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속도를 10km 늦출 때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
조셉 베일리 지음, 강현주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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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에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랑에 대한 것을 다뤘다. 그 때 나온 이야기가 사랑의 시효가 길어야 3년이라는 것이었다. 불같은 사랑은 호르몬에 의한 것이라 3년이면 사라진다고 한다. 그 이후는 친구같은 사랑이거나 정에 의한 관계라고 한다. 분명 흥미로운 내용이기는 했지만 그 프로그램을 본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과학이 많은 어두운 곳의 등불이 되어주기는 했지만 사랑이 호르몬에 의한 것이고 그 시효가 3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흥미롭지만 가장 알기 싫은 진실을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사랑의 속도를 10km 늦출 때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유쾌했다. 아무도 영원하지 않다고 한 사랑을 영원할 수 있다고 말한 책이기 때문이다. 보통 불같은 사랑도 언젠가는 싸늘하게 식는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호르몬 때문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 개선의 여지는 없다. 허나 이 책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진정한 자아를 통해서가 아니라 습득된 자아를 통해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명 콩깍지가 벗겨지고 현실에 눈뜬 것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이라는 굴절된 시야로 인해서 상대의 진정한 모습을 놓치고 만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한참을 만나고 나면 대체로 상대의 단점을 찾게 된다. 그리고 한 때 사랑했던 점들이 가장 거슬리는 점으로 변하거나 사라져버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했던 점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주변의 편견에 가득찬 말들에 휘둘려 습득된 자아를 통해 보기 때문에 볼 수가 없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대부분의 생각들은 말 그대로 생각일 뿐이라고 한다. 자신의 내부에서 만들어낸 생각 만들어낸 감정이지 상대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예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망설이는 마음에 전화를 하지 않았는데 마찬가지로 상대에게서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이쯤 되면 한 편의 소설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상대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 상대는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을 싫어할 것이다 같은 온갖 부정적 감정이 머릿속을 휘젓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중에 실제 사실인 것은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라고 한다. 상대가 한참 전화를 하지 않아서 자신에게 화가 났거나 이제 관계를 끊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전부 자신 속에서 만들어진 것뿐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생각으로 인해 화를 내기도 하고 우울해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객관적 관찰을 권하고 있다.

또한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라고 한다. 제대로 들으면 단지 남편과 너무 정서적으로 멀어진 것 같아서 외로운 아내인데 건성으로 들으면 잔소리의 울림으로 들려서 싸우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다양한 사례와 함께 나와 있어서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과거의 경험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느라 현재에 충실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게 되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먼저 자신의 진정한 감정, 다음으로는 상대의 진정한 모습을 모두 잃게 되는 것이다.

많은 통속극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가장 맞는 조각을 찾아 나섰던 깨진 원은 후에야 자신만으로도 완전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신의 부족한 것을 모두 메워줄 진정한 짝을 찾아서야 3년의 시효가 달린 호르몬을 이길 재간이 없다. 하지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현실에 집중하며 진정한 상대의 모습을 항시 바라볼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동안 행복하게 산다는 것도 꿈은 아닐 것 같다. 사랑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데 달리는 속도가 달라서야 주변의 풍경이 같을 수 없다. 그런 속도를 맞추게 하는 책이라 꽤 의미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속도를 맞추는데도 꽤 유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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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의 지혜>를 리뷰해주세요.
당나귀의 지혜 - 혼돈의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기
앤디 메리필드 지음, 정아은 옮김 / 멜론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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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 '사슴남자'에는 신의 사자를 자칭하는 사슴이 등장한다. 그 사슴이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있다. 자신들은 다른 종에게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하지만 인간만은 다른 종에게서 아름다움을 읽어낸다는 것이다. 그 사슴은 한 여자가 '너는 참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못했다. 다른 종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기괴한 종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보들보들한 털을 가진 강아지를 보면서 귀엽다고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자연 속의 야생동물을 보면서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당나귀에 와서는 고개가 갸웃해졌다. 당나귀에 대해 찬사를 퍼붓는 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에 많이 읽은 '이솝우화' 속의 당나귀는 미련함의 상징과도 같다.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사자 행세를 하던 당나귀는 그 울음소리 때문에 탄로가 나고 만다. 요새 들어 애니메이션 속의 당나귀는 수다쟁이라는 느낌이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당나귀에 대한 생각은 고집붙통에 미련한 동물이었다. 허나 생각해보면 이런 편견 자체가 우습다. 동물은 그저 그 곳에 있을 뿐인데 인간의 시선으로 이렇다 저렇다 하고 판단했던 것이다. 심지어 당나귀를 실제로 본적도 없는데 말이다.

