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생명체를 찾아서 과학과 사회 2
프랑수아 롤랭 지음, 김성희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읽은 추리소설에서 살인범이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생명의 근원으로 인한 것이었다. 성경을 그대로 해석하자는 쪽에서는 세계와 생명체는 신이 6일 동안 창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과학자들은 생명의 근원이 외계에서 왔다는 외계 유입설의 증거를 찾고 있었다. 사실 보통 생각하기에 외계 생명체를 찾는다고 하면 팀 버튼의 영화 속에 나오는 화성인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책 '외계 생명체를 찾아서'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찾고 있는 외계 생명체라는 것은 대부분 생명의 근원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도 원시 박테리아에서 진화해 온 존재이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질문이 나온다. 원시 박테리아는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는 것이다. 신이 창조해 낸 것이라는 답을 그대로 수긍할 수 없는 과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지당한 의문점이다.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가설을 내놓다가 광활한 우주로 눈을 돌렸다.

저렇게 넓은 우주 어딘가라면 생명체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지구에 와 생명의 근원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아는 우주가 아니라 더 먼 우주 어딘가에 생명체가 있을 확률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니 그 가설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주 어딘가에 있을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대상이 된 것은 지구와 유사한 상태인 화성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화성의 경우 어느 과학자가 선형으로 되어 있는 건축물을 보았다고 말함으로써 화성에 지적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 되었다. 이 가설로 인해서 많은 영화 속 이미지로 등장한 화성인이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영화 속의 외계인은 기괴한 외모는 그렇다고 해도 대체로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상상력의 한계였는지 기술로 구현하는 문제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시절의 외계인은 대체로 비슷한 모양이라 이상한 생각이 들었었다. 허나 만약 실제로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중력이 강한 지역이라면 거북이 같이 단단한 껍질의 짧은 형태를 하고 있을 것이고 중력이 약한 지역이라면 식물처럼 기다랗고 가는 형태일 것이라고 한다. 기존의 외계인에 대한 생각과 비교해보면서 읽으니 꽤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화성에 있을 지도 모를 지적 생명체에 대한 꿈이 부풀 무렵 화성 탐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그런 건축물은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생명체의 흔적이 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한다. 생명체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이 지구의 생명의 근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꽤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외계에 생명체가 있지 않을까 하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어딘가에 있을 지적 생명체와의 교신을 시도한 것이 그 중 하나였는데 실제로 성과를 이룬 것은 없다고 한다.

어느 여학생이 들은 소리는 실제로는 중성자별을 발견한 것이었고 다른 과학자가 들었다는 소리도 별의 소리였다는 것이다. 직접적 교신이 실패하자 과학자들은 우주에 인류의 흔적을 두고 오는 방식으로 방법을 바꾸었다.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과 소리, 글을 두고 오기로 한 것이다. 달에는 물론이고 토성 탐사선에도 그런 메시지를 담은 매체를 실어 보냈다고 하니 좀 놀라웠다. 돌아오지 않을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 같았던 것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과학자들이 말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글을 읽고 납득이 갔다. 다른 생명체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류가 좀 더 겸허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우주전쟁' 같은 일은 바라지 않지만 다른 지적 생명체가 있지 않을까 해서 적어도 자신의 처신에 신경을 쓸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기야 우주만큼 인간을 미약한 존재로 느끼게 하는 곳도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확률적으로 지금도 우주 어딘가에 지적 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하다. 그 생명체가 인류에게 호의적일지도 생명의 근원이었을지도 미지수지만 말이다. 지금도 과학자들은 외계 생명체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생명의 근원이 밝혀질 때까지 이어질 연구의 답이 어떤 것일지 혹시 올지도 모를 답신이 조금은 기대되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젊음의 탄생 (양장) - 젊음의 업그레이드를 약속하는 창조지성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정말 죽는 것은 잊혀졌을 때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늙었을 때는 언제일까. 그것은 아마도 사고가 고정되어 버렸을 때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호기심의 대상이고 사고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지금에야 하늘이라고 하면 푸른색을 떠올리지만 어린 아이들의 그림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즉, 새로운 것을 생각할 힘을 잃어버렸을 때 사람은 늙는다. 그 사람의 생각도 늙은 육신 속에 고정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가능할 것이다. 고정된 사고에서 탈피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젊음이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 '젊음의 탄생'은 그런 면에서 묘한 책이었다. 시대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사고의 틀을 넓힐 것을 그리고 바꿀 것을 조언한다. 그저 젊은이들에게 하는 조언 같다가도 그 안에 들은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아서 마음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자신의 사고가 딱딱해졌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책에서 가장 묘했던 것은 아홉 장의 카드의 역할이었다. 사고를 유연하게 할 상징이 그려진 카드들은 읽는 사람의 주의를 환기시킬 뿐만 아니라 저자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었다. 첫 번째 카드에서는 카니자 삼각형이라는 것이 그려져 있었다. 카드 자체에는 삼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은데 모서리 부분에 있는 문양으로 인해서 공백의 부분이 삼각형처럼 보이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있지 않은 것을 뇌에서만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비행기에 관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연이 구멍이 뚫려있는 것은 단순히 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날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창조적인 생각을 날개로 뜨는 것이 아니라 날아오르라는 이야기였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비행기를 만들지 못하느냐는 이야기와 익숙한 동요, 카니자 삼각형이라는 생소한 카드를 연결해 뜨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 날아오르라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신선했다. 그리고 보통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를 할 때면 서툴고 어리석은 시도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인데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돌진하는 이카로스가 없음을 한탄하는 쪽으로 전개되어 놀라웠다.

