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는 4컷 철학교실
난부 야스히로 지음, 아이하라 코지 그림, 한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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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이후로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죽음을 피한 자는 여태껏 있지 않았으므로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죽음이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떠올려보게 된다. 두려움이 너무 커서 어떤 의미를 찾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사람에게서 있어서 죽음의 의미는 지나치게 크다. 그래서 반대급부로 삶에 의미를 더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 '만화로 읽는 4컷 철학교실'의 주인공 히로시 역시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계속하여 생각만 빙글빙글 돌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한 것이다. 도시를 뒤로 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이 사는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여행을 떠난 21살의 남자라니 처음의 분위기는 진지 그 자체였다. 그런 분위기가 일명 돼지씨의 한 마디로 끝이 난다. 자신은 잡아먹히기 위해 산다는 것이다. 그 적나라한 대답에 순간 경악한 히로시는 얼어붙는다. 그 때 돼지씨의 천연덕스러운 말이 이어진다. 빵 잘 먹겠다라는 말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돼지씨는 말 그대로 돼지다. 식용으로 사육되고 있는 돼지이며 그 사실을 사실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인 존재인 것이다. 일단 말하는 돼지이며 사람보다도 논리적이고 철학자에 가까운 돼지인터라 이 책 최고로 만화적인 존재다. 히로시와의 충격적 만남이후 돼지씨는 번번이 히로시가 찾아낸 삶의 의미를 꺾어버린다. 가짜 말놀음에 쉽사리 넘어갈 돼지씨가 아니라는 의미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21살 청년 히로시와 돼지씨의 짧은 대화는 철학적 지식을 줄 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유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충격적 만남을 시작으로 그들의 관계는 이어진다. 히로시는 처음에는 돼지씨가 답한 삶의 의미에 충격을 받아서 돼지씨를 설복시키려 든다. 어떻게든 잡아먹히기 위해 산다는 그의 삶의 의미를 뒤집어보려 하는 것이다. 히로시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잘못된 그리고 끔찍한 삶에 대한 인식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돼지씨는 그 관계에서 실리적 이익을 추구한다. 바로 히로시의 배낭에 있는 빵이다. 히로시가 돼지씨에게 말을 걸고 히로시가 충격을 받아서 멍하니 있는 동안 배낭에서 빵을 낚아챈다. 빵 잘 먹겠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돼지씨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답했을 뿐이고 충격을 받아 좌절하는 것은 히로시가 어리숙하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대화를 주고받고 충격을 받는 대화 패턴을 반복하는 사이 히로시는 일방적으로 돼지씨를 스승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돼지씨에게 삶의 의미를 배우려 드는 것이다. 더구나 분명 식육용으로 사육되고 있는 돼지씨가 간단히 울타리를 뛰어넘어 그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부터 둘의 관계는 미묘한 것이 되었다. 돼지씨는 분명 자신의 삶의 의미가 잡아먹히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음에도 울타리를 넘어서 히로시와의 여행에 동행하는 것이다. 그 도중에 히로시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계속 말해댄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의 논리는 돼지씨의 한 마디로 무너진다.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대화도 유쾌하지만 여행을 해나갈 수록 두 사람의 관계가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내용도 내용이지만 철학적인 설명을 부가한 글도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사실 이 책에서 철학은 큰 부분이지만 대충 넘어가게도 되는 부분 중에 하나다. 머리말 부분에 쓰여 있듯이 처음에는 히로시와 돼지씨가 나오는 4컷만을 읽고 철학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는 글은 안 읽고 넘어가도 무방하다. 처음에는 단순히 만화를 읽고 다음번에는 만화와 글을 함께 읽고 조금 더 궁금하다면 주석으로 붙은 설명들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둘의 대화로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만화로 읽는 4컷 철학교실' 정말 재밌게 읽었다. 삶도 철학도 그렇지만 답이 없는 여정이지만 말이다. 허나 사실 그 여정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전부니 그렇다 한들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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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델피누스 - 아틀란티스의 돌고래 인간
마를리제 아롤드 지음, 김태성 옮김 / 지양어린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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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것이라고는 있을 수 없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장벽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변한다. 방금 봤던 것도 시간이 흐르고 난 이후에는 방금 보았던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하물며 생물인 사람은 계속 변해간다. 사람만큼 잘 변하는 생물도 변하지 않는 생물도 없는 셈이다. 사람의 외양은 시간의 앞에 변해가지만 그 내면은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데 사람이 어른이 되었다는 자각은 자신의 성격은 변화가 없지만 자신의 예전 행동이 유치했었다는 것을 인식하는데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 변화가 아니라 전혀 다른 변화에 직면하게 된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바다를 사랑하는 소녀 세일라와 계속하여 쫓기듯 이사를 다니는 소년 마리오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둘은 어느 날 바다에서 만난다. 그것도 돌고래로 변신한 상태에서 말이다. 은유적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돌고래로 변신한 소년과 소녀는 만난다. 장차 아버지와 언니가 될 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여행에 온 세일라는 생일 전 날 혼자 바다로 향한다.

