 것이 제재를 받을 뿐더러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다가 걸리면 크게 혼나는 시대 말이다. 버스에서 만난 이름 모를 소녀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책이나 음악에 대해서 쓰고 시를 적어서 연서를 완성하는 그런 시대. 초등학교 동창인 소녀를 고등학생이 되어서 다시 만났을 때 존댓말을 써야 하고 이성을 사귄다는 것은 건전한 교제에 한정되는 때를 지켜보는 것은 기묘한 기분이다. 특히 요새처럼 유치원생도 이성 친구를 가지고 있는 시대에 살면 더욱 그렇다.

타임머신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 일 것이다. 시간을 초월할 것은 거의 없어서 같은 곳이라도 시대가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신세계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굳이 복잡하고 실현도 불가능하다는 타임머신을 떠올리는 것보다 이 책 '머저리 클럽'을 보는 것만으로 예전 시대에 다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이 책 '머저리 클럽'의 화자는 동순이지만 이야기는 동순과 다섯 명의 친구들의 이야기로 전개 된다. 특별히 불량소년은 아니면서 치기어린 나이가 되어버린 동순, 영구, 동혁, 문수, 철수는 한 학생을 혼내주기로 한다. 다른 학교에서 온 다른 학생들과 달리 동순의 짝인 영민은 특이한데가 있는 소년이었다. 특별히 싸움에 강한 것도 아니지만 자유를 누리는 데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얌전한 학창생활을 보내는 다른 타교생들과 달리 다섯 악동의 눈에 유독 영민이 얄미워보였다.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빼먹기도 하고 도시락을 미리 까먹기도 하는 영민의 행동이 거슬리게 느껴졌던 그들은 트집을 잡아서 그를 때려줄 계획을 세운다.

별 이유도 아닌 것으로 시비를 걸고 영민을 불러내서 때려줬지만 그 일이 끝난 후의 기분은 다섯 명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들을 보고 비겁하다고 말한 영민의 말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후련하기보다는 씁쓸했던 것이다. 하기야 실상 그들의 행동은 비겁한 것이었다. 별 이유도 안 되는 것을 문제 삼아서 한 명을 다섯 명이서 때렸다는 것은 비난받아도 마땅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더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민이 다섯 명에게 결투를 신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그들과 달리 정정당당하게 싸울 생각으로 한 번에 한 명씩을 불러냈다. 그 싸움이 이어지자 다섯 명은 점차 움츠러든다. 내심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뿐더러 영민이 마음에 든 것이었다. 마지막 날 영민에게 시비를 걸어서 불러냈던 동순과의 싸움 날 영민은 이전 네 명과 싸울 때와 달리 죽자고 덤벼든다. 동순은 팔씨름만 해도 운동을 하는 동혁을 제외하고는 지지 않을 만큼 힘도 센 편이었지만 왠지 영민을 때릴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다. 자신이 일으킨 일이고 그의 분을 다 받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영민의 일방적 분풀이가 끝나고 동순은 자신의 패배를 시인한 후 자리를 일어선다.

이제 영민이 마음에 들어버린 다섯 악동은 그와 친구가 될 방법을 찾으려 한다. 마침 영민이 학교를 빠지기 시작했고 동순은 그것을 기회 삼아서 영민의 집에 간다. 결국 친구가 된 여섯 명은 모임의 이름까지 만든다. 일명 '머저리 클럽'이다. 이름만 들어도 예상이 가듯이 유쾌한 일들을 일으키는 이들 여섯 명의 지은 가장 큰 죄라고 해봐야 무전취식 정도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등학교 때는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시기고 그에 따라 마음이 바람에 날리는 낙엽마냥 춤을 추는 시기다. 그런 시기에 학교나 입시에 묶여 있던 다섯 명의 눈에 영민의 존재는 자유를 일으키는 바람 같은 것이었고 그들이 영민과 친구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머저리 클럽이 결성되고 그들은 함께 어울려서 시간을 보낸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 일도 아닌 자기들만의 즐거움에 빠지기도 하고 버스에서 만난 남모르는 소녀에게 반해서 연서를 쓰기도 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새로운 친구 영민을 사귀면서 시작된 머저리 클럽의 이야기는 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끝이 난다. 타인의 눈에는 대단치도 않은 일이지만 그 울타리 안에 속한 입장에서는 소중한 날들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당사자에게는 너무도 엄숙한 순간이었던 풋사랑을 지켜보기도 하고 그들의 대책 없는 행동을 보면서 웃게 되기도 했다. 시대가 달라서 기록물 속에서나 보았던 시대를 다시 보게 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그게 또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시간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만 성장을 하는 순간의 소중하지만 서툰 시간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대책 없는 여섯 악동들의 학창시절 '머저리 클럽'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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