다른 사람이 비웃더라도 이카로스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젊음을 품으라는 말이었다. 안전만을 지향한다면 이카로스를 지향하는 것도 갈매기 조나단처럼 행동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야 유일한 단 한 명, 독자적인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단 한 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창조적 사고를 부르짖는 첫 번째 카드 이야기에서 두 번째 카드는 물음표와 느낌표가 합쳐져 있는 카드를 보여주면서 모든 일에 호기심을 느끼고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어야 젊음이 다시 태어난다고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 목표를 위해 지치지 않는 탐색의 열정을 보여주는 개미의 동선,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양쪽을 다 생각하고 선택하라는 오리-토끼, 경계를 넘어 통합의 묘를 보여주는 매시 업, 최적화를 보여준 연필의 여섯모꼴, 빈칸의 창조인 빈칸 매우기,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기면서 임하라는 지의 피라미드, 로컬을 가슴에 담고 글로벌을 향해 나가라는 둥근 별 뿔난 별이 담겨 있었다.

아홉 가지 하나하나가 인상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다 읽은 후에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안정만을 찾게 되고 창조적인 답이나 신선한 답이 아니라 '옳은' 답만을 고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고가 고정되어 버렸던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더 두 번째 카드 물음느낌표가 마음에 들었다. 어떤 정보를 그저 받아들이고 수긍할 것이 아니라 많은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왜'라고 반문해보라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책을 다 읽었지만 아직 젊음이 꽃 핀 것 같지는 않다.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행동은 아직이기 때문이다. 허나 새로운 사고를 배우고 자신의 사고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 특히 좋았다. 언젠가 자신의 힘으로 날 수 있을 때까지, 지쳐서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때마다 이 책을 다시 펼쳐보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의 방정식
베로니크 루아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에 읽은 소설에서 이런 부분이 나왔다.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의 방에 방문하는 장면이었는데 그 남자가 추리소설 팬이라 방 안에 추리소설이 가득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그저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겠지만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방안에 있는 책의 제목이 전부 살인이 들어가는 책이라 조금 섬뜩하기는 하다고 말이다. 그 말에 순간 머리속이 멍해졌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책장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이 가득한데 대부분이 살인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거기에 요새 한창 모으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도 '~살인'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드물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책장이 이렇게 살인 투성이야 하고 핀잔을 줄 것 같다. 그 일단의 책 무리 속에 하나가 될 책 '살인의 방정식'도 제목으로 치면야 섬뜩함이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데 방정식이 있다니 오싹했던 것이다. 그 오싹함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원제는 'Museum'이니 헛다리 짚은 셈이다. 이 책은 박물관에서 7일 동안에 벌어지는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다. 책의 제목으로 설정되어 있는 '살인의 방정식'은 책 속의 목차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온갖 사건이 벌어지고 난 이후에 탐정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연쇄살인은 이런 고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또한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소재 자체가 성경을 그대로 해석할 것을 증명하는 근본주의자들과 다윈의 진화론의 잃어버린 고리를 밝히려는 과학자들과의 싸움이니 추리소설이라기보다 '다빈치코드'같은 팩션에 가깝다. 하지만 두 가지 분야를 섞은 덕분에 읽기는 한결 수월한 편이다. 보통 팩션을 읽다보면 그 설정이나 장대한 이론에 이야기가 묻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은데 이 책의 경우 살인사건이 거의 매일 일어나고 그 조사가 연이어 벌어지다 보니 설명보다 사건 위주로 전개되어서 그런 부담은 없었다.

