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천재의 비밀노트 - 숫자기억하기 세계기록 보유자
오드비에른 뷔 지음, 정윤미 옮김 / 지상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시험을 볼 때가 되면 특히 부러워지는 능력이 있다. 바로 순간기억능력자다. 한 번 보고 전부 기억할 수 있다면 시험범위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전부 소화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본 적은 없는데도 암기할 분량이 많을 때마다 이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진을 찍는 것 같은 기억력이 있어서 그 기억이 필요할 때마다 불러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순간기억능력이 정말 존재할까.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지만 실제로 순간기억능력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 이 책 '기억력 천재의 비밀노트'에서 주장하는 바다. 단지 기억력이 뛰어난 것뿐이라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이 뛰어난 것뿐이라고 한다. 즉, 뛰어난 기억력은 천부적인 재능이라기보다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습득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니 귀가 다 솔깃해졌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기억력이 뛰어나다면 편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일단 시험공부에 드는 시간이 줄어들 테고 무언가 할 일을 잊어서 곤란할 일도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를 훈련해야 기억력 천재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기억 저장 방식에 대해 알아 갈수록 후천적으로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기억력을 향상 시키는 법은 여정 기법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것이 묘해서 위치와 관련된 것을 잘 기억해낸다는 것이다. 한 예로 9.11 테러가 무슨 요일이었는지 보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더 잘 기억해낸다고 한다. 참고로 9.11 테러가 일어난 날은 화요일이었고 그 뉴스를 봤을 때 영화 예고인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웬 비행기가 부딪혔다는 말과 함께 화면이 나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리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정작 그 날이 무슨 요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때 집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는 것만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렇듯 사람의 기억은 위치와 관련되거나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된 것은 좀 더 잘 기억해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점을 활용한 기억기법이 여정기법이라고 한다. 여정기법은 먼저 익숙한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가령 예전에 살았던 집이나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아무리 오래 지났어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릴 수가 있다. 십년도 넘게 지난 기억이라 해도 말이다. 그리고 그 경로에 임의로 포인트를 설정한다. 집의 경우에는 현관문 앞에서 시작해서 안방으로 가는 길에 몇 개의 포인트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현관문 바깥은 1번, 복도는 2번, 계단은 3번, 주방은 4번, 거실은 5번 같은 식으로 정해나간다. 그리고 외워야 할 것은 그 장소에 대응시킨다. 외워야 할 단어가 댐, 헬리콥터, 리튬 배터리, 베리, 보더 콜리, 자동차, 기사, 황소, 꽃, 네온사인의 10개라면 장소에 하나씩 대응해서 연상하라고 한다. 먼저 현관문 바깥에서 댐을 보는 장면을 생각하고 이어 집으로 들어와 복도에서 헬리콥터를 보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는 것이다. 자그마한 헬리콥터 모형이 머리 주위를 날아서 당황하는 장면을 생각한 후 간신히 한숨을 돌리고 계단으로 가는데 바닥에 리튬 배터리가 떨어져 있어서 일단 주워든 후 어리둥절해 하는 자신을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10번째 장소의 화장실까지 향해서 마지막으로 화장실 안의 네온사인을 보고나면 일단 상상 속의 여정이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상상 속의 여정을 몇 번 반복해 본 후 10개의 단어를 적어보라고 하면 쉽사리 10개의 단어를 기억해낼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 방식을 쓰니 암기해야 할 기억이 장기기억과 연관이 되어서 쉽사리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댐이 수소, 헬리콥터가 헬륨, 리튬 배터리가 리튬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만 있으면 원소주기표 시작부분의 10개 원소에 해당하는 연상은 모두 외운 것이라고 한다. 이 방식이 깨나 인상적이었는데 책에는 이 여정기법을 이용해서 세계에서 면적이 큰 나라 14개를 외우는 것으로 한 번 더 이 방법을 복습시키고 있다. 별 연관이 없어보였던 14개의 나라를 이 방식으로 외우고 나니 몇 번 반복을 하지 않았음에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숫자를 쉽게 외우기 위한 방식을 몇 가지 설명하고 있는데 후에 이 방식과 여정기법을 연결하니 좀 더 쉽게 기억을 할 수 있는 방식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단지 여정기법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숫자를 외우는 방식은 한 번에 이해하기에는 좀 힘든 감이 있었다. 그리고 기억의 저장하는 다른 방식들을 하나하나 시험하면서 읽어나가려니 책을 빠른 속도로 읽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해하고 익히고 나면 쓸모가 있을 것들이라서 조금씩 읽어나갈수록 뿌듯한 심정이 되었다. 기억력을 향상 시키는 비법들이 가득한 '기억력 천재의 비밀노트' 인상 깊게 읽었다. 책의 내용을 완전히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몇 번 더 반복해서 읽어볼 생각이다. 완전히 소화한다고 해서 기억력 천재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기억력에 한해서는 좀 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벽한 결혼을 위한 레시피
케이트 캐리건 지음, 나선숙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온다. 그리고 그 뒤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호기심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사람의 인생에서 대체로 거치게 되는 것 중에 죽음과 비슷한 효과를 낳는 것이 있다. 바로 결혼이다. 만인에게 평등한 죽음과 달리 결혼은 이제 피하려고 들면 피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아직도 자신의 의사에 반해 결혼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비교적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관대해진 것도 사실이다.

