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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4컷 철학교실
난부 야스히로 지음, 아이하라 코지 그림, 한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태어난 이후로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죽음을 피한 자는 여태껏 있지 않았으므로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죽음이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떠올려보게 된다. 두려움이 너무 커서 어떤 의미를 찾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사람에게서 있어서 죽음의 의미는 지나치게 크다. 그래서 반대급부로 삶에 의미를 더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 '만화로 읽는 4컷 철학교실'의 주인공 히로시 역시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계속하여 생각만 빙글빙글 돌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한 것이다. 도시를 뒤로 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이 사는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여행을 떠난 21살의 남자라니 처음의 분위기는 진지 그 자체였다. 그런 분위기가 일명 돼지씨의 한 마디로 끝이 난다. 자신은 잡아먹히기 위해 산다는 것이다. 그 적나라한 대답에 순간 경악한 히로시는 얼어붙는다. 그 때 돼지씨의 천연덕스러운 말이 이어진다. 빵 잘 먹겠다라는 말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돼지씨는 말 그대로 돼지다. 식용으로 사육되고 있는 돼지이며 그 사실을 사실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인 존재인 것이다. 일단 말하는 돼지이며 사람보다도 논리적이고 철학자에 가까운 돼지인터라 이 책 최고로 만화적인 존재다. 히로시와의 충격적 만남이후 돼지씨는 번번이 히로시가 찾아낸 삶의 의미를 꺾어버린다. 가짜 말놀음에 쉽사리 넘어갈 돼지씨가 아니라는 의미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21살 청년 히로시와 돼지씨의 짧은 대화는 철학적 지식을 줄 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유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충격적 만남을 시작으로 그들의 관계는 이어진다. 히로시는 처음에는 돼지씨가 답한 삶의 의미에 충격을 받아서 돼지씨를 설복시키려 든다. 어떻게든 잡아먹히기 위해 산다는 그의 삶의 의미를 뒤집어보려 하는 것이다. 히로시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잘못된 그리고 끔찍한 삶에 대한 인식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돼지씨는 그 관계에서 실리적 이익을 추구한다. 바로 히로시의 배낭에 있는 빵이다. 히로시가 돼지씨에게 말을 걸고 히로시가 충격을 받아서 멍하니 있는 동안 배낭에서 빵을 낚아챈다. 빵 잘 먹겠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돼지씨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답했을 뿐이고 충격을 받아 좌절하는 것은 히로시가 어리숙하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대화를 주고받고 충격을 받는 대화 패턴을 반복하는 사이 히로시는 일방적으로 돼지씨를 스승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돼지씨에게 삶의 의미를 배우려 드는 것이다. 더구나 분명 식육용으로 사육되고 있는 돼지씨가 간단히 울타리를 뛰어넘어 그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부터 둘의 관계는 미묘한 것이 되었다. 돼지씨는 분명 자신의 삶의 의미가 잡아먹히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음에도 울타리를 넘어서 히로시와의 여행에 동행하는 것이다. 그 도중에 히로시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계속 말해댄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의 논리는 돼지씨의 한 마디로 무너진다.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대화도 유쾌하지만 여행을 해나갈 수록 두 사람의 관계가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내용도 내용이지만 철학적인 설명을 부가한 글도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사실 이 책에서 철학은 큰 부분이지만 대충 넘어가게도 되는 부분 중에 하나다. 머리말 부분에 쓰여 있듯이 처음에는 히로시와 돼지씨가 나오는 4컷만을 읽고 철학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는 글은 안 읽고 넘어가도 무방하다. 처음에는 단순히 만화를 읽고 다음번에는 만화와 글을 함께 읽고 조금 더 궁금하다면 주석으로 붙은 설명들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둘의 대화로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만화로 읽는 4컷 철학교실' 정말 재밌게 읽었다. 삶도 철학도 그렇지만 답이 없는 여정이지만 말이다. 허나 사실 그 여정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전부니 그렇다 한들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