다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일단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으니 그 긴장감을 잘 살려줬으면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연쇄살인의 경우 피해자가 누가 되느냐가 중요한 단서 중에 하나가 된다. 피해자가 누구인지 그가 왜 대상자로 선택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해되었는지를 따라가다보면 범인에게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매번 목차에 누가 어떻게 죽는지 표시되어 있다. 읽기도 전에 김이 새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나오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이미 범인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한 명만 수상하게 표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추리소설보다 팩션에 가깝다는 것을 가만하고 생각하면 읽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몰랐다면 좀 더 긴장감 있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아서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야기 자체는 호완싸인이란 교수의 실험실이 가스누출로 폭파되면서 시작된다. 이 의문의 죽음은 호완싸인 교수가 실험을 하다가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지구 상에 생명체가 생겨나기 전에 외계에서 생명의 유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그것을 저명한 학자 피터 오스몬드와 마냐니 신부가 확인하려 프랑스 자연사 박물관으로 오자 살인은 전염병처럼 번져가기 시작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살인이 계속 이어지지만 경찰은 범인을 찾지 못한다. 출입이 자유로운 가운데 일하고 있는 2천명의 직원 누구나 범행이 가능했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학자와 신부를 돕게 된 박물관 직원 레오폴딘을 중심으로 점차 어두운 그림자가 덮쳐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실마리는 언제나 그렇듯 바로 옆에 있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학자와 신부는 처음에는 살인사건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으나 점차 사건은 그들도 무관하지 않게 전개되고 살인자는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가운데 벌어지는 연쇄살인, 그 안에 엉킨 이야기를 풀어냈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피가 흐른 뒤였다.

너무 일찍 범인을 눈치 챈 것 말고는 꽤 재미있게 읽은 편이었다. 진행되는 방식이 예상치 못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이유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멍하니 생각해보기도 했다. 적어도 연쇄살인을 풀기 위해서 만들어낸 해당 사건의 살인의 방정식은 있을지 몰라도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살인의 방정식 같은 것은 없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작가는 공포에는 한계가 없다고 말하지만 공포보다 오히려 상상력쪽이 한계가 없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참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할 때 형법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현장검증시에 경찰이 성난 주민들을 막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학생들 대부분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뭣하러 보호하느냐고 좀 맞게 두면 어떠냐고 답했다. 그러자 형법 교수님은 죄를 저지른 만큼만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학생들이 그런 답을 한다고 나무라셨다. 틀린 이야기는 아닐 지도 모른다. 죄를 저지른 만큼만 벌을 받아야 하고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 신분이므로 보호해야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람의 목숨을 숫자로 치환하고 범인의 인생에서 몇 년을 수감시설에서 보내게 한다고 해도 그 저울이 공평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에서도 자신의 딸을 죽인 연쇄살인범을 잡은 FBI요원에게 피해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기분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다르지 않다고, 자신이 바라는 것은 딸이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말을 결코 가해자를 용서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저울이 공평하지 않음을 비난하는 말도 아니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지 않은 일로 잃어버리고 슬픔과 탄식으로 젖어있는 사람의 말이다. 그나마 이 말에서 분노가 가라앉아 있는 것은 결코 저울이 평행을 이루지는 않겠지만 범인이 대가를 치를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이 살해당했고 그 범인의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분노가 슬픔과 탄식을 뒤덮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고 그 사람이 살해당했다는 것은 처음에는 당혹감을 그 다음에는 분노를 마지막으로 슬픔과 체념을 가져온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결코 이전 같을 수 없다. 그 사람이 죽은 시점에서 시간이 멈추어 버리는 것이다. 그 이후의 시간은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처음의 당혹감이 가시면 많은 피해자나 그 가족들은 자신이 당한 일의 부당함에 치를 떤다. 그리고 그 분노를 돌릴 곳을 찾게 마련이다. 더구나 범죄가 있다면 범인이 있기 마련이고 피해자 가족으로서는 범인이 잡히기만을 그리고 대가를 치르게 되기를 바라며 모든 감정을 쏟아 붓는다.