죽음은 누구나 가게 되지만 돌아온 사람이 없기 때문에 호기심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결혼은 어떨까. 우스갯소리로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결혼에 비관적인 사람은 결혼은 인생에 무덤이라고 한다. 허나 이제 돌아온 싱글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이니 결혼은 죽음과 달리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를 알 수 있다는 것인데 결혼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환상은 사그라질 줄을 모른다. 그것은 결혼이 죽음이나 이혼으로 끝이 난 사람들이 돌아와서 자신의 결혼에 대해 말한다한들 그것을 일반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내용을 말하는 사람의 결혼일뿐 다른 사람이 하게 되는 결혼과 같을 수가 없다. 저마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혼자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고 싶은 욕구가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탓도 있다. 그런 본능을 제외하고서라도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꽤나 강인함이 필요한 일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에 빠져 산다.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이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 책 '완벽한 결혼을 위한 레시피'의 주인공 트레사 역시 어느 정도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다. 잘나가는 푸드 저널리스트였지만 트레사의 나이는 서른여덟이었고 이제 결혼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한 남자가 나타난다. 자신이 사는 건물의 관리인이라는 점은 환상을 꿈꾸는 여성의 입장에서 그다지 낭만적이지 못했지만 댄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의 외모가 굉장히 훌륭했고 그 남자가 그녀를 보는 방식이 특별했기 때문에 트레사 역시 그를 특별하게 보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트레사는 이미 술에 취해 있었고 기분이 아주 안 좋았기 때문에 댄에게 괴팍하게 대했다. 그런데도 댄은 마치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인냥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녀의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댄을 보면서 트레사는 그의 눈으로 보는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을 얻는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특별하게 보는 남자라는 점에 가산점을 부여한 것이다. 트레사는 결국 댄과 결혼한다.

문제는 자신의 아파트로 댄과 돌아왔을 때 그가 자신이 바라던 남자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 남자와 자신은 이미 결혼했는데도 말이다. 평생을 기다린 이상의 남자가 그가 아니라고 댄에게 말하기에는 트레사는 지나치게 겁쟁이였다. 아니면 제정신이었거나 말이다. 댄은 그녀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에게 헌신적인 태도를 취한다. 결혼을 한 후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그녀를 대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더욱 트레사는 죄책감을 느낀다. 댄은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트레사는 그의 선량함에 감탄하면서도 그를 열렬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울해한다.

