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여인의 속삭임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6
알론소 꾸에또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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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거울과 대화를 나눈다. 거울 속에 비치는 것은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닌 존재다. 거울 속의 여인은 아름답지만 무심한 태도를 가장하고 있다. 특이한 부분이라고 해야 눈빛이 형형하다는 정도다. 거울을 마주보고 있는 여인은 거울 속의 여인이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울 속의 여인은 자신이 움직이는 데로 몸을 움직이게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다. 여인은 벌써 몇 번이나 거울의 부름에 따라 거울이 있는 곳으로 끌려 왔다. 거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보려고 하지만 그 때뿐 여전히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그 날 만큼은 뭔가 달랐다. 어느 새 여인이 거울 속에 들어가 있고 거울 속의 여인이 자신이 원래 서 있던 위치에 서 있었다. 무언가가 비치지 않는 이상 아무 것도 없는 거울의 세계에 갇혀 버린 여인은 망연자실해 한다.

하지만 점차 거울 속의 여인이 여인에게 영향력을 미쳤던 방식 그대로 그 여인을 거울 앞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영향력이 최고치에 달했을 때 거울 속의 여인을 거울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곧장 거울을 천으로 덮고 집 밖으로 내보낸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비롯되었다. 여인은 정신병원에 갇힌 채 단 한 번만 거울을 보게 해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곳에 있는 것이 진정 자신인지 아니면 거울 속의 여인이 그녀의 기억마저 가져갔기 때문에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단 한 번만 거울을 본다면 확인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여인의 말과 함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얼마 전에 읽은 단편 소설의 내용이다.

이 책 '고래여인의 속삭임'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거울이었다. 한 여인은 다른 여인에게 집착하고 그 집착에 다른 여인은 몸서리를 치지만 동시에 그녀를 그리워한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축은 어느 날 갑자기 옛 친구를 만나는 데에서 시작된다. 우연처럼 비행기 안에서 만나게 된 베로니카와 레베카였다. 아름다운 베로니카와 거대한 몸짓의 레베카는 예전에 비밀친구 관계에 있었다. 베로니카와 레베카는 마음이 맞는 친구였지만 레베카는 학교 친구들의 놀림거리였고 베로니카는 그 상황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친구관계는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해서 부서져 내린다. 그렇게 끝나버린 관계가 비행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레베카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베로니카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예전부터 말이다. 어느 순간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고 그래서 일부러 그녀와 같은 비행기를 예약했다는 것이다. 허나 베로니카는 과거의 일로 그녀가 불편했고 그 자리를 그저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레베카는 그녀의 회사로 연락을 해온다. 베로니카는 그녀를 만나려 하지 않지만 레베카는 끈질기게 그녀를 기다렸고 베로니카가 잠시 쉬려고 카페에 오자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때 특이했던 것은 베로니카였는데 한 때 친구였던 여자를 만난 것 치고는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마냥 레베카를 피하고 싶어 했다. 결국 참지 못한 베로니카는 레베카에게 심한 말을 쏟아낸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의 만남은 끝이 난 것처럼 보였지만 레베카는 다시 베로니카의 주위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가 참가하는 모임에서 무례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베로니카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베로니카가 일하는 신문사에 글을 싣기도 한다. 베로니카는 자신을 내버려두라고 말하지만 레베카는 이제 베로니카의 아들을 몰래 데려가기까지 하는 등 그녀의 주위를 계속 맴돈다. 이 사실을 친한 사람에게 말해보지만 베로니카는 레베카를 강경하게 떼어내지 못한다. 베로니카는 레베카의 집착에 진저리를 치는 동시에 점차 과거의 기억에 빠져든다.

애증의 관계에 있는 두 여인의 이야기가 흘러 갈수록 묘한 감상에 빠져들게 되었다. 레베카의 집착이 섬뜩하게도 느껴지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베로니카의 태도도 기묘한데가 있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더 호기심이 생겨났다. 이야기가 급진전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점차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단순히 섬뜩한 집착만을 보여줬다면 공포소설 같았겠지만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두 여인의 애증관계를 보여준 터라 마지막 장면이 더욱 인상적이었던 책이었다. 친구였지만 엇갈려버린 두 여인의 관계에 대한 '고래 여인의 속삭임'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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