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법칙
김민주 지음 / 토네이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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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은 하루에도 수많은 실수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 실수가 한참이 지나도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일 수도 있고 아차하고 지나갈 수 있는 작은 것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그 실수란 것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넘어지고 말았다는 수준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실수를 다른 면으로 보면 어떨까. 단 한 번, 단 한 명이 그 지점에서 자기 다리에 걸려서 넘어진 것이라면 그 사람 자신이 약간 아프고 창피한 정도에서 끝이 난다. 그런데 그 지점의 바닥이 유독 다른 부분과 높낮이가 맞지 않아서 거기에서 넘어지는 사람이 많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몇 가지 더 해서 그 횡단보도에 지나가는 사람이 아주 많고 바쁜 아침이라 뛰어가던 사람이 잘 넘어지는 지점이라면 사람들이 일으키는 실수의 양은 늘어난다. 이쯤에서 멈춘다면 그것은 작은 실수일지도 모르지만 어느 날 그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고장 나거나 과속을 하던 차가 횡당보도에서 미처 서지 못했고 그 순간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이 넘어졌다면 그것은 큰 사고가 되고 만다.

이 책 '하인리히 법칙'에서는 바로 그런 일을 다루고 있다. 하나하나를 보면 작은 실수일수도 있지만 그런 실수가 반복되다보면 재앙이 된다는 것이다. 은근히 나비효과가 떠오르는 법칙이었다. 아주 먼 곳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이 될 수도 있다면 영업장의 수많은 실수가 큰 사고로 번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인리히 법칙을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다. 하나의 거대한 재앙이라고 부를 정도의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29번의 작은 재해가 있었으며 그 29번의 작은 재해가 있기 전에는 300번의 작은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도미노처럼 번지는 이런 실수들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끝내는 거대한 사고가 일어나고 만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런 사건의 예로 타이타닉호가 가라앉았던 것을 들고 있다. 영화로 만들어져서 수없이 회자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타이타닉은 사람이 만들어낸 재난에 가깝다. 빙산에 부딪히기는 했지만 사전에 그런 상황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작은 실수들의 예로 먼저 퇴직을 앞두고 있었던 선장이 있었다. 호화 여객선을 전문으로 몰았던 선장은 타이타닉 호의 항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할 생각이었다. 선장은 지나치게 방심했으며 규정대로 바다를 지켜볼 인원을 배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항해를 함으로써 사고의 위험을 높였다. 타이타닉 호가 지나치게 빠른 항해를 해야 했던 것은 과욕을 부려서 들렀던 항구마다 너무 많은 손님을 태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출발이 지체되었고 도착시간을 맞추려면 빠른 속도로 배를 몰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직원들이 태만했던 이유도 있었다. 시기상으로 바다에는 빙산이 많은 시기였고 그 주변에 있는 많은 배들이 타이타닉 호에 끊임없이 빙산이 많다고 알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은 손님들의 전보를 보내느라 바빠서 이를 무시했다. 배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배가 가라앉아도 배에 물이 들어오지 않게 처리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호화 여객선으로 꾸미기 위해서 그런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더구나 물이 들어오지 않게 턱을 높여 두었어야 했는데 지위 높은 손님이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그런 부분을 제외했던 것이다. 또한 위에서 바다를 지켜볼 수 있는 탑조차 설치하지 않았다. 거기에 침몰하던 당시에 구명보트에 빈자리가 있었음에도 사람을 다 태우지 않아서 피해를 늘렸다고 한다. 여성과 아이를 우선시해서 구출하는 것도 좋지만 보트의 대부분이 비어 있다면 남자 승객이라도 태웠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주변의 배들도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도 많은 사상자를 내게 하는 데에 한몫했다. 이 모든 것들이 각각 흩어져 있었다면 약간 난감한 정도의 실수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동시에 벌어졌고 타이타닉 호 사건은 영화로도 몇 번이나 만들어질 정도의 대재난이 되고 말았다.