결혼에 대한 강박관념에 의해서 그를 사랑한다는 환상에 빠진 것이 아닌가 자책하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와 트레사의 외할머니 버나딘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다른 시대 다른 상황이지만 비슷한 느낌과 감성을 주는 이야기는 두 여주인공에 좀 더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점이 있었다. 이 책의 이야기가 신선했던 점은 많은 이야기의 끝이 결혼해서 그들이 행복하게 살았다로 마무리된 반면에 결혼을 했지만 그 남자를 열렬하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사랑의 형태는 단 하나인 것이 아니고 트레사와 버나딘의 이야기는 자신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풀려나간다. 트레사의 이야기는 댄의 가족과 어울리는 면이라든지 흔들리는 1년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는데 그 미묘한 감정의 움직임이 흥미로웠다. 반면 버나딘의 이야기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살던 시절부터 남편의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긴 시간을 담고 있었다. 때로는 버나딘의 철없는 심정을 공감하기도 하고 그녀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게 된 말을 들은 순간에는 감동하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때도 집중하게 되지만 다 읽고 난 이후에도 여운이 오래 남는 책이었다. 진정한 사랑과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완벽한 결혼을 위한 레시피' 굉장히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거서 크리스티 - 완성된 초상
앤드류 노먼 지음, 한수영 옮김 / 끌림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읽은 소설책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사람들은 책에 관심을 두지만 정작 그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는 당연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책내용보다는 작가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은 어떤 면으로는 당연하다. 책 그 자체보다 자신에게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더 쏠린다면 그것만큼 작가에게 있어 난감한 상황도 없을테고 말이다. 만약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애거서 크리스티'라고 말한다면 그 말의 의미는 그녀가 낸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작가인 애거서 크리스티 본인을 좋아한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보통 책을 통해서 말하는 법이니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래서 애거서 크리스티처럼 유명한 작가인 경우에도 그 인생을 세밀하게 알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녀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말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처음 결혼한 남편인 아치 크리스티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혼을 하게 되었고 크리스티란 성을 바꾸고 싶었지만 이미 그녀의 이름이 너무 유명해진 상태여서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그녀에 대한 큰 의문으로 남아 있던 사건인 애거서 크리스티 본인의 실종 사건이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점이 많은데 실종된 이후 그녀는 기억상실 상태였다고 한다. 후에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남편도 딸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그녀는 더 큰 유명세를 얻게 되었고 최고로 인정받는 여류추리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상황에 대해서 그녀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설과 정말 기억상실에 걸렸을 것이라는 설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몇 년 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이 책 '애거서 크리스티-완성된 초상'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인생 전반을 파고들고 있다. 상상력이 풍부했지만 신경질적인 어린 아이였던 그녀가 어떻게 천재적 소설가가 되었으며 화제가 되었던 실종사건에 대한 의문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완성된 초상'이라는 제목 자체도 애거서 크리스티가 발표했던 자전적 소설 '미완의 초상'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렸을 때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는 평과 달리 그리 유복하게 자라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집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가난했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녀의 집에는 하인이 세 명 있었는데 다른 집에는 더 많은 하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 자신이 직접적인 비난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능한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유산을 관리하는 것에 실패했고 집은 재정난에 빠지고 말았다. 그쯤 되면 아버지가 일자리를 구할 법도 하건만 '게으른' 그녀의 아버지는 일자리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재정난으로 인해서 물가가 싼 프랑스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낼 계획을 짠다. 그 곳에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프랑스어를 익혔고 그녀의 어린 시절에서 흔치 않은 친구를 얻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고 그녀는 다시 외로운 시절로 빠져든다. 일단 언니와 오빠가 있었지만 십 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터라 서로 사이가 그리 다정하지 못했고 학교라도 갔다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을 텐데 그녀의 부모는 애거서가 학교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교육은 가정교사에 의한 것이었고 어린 아이인데도 친구는 어머니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데다가 외로움에 시달린 애거서는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건맨'이라는 의문의 인물이 나타나서 그녀를 위협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이 '건맨'이라는 인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상대적 빈곤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애거서는 성년이 되자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치 크리스티라는 남자와 결혼한다. 그 때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약혼녀였지만 약혼자는 참전한 상태였고 그녀의 곁에 없었다. 어머니는 아치가 '무자비한' 사람이라면서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애거서는 그 사실을 무시한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의 의견은 결국은 옳은 것이었다.

이런 애거서의 일생과 함께 하며 책에서는 그녀의 다양한 작품의 예를 든다. 가령 애거서가 언니의 저택을 방문했던 경험에서 '서재의 시체'의 배경이 된 저택이 그 곳이라든지 애거서가 약사로 일한 경험에서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이 나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첫 장편 소설이었는데 그녀는 '약학 저널'에 실린 서평을 가장 만족해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다른 작가의 추리소설과 달리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은 정확한 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써졌다는 평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일생을 읽으면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양한 작품을 함께 떠올려 볼 수 있던 점이 특히 좋았다. 그녀의 다양한 작품이 언급될 때마다 그 작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얼마 전에 읽은 것이라면 그 세세한 내용을 떠올리면서 읽게 되고 한참 전에 읽은 것이라면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가 만들어낸 작품 외에도 그녀의 일상이 빚어낸 가장 큰 미스터리인 실종사건을 다각도로 짚어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추리 소설의 여왕이라는 호칭을 얻기까지의 애거서 크리스티를 보여준 '애거서 크리스티-완성된 초상' 인상 깊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련님과 악몽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8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사람은 이제 동물로서의 본능을 많이 잃어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본능 중에 하나는 생존본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뒤편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뒤로 접근해서 말을 거는 사람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약간의 불쾌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한 생물이 다른 개체에게 뒤를 빼앗긴다는 것은 생존문제와 직결된다. 만약 토끼가 뒤로 접근한 늑대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다면 늑대의 움직임에 반응할 시간이 부족할 테고 아마도 토끼는 늑대의 식사감이 될 것이다.