이 책 '천사의 나이프'의 주인공도 그랬다. 카페를 하는 히야마는 4년 전에 아내를 잃었다. 유흥비를 벌려던 중학생 3명이 그의 집에 침입해서 아내 쇼코의 목을 칼로 베어 죽였다. 쇼코는 출산한지 반년도 되지 않은 상태였고 방에는 두 사람의 딸 마나미도 있었다. 갓난아기를 보호하려는 듯 감싼 채 숨을 거둔 쇼코와 어머니의 마지막 단발마를 목격했을 마나미를 생각하니 히야마는 멍해졌다. 사건이 일어난 방은 온통 피로 뒤덮여 있었다. 쇼코는 살아남으려 반항했던 것이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는 끔찍한 현장에 히야마는 그 곳이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자신의 집이란 사실도 믿기 어려웠다. 그의 분노는 누를 길이 없었고 범인이 잡히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범인은 금새 잡혔는데 범인인 아이 중에 하나가 교표를 흘렸기 때문이다. 이제 범인이 잡혔으니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분노를 누르고 있던 히야마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진다. 만 14세 이하 아동은 형사 미성년자로 책임능력이 없으니 처벌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아동을 보호하는 수감시설에 잠시 있거나 보호처분을 받으면 끝이라고 했다. 살해당한 사람의 목숨보다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아이라는 이유로 보호받는다는 것이다. 히야마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고 사건의 진행정보라도 알고 싶었지만 그는 일체 배제된다. 재판도 가해자에 대한 것은 속속들이 알려 하지만 피해자의 억울한 심정을 말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흥미위주로 취재하러 온 기자들만 그의 앞에 득시글거렸다.

가족의 생활이 부서졌는데도 그의 비명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재판 결과도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서야 겨우 들을 수 있었는데 평소 행실이 좋지 않던 소년 A는 강제성이 약간 있는 수감시설로 소년 B는 일반 수감시설로 모범생이던 소년 C는 보호처분으로 그쳤다는 것이었다. 한 아이의 엄마이며 다정한 아내였고 간호사의 꿈을 가지고 있던 여성이 죽었는데도 말이다. 히야마는 분노로 이성을 잃고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하고 만다. 법이 심판해주지 않겠다면 자신이 직접 죽여버리겠다고 말이다. 이 말로 인해서 여론은 히야마를 비난한다. 아이들의 교화가 먼저라는 것이다. 그의 울분과 비통함은 몰지각함으로 왜곡된다.

그 후 4년, 히야마의 가슴 속에는 분노가 숨죽이고 있었다. 딸 마나미를 잘 키우기 위해 분노를 누르고 많은 것을 잊은 척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때 사건 담당형사가 그의 가게에 찾아온다. 아무렇지 않은 질문에 히야마는 형사가 신경을 써준 것으로 생각하고 감동하지만 실은 그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 사건의 소년 B가 히야마의 가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그가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다. 히야마는 소년 B가 죽었다는 말에 후련함도 안타까움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공허했을 뿐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소년의 죽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부터 히야마는 그 때의 사건과 소년 3명이 정말로 갱생했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누명을 벗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가슴 속에 분노를 품고 살 수 없었기에 그들을 용서할 방법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처단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허나 그는 딸 마나미를 지키고 싶었기에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못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조사를 진행해나갈 수록 점점 그는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

가족을 죽인 범인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정말 참담한 기분일 것이다. 법의 부당함에 치를 떨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의 마음속에 가득 찬 분노는 어떻게 해야만 좋을까. 죄를 지은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부당하겠지만 그 대가의 기준에 대해서 비난하는 사람의 앞에 서면 할 말이 없어진다. 사람의 목숨을 잴 수 있는 척도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 히야마는 적어도 범인들이 대가를 치르기를 그리고 갱생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범인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가져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정말 갱생을 했다면 최소한 자신이 지은 죄를 직시하고 그 죄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죄조차 하러 오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면서 갱생했다고 말한다면 피해자의 가족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어찌되어도 잃은 사람의 고통만 커질 뿐이다. 대체 피해자의 슬픔은 누가 알아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니시에인션 러브>를 리뷰해주세요.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의 백미라 하면 역시 마지막 부분이다. 책의 주인공인 탐정은 사건에 관련된 모든 증거를 모으고 논리의 연결고리를 확립해서 사건을 풀어 나간다. 문제집의 해답이라고 해야 할 지 추리소설 전반에 깔려 있던 복선이 전부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드러나고 또 풀려 나가는 것이다. 그 순간 읽는 사람은 자신이 예상했던 부분에서는 우쭐해지기도 하고 몰랐던 부분에서는 치밀한 트릭이라며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이미 결말을 알고 범인을 알게 되었다면 어떨까. 어설픈 추리소설이라면 그것만으로도 힘을 잃는다. 하지만 잘 짜인 추리소설이라면 아쉽기는 하지만 읽는 즐거움은 그리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읽으면서 이런 부분이 복선이었구나 하는 것을 찾으면서 진행할 수 있으니 색다른 즐거움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이니시에이션 러브'는 후자에 속한다. 기왕이면 트릭을 모르는 편이 즐겁지만 알고 읽으면 더 놀라운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마지막 세 줄을 읽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흔한 연애소설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세 줄을 읽고 나니 순간 멍해졌다. 간단한 트릭인데도 전혀 눈치 채질 못했던 것이다. 사실 겉표지에 연애 소설과 미스터리의 완벽한 조화라고 쓰여 있어서 대체 미스터리는 언제 나오는 거지 하고 투덜거리면서 읽었다. 이미 수많은 단서가 주위에 흩어져 있었는데도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 것이다.