큰 사건이 있기 전에 작은 재해가 있고 그 전에 수많은 실수가 있다는 점을 부각한 법칙이라 읽을 때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작은 실수를 막아서 큰 재난을 막으라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법칙을 역이용해서 작은 영감들을 대단한 발명품이나 창조적 생각으로 발전시키라는 부분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사람은 어차피 살아가면서 실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어떤 실수를 어떻게 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바보는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사람이지만 천재는 계속하여 다른 실수를 일으키는 사람이다. 사고를 부르는 반복적인 실수를 막는 동시에 창조적 실수를 부추기는 '하인리히 법칙' 기억해 둘 만한 것이었다. 앞으로는 자신이 일으키는 실수가 바보의 실수인지 천재의 실수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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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사랑 판타 빌리지
리처드 매드슨 지음, 김민혜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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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은 국가의 장벽을 넘을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과 맞설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설사 그것이 사랑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의 영향력 아래에 살아간다. 그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젊음을 잃게 되기도 하고 심장을 찢을 만큼 아팠던 사랑도 점차 잊어간다.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시간을 멈출수도 거스를 수도 없다. 사람을 만나는 것 조차 자신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옛날 영화에 나오듯이 시간차에 따라 엇갈리는 정도라면 어떻게든 연락해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게 된 사람이 이미 75년 전에 살았고 이미 죽은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책 '시간 여행자의 사랑'은 뇌종양으로 인해서 시한부의 인생을 살게 된 남자가 우연히 75년 전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남자의 이름은 리처드 콜리어였고 작가였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작가로써는 나름대로 성공한 삶이었고 그 생활에 큰 불만이 없었다. 가끔 심각한 두통에 시달리는 것 말고는 말이다.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형인 로버트가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계속 두통에 시달리는 동생이 병원에는 가지 않자 조바심이 난 것이다. 별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리처드지만 병원에서는 그가 예상하지 못한 답을 내놓는다. 그의 뇌에 종양이 있으며 이제 4개월에서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처드는 절망에 사로잡힌다. 이제 서른 여섯,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보내지도 못한 나이였다. 자신은 아직 젊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너무 이른 시기였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기에 그는 담담해 보였다. 오히려 형인 로버트는 강단이 있는 사람인데도 그 이야기를 듣자 어린아이처럼 울어 버렸다.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리처드는 자기 방식대로 삶을 정리할 결심을 한다. 동전을 던져서 방향을 결정하고 알 수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는 현재 형의 집 별채에서 살고 있었는데 자신이 죽을 날까지 형과 형수의 얼굴을 보면서 견딜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죽은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족을 보면서 슬프지만 결코 티내지 않으려 하는 어색한 표정을 말이다.

리처드는 자신의 얼마 되지 않는 짐과 남은 예금을 전부 빼서 여행을 시작한다. 자신은 어차피 시간에서 유리된 존재이니 어디로 가든 어떻게 시간을 보내든 그것은 그의 자유였다.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 갑작스럽게 찾아왔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할지 그리고 하고 싶은지도 떠오르지도 않았지만 그저 정처없이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그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단 하나 있었다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 뿐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고 몸을 가누기가 힘들 때도 많았다.

그렇게 흘러다니다 보니 도착한 곳이 코로나도 호텔이었다. 과거의 유물 같은 호텔에 도착하니 기묘한 심정이 되었지만 그 호텔이 마음에 든 리처드였다. 잠시만 머무른 후 덴버를 향해 차를 몰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호텔의 역사실에서 한 여자의 사진을 보게 된다. 75년 전에 이 호텔의 무대에서 공연한 여배우 엘리스 매케나의 사진을 말이다. 무언가를 홀린 듯 바라보는 아름다운 여자의 사진이었다. 리처드는 사진을 보고 평생 느껴보지 못한 심정에 빠진다.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것도 75년 전에 살아있던 여성과 말이다.

