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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겪어보지 못한 시대에 향수를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빵집에서 빵을 먹는 것이 제재를 받을 뿐더러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다가 걸리면 크게 혼나는 시대 말이다. 버스에서 만난 이름 모를 소녀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책이나 음악에 대해서 쓰고 시를 적어서 연서를 완성하는 그런 시대. 초등학교 동창인 소녀를 고등학생이 되어서 다시 만났을 때 존댓말을 써야 하고 이성을 사귄다는 것은 건전한 교제에 한정되는 때를 지켜보는 것은 기묘한 기분이다. 특히 요새처럼 유치원생도 이성 친구를 가지고 있는 시대에 살면 더욱 그렇다.
타임머신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 일 것이다. 시간을 초월할 것은 거의 없어서 같은 곳이라도 시대가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신세계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굳이 복잡하고 실현도 불가능하다는 타임머신을 떠올리는 것보다 이 책 '머저리 클럽'을 보는 것만으로 예전 시대에 다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이 책 '머저리 클럽'의 화자는 동순이지만 이야기는 동순과 다섯 명의 친구들의 이야기로 전개 된다. 특별히 불량소년은 아니면서 치기어린 나이가 되어버린 동순, 영구, 동혁, 문수, 철수는 한 학생을 혼내주기로 한다. 다른 학교에서 온 다른 학생들과 달리 동순의 짝인 영민은 특이한데가 있는 소년이었다. 특별히 싸움에 강한 것도 아니지만 자유를 누리는 데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얌전한 학창생활을 보내는 다른 타교생들과 달리 다섯 악동의 눈에 유독 영민이 얄미워보였다.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빼먹기도 하고 도시락을 미리 까먹기도 하는 영민의 행동이 거슬리게 느껴졌던 그들은 트집을 잡아서 그를 때려줄 계획을 세운다.
별 이유도 아닌 것으로 시비를 걸고 영민을 불러내서 때려줬지만 그 일이 끝난 후의 기분은 다섯 명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들을 보고 비겁하다고 말한 영민의 말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후련하기보다는 씁쓸했던 것이다. 하기야 실상 그들의 행동은 비겁한 것이었다. 별 이유도 안 되는 것을 문제 삼아서 한 명을 다섯 명이서 때렸다는 것은 비난받아도 마땅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더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민이 다섯 명에게 결투를 신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그들과 달리 정정당당하게 싸울 생각으로 한 번에 한 명씩을 불러냈다. 그 싸움이 이어지자 다섯 명은 점차 움츠러든다. 내심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뿐더러 영민이 마음에 든 것이었다. 마지막 날 영민에게 시비를 걸어서 불러냈던 동순과의 싸움 날 영민은 이전 네 명과 싸울 때와 달리 죽자고 덤벼든다. 동순은 팔씨름만 해도 운동을 하는 동혁을 제외하고는 지지 않을 만큼 힘도 센 편이었지만 왠지 영민을 때릴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다. 자신이 일으킨 일이고 그의 분을 다 받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영민의 일방적 분풀이가 끝나고 동순은 자신의 패배를 시인한 후 자리를 일어선다.
이제 영민이 마음에 들어버린 다섯 악동은 그와 친구가 될 방법을 찾으려 한다. 마침 영민이 학교를 빠지기 시작했고 동순은 그것을 기회 삼아서 영민의 집에 간다. 결국 친구가 된 여섯 명은 모임의 이름까지 만든다. 일명 '머저리 클럽'이다. 이름만 들어도 예상이 가듯이 유쾌한 일들을 일으키는 이들 여섯 명의 지은 가장 큰 죄라고 해봐야 무전취식 정도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등학교 때는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시기고 그에 따라 마음이 바람에 날리는 낙엽마냥 춤을 추는 시기다. 그런 시기에 학교나 입시에 묶여 있던 다섯 명의 눈에 영민의 존재는 자유를 일으키는 바람 같은 것이었고 그들이 영민과 친구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머저리 클럽이 결성되고 그들은 함께 어울려서 시간을 보낸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 일도 아닌 자기들만의 즐거움에 빠지기도 하고 버스에서 만난 남모르는 소녀에게 반해서 연서를 쓰기도 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새로운 친구 영민을 사귀면서 시작된 머저리 클럽의 이야기는 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끝이 난다. 타인의 눈에는 대단치도 않은 일이지만 그 울타리 안에 속한 입장에서는 소중한 날들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당사자에게는 너무도 엄숙한 순간이었던 풋사랑을 지켜보기도 하고 그들의 대책 없는 행동을 보면서 웃게 되기도 했다. 시대가 달라서 기록물 속에서나 보았던 시대를 다시 보게 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그게 또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시간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만 성장을 하는 순간의 소중하지만 서툰 시간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대책 없는 여섯 악동들의 학창시절 '머저리 클럽' 재밌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