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중학생
타무라 히로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잠이 오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피곤하지도 않았기에 야간에 할 일까지 구하게 되었다. 낮에 일한 회사에서 밤에는 경비일을 하게 된 것이다. 결코 잠에 들지도 업무에 태만하지도 않는 남자는 야간 업무에서 각광을 받았다. 그런 식으로 회사에서만 생활하다보니 남자에게 집은 필요치 않았다. 기껏해야 옷을 갈아 입기 위해 들르는 곳 이상의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남자는 그래서 집을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고 자신의 대부분의 시간은 회사에서 보낸다. 교통비도 필요없었고 집세도 나가지 않고 오히려 부수입이 생겨난 것이다.

앞에 남자의 이야기는 집의 용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집은 잠만 자는 곳은 아니다. 가족의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용도는 역시 잘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이 사라진다면 잘 곳이 사라져 버린다. 가족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장소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집은 누구에게나 각별한 의미가 있다. 자신이 마음놓고 쉴 수 있는 흔치 않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집이 사라져 버린다면 많은 사람들은 망연자실해 질 것이다. 여기 바로 그런 상황에 빠진 중학생 소년이 있었다.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의 소년 타무라 히로시는 1학기 종업식의 날 집을 잃게 된다. 소년은 아무 것도 모른채 여름 방학만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그 나이대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이 소년은 즐겁게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소년의 눈 앞에 있는 것은 어딘가에서 분명 본 낯익은 가구들이었다. 누군가가 아주 급하게 이삿짐을 꺼내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년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필사적으로 부인한다. 아마 아주 비슷해보이는 가구일거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서랍장을 열어본다. 그런데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는다고 서랍장 안에 있는 것은 자신의 체육복이었다. 나와 있는 짐은 전부 자기 집의 것이었고 졸지에 집이 사라진 것이다.

망연자실해 있는 소년 옆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고등학교 3학년인 소년의 누나였다. 누나는 대충 상황을 파악한 듯 엉엉 울기 시작한다. 소년도 울고 싶었지만 그저 누나의 옆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또 한 사람이 나타난다. 삼남매의 장남인 큰 형이 온 것이었다. 그래봤자 형도 막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이었지만 형은 아버지가 올 때를 기다리자며 동생들을 달랜다. 소년의 누나도 그제야 울음을 멈추고 아버지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삼남매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한참이 지나서야 나타난 아버지는 생각 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지만 그리 드러나지는 않았다. 소년은 그 표정에 희망을 갖는다. 아버지는 분명 뭔가 생각이 있으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딘가 따로 갈 거처가 있어서 침착한 것이라고 멋대로 상상한 것이다. 허나 소년의 아버지는 삼남매를 모아두고 이렇게 말한다. 안 됐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각자 생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해산'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과 함께 아버지는 홀연히 사라진다. 삼남매는 예상을 뒤엎은 아버지의 말에 순간 멍해진다. 미처 아버지에게 매달려보지도 못했고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형과 누나와 나이차가 있어서 어리광쟁이로 큰 소년이었다. 아버지의 돌연스러운 해산 선언도 당혹스러웠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소년이 하나 생각한 것이 있다면 자신이 누나와 형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가장 어리고 성인이 될 날도 멀기만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소년은 형과 누나에게 자신은 친구가 많으니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겠다고 말한다. 자신은 혼자 행동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형과 누나는 소년을 말린다. 허나 소년은 고집을 부렸고 큰 충격으로 이성적 판단력을 잃은 두 사람은 그런 소년을 끝내 말리지 못했다. 하기야 두 사람도 갈 곳이 없어 막막한 것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머리가 멍한 때라 소년이 한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 것이다. 소년은 그 때부터 근처 공원에서 생활한다. 중학생 노숙자가 된 것이다. 가진 돈도 얼마 없었고 공원에서 자는 처지라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형이 문제가 있으면 그리 오라고 했지만 형에게 부담을 주기도 싫었다. 갑자기 집이 사라진 삼남매의 노숙 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책 '홈리스 중학생'은 일본 유명 코미디언이라는 타무라 히로시의 자전적 이야기다. 중학생이 아버지의 갑작스런 해산 선언으로 노숙자가 되어 공원 미끄럼틀 안에서 생활한다니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런 소년이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안정을 찾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어서 당혹해 하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하면서 읽었다. 특히 배가 너무 고픈 삼남매가 배부르게 먹고 싶어서 밥 한 그릇을 두 시간 동안 씹어서 먹었다는 이야기는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풀은 물론이고 골판지까지 먹을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이야기 '홈리스 중학생' 인상 깊게 읽었다. 가장 추운 계절 가장 따뜻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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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소설가 김훈의 소설이 아닌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만이 고유한 장점이에요.
소설가를 소설이 아닌 다른 글에서 만나는 것, 그것 나름의 즐거움이 있구요.
특히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아버지에 대한 회상, 이제 어른이 된 딸을 보게 되면서 아버지로써 느끼는 감흥이 묘사된 게 인상적이었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여러 글이 모여 있는데 대학 시절 '난중일기'를 읽고 받은 충격에 대한 부분이 있어요.
무관이기에 쓸 수 있는 극히 사실적인 묘사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후에 '칼의 노래'를 집필하게 되었다고 나오지요.
이 책을 읽고 '칼의 노래'를 읽든, '칼의 노래'를 읽고 이 책을 읽든
순서와 관계없이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네요.

