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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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할 때 형법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현장검증시에 경찰이 성난 주민들을 막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학생들 대부분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뭣하러 보호하느냐고 좀 맞게 두면 어떠냐고 답했다. 그러자 형법 교수님은 죄를 저지른 만큼만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학생들이 그런 답을 한다고 나무라셨다. 틀린 이야기는 아닐 지도 모른다. 죄를 저지른 만큼만 벌을 받아야 하고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 신분이므로 보호해야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람의 목숨을 숫자로 치환하고 범인의 인생에서 몇 년을 수감시설에서 보내게 한다고 해도 그 저울이 공평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에서도 자신의 딸을 죽인 연쇄살인범을 잡은 FBI요원에게 피해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기분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다르지 않다고, 자신이 바라는 것은 딸이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말을 결코 가해자를 용서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저울이 공평하지 않음을 비난하는 말도 아니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지 않은 일로 잃어버리고 슬픔과 탄식으로 젖어있는 사람의 말이다. 그나마 이 말에서 분노가 가라앉아 있는 것은 결코 저울이 평행을 이루지는 않겠지만 범인이 대가를 치를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이 살해당했고 그 범인의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분노가 슬픔과 탄식을 뒤덮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고 그 사람이 살해당했다는 것은 처음에는 당혹감을 그 다음에는 분노를 마지막으로 슬픔과 체념을 가져온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결코 이전 같을 수 없다. 그 사람이 죽은 시점에서 시간이 멈추어 버리는 것이다. 그 이후의 시간은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처음의 당혹감이 가시면 많은 피해자나 그 가족들은 자신이 당한 일의 부당함에 치를 떤다. 그리고 그 분노를 돌릴 곳을 찾게 마련이다. 더구나 범죄가 있다면 범인이 있기 마련이고 피해자 가족으로서는 범인이 잡히기만을 그리고 대가를 치르게 되기를 바라며 모든 감정을 쏟아 붓는다.

이 책 '천사의 나이프'의 주인공도 그랬다. 카페를 하는 히야마는 4년 전에 아내를 잃었다. 유흥비를 벌려던 중학생 3명이 그의 집에 침입해서 아내 쇼코의 목을 칼로 베어 죽였다. 쇼코는 출산한지 반년도 되지 않은 상태였고 방에는 두 사람의 딸 마나미도 있었다. 갓난아기를 보호하려는 듯 감싼 채 숨을 거둔 쇼코와 어머니의 마지막 단발마를 목격했을 마나미를 생각하니 히야마는 멍해졌다. 사건이 일어난 방은 온통 피로 뒤덮여 있었다. 쇼코는 살아남으려 반항했던 것이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는 끔찍한 현장에 히야마는 그 곳이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자신의 집이란 사실도 믿기 어려웠다. 그의 분노는 누를 길이 없었고 범인이 잡히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범인은 금새 잡혔는데 범인인 아이 중에 하나가 교표를 흘렸기 때문이다. 이제 범인이 잡혔으니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분노를 누르고 있던 히야마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진다. 만 14세 이하 아동은 형사 미성년자로 책임능력이 없으니 처벌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아동을 보호하는 수감시설에 잠시 있거나 보호처분을 받으면 끝이라고 했다. 살해당한 사람의 목숨보다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아이라는 이유로 보호받는다는 것이다. 히야마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고 사건의 진행정보라도 알고 싶었지만 그는 일체 배제된다. 재판도 가해자에 대한 것은 속속들이 알려 하지만 피해자의 억울한 심정을 말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흥미위주로 취재하러 온 기자들만 그의 앞에 득시글거렸다.

가족의 생활이 부서졌는데도 그의 비명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재판 결과도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서야 겨우 들을 수 있었는데 평소 행실이 좋지 않던 소년 A는 강제성이 약간 있는 수감시설로 소년 B는 일반 수감시설로 모범생이던 소년 C는 보호처분으로 그쳤다는 것이었다. 한 아이의 엄마이며 다정한 아내였고 간호사의 꿈을 가지고 있던 여성이 죽었는데도 말이다. 히야마는 분노로 이성을 잃고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하고 만다. 법이 심판해주지 않겠다면 자신이 직접 죽여버리겠다고 말이다. 이 말로 인해서 여론은 히야마를 비난한다. 아이들의 교화가 먼저라는 것이다. 그의 울분과 비통함은 몰지각함으로 왜곡된다.

그 후 4년, 히야마의 가슴 속에는 분노가 숨죽이고 있었다. 딸 마나미를 잘 키우기 위해 분노를 누르고 많은 것을 잊은 척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때 사건 담당형사가 그의 가게에 찾아온다. 아무렇지 않은 질문에 히야마는 형사가 신경을 써준 것으로 생각하고 감동하지만 실은 그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 사건의 소년 B가 히야마의 가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그가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다. 히야마는 소년 B가 죽었다는 말에 후련함도 안타까움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공허했을 뿐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소년의 죽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부터 히야마는 그 때의 사건과 소년 3명이 정말로 갱생했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누명을 벗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가슴 속에 분노를 품고 살 수 없었기에 그들을 용서할 방법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처단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허나 그는 딸 마나미를 지키고 싶었기에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못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조사를 진행해나갈 수록 점점 그는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

가족을 죽인 범인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정말 참담한 기분일 것이다. 법의 부당함에 치를 떨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의 마음속에 가득 찬 분노는 어떻게 해야만 좋을까. 죄를 지은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부당하겠지만 그 대가의 기준에 대해서 비난하는 사람의 앞에 서면 할 말이 없어진다. 사람의 목숨을 잴 수 있는 척도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 히야마는 적어도 범인들이 대가를 치르기를 그리고 갱생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범인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가져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정말 갱생을 했다면 최소한 자신이 지은 죄를 직시하고 그 죄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죄조차 하러 오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면서 갱생했다고 말한다면 피해자의 가족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어찌되어도 잃은 사람의 고통만 커질 뿐이다. 대체 피해자의 슬픔은 누가 알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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