물론 본격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약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마지막 세 줄로 놀래켰으니 추리소설이라기보다 반전소설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허나 연애 소설을 추리 소설로 뒤틀어 놓은 솜씨하며 후에 떠올리면 그게 전부 복선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알기 전에는 예상도 못할 만큼 잘 짜인 이야기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단서는 전부 제시되어 있었는데 못 알아차린 것이니 공정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 자체는 흔하게 전개된다. 연애에 서툴다고 할 지 신중하다고 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스즈키 유키와 나루오카 마유코는 우연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평소대로라면 미팅에 참석할 일이 없는 스즈키가 친구의 부탁을 받고 미팅 자리에 나간 것이다. 스즈키는 그저 친구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었지만 나루오카를 보자 내심 마음이 설렌다. 그녀가 마음에 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소심한 편이라 어떤 행동을 취할 생각은 없었다. 미팅에서 누군가를 만나 진지한 교제를 할 수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액세서리를 찾듯 바꾸는 가벼운 사랑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리 인기 있는 유형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적당히 분위기를 맞춰주고만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의 진지한 모습이 여성들의 호감을 사고 나루오카도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는 그 사실에 들뜨기도 하고 마침 권유한 것이 나루오카여서 2차에까지 참석을 하는 열의를 보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저 즐거운 일이었다고 치부하고 넘어가려던 스즈키였다. 그런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지난 번 미팅의 주선자였던 친구였는데 지난 번 모였던 사람끼리 바다에 가자는 것이었다. 스즈키는 나루오카를 만나고 싶은 욕심에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바다에 가게 된 날, 그의 바람대로 일은 흘러가지 않고 엉뚱한 여성이 그에게 호감을 보이자 스즈키는 적당히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잠이 드는데 일어나 보니 나루오카가 옆에 있었다. 그에게 관심이 있었는지 나루오카가 일행에서 빠져나와 그에게 말을 걸러 온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준다.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스즈키는 기뻤지만 소심한 성격이었던 터라 전화를 걸까 말까 하면서 오랜 시간을 망설인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나루오카에게 전화를 건다.

연애 소설인데도 주인공이 남자인 스즈키이고 이야기가 A면과 B면으로 나누어져 흘러가는 것이 독특한 편이었다. 지금 다시 하나하나 짚어 나가보면 전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들이었고 이야기 사이사이에 수많은 단서가 흩어져 있어서 섬세한 솜씨란 생각이 들게 된다. 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그 생각을 뒤집고 다시 읽어보게 만드는 책이란 점이 가장 좋았다. 추리소설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를 절묘하게 뒤튼 새로운 미스터리라 신선한 느낌도 강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숨은 미스터리라 오히려 강렬했고 덕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평범한 연애 소설로 전개되지만
마지막 세 줄로 뒤집어지는 반전 소설이에요.
세밀하고 잘 짜인 이야기와 복선 때문에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묘미가 있구요.
정통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색다른 즐거움이 있네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연애 소설과 미스터리가 결합한 터라
독특한 느낌이 강해서 비슷한 책이 잘 안 떠오르는 군요.
코지 미스터리라면 조금 비슷할까요.
'한나 스웬슨 시리즈'라든지
'악마, 할로윈 파티에서 죽다'같은 매들린 빈 시리즈 같은
연애가 결합된 가벼운 미스터리 같은 거요.
이 책이 워낙 특이해서^^;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남자의 입장에서 전개되지만
연애 소설과 미스터리가 결합되어 있으니
여자분들에게 권하고 싶구요.
정통 미스터리가 아닌 가벼운 미스터리도 즐겁게 읽으시는 분이라면
좋을 것 같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한 의식. 우리의 연애는 그런 거였다고 헤어질 때 제게 말했어요. 처음 연애를 할 때는 누구나 그 사랑이 절대적이라 믿는다고. 절대라는 말을 쓴다고. 그렇지만 인간에게는-이 세상에는 절대란 건 없다고. 언젠가 알게 될 때가 올 거라고. 그것을 알게 되면 비로소 어른이라고 해도 좋다고. 그것을 깨닫게 해 주는 연애를 그는 이니시에이션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죠. 문법적으론 틀릴지도 모르지만 저는 좀 더 멋을 넣어서 이니시에이션 러브라고 불러요.
(P2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