자신이 현실 도피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끊임없이 되뇌어 보아도 마음은 그 사진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역사실에서 그 사진을 훔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려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리처드는 어떻게든 마음을 가라앉히려 혹은 어떻게든 그녀에게 다가갈 방법을 찾고자 엘리스 매케나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역사실 사진의 설명으로는 그녀가 불세출의 여배우라고 했으니 분명 그녀를 자세하게 다룬 책이 있을 터였다. 먼저 서점에 가서 그녀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지만 작은 규모의 서점에는 그녀에 대한 책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점 점원의 충고대로 큰 서점에 가서 그녀에 대한 책을 찾는데 오직 그녀만을 다룬 책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그녀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있는 책이라도 사와서 한 권씩 읽어나간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 의문점이 있으며 자신이 예전에 그녀와 마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 리처드는 어떻게든 1971년을 벗어나 1896년의 코로나도 호텔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엘리스를 만나기 위해서 시간을 뛰어넘을 방법을 찾지만 일은 그가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야기 내용 자체가 독특하기도 하지만 해석이 둘로 나뉠 수 있는 책이라서 전부 읽은 후에 기분이 묘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었다. 과거에 살던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그 여인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뛰어 넘을 방법을 찾는 남자라니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 남자가 시한부의 인생을 살고 있어서 독특한 부분에 집착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로 과거의 사람을 사랑해버렸다면 그런 노력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경계를 뛰어넘은 남자의 이야기 '시간 여행자의 사랑' 소재도 결말도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다는데 그것도 찾아서 보고 싶을 만큼 독특한 내용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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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앤드 커맨더 1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1
패트릭 오브라이언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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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다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마음이 답답한 이에게는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자유를 꿈꾸기도 하고 일상이 지루한 이에게는 모험과 열정의 세계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인간이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바다는 만물의 어머니라고 숭상받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바다는 많은 환상을 자극한다. 포세이돈의 방해가 있어서 이기도 했지만 오디세우스 같은 영웅조차도 험난한 여정의 공간이 되었던 바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인간이 공기의 질마저 조절하는 세상이 온다고 해도 바다까지 제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런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 현실은 참혹할지라도 말이다. 이 책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19세기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잭 오브리는 영국 해군 소속의 젊은 대위였다. 아버지가 장군이었다는 배경과 본인이 뛰어난 뱃사람이었음에도 그는 번번이 승진 대상에서 누락된다. 정치적 알력 관계가 작용하기도 했고 상사의 부인과 스캔들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절대 자신만의 배를 갖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그는 한 남자를 만난다.

남자의 이름은 스티븐 머투린, 장차 그에게 매우 소중한 우정의 상대가 될 남자였다. 허나 그들의 첫 만남은 서로의 처한 환경에 의해서 매우 불쾌한 것이 되고 만다. 상사의 부인이자 잭 오브리의 내연녀로 의심되는 몰리 하트의 연주회에 간 잭은 음악에 심취한다. 그런데 그의 풍부한 감수성에 비해서 연주를 듣는 태도는 그리 좋지 못했던 것이다. 잭은 음악에 지나치게 심취한 나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거나 손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 때 옆에 있던 남자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제지를 했는데 몇 번을 해도 그 때만 조용했다가 다시 그런 행동을 취하자 이번에는 그를 손가락으로 찔렀던 것이다. 잭은 직업이 직업인데다가 성격도 다혈질인 편이라 울컥하고 만다. 그러나 사실 자신이 잘못한 터라 상대를 심하게 다그치지 못하고 물러선다. 상대 남자 역시 불쾌한 만남을 뒤로 하고 사라지는데 그도 신경질적인 태도를 취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잭 오브리가 연주회에서 취한 태도를 무례하고 몰지각해보였으며 스티븐 머투린은 그 때에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 있는 터라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였다.

이 불쾌한 첫 만남으로 인해서 두 사람의 인연의 끈은 끊어진 듯 했지만 잭 오브리가 함장으로 임명을 받으면서 상황이 변한다. 함장 임명장을 받아 매우 기분이 좋았던 잭은 우연히 만난 스티븐에게 일전에 자신이 취한 무례한 태도를 사과했던 것이다. 이 뜻밖에 행동에 스티븐 역시 잭에게 사과하고 두 사람은 함께 짧은 담소를 나눈다. 이 두 번째 만남은 나쁘지 않았던 터였고 잭은 기분이 매우 좋았으므로 스티븐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세 번째 만남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판이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꽤 대화를 잘 진행시켜나간다. 두 사람 다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어 스티븐이 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잭은 즉각 스티븐에게 자신의 배에 탈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잭이 이번에 타게 될 소피 호에는 군의관이 없었던 것이다. 군의관 뿐만이 아니라 전임자가 어처구니없게도 대부분의 선원을 데려간 것으로 보였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잭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의사인 스티븐을 놓치기 싫었고 스티븐은 이전에 치료한 환자의 치료비를 받지 못해서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잭의 제안에 흔들린다. 허나 배에 탄다는 것은 여러 모로 위험한 일이었다. 잭이 군인이어서 적국과 교전은 기본이고 적국에 속한 상선은 나포하려 들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해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근래에 정말 돈이 궁했던 스티븐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잭이 초대한 식사의 고기를 몰래 숨겨뒀다가 다음날 아침으로 먹어야 할 정도의 상황이니 마다하기 힘든 제안이었던 것이다. 다만 잭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빈말로 한 것일까봐 선뜻 응하지 못한다. 만약 그 제안이 농담이었다면 그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무너지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서로에게 다행하게도 그 제안은 절대 농담이 아니었고 잭은 소피호의 함장으로 스티븐은 소피호의 군의관으로 함께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의 우정이 싹트는데 스티븐은 의사라서 서로의 상하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이제 선원들 속에서 '우리'였던 잭은 위에서 명령하는 '그들'에 들어간 입장이었고 어떤 의미로는 배에서 외톨이였던 것이다. 존경받고 경외의 대상이 되는 신처럼 군림하는 외톨이였지만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한 친구인 스티븐 머투린과의 우정은 소중한 것이었다.