 

•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소설가 최인호의 에세이집 산중일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소설가가 쓴 에세이집이기도 하고
소설가의 속내를 소설이 아닌 글로 표현된 삶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구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김훈의 열광적인 팬이나
적어도 시대 상황을 이해할 만한 30대 이상의 독자층
아버지가 된 지금 아버지를 추억하는 글이 있기도 하고
글 자체가 너무 어린 독자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아버지에 대해서 말한 '광야를 달리는 말'편에서

나는 가부장의 아들로 태어난 가부장이었던 것이다

(하관을 할 때 여동생들이 곡을 하자 그것을 금하면서 생각하기를, P23)

"아버지는 꼭 허클베리네 아버지 같아요."
그때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는데, 내 말이 무엇을 겨누고 있는지를 대번에 알아차렸다. 아버지가 허공을 올려다보더니 한참 뒤에 말했다.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

(마크 트웨인 소설 '허클베리핀의 모험'에 등장하는 술주정뱅이에 돈은 안 벌어오고 집에도 안 들어오는 허클베리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 같다고 여긴 어린 김훈과 김훈의 아버지의 대화,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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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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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묘한 구석이 있다. 가보지 못한 시대에 대해 향수를 느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향수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어떤 것을 그리워할 때 쓰이는 말이다. 당연히 보통은 자신이 경험해 본 것에 한정된다. 하지만 잘 구워진 빵의 향기에 감탄하고 잘 빚어진 술에 끌리듯 잘 쓰인 글에 담긴 시대는 향수를 자아낸다. 그 시대가 결코 겪어보지 못한 시대라 해도 마찬가지다. 하기야 사람의 마음이란 묘해서 상대적 행복을 느낄 뿐이라고 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무언가를 찾게 된다는 것인데 그렇게 치면 가보지 못한 시대에 막연한 동경과 향수를 품게 되는 것도 납득이 간다.

