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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트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3
셔먼 알렉시 지음, 박윤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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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사람을 규정하는 것에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름이 있다. 소설 음양사에서 이름은 가장 짧은 주라고도 칭한다. 사람을 그 사람으로 묶어주는 가장 짧은 것이 바로 이름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면 과연 그 존재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정체성의 상징이기도 한 이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에 집착한다. 그 이름은 별명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이름에 따르는 수식어일수도 있다.
여기 자신이 이름을 잃은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이미 예전에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렸고 자신을 잃었으며 세상과 소통하는 법조차도 잃었다.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여드름'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몸에서조차 균형을 잃어버린 것을 드러내는 것처럼 소년의 몸의 호르몬은 맞지 않았다. 여드름을 치료하는 제품이 많이 나와 있었지만 가격이 비싸서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소년의 처지에서는 그것을 구하기 어려웠다. 소년에게 남아 있는 것은 몸 여기저기에 솟아오르는 여드름과 반항심뿐이었다. 여드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소년은 자신이 사랑받았던 기억마저도 잊고 싶었다.
소년을 사랑했던 단 한사람은 그의 어머니였는데 여섯 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소년은 어머니를 기억하고 어머니가 불러주었던 노래를 사랑하지만 차라리 어머니가 자신이 기억을 할 수 있을 시기 전에 죽어서 기억조차도 남아있지 않기를 바랐다.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이 태어나던 날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고 그를 만날 수만 있다면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디언 아버지와 아일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외모는 인디언이지만 아버지는 도망쳤기 때문에 백인으로 되어 있는 자신의 처지가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아직도 살아 있어서 인디언으로 그리고 아일랜드인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면 자신은 누구보다 멋진 혼혈로 살 수 있었겠지만 소년이 사는 곳은 대부분 정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을 노린 수양부모의 집이었다.
그들 태반은 아이들에게 애정 같은 것은 없었고 성적학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년은 어머니가 죽은 이후 많이 울었고 이제는 울음을 참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사회를 증오하고 있었다. 새로운 수양가정에 간 아침 또 그는 소동을 일으킨다. 경찰은 소년을 잡아가는데 차라리 소년은 수양부모보다 경찰을 편안해한다. 익숙한 경관인 데이브, 그와의 사이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어떻게든 데이브는 소년을 갱생시켜보려 했지만 소년은 실없는 소리로 경관을 웃길 뿐 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 경찰서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여드름은 저스티스라는 또 다른 소년을 만난다. 누구에도 마음을 여는 일이 없던 소년은 그에게 매혹되고 기묘한 길로 빠져든다. 사실 자신의 이름을 잃은 여드름이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정한 저스티스에게 현혹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소년은 보호시설에서 도망쳐 저스티스와 생활하고 그의 기괴한 사상에 빠져들고 만다.
이윽고 소년은 저스티스에게서 넘겨받은 두 자루의 총을 들고 은행으로 난입한다. 한 자루는 물감 총이었지만 한 자루는 진짜 총이었다.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모두를 증오했고 아무하고도 소통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게 된 저스티스의 인정을 받고 싶기도 했고 모든 인간이 죽었으면 했던 것이다. 소년은 은행 내의 많은 사람들을 쐈고 이제 대량학살자가 되었다. 그 와중에 소년도 머리에 총을 맞고 의식을 잃는다. 이렇게 자신이 죽는가 했는데 이윽고 소년이 의식을 되찾는다. 그런데 자신은 여드름이라는 이름을 불리는 불행한 소년이 아니라 유능한 FBI요원 행크라는 것이다. 자신의 외모도 바뀌어 있었고 시대도 1976년이었다. 인디언의 피를 가지고 있던 그가 다른 자의 몸에 들어가서 인디언을 탄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소년은 당혹스런 상황에 아연해 한다.
한 불행한 소년이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키고 죽음을 맞는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자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 시간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알 수 없는 타인의 몸에서 몸으로 정신만 이동하는 여행자가 말이다. 소년은 인디언을 탄압하는 FBI요원, 백인 병사를 죽여야 하는 처지에 놓은 인디언 소년, 인디언 꼬마와 어린 탈영병을 도주시키는 늙은 병사, 비행기 테러범에게 훈련을 시키고 만 뚱뚱한 백인 비행사 그리고 술주정뱅이 인디언이자 소년의 아버지까지 다섯 명의 몸을 옮겨 다니면서 여행을 한다.
다른 사람의 몸을 옮겨 다니면서 타인의 입장을 점차 이해하게 되고 점차 그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사회에서 상처받고 소통하는 것을 포기했던 소년이 타인과 다시 소통을 하게 되는 계기가 시간여행이라는 점이 이색적이었다. 더구나 그 시간여행으로 인해서 다른 선택을 하게 된 소년이 갖게 된 기회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 '마이클'을 찾게 된 순간이 꽤나 뭉클했다. 한 소년의 기묘한 시간여행 '플라이트' 정말 재밌게 읽었다. 소년이 처한 상황이 있어서 무겁게 진행되면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도 있었는데 의외로 재치 있게 이야기가 전개 되서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편이었던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