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없는 생활
둥시 지음, 강경이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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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인해서 상처받고 사람으로 인해서 구원받는다지만 타인으로 인해 계속해서 상처를 받고 그 상처가 아물 새도 없이 다른 상처가 생겨서 견딜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완전한 단절을 원하지 않는다. 외로움을 견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단절돼서 강제적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더욱 달갑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하려고 든다. 자신의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한 순간이라도 가시길 바라는 것이다. 그 외로움은 결국 자신이 지고 가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말이다. 그런데 언어가 없다면 타인과의 교류는 아주 힘든 면이 있다. 언어가 없다 해도 눈이 보인다면 그 사람의 표정이나 태도로 인해서 그 사람과의 어느 정도의 관계를 형성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아는 사람과 가능한 정도지 모르는 사람을 말도 없이 멀뚱멀뚱 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여기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가족이 있다. 이 책 '언어 없는 생활'에 수록된 이야기 '언어 없는 생활'에 등장하는 왕씨 부자와 며느리다. 아버지는 앞이 보이지 않고 아들은 귀가 들리지 않으며 며느리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원래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실수로 벌집을 건드렸고 그로 인해서 벌에게 수없이 쏘여 사경을 헤매고 난 후에 시력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당시 아들이 옆에 있었는데 아들은 그 때도 이미 귀가 들리지 않았던 터라 아버지가 도와달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발견한 때에는 이미 그가 중상을 입은 후였다.

그 벌집 사건 이후 아버지는 간신히 목숨은 건지지만 시력을 잃었고 천성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닌 터라 그에게 뛰어난 청각과 후각도 없었으므로 아들이 없으면 운신하기도 힘든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의 아내라도 살아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아내는 이미 죽은 이후였고 귀가 들리지 않는 아들과의 의사소통은 너무 힘든 것이었다. 아버지는 수화를 하지 못했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떻게든 의사를 전달하려고 해도 귀가 들리지 않는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쉽게 알아듣지 못했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부르는지도 모르는 정도였으니 아버지의 입장은 점점 난처해졌다. 마침 아들이 나가기에 비누를 사다달라고 손짓발짓을 동원하지만 아들은 한참을 못 알아듣고 겨우 알아듣나 싶었더니 엉뚱하게도 수건을 사가지고 돌아온다.

가족 간에도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더구나 마을 사람들의 인심도 그다지 좋지 않아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부자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아들이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머슴 부리듯이 부린다. 집에 걸어두었던 고기를 훔쳐가질 않나 이유 없이 아들을 붙잡아서 머리를 밀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로 인해서 상처만 늘어가는 부자였다. 그런 부자의 생활에 변화가 찾아온다. 붓을 팔고 다니는 아가씨가 나타난 것이다. 이 아가씨는 눈이 보이고 귀도 들리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처음 아가씨의 보호자를 자처했던 아들은 아가씨와 정분이 나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여전히 우습게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임에도 인심이 그 정도였던 것이다. 아들이 죽자고 매달릴 때는 돌아보지도 않던 마을 처녀는 유부남의 아이를 가지자 뻔뻔스럽게도 왕씨 부자의 집에 들어오려 한다. 아들의 아이로 생각하고 받아달라는 것이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뻔히 알고 있고 이미 붓을 팔던 아가씨가 왕씨 부자의 집에 며느리로 들어온 마당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가족은 그 처녀를 쫓아내지만 그것이 또 다른 분란거리가 되고 만다.

점차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것을 안 아버지는 한 가지 결심을 한다. 당장 짐을 싸서 마을과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할 생각을 한 것이다. 마을에서 상당히 먼 거리는 아니더라도 산 속에 위치하고 다리를 떼면 타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사를 간 세 명은 자신들끼리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어떤 못된 녀석이 밤에 그 집을 몰래 찾아왔고 며느리가 강간을 당할 뻔한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처음에는 참을 수밖에 없다고 한 세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참기에는 너무 분한 일이었고 범인을 잡기 위해서 가족이 힘을 모은다.

책에는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 책의 제목이기도 한 '언어 없는 생활'이 단연 돋보였다. 한 군데씩 불편해서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는 가족이 모여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소통에 성공하는 것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야기 속의 타인은 가족을 상처만 주는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그렇겠구나 싶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은 더했다. 타인과의 소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언어 없는 생활'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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