신임함장이 된 잭 오브리의 활약과 그 속에서 생기는 인간관계를 읽는 것이 즐거웠다. 스티븐 머투린과의 우정도 인상적이지만 부관 제임스 딜런이라든지 조함장 마셜, 수습사관들이 잭을 보는 시각이 독특했던 것이다. 해전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음에도 책장을 넘길수록 책에 빠져들게 될 만큼 내용이 매력적이었던 것도 좋았다. 책을 펼치는 순간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마스터 앤드 커맨더'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배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었지만 배에 대해서 알면 한층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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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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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생각보다 파괴적인 감정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격렬한 감정변화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처럼 변화하길 바란다. 초반에는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감정상태가 되길 바라지만 후에는 상대방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함께 변화하길 바란다. 그래서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없는 짝사랑이 어찌보면 가장 난감한 상황이다. 그런데 사랑이란 것은 사람의 감정이라 겉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어디까지가 적당한 온도의 사랑인지 어느 정도 선을 넘으면 상대는 물론 자신도 망가뜨릴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사랑이 아니라 단순한 집착과 삐뚤어진 욕망의 결과물을 사랑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이 책 '붉은 애무'는 아들과 지나친 사랑에 빠져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남자는 보험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일을 한지 오래되기도 했고 주변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이제 일반적 영업직이 아니라 관리직으로 올라가 있었다. 공격적 영업을 하는 보통의 보험업계 사람들과 달리 그는 좀 더 오래된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좀 더 고객을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방식 말이다. 그래서 고객의 수가 확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고객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다. 단지 보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을 정말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그의 오래된 고객으로 건물의 주인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건물에 불이 났다고 당장 와달라는 것이었다. 남자는 이제 관리직으로 올라갔으니 본인이 직접 갈 것이 아니라 부하직원을 보내도 될 일이었다. 허나 남자는 이렇게 답한다. 곧 가겠다고 말이다. 남자가 화재현장에 도착해보니 대부분의 불을 끈 상태였지만 건물에 살고 있던 모자는 사라진 상태였다. 화재의 원인은 돈이 없어서 전기가 끊긴 상태에서 살던 세입자 모자가 촛불을 잔뜩 켰고 그 중 하나가 불을 낸 것으로 보였다.

상황은 이러했지만 불은 다 꺼졌고 고객도 안심시켰으니 나머지 처리는 전문가에게 맡겨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그 일에 유독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직장 동료들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끝내 그에게 와서 휴가를 제의한다. 화재 사건은 다른 사람이 처리할 테니 당분간 휴가를 보내고 오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태도는 전부 그럴 만한 것이었다. 얼마 전 남자의 아들이 뺑소니차에 치여서 숨졌다는 것이다. 남자는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이의 엄마가 돌아왔고 아이의 엄마와 시간을 보내던 날 아이가 차에 치이고 말았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목격자가 아무도 없었다. 수사는 진척이 없었고 남자는 집에 있을 때면 아들과의 일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 더구나 남자는 허리가 좋지 않아서 무언가에 기대지 않으면 무거운 물건을 옮기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유모차에 물건을 담아서 옮긴다. 식료품을 사러갈 때마다 그는 유모차를 밀고 나가는데 그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얼어붙는다. 그가 아들의 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의 생각대로 그는 실제 고통 받고 있었다. 그는 아들과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그리고 그 기억의 끝에는 무서운 진실이 숨어 있었다.

남자가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 내려갈 때 아들의 유치원 선생님이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지나치게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로써 주어야 할 사랑을 넘어서 양쪽 부모 모두가 줄 만한 사랑을 혼자서 아들에게 퍼붓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사랑의 양이 좀 많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지나친 사랑은 광기로 변할 수 있고 광기로 변질된 순간부터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위해 어머니의 역할까지 하려고 한 남자의 이야기 '붉은 애무' 인상적인 면이 많았다. 그 바탕에 있는 심리가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섬세한 심리묘사가 특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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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Miracle 2
김재한 외 지음, 김봉석 해설 / 시작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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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평생에 걸쳐서 꿈을 꾼다. 백년 남짓한 길면서도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꿈은 하나의 긴 것 일수도 있고 짧은 여러 개의 것 일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꿈은 사람의 노력여하에 따라 이룰 수 있는 수준의 것인 반면 닿을 수 없는 신기루에 가까운 꿈들은 환상이라고 불린다. 그런 환상을 쫓아가는 인생을 산다면 무지개를 잡는 인생을 사는 것마냥 허황될 것이다. 하지만 잡을 수 없는 무지개가 더 아름다워 보일수도 있고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삶이라면 난감하겠지만 그런 환상을 살짝 들여다보는 것은 꽤 즐거운 편이다.