덕분에 무의식중이지만 사람은 뒤를 빼앗긴다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뒤로 접근한 개체에 혐오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많은 공포 이야기에서 등 뒤의 시선에 대한 것이 나온 것 같다. 뒤를 빼앗겨서 생명을 잃을 위험과 직면한다면 누군가의 시선이 뒤에서 느껴진다는 것은 이미 목숨이 위험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괜히 신경이 예민할 때는 방문을 닫는 순간의 뒤편이 서늘한 것 같고 머리를 감아서 뒤를 볼 수 없을 때 뒤편에 누군가의 시선이 닿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도 그런 상황에 처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에게는 하나의 금기가 있었는데 어떤 특정 장소에 있는 건널목만은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남자는 살아오면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왔는데 그 중 한 여자가 그 건널목에서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남자는 계속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그래도 실연 때문에 여자가 자살한 장소를 지나치는 것은 꺼림칙했다. 생각해보면 여자는 성격이 얌전한 편이었다. 특별히 그녀가 잘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 마음에 들었던 얌전한 성격이 몇 번 만나고 보니 질려버린 것이 문제였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넘기려 해도 그 장소를 가고 싶지는 않았고 그런 식으로 다른 길로 돌아가다 보니 하나의 금기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평소대로 그 길을 피해가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와의 데이트 시간에 맞추기가 빠듯한 터라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가로지르게 된 것이다. 자신이 운전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택시를 탄 터라 택시기사 아저씨가 함께 있어서 두려움도 덜했지만 건널목이 가까워지자 남자는 긴장으로 얼어붙는다. 그리고 건널목을 지나치는 순간 남자는 시선으로 느낀다. 바로 죽은 하루코의 시선이었다. 눈 밑에 점이 있고 가만히 올려보는 시선이었다. 자신이 헤어지자고 말한 순간의 원망스러운듯한 시선 말이다. 그는 순간 오싹해하지만 차는 아랑곳없이 달리고 있었고 건널목도 이미 지나친 후였다.

뒤를 돌아봐도 그저 다른 자동차가 보일 뿐이지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긴장으로 인한 착각으로 치부하고 남자는 데이트 장소에 가지만 다시 시선을 느낀다. 어디를 가도 시선은 계속 따라온다. 누구와 어디에 있든 자신을 보는 하루코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다. 심지어 잠을 자려고 누워도 등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옆으로 돌아누워도 시선이 따라오고 정자세로 누워도 침상 밑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는 점차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만 하루코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약간 신경질적인 상태가 되지만 현재 만나고 있는 여자에게 내색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 때문에 죽은 여자의 시선이 느껴져서 두렵다고 어떤 여자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현재 만나는 여자 친구가 그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해변에 놀러가자는 것이다. 별 생각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인 남자였지만 아직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2층의 계단 방에서 죽은 아들이 공부하고 있다는 '눈 오는 밤'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역시 '응시'였다. 자신이 버린 여자가 죽은 건널목을 지나친 이후 그 여자의 시선에 시달린다는 이야기가 섬뜩하면서도 이색적이었던 것이다. 호시 신이치의 이야기는 대부분 놀랄만한 반전을 안고 있지만 그 이야기를 말하는 필치는 담담한 편이라 그 이야기를 더 오래도록 기억하게 한다. 재밌는 이야기라도 하는 사람이 키득 거리면서 말하면 그다지 재미있지 않지만 담담한 투로 말하면 조금 더 재밌게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읽으면 읽을수록 매료되는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 '도련님과 악몽' 정말 재밌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없는 생활
둥시 지음, 강경이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으로 인해서 상처받고 사람으로 인해서 구원받는다지만 타인으로 인해 계속해서 상처를 받고 그 상처가 아물 새도 없이 다른 상처가 생겨서 견딜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완전한 단절을 원하지 않는다. 외로움을 견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단절돼서 강제적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더욱 달갑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하려고 든다. 자신의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한 순간이라도 가시길 바라는 것이다. 그 외로움은 결국 자신이 지고 가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말이다. 그런데 언어가 없다면 타인과의 교류는 아주 힘든 면이 있다. 언어가 없다 해도 눈이 보인다면 그 사람의 표정이나 태도로 인해서 그 사람과의 어느 정도의 관계를 형성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아는 사람과 가능한 정도지 모르는 사람을 말도 없이 멀뚱멀뚱 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여기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가족이 있다. 이 책 '언어 없는 생활'에 수록된 이야기 '언어 없는 생활'에 등장하는 왕씨 부자와 며느리다. 아버지는 앞이 보이지 않고 아들은 귀가 들리지 않으며 며느리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원래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실수로 벌집을 건드렸고 그로 인해서 벌에게 수없이 쏘여 사경을 헤매고 난 후에 시력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당시 아들이 옆에 있었는데 아들은 그 때도 이미 귀가 들리지 않았던 터라 아버지가 도와달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발견한 때에는 이미 그가 중상을 입은 후였다.