이 책 '바다의 기별'은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집이다. 정확하게는 김훈의 다양한 글이 모여 있다. 그런 면에서는 표지에 '김훈 에세이'라고 적혀 있어서 상당히 기대했는데 읽고 나니 기대 이하였다. 물론 김훈의 글이 기대 이하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한 글자를 고쳤다 썼다를 수없이 반복하는 작가의 글을 어찌 기대이하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의 글은 '찰지다'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꼭꼭 씹어 삼킬 때마다 묘미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나와 있고 더구나 당당히 에세이라고 적혀 있어서 소설가 김훈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허나 결과는 아니올시다였다. 앞의 부분에 수록된 글에는 그의 어린 시절이 나오기도 하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해서 멍하니 가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상상 속에 빠져 들 수 있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자 그가 대학에서 강연을 한 것이 두 편의 글로 묶여 있기도 하고 소설가 김훈으로써 책을 낼 때마다 적은 서문과 수상소감이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부분도 김훈의 글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고 그의 글에 있는 특유의 묘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김이 막 오른 막 지은 밥을 기대했다가 먹게 되는 것이 밥통에 내내 담겨 있던 찬밥이라니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차라리 표지에 김훈 에세이가 아니라 김훈의 글 모음집이라고 적혀 있었다면 이리도 실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존에 낸 글이라도 '토지'의 작가 박경리에 대한 회상이 담겨 있는 글은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에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옥에서 출소하는 사위를 기다리는 장모와 그의 아기를 지켜보는 한 사람의 시선에 애잔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감흥에 빠졌던 것이다. 그 외에 딸이 부쩍 자랐음을 알게 된 아버지의 시선을 읽게 되는 '무사한 나날들'이나 해금에 대한 애정과 글을 쓸 때의 감각이 드러난 '글과 몸과 해금'은 김훈의 일상이나 속내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수많은 김훈의 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광야를 달리는 말'이었다. 이제는 아버지가 된 김훈이 아버지를 추억하는 글이었기 때문에 더 마음으로 와 닿는 글이었다. 가히 설화적이라고 까지 표현된 가난 속에서 자라난 김훈의 아버지는 지식인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가정살림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아버지로 보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에 두어 번만 집에 다녀가는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김훈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나마 무협작가로 책이 잘 팔려서 여유가 생겼을 때 술값으로 번 돈을 전부 써도 아버지가 오래 병석에 누워 환자의 병구완으로 힘겨울만 할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가정마다 다르지만 부자간의 진득한 관계를 읽을 수 있었다. 가부장의 아들로 태어난 가부장이었다고 자신을 표현한 한 문장이 김훈과 아버지의 관계를 함축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은근히 소설가 김훈의 명성이 아니었다면 나올 일 없는 산문집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반대로 소설가 김훈의 글이 모여 있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책이었다. 실망을 감탄으로 바꾸는 김훈의 글이었기에 좋게 읽었지만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군에게 초콜릿을 달라고 쫓아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시대, 살아남기 위해서 기차의 위에 매달려 피난을 했던 시대를 들여다보는 일은 생소하면서도 기묘한 감흥을 느끼게 되는 일이었다. 가보지 못한 시대에 향수를 느끼게 하는 김훈의 글 모음집 '바다의 기별' 나쁘지 않았다.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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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아, 날 살려라 - 텍스트로 철학하기
유헌식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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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사냥꾼들은 코끼리 무덤을 꼭 찾고 싶어한다고 한다. 많은 코끼리 사냥꾼들이 코끼리를 노리는 것은 상아를 탐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끼리라는 생물이 묘해서 죽을 때가 되면 홀연히 사라진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죽을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코끼리 사냥꾼이 코끼리 무덤을 찾을 수 있다면 수많은 코끼리의 뼈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코끼리 무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때는 별 생각없이 지나쳤다. 코끼리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생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어제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성장해서 새끼를 키우던 공룡 점박이가 새끼를 죽인 다른 공룡과 싸워 치명상을 입게 된다.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다른 공룡들과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공룡 한 마리가 있었다. 반면 사람은 사람의 죽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도 자신의 죽음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모든 생물은 죽는다. 인간도 그런 생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은 당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 책 '죽음아, 날 살려라'에서는 다양한 매체에서 마주하게 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대상은 인간이다. 타인의 죽음에 이입을 해서 노래를 하는 '상엿소리'부터 죽음을 앞두고 고향집에 간 남자의 이야기 '시계가 걸렸던 자리'까지를 다루고 있다. 다양한 매체에서 사람들의 죽음을 말한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서 일수도 있고 당연한 일임에도 너무도 충격적으로 느껴져서 그럴 수도 있다.

