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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사랑 ㅣ 판타 빌리지
리처드 매드슨 지음, 김민혜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사랑은 국가의 장벽을 넘을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과 맞설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설사 그것이 사랑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의 영향력 아래에 살아간다. 그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젊음을 잃게 되기도 하고 심장을 찢을 만큼 아팠던 사랑도 점차 잊어간다.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시간을 멈출수도 거스를 수도 없다. 사람을 만나는 것 조차 자신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옛날 영화에 나오듯이 시간차에 따라 엇갈리는 정도라면 어떻게든 연락해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게 된 사람이 이미 75년 전에 살았고 이미 죽은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책 '시간 여행자의 사랑'은 뇌종양으로 인해서 시한부의 인생을 살게 된 남자가 우연히 75년 전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남자의 이름은 리처드 콜리어였고 작가였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작가로써는 나름대로 성공한 삶이었고 그 생활에 큰 불만이 없었다. 가끔 심각한 두통에 시달리는 것 말고는 말이다.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형인 로버트가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계속 두통에 시달리는 동생이 병원에는 가지 않자 조바심이 난 것이다. 별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리처드지만 병원에서는 그가 예상하지 못한 답을 내놓는다. 그의 뇌에 종양이 있으며 이제 4개월에서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처드는 절망에 사로잡힌다. 이제 서른 여섯,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보내지도 못한 나이였다. 자신은 아직 젊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너무 이른 시기였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기에 그는 담담해 보였다. 오히려 형인 로버트는 강단이 있는 사람인데도 그 이야기를 듣자 어린아이처럼 울어 버렸다.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리처드는 자기 방식대로 삶을 정리할 결심을 한다. 동전을 던져서 방향을 결정하고 알 수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는 현재 형의 집 별채에서 살고 있었는데 자신이 죽을 날까지 형과 형수의 얼굴을 보면서 견딜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죽은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족을 보면서 슬프지만 결코 티내지 않으려 하는 어색한 표정을 말이다.
리처드는 자신의 얼마 되지 않는 짐과 남은 예금을 전부 빼서 여행을 시작한다. 자신은 어차피 시간에서 유리된 존재이니 어디로 가든 어떻게 시간을 보내든 그것은 그의 자유였다.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 갑작스럽게 찾아왔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할지 그리고 하고 싶은지도 떠오르지도 않았지만 그저 정처없이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그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단 하나 있었다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 뿐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고 몸을 가누기가 힘들 때도 많았다.
그렇게 흘러다니다 보니 도착한 곳이 코로나도 호텔이었다. 과거의 유물 같은 호텔에 도착하니 기묘한 심정이 되었지만 그 호텔이 마음에 든 리처드였다. 잠시만 머무른 후 덴버를 향해 차를 몰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호텔의 역사실에서 한 여자의 사진을 보게 된다. 75년 전에 이 호텔의 무대에서 공연한 여배우 엘리스 매케나의 사진을 말이다. 무언가를 홀린 듯 바라보는 아름다운 여자의 사진이었다. 리처드는 사진을 보고 평생 느껴보지 못한 심정에 빠진다.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것도 75년 전에 살아있던 여성과 말이다.
자신이 현실 도피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끊임없이 되뇌어 보아도 마음은 그 사진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역사실에서 그 사진을 훔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려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리처드는 어떻게든 마음을 가라앉히려 혹은 어떻게든 그녀에게 다가갈 방법을 찾고자 엘리스 매케나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역사실 사진의 설명으로는 그녀가 불세출의 여배우라고 했으니 분명 그녀를 자세하게 다룬 책이 있을 터였다. 먼저 서점에 가서 그녀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지만 작은 규모의 서점에는 그녀에 대한 책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점 점원의 충고대로 큰 서점에 가서 그녀에 대한 책을 찾는데 오직 그녀만을 다룬 책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그녀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있는 책이라도 사와서 한 권씩 읽어나간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 의문점이 있으며 자신이 예전에 그녀와 마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 리처드는 어떻게든 1971년을 벗어나 1896년의 코로나도 호텔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엘리스를 만나기 위해서 시간을 뛰어넘을 방법을 찾지만 일은 그가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야기 내용 자체가 독특하기도 하지만 해석이 둘로 나뉠 수 있는 책이라서 전부 읽은 후에 기분이 묘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었다. 과거에 살던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그 여인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뛰어 넘을 방법을 찾는 남자라니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 남자가 시한부의 인생을 살고 있어서 독특한 부분에 집착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로 과거의 사람을 사랑해버렸다면 그런 노력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경계를 뛰어넘은 남자의 이야기 '시간 여행자의 사랑' 소재도 결말도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다는데 그것도 찾아서 보고 싶을 만큼 독특한 내용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