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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은 생각보다 파괴적인 감정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격렬한 감정변화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처럼 변화하길 바란다. 초반에는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감정상태가 되길 바라지만 후에는 상대방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함께 변화하길 바란다. 그래서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없는 짝사랑이 어찌보면 가장 난감한 상황이다. 그런데 사랑이란 것은 사람의 감정이라 겉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어디까지가 적당한 온도의 사랑인지 어느 정도 선을 넘으면 상대는 물론 자신도 망가뜨릴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사랑이 아니라 단순한 집착과 삐뚤어진 욕망의 결과물을 사랑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이 책 '붉은 애무'는 아들과 지나친 사랑에 빠져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남자는 보험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일을 한지 오래되기도 했고 주변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이제 일반적 영업직이 아니라 관리직으로 올라가 있었다. 공격적 영업을 하는 보통의 보험업계 사람들과 달리 그는 좀 더 오래된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좀 더 고객을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방식 말이다. 그래서 고객의 수가 확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고객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다. 단지 보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을 정말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그의 오래된 고객으로 건물의 주인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건물에 불이 났다고 당장 와달라는 것이었다. 남자는 이제 관리직으로 올라갔으니 본인이 직접 갈 것이 아니라 부하직원을 보내도 될 일이었다. 허나 남자는 이렇게 답한다. 곧 가겠다고 말이다. 남자가 화재현장에 도착해보니 대부분의 불을 끈 상태였지만 건물에 살고 있던 모자는 사라진 상태였다. 화재의 원인은 돈이 없어서 전기가 끊긴 상태에서 살던 세입자 모자가 촛불을 잔뜩 켰고 그 중 하나가 불을 낸 것으로 보였다.
상황은 이러했지만 불은 다 꺼졌고 고객도 안심시켰으니 나머지 처리는 전문가에게 맡겨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그 일에 유독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직장 동료들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끝내 그에게 와서 휴가를 제의한다. 화재 사건은 다른 사람이 처리할 테니 당분간 휴가를 보내고 오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태도는 전부 그럴 만한 것이었다. 얼마 전 남자의 아들이 뺑소니차에 치여서 숨졌다는 것이다. 남자는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이의 엄마가 돌아왔고 아이의 엄마와 시간을 보내던 날 아이가 차에 치이고 말았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목격자가 아무도 없었다. 수사는 진척이 없었고 남자는 집에 있을 때면 아들과의 일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 더구나 남자는 허리가 좋지 않아서 무언가에 기대지 않으면 무거운 물건을 옮기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유모차에 물건을 담아서 옮긴다. 식료품을 사러갈 때마다 그는 유모차를 밀고 나가는데 그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얼어붙는다. 그가 아들의 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의 생각대로 그는 실제 고통 받고 있었다. 그는 아들과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그리고 그 기억의 끝에는 무서운 진실이 숨어 있었다.
남자가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 내려갈 때 아들의 유치원 선생님이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지나치게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로써 주어야 할 사랑을 넘어서 양쪽 부모 모두가 줄 만한 사랑을 혼자서 아들에게 퍼붓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사랑의 양이 좀 많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지나친 사랑은 광기로 변할 수 있고 광기로 변질된 순간부터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위해 어머니의 역할까지 하려고 한 남자의 이야기 '붉은 애무' 인상적인 면이 많았다. 그 바탕에 있는 심리가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섬세한 심리묘사가 특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