이 책 '당나귀의 지혜'는 일단 당나귀와 함께 여행을 떠난 학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앤디 메리필드는 첫 장부터 읽는 사람의 속도를 늦춘다. 책이 재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한 조각의 얼음을 깨물어 먹는 것이 아니라 입에 물고 그 시원함을 음미하는 것만 같은 감각을 선사한다. 그야말로 '느림'에 대한 미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글을 읽다보면 심장박동 마저 느려 지는 것 같다. 심신이 안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글의 내용은 대부분 당나귀에 대한 예찬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나귀만큼 아름다운 생물은 없는 것만 같다. 흔히 비교대상이 되는 말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경질적이며 오르막을 오르는데 적합하지 못하고 다리도 못 생겼다고 말한다.

반면 당나귀는 낙원 속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상징물 같다. 갈기의 털은 이 세상 무엇보다 부드럽고 온순한 성품과 초연한 눈빛을 가진 선한 동물이라고 한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만으로 읽었다면 그저 웃어버렸을 것이다. 조랑말의 경우에는 좀 덜하지만 평소 말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농부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묘사했을 때 베르테르가 감탄했던 것은 농부의 눈을 통해 여인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같은 경우로 저자의 눈을 통해서 본 당나귀는 너무나 아름답고 정다운 생물이었다. 덕분에 혹시 주변에서 당나귀를 실제로 본 사람이 없나 물어보고 다녔다.

부드러운 털을 가진 사교적인 생물을 실제로 만나보고 싶다는 열망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내내 그랬다. 거기에 저자의 여행에는 딱히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 여행을 간 것인지 그 땅을 한 번 밟아보고 부리나케 돌아오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길이 아니라 딱히 목적도 없이 길을 나선 느낌이었다. 동네에서 당나귀 '그리부예'를 만나 그를 동반자 삼아 길을 걸어간다. 그 도중에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인 그리부예에게 감화되기도 하고 당나귀와 공존하는 법을 배워간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치유하는 '느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특히 도망친 말을 만났을 때 그리부예가 초연한 태도로 그를 보호한 이야기, 앞에서 깨달음을 얻고 후에 야생마를 만났을 때 오히려 그가 그리부예를 보호한 이야기는 한 동안 생각을 잠기게 했다. 마지막에 이르러 한 사람과 한 마리의 당나귀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바로 처음 길을 떠났던 집이었다. 당나귀 그리부예는 떠났을 때의 그 당나귀였지만 같이 간 사람은 결코 같은 사람이지 않았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동물과의 교감이 치료에 쓰인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지만 당나귀에게서 진정한 행복에 대한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 인상적인 책이었다. 언젠가 당나귀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심어준 책이기도 했다. 당분간은 이 책에 만족해야 할 것 같지만 말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는 것 같은 책이라 더욱 좋았어요. 글을 읽으면서 심장박동조차 느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모든 것이 빠르게만 흘러가는 시간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30세 이상이신 분들에게 더 좋을 것 같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당나귀는 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깜빡 졸 때, 걸을 때, 상념에 잠겨 있을 때에도 그리부예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존재감과 충정을 느낀다.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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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군화>를 리뷰해주세요.
강철군화 잭 런던 걸작선 3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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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에 단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권력'일 것이다. 맹자에게 반박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순자의 성악설은 대체로 맞다. 아이들이라고 그저 순수하지는 않다. 자신이 가진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 한도에서 모든 일을 다한다. 인위적인 '교육'을 가하지 않는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 면에서 가끔 기사도가 우습다는 생각을 한다. 욕망을 누르기 위한 표면상의 강한 억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멋진 것도 사실이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만약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저 선하다면 왜 세상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을까. 사회구조상의 문제점? 아니면 음모론에 적합하게 어둠 속에서 암약하는 세력 때문일까? 답은 아마도 사람은 단 하나의 진리를 탐하고 그것에 매달리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휘두르고 가지고 있기 위해 매달린다. 결과적으로 권력을 잡은 소수만이 모든 것을 갖는다. 그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인류가 나타나고 기록이 남기 시작한 이래 계속 그래왔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사상가들은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부의 편중이나 권력 같은 것은 보통의 소시민에게는 관심사가 아니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부조리하더라도 그렇다.

그런 부조리함에 의문을 제기하고 단 하나의 진리를 빼앗으려 하는 사람을 '혁명가'라고 부른다. 굳이 분류하자면 무수히 많은 양떼 중에 하나이고 '혁명가'도 어차피 '권력의 핵심'으로 변질될 거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혁명가는 그리 달가운 부류는 아니다. 기반에 정착해서 위로 올라가려는 양의 입장에서는 다시 한 번 권력의 구조를 뒤집고 뒤흔드는 혁명가는 눈의 가시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권력의 최상위층의 입장에서는 눈의 가시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방해하는 자이므로 척결 대상 1순위일 것이다.