그 벌집 사건 이후 아버지는 간신히 목숨은 건지지만 시력을 잃었고 천성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닌 터라 그에게 뛰어난 청각과 후각도 없었으므로 아들이 없으면 운신하기도 힘든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의 아내라도 살아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아내는 이미 죽은 이후였고 귀가 들리지 않는 아들과의 의사소통은 너무 힘든 것이었다. 아버지는 수화를 하지 못했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떻게든 의사를 전달하려고 해도 귀가 들리지 않는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쉽게 알아듣지 못했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부르는지도 모르는 정도였으니 아버지의 입장은 점점 난처해졌다. 마침 아들이 나가기에 비누를 사다달라고 손짓발짓을 동원하지만 아들은 한참을 못 알아듣고 겨우 알아듣나 싶었더니 엉뚱하게도 수건을 사가지고 돌아온다.

가족 간에도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더구나 마을 사람들의 인심도 그다지 좋지 않아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부자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아들이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머슴 부리듯이 부린다. 집에 걸어두었던 고기를 훔쳐가질 않나 이유 없이 아들을 붙잡아서 머리를 밀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로 인해서 상처만 늘어가는 부자였다. 그런 부자의 생활에 변화가 찾아온다. 붓을 팔고 다니는 아가씨가 나타난 것이다. 이 아가씨는 눈이 보이고 귀도 들리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처음 아가씨의 보호자를 자처했던 아들은 아가씨와 정분이 나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여전히 우습게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임에도 인심이 그 정도였던 것이다. 아들이 죽자고 매달릴 때는 돌아보지도 않던 마을 처녀는 유부남의 아이를 가지자 뻔뻔스럽게도 왕씨 부자의 집에 들어오려 한다. 아들의 아이로 생각하고 받아달라는 것이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뻔히 알고 있고 이미 붓을 팔던 아가씨가 왕씨 부자의 집에 며느리로 들어온 마당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가족은 그 처녀를 쫓아내지만 그것이 또 다른 분란거리가 되고 만다.

점차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것을 안 아버지는 한 가지 결심을 한다. 당장 짐을 싸서 마을과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할 생각을 한 것이다. 마을에서 상당히 먼 거리는 아니더라도 산 속에 위치하고 다리를 떼면 타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사를 간 세 명은 자신들끼리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어떤 못된 녀석이 밤에 그 집을 몰래 찾아왔고 며느리가 강간을 당할 뻔한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처음에는 참을 수밖에 없다고 한 세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참기에는 너무 분한 일이었고 범인을 잡기 위해서 가족이 힘을 모은다.

책에는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 책의 제목이기도 한 '언어 없는 생활'이 단연 돋보였다. 한 군데씩 불편해서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는 가족이 모여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소통에 성공하는 것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야기 속의 타인은 가족을 상처만 주는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그렇겠구나 싶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은 더했다. 타인과의 소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언어 없는 생활' 인상 깊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