그녀는 바다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새로 식구가 될 사람들은 그 점을 거의 배려하지 않았다. 세일라는 속이 상하기도 했고 바다에 가서 마음껏 수영을 하고 싶은 마음에 밤에 살짝 숙소에서 빠져나온다. 행복하게 수영을 즐기고 있던 세일라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돌고래에 둘러싸인다. 행복감이 극에 달한 세일라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엽서의 문구를 외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글이 아니라 사람에서 돌고래로 변신하는 마법의 말이었다.

자신이 돌고래로 변했다는 사실에는 거부감이 없던 세일라였지만 사람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와의 이별을 뜻했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세일라는 허둥거린다. 그 순간 세일라는 문구의 뒷부분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녀를 돌고래에서 다시 인간으로 변신시켜줄 주문이었다. 주문을 외치자 세일라는 불쾌한 기분과 함께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온다. 다만 사라졌던 다리가 다시 생겨났지만 과도한 에너지를 소비한 탓인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지쳐버렸다. 다행히 해안가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으나 그 중간과정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다음날인 생일, 세일라는 자신의 변신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실종된 아버지가 남긴 엽서에 쓰여 있던 말이 어째서 사람을 돌고래로 변하게 하는 주문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겪은 일이 혹시 꿈이 아니었을까 의심한 세일라는 다시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한다. 한적한 해변에서 돌고래로 변신한 세일라는 자신의 변신이 결코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일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던 세일라는 도와달라는 외침을 듣는다. 돌고래로 변해있는 세일라의 청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있었고 먼 곳에서 누군가가 도와달라는 말을 하는 것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세일라가 그 외침에 즉각 응해서 소리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끔찍한 덫에 걸려서 죽기 직전인 돌고래가 한 마리 있었다. 세일라는 덫을 간신히 풀어서 돌고래를 구해낸다. 허나 돌고래는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영겁 같은 시간이 흐른 후 돌고래는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년으로 변한다. 기겁한 세일라는 소년을 해변가로 데려간다. 하지만 그 일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해안에 너무 깊숙이 들어왔고 나갈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세일라는 별 수 없이 자신의 몸도 다시 사람으로 되돌린다.