이 책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에는 그런 환상 9개가 실려 있다. 장편이라면 환상적인 이야기라도 현실과의 줄이 닿으면서 그 환상적인 면이 많이 깎여나갈것이다. 허나 단편이니 만큼 현실과 닿아 손상되지 않은 환상의 고유한 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9개의 이야기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상아처녀'에서는 그리스신화 속의 피그말리온이 자신만의 이상적 여성을 만들어내었던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과학을 이용해서 이상적 여성 갈라테이아를 만들어내고 그 여성과의 사랑을 이루려 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 이야기 속의 사랑은 온기로 대변된다. 과학을 통해 이상적 여성으로 탄생했지만 이야기 속의 갈라테이아는 이상적 여성과는 거리가 멀다. 몸은 성인여성이지만 그녀의 자아는 인간의 것과는 거리가 있다. 모든 감정을 학습해야 하고 인간다운 삶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데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갈라테이아의 모습은 측은함까지 갖게 된다. 오히려 실험실의 수조에서 살던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울한 환상인 셈이다.

다른 이야기 '카나리아'와 '사육'은 판타지 소설에서는 흔한 주제인 흡혈귀에 대한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어둠의 피조물의 이야기이니만큼 전반적인 분위기도 어둡다. 허나 익숙한 소재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이색적이다. 또 다른 흡혈귀에게 장난감처럼 사육당하는 흡혈귀의 이야기나 사냥꾼에게 쫓기는 삶을 사느라 하수도 속에서 살아야 하는 흡혈귀의 이야기라니 묘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인간의 삶을 포기한 대신 더 나은 것을 얻은 자가 아니라 오히려 더 못한 상황에 빠져야 하는 기괴한 생명체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반면 '용의 비늘', '윈드 드리머', '세계는 도둑맞았다'의 경우 주인공이 처한 상황 자체는 힘든 것이지만 그 주인공들의 안에 그 상황을 벗어날 숨은 재능이나 조력자가 숨어 있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편이었다. 자신의 나라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모험에 떠나는 왕녀나 자유로 대변되는 새로운 비행선을 개발하는 황족, 인간을 공격하는 침략자를 막기위해 모습을 드러낸 마법사처럼 당장 처한 상황은 곤란한 것이었지만 왕녀에게는 용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윈드 드리머'의 황족은 뛰어난 비행선 개발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오히려 동양의 설화가 떠오르는 '목소리'였다. 한 남자가 굉장히 매력적인 부인을 가지고 있었고 심부름을 왔던 아이가 그 부인의 모습을 훔쳐본다. 그 장면을 남편이 보고 아이를 죽도록 때리고 쫓아낸다. 주변사람들은 그저 살짝 혼내면 좋을 것을 남자가 유난을 떤다고 말한다. 하지만 남자의 분노는 식을 줄을 몰랐고 아이의 스승인 도사가 와서 사과를 하지만 이마저도 거절한다. 그 도사는 가기 전에 기묘한 말을 하는데 부적을 써줄테니 그 부적을 반드시 갖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 말을 무시했고 부인은 임신을 한 상태였다. 그 후 부인은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과 딸 쌍둥이였다. 딸은 굉장히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아들은 뱀의 혀를 달고 태어난 아이였다. 요괴에게 목소리를 빼앗긴 아이였던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인해 기괴한 용모를 갖게 된 아이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동양의 설화로는 많이 있는 내용이지만 이 책에서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었던 만큼 그런 느낌이 더 했다.

9편의 이야기는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고 책을 읽는 동안은 환상의 조각을 하나하나 삼키는 기분이었다. 일상에서 보기 힘든 환상이라서 읽는 내내 즐겁기도 했지만 우울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읽을 때는 햇살마저 빛을 잃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잊게 하는 9개의 환상 조각이 담긴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 그 신기루가 기대했던 형태의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 속에서 잠깐의 청량감을 느끼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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