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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방정식
베로니크 루아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2월
평점 :
얼마 전에 읽은 소설에서 이런 부분이 나왔다.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의 방에 방문하는 장면이었는데 그 남자가 추리소설 팬이라 방 안에 추리소설이 가득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그저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겠지만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방안에 있는 책의 제목이 전부 살인이 들어가는 책이라 조금 섬뜩하기는 하다고 말이다. 그 말에 순간 머리속이 멍해졌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책장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이 가득한데 대부분이 살인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거기에 요새 한창 모으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도 '~살인'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드물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책장이 이렇게 살인 투성이야 하고 핀잔을 줄 것 같다. 그 일단의 책 무리 속에 하나가 될 책 '살인의 방정식'도 제목으로 치면야 섬뜩함이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데 방정식이 있다니 오싹했던 것이다. 그 오싹함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원제는 'Museum'이니 헛다리 짚은 셈이다. 이 책은 박물관에서 7일 동안에 벌어지는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다. 책의 제목으로 설정되어 있는 '살인의 방정식'은 책 속의 목차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온갖 사건이 벌어지고 난 이후에 탐정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연쇄살인은 이런 고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또한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소재 자체가 성경을 그대로 해석할 것을 증명하는 근본주의자들과 다윈의 진화론의 잃어버린 고리를 밝히려는 과학자들과의 싸움이니 추리소설이라기보다 '다빈치코드'같은 팩션에 가깝다. 하지만 두 가지 분야를 섞은 덕분에 읽기는 한결 수월한 편이다. 보통 팩션을 읽다보면 그 설정이나 장대한 이론에 이야기가 묻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은데 이 책의 경우 살인사건이 거의 매일 일어나고 그 조사가 연이어 벌어지다 보니 설명보다 사건 위주로 전개되어서 그런 부담은 없었다.
다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일단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으니 그 긴장감을 잘 살려줬으면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연쇄살인의 경우 피해자가 누가 되느냐가 중요한 단서 중에 하나가 된다. 피해자가 누구인지 그가 왜 대상자로 선택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해되었는지를 따라가다보면 범인에게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매번 목차에 누가 어떻게 죽는지 표시되어 있다. 읽기도 전에 김이 새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나오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이미 범인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한 명만 수상하게 표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추리소설보다 팩션에 가깝다는 것을 가만하고 생각하면 읽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몰랐다면 좀 더 긴장감 있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아서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야기 자체는 호완싸인이란 교수의 실험실이 가스누출로 폭파되면서 시작된다. 이 의문의 죽음은 호완싸인 교수가 실험을 하다가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지구 상에 생명체가 생겨나기 전에 외계에서 생명의 유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그것을 저명한 학자 피터 오스몬드와 마냐니 신부가 확인하려 프랑스 자연사 박물관으로 오자 살인은 전염병처럼 번져가기 시작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살인이 계속 이어지지만 경찰은 범인을 찾지 못한다. 출입이 자유로운 가운데 일하고 있는 2천명의 직원 누구나 범행이 가능했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학자와 신부를 돕게 된 박물관 직원 레오폴딘을 중심으로 점차 어두운 그림자가 덮쳐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실마리는 언제나 그렇듯 바로 옆에 있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학자와 신부는 처음에는 살인사건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으나 점차 사건은 그들도 무관하지 않게 전개되고 살인자는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가운데 벌어지는 연쇄살인, 그 안에 엉킨 이야기를 풀어냈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피가 흐른 뒤였다.
너무 일찍 범인을 눈치 챈 것 말고는 꽤 재미있게 읽은 편이었다. 진행되는 방식이 예상치 못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이유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멍하니 생각해보기도 했다. 적어도 연쇄살인을 풀기 위해서 만들어낸 해당 사건의 살인의 방정식은 있을지 몰라도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살인의 방정식 같은 것은 없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작가는 공포에는 한계가 없다고 말하지만 공포보다 오히려 상상력쪽이 한계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