하기야 어느 생명체의 죽음이 충격적이지 않을 수 있겠냐만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고질병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책 안에서 다룬 텍스트 중에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라는 것이 있었다. 자신의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음을 이반 일리치는 느낀다. 검은 구멍 같은 죽음이 그를 서서히 끌어당기고 있었고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그의 삶에 대한 집착이 그를 삶 쪽으로 당기고 있었고 당연히 다가오던 죽음도 그를 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조차도 그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한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예의바른 태도를 취하지만 그의 죽음을 부정한다. 전부 그가 죽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이반 일리치의 친구는 후에 그의 장례식에 와서 그를 동정하지만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 일은 이반 일리치에게 생긴 일이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며 또 일어날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머리로는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고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정말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한 예로 만화 '허니와 클로버'에 이런 부분이 있다. 핸드폰을 통해서 본 100년 후의 자신의 생일에 알람을 설정해두는 것이었다. 자신이 있지 않을 그 날에 울리는 생일 축하노래를 말이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그 생각이 나서 핸드폰을 들었다. 먼저 2050년의 생일을 찾아보았다. 노인으로 맞이하게 될 생일의 요일은 목요일이었다. 그 순간 오싹해졌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약 40년 후의 자신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묘한 불쾌감을 억지로 누르고 다시 2100년의 생일을 찾아보았다. 그 날은 수요일이었다. 기적이 있지 않다면 자신이 결코 존재하지 않을 생일이 그 곳에 있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자면 어리석은 일이다. 죽지 않을 인간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티토노스'의 주인공은 새벽의 여신의 사랑을 받고 불멸을 얻지만 영원한 젊음을 얻는 것을 잊어버리고 계속 나이 들어간다. 그가 끝없이 늙어가서 매미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 글에서는 그는 여신에게 자신의 죽음을 간청하지만 그 때 그 글을 읽은 기분은 인간은 제 생명대로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왜 그가 영원한 젊음을 달라고 하는 것을 잊어버렸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에서 뱀파이어 루이스는 시간과 동떨어져 방관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만 죽음의 공포가 다가올 때는 그것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사람이 꽤 될 것이다.

인간은 생명이 유한하기 때문에 더 빛나게 생을 살 수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생이 더 빛났기에 죽음이 더 두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반 일리치가 최후의 순간 말했던 것처럼 '죽음이 이제 무섭지 않다'라고 할 수 있거나 진리에 대한 절대적 믿음으로 독배를 아무렇지 않게 들이킨 소크라테스 같을 수는 없다. 인간은 자아가 강한 오만한 생명체인 것 같다.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죽음마저도 자신은 비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허나 삶이 중요한 만큼 죽음의 무게가 더 무거운 법이라 이 책 '죽음아, 날 살려라'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몰랐던 자신의 비논리적 모습을 알게 되기도 하고 죽음에 대한 거대한 공포를 맛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가는 시간을 어디에 가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언젠가는 죽음의 실체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가장 궁금하지만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았던 죽음을 다양한 각도로 읽어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먼저 죽음을 다룬 다양한 소설, 시, 영화, 노래를 소개하고 토론이 전개되는데 그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거슬리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소개된 텍스트의 느낌이 너무 강렬한 경우에는 그들의 토론이 쓸모없는 곁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토론 후에 설명이 있던 것은 좋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생각의 파편이 한군데로 집중되어 하나의 생각으로 묶여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인상적 제목, 인상적 소재를 다룬 '죽음아, 날 살려라', 제목대로만 실제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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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gyu 2008-12-1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니와 클로버 얘기, 눈에 들어오네요
잘 읽었습니다 생각하고 느끼는 서평이 좋았습니다
책에는 '이반 일리치'라고 돼있는데 '울리치'라고 쓰신 건가요?