우연한 사고 끝에 만나게 된 소년과 소녀는 짧은 대화를 나눈다. 어머니도 돌고래로 변신한다는 소년은 예전에 자신이 '바다산책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소녀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대답해준다. 마리오라고 자신을 밝힌 소년과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나는 것 같았지만 어느 밤 소년은 소녀를 찾아온다. 바다산책자만을 공격하는 정체불명의 공격자를 피해서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는 도망을 다녔었는데 어머니가 끝내 잡혀 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년이 알고 있는 바다산책자가 소녀 밖에 없기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세일라는 자신의 아버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실종되었음을 깨닫고 마리오를 돕기로 결정한다. 마리오를 돕는다면 오래 전에 사라진 아버지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던 것이다. 이때부터 소년과 소녀의 본격적 모험이 시작된다. 자신의 혈육을 되찾기 위한 모험의 대가는 그들의 목숨이었다. 자신의 목숨과 혈육의 목숨을 건 모험이 전 세계에 걸쳐서 펼쳐진다. 돌고래로 변하는 소년, 소녀라는 소재가 이색적이기도 했지만 우연히 자신의 변신을 깨닫게 된 소녀가 예전부터 위험에 직면해 있던 소년을 만나고 풀지 못했던 미스터리를 풀어낸다는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조각을 맞추듯이 하나하나 쌓아가는 과정도 좋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신선했다. 돌고래로 변하는 아틀란티스의 후예들의 이야기 '호모델피누스' 재밌게 읽었다. 예상치 못했던 결말이 더 마음에 남았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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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트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3
셔먼 알렉시 지음, 박윤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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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규정하는 것에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름이 있다. 소설 음양사에서 이름은 가장 짧은 주라고도 칭한다. 사람을 그 사람으로 묶어주는 가장 짧은 것이 바로 이름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면 과연 그 존재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정체성의 상징이기도 한 이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에 집착한다. 그 이름은 별명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이름에 따르는 수식어일수도 있다.

여기 자신이 이름을 잃은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이미 예전에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렸고 자신을 잃었으며 세상과 소통하는 법조차도 잃었다.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여드름'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몸에서조차 균형을 잃어버린 것을 드러내는 것처럼 소년의 몸의 호르몬은 맞지 않았다. 여드름을 치료하는 제품이 많이 나와 있었지만 가격이 비싸서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소년의 처지에서는 그것을 구하기 어려웠다. 소년에게 남아 있는 것은 몸 여기저기에 솟아오르는 여드름과 반항심뿐이었다. 여드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소년은 자신이 사랑받았던 기억마저도 잊고 싶었다.

소년을 사랑했던 단 한사람은 그의 어머니였는데 여섯 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소년은 어머니를 기억하고 어머니가 불러주었던 노래를 사랑하지만 차라리 어머니가 자신이 기억을 할 수 있을 시기 전에 죽어서 기억조차도 남아있지 않기를 바랐다.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이 태어나던 날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고 그를 만날 수만 있다면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디언 아버지와 아일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외모는 인디언이지만 아버지는 도망쳤기 때문에 백인으로 되어 있는 자신의 처지가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아직도 살아 있어서 인디언으로 그리고 아일랜드인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면 자신은 누구보다 멋진 혼혈로 살 수 있었겠지만 소년이 사는 곳은 대부분 정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을 노린 수양부모의 집이었다.

그들 태반은 아이들에게 애정 같은 것은 없었고 성적학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년은 어머니가 죽은 이후 많이 울었고 이제는 울음을 참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사회를 증오하고 있었다. 새로운 수양가정에 간 아침 또 그는 소동을 일으킨다. 경찰은 소년을 잡아가는데 차라리 소년은 수양부모보다 경찰을 편안해한다. 익숙한 경관인 데이브, 그와의 사이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어떻게든 데이브는 소년을 갱생시켜보려 했지만 소년은 실없는 소리로 경관을 웃길 뿐 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 경찰서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여드름은 저스티스라는 또 다른 소년을 만난다. 누구에도 마음을 여는 일이 없던 소년은 그에게 매혹되고 기묘한 길로 빠져든다. 사실 자신의 이름을 잃은 여드름이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정한 저스티스에게 현혹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소년은 보호시설에서 도망쳐 저스티스와 생활하고 그의 기괴한 사상에 빠져들고 만다.

이윽고 소년은 저스티스에게서 넘겨받은 두 자루의 총을 들고 은행으로 난입한다. 한 자루는 물감 총이었지만 한 자루는 진짜 총이었다.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모두를 증오했고 아무하고도 소통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게 된 저스티스의 인정을 받고 싶기도 했고 모든 인간이 죽었으면 했던 것이다. 소년은 은행 내의 많은 사람들을 쐈고 이제 대량학살자가 되었다. 그 와중에 소년도 머리에 총을 맞고 의식을 잃는다. 이렇게 자신이 죽는가 했는데 이윽고 소년이 의식을 되찾는다. 그런데 자신은 여드름이라는 이름을 불리는 불행한 소년이 아니라 유능한 FBI요원 행크라는 것이다. 자신의 외모도 바뀌어 있었고 시대도 1976년이었다. 인디언의 피를 가지고 있던 그가 다른 자의 몸에 들어가서 인디언을 탄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소년은 당혹스런 상황에 아연해 한다.

한 불행한 소년이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키고 죽음을 맞는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자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 시간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알 수 없는 타인의 몸에서 몸으로 정신만 이동하는 여행자가 말이다. 소년은 인디언을 탄압하는 FBI요원, 백인 병사를 죽여야 하는 처지에 놓은 인디언 소년, 인디언 꼬마와 어린 탈영병을 도주시키는 늙은 병사, 비행기 테러범에게 훈련을 시키고 만 뚱뚱한 백인 비행사 그리고 술주정뱅이 인디언이자 소년의 아버지까지 다섯 명의 몸을 옮겨 다니면서 여행을 한다.

다른 사람의 몸을 옮겨 다니면서 타인의 입장을 점차 이해하게 되고 점차 그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사회에서 상처받고 소통하는 것을 포기했던 소년이 타인과 다시 소통을 하게 되는 계기가 시간여행이라는 점이 이색적이었다. 더구나 그 시간여행으로 인해서 다른 선택을 하게 된 소년이 갖게 된 기회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 '마이클'을 찾게 된 순간이 꽤나 뭉클했다. 한 소년의 기묘한 시간여행 '플라이트' 정말 재밌게 읽었다. 소년이 처한 상황이 있어서 무겁게 진행되면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도 있었는데 의외로 재치 있게 이야기가 전개 되서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편이었던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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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 - 세상이 당신에게 은밀히 요구하는 것
김범진 지음 / 갤리온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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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베이컨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 대학생들이 고안해 낸 게임이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에게서 시작해도 4단계 안에 케빈 베이컨에게 연결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와 이웃집 아저씨가 4단계 안에 연결된 인맥이라니 기묘한 일이다. 어느 정도 나라와 지역적 한정은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데에는 사람의 특성이 한 몫을 한다.

사람은 무리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본의 아니게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인맥을 가지게 된 케빈 베이컨이 아니라 해도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 물건은 반드시 누군가가 생산해낸 것이다. 만약 연결이 되지 않은 인생을 산다면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할 것 이다. 또한 인터넷이라는 것이 발명된 이후 직접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올려놓은 글로도 누군가와의 소통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상이라 '나비효과'라는 말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저 먼 곳의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이 되었듯이 나의 작은 배려가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힐튼 호텔의 창업자는 어느 밤 방을 원하는 노부부에게 자신의 방을 내어주고 그 일로 인해서 힐튼 호텔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거대한 보답은 바라지 않지만 세상은 연결된 것이라는 점을 잊고 나쁜 행동을 하면 언젠가 반드시 응분의 대가가 돌아온다. 이 책 '섬세'에서 하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다.

현대의 사회는 예전과 달리 개인화되고 인간이 소외되는 것 같은 세상이 되었다. 우리나라가 정을 강조하는 사회였던 것도 지금에 와서는 많이 개인주의화되어 버렸다. 덕분에 정이라는 것 자체도 상술의 하나가 되어 '욕쟁이 할머니'를 찾아가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욕을 듣고 싶어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길을 걸어가다 누군가 넘어져도 일으켜 주려는 사람이 적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늘어났다. 여유시간에는 자기계발에 힘쓰거나 휴대용 동영상기기를 통한 시청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홀로'보내고 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작아지고 외로워진 세계, 사람들은 누군가와의 연결을 바란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하면 많은 사람들과 연결이 될 수 있다. 업무에 있어서 어려움이 생긴 직원이 전 세계의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면 하루에 적어도 10통의 답신이 온다고 한다. 작아진 세상이 더 넓어진 것이라니 기묘한 기분이 든다. 사람들은 따로 떨어졌지만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기 시작했고 발달을 위해 거침이 용인되었던 시기가 지났다고 한다. 이제는 섬세함이 많은 사람들에게 요구된다는 것이다. 외로워진 세상에는 섬세한 사람들이 자신의 창의성을 표현한다. 씨줄과 날줄로 엮여진 조밀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자신에게 언젠가 돌아오는 터라 많은 행동을 주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작지만 크게 연결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가장 바람직한 덕목이 섬세라고 말하고 있다. 소통의 기술에 직면되는 것이기도 하고 연결되어 있는 만큼 작은 실수가 큰 재앙을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은 실수가 만들어낸 큰 재앙을 분석한 하인리히 법칙에 가까운 이야기들과 섬세함을 잘 살려서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교합해서 보여주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섬세함이란 것은 기존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섬세함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와의 연결이며 부드러움이고 또한 아름다움이다.