에이안 2008-12-13 13:26   좋아요 0 | URL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모르고 있었는데 잘못 썼네요.
수정했어요.^^;
 
성공을 넘어선 CEO
캐롤 프랭크 지음, 이은주 옮김 / 아인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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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듯이 성공이 있다면 실패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성공의 빛이 너무도 찬란해서 눈을 가려 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성공은 부러운 것이다. 그 같은 성공을 이룰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큰 상관은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실패의 경우에는 다르다. 다른 사람 같이 성공할 필요도 없고 그 같이 성공한다면 그저 좋을 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 같이 실패한다면 그건 피할 수 있는 구덩이에 빠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의 성공담을 더 값지게 여긴다. 그 길을 따라가 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성공에는 여러 길이 있고 그 사람과 같은 성공을 이루기는 힘들다. 그 사람이 성공을 이룬 시점이 다르니 시간이 다르고 상황이 여러모로 다른 것이다. 하지만 실패담의 경우에는 보다 간단하다. 실패담을 듣고 그 같은 실패를 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성공은 그저 성공하지 못할 뿐이지만 실패의 경우에는 비슷한 실패의 상황이 왔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파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성공의 기회를 못 잡으면 그저 실패하지 않을 뿐이지만 실패를 피하지 못하면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성공을 넘어선 CEO'는 매우 유용하다. 현재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CEO들의 실패담을 모아둔 것이기 때문이다. 성공담처럼 휘황찬란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저런 상황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하고 그 상황에 빠지지 않을 결정적 정보를 주어서 더 좋았다.

29명의 CEO들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실패를 보여준다. 저자 캐롤 프랭크를 시작으로 한 실패담은 먼저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을 소개함으로써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이 현재 하고 있는 사업도중 어려웠던 일이나 이미 큰 실패에 봉착해서 그만둔 사업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캐롤 프랭크는 애완동물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녀의 사업은 승승장구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그녀의 사업은 주로 새에 대한 것이어서 새장을 판매하는 일이 큰 몫을 차지했다. 그것도 대형새장을 말이다.

그런데 주문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비해서 그 물량을 제대로 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든 새장을 제작할 사람을 찾아서 원활하게 사업을 해나가고 싶었다. 그녀가 처음 선택한 제작자는 제대로 새장을 제작해서 보내주기는 커녕 돈만 삼켜버렸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제대로 제작해 줄 사람을 찾는다. 마침내 안테나를 제작하던 조지라는 사람을 찾아내는데 그는 제대로 물량을 대주었다. 캐롤 프랭크는 자신의 사업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했고 쉽게 그 사람을 믿어버린다. 조지의 기념일을 여러번 챙겨주기도 했고 정말 친구처럼 지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녀는 한 가지 거대한 실수를 한다. 조지와의 친분을 믿고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자신도 생각하기를 작은 물건을 하나 거래하더라도 반드시 계약서를 썼어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는 도중에 새장에 대한 고객의 불만이 생겨났다. 그래서 캐롤은 조지에게 고객들의 불만에 대해서 말했다. 좀 더 신경을 써달라는 의미였는데 조지는 즉각 캐롤의 경쟁업체와 거래를 시작했다. 그것도 그녀의 회사에서 판매하고 있던 물품을 말이다. 그녀는 그 일을 막고 싶었지만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니 막기가 어려웠고 변호사에게 찾아가 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고 했다.

여기서 그녀는 그 일에 대한 두 가지 교훈을 언급한다. 친분은 친분일 뿐 사업적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고 변호사나 다른 전문가들에게 상담해야 할 때 한 사람에게만 상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한 가지 해결안을 제시해 줄 뿐이니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여러 전문가를 찾아간다면 더 많은 선택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도 캐롤은 대형새장 제작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오랜 기간의 법정 소송도 있었고 자신의 사업을 지키기 위한 큰 노력이 필요했다.

만약 그녀가 이 때 이런 간단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들을 알았다면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새 많은 기업들은 크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요시 한다. 인생에서 큰 실패는 무엇보다 무거운 재앙일수 있다. 허나 그 경험은 귀중한 재산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자신에게도 그렇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을 수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즐겁다기보다 유용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거대한 암초를 피할 수 있는 약간의 조언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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