이 섬세라는 개념은 예민하다는 것과는 차별이 이루어져 있다. 한 예로 탈의실에 안경을 둘 곳을 만들어놓은 작은 배려나 양쪽으로 호흡을 해서 상대편의 시선을 읽는 박태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다만 섬세함이라는 개념은 아름답지만 모호한 면이 있고 자기계발서라기보다 명상서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다소 들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지만 딱히 지적하지는 않았던 섬세란 개념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이야기 해주는 것이 좋았다. 누구나 원하게 될 품성 '섬세' 인상 깊게 읽었다. 자신이 섬세하다고 생각해서 그 섬세함을 잘 살릴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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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동안의 과부]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사람의 인생에서는 많은 일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의 사건이 그 사람의 인생에 어떠한 형태로 드러날 수 있는지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잘 표현된 터라
사람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같은 작가의 작품을 추천할까 했지만
작가의 삶을 사는 부모와 자식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인터라
결혼이라는 상황에 놓인 외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보여준
'완벽한 결혼을 위한 레시피'란 책이 먼저 떠올랐어요.

'일년 동안의 과부'에서 피붙이를 잃은 부모 매리언과 테드의 이야기와 그 사건으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부모를 잃게 된 딸 루스의 이야기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묘사되요.
'완벽한 결혼을 위한 레시피'에서도 처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외할머니가 원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생활을 해나가던 이야기와
갑작스런 결혼에 이혼의 위기를 겪는 손녀의 이야기가 교차해서 그런지 유사한 느낌이 들더군요.
둘 다 재밌게 읽은 탓에 그런 느낌이 더 강한 것 같기도 하지만요.


•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영미소설에서는 '페리 이야기'를 권하고 싶네요.
읽은지 몇 달 된 것이지만 꽤 재밌게 읽었어요.
'일년 동안의 과부'에 비하면 잔잔한 내용일지도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네요.
'페리 이야기'는 약간 지능지수가 낮은 페리가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할머니를 잃고
이기적인 친척들 사이에서 슬픔에 잠겨 있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할머니와 살던 집에서 쫓겨나 자신의 직장 위에 살게 되요.
그런데 할머니와 함께 취미 삼아 했던 로또가 1등에 당첨되면서
그에게 벌어지는 소동을 그리고 있어요.
페리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게 만들었던 책이었어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일년 동안의 과부'는 충격적 소재가 많은 편이라서
적어도 20대는 되야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20대, 30대는 루스 콜의 입장에서 책을 읽는다면
40대, 50대는 부모인 매리언과 테드의 입장에서 책을 읽게 될 것 같구요.
허나 굳이 주인공을 말하자면 루스에 가까우니
20대, 30대 분들에게 권하고 싶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액자가 떨어져 깨진 유리에 손가락을 가늘지만 깊게 베인 루스는 손가락에 흉터가 생길만한 상처를 얻어요.
허나 어린 루스는 그 사고를 잘 견뎌내는데 그 일을 에디는 루스가 용감했다고 말해요.
루스가 용감하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에디에게 묻자 에디는 이렇게 답해요.

'용감한 건 자기한테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인다는 뜻이야. 그 일을 어떻게든 참아내려고 노력한다는 뜻."

이 책 '일년 동안의 과부'에서는 자신의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슬픔에 짓눌려버린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에디의 용감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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