그런 혁명가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일대기가 바로 이 책 '강철군화'다. 일단 형식은 소설이지만 20세기 초의 비참한 상황을 고발하고 있는데다가 어느 정도 예상이 맞는 터라 단순한 소설로 보기는 어렵다. '늑대개'의 잭 런던이 쓴 작품이지만 '늑대개'만 생각하고 읽기에는 느낌이 상이한 책이었다. 정치사상사를 이해하게 하는 소설이라는 평이 있던데 그것이 더 적합한 설명이었다. 형식 자체는 27세기에 사회주의 시대의 역사가가 어니스트 에버하드라는 혁명가의 일대기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자본가에게 부가 집중된 상황에서 노동자 계급에게는 분노가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어니스트 에버하드라는 혁명가가 있었다. 유명한 과학자의 딸인 에이비스는 그에게 깊은 감명을 받는다. 혁명가에게 흔히 있는 카리스마에 현혹된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가씨에게 상류층이 아닌 혁명가는 큰 충격을 준다. 그녀는 그에게 이끌리고 그의 유도에 따라 점차 혁명의 물길에 빠져든다. 문제는 지식인인 에이비스의 아버지도 그에게 큰 흥미를 보였다는 점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두 사람이 교제하는 것을 방해하지도 않았고 도리어 어니스트가 권력에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 논쟁할 기회를 준다. 이 일은 문제를 가져오고 에이비스의 아버지는 휴가를 갈 것을 권유받는다. 그것을 거부하고 혁신적인 책을 출간하자 권력자들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다.

줄거리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지만 논쟁의 틈에서 쏟아지는 사상들과 미래를 예상한 전개가 놀라운 책이었다. 그것이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고 가장 큰 단점이기도 했다. 소설로 이해하는 정치사상은 흥미롭지만 소설을 단순한 소설로는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덕분의 소설다운 즐거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강철군화에 비유되는 권력층과 분쟁이라든지 20세기 초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그대로 보는 것 같이 묘사해둔 것은 인상적이었다. 어느 만화가가 중세 관련 자료를 보면 그 기아와 질병으로 인해 머리가 아프다고 표현했었다. 그런데 20세기조차 별로 다른 것 같지 않다. 지금도 그리 다르다고는 못하겠다. 언제나 그렇듯 권력을 잡은 소수가 모든 것을 다 가지기 때문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소설을 통해 손쉽게 정치 사상을 읽을 수 있고 20세기 초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정치 사상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6센트라오, 아가씨." 할머니는 바느질을 계속하면서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속도는 느렸지만 바느질을 멈추는 법이 없었다. 할머니는 '바느질하다'는 동사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P209)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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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세계 사상사
허윈중 엮음, 전왕록.전혜진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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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가지 일은 다른 여러 가지 일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보통이다. 태평양 너머의 나비가 날갯짓을 한 것이 태풍이 되는 마당에 무리도 아니다. 얼마 전 읽은 책 '커넥션'에는 하나의 발명이 다른 발명을 낳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한 예로 유럽에 추위가 닥치고 굴뚝이 발달하게 되자 따뜻한 실내에서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지고 그것이 복지의 향상으로 연결되거나 위대한 사상이 잉태되는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의 사상이 다른 사상을 낳는 일은 없을까.

일반적으로 특이한 이론이 발표되면 학계가 발칵 뒤집힌다. 그것에 대한 반론, 찬탄이 쏟아지는 것이다. 사상은 논쟁을 낳고 그 논쟁 속에 새로운 사상이 잉태된다. 그런 마당에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위대한 사상이라면 다른 많은 것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대체로 인류사상에 대해서 말할 때 동양의 것과 서양의 것을 분리해서 보여준다. 덕분에 시대 별로 머릿속에서 재조합하지 않으면 서로가 주고받은 영향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지도로 보는 세계 사상사'가 반가웠다. 그런데 '지도로 보는'이라고 되어 있지만 정작 장의 처음에 세계 지도로 대략적인 내용이 언급될 뿐이지 본문의 내용과는 그리 관계가 없어서 아쉬웠다. 굳이 말하자면 '지도로 보는'이라기보다 '한 권으로 읽는'이 더 적합한 느낌이었다.

책에서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 서양의 주요 사상을 정리해놓고 있다. 연대 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느낌을 받기는 쉬웠다. 소크라테스에서 하이데거까지 사상이 변천해간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같이 나오기는 하지만 역시 교차되기 어려운지 동양과 서양을 각기 다루고 있었다. 한 장이 하나의 시기를 다루면서 먼저 동양의 사상을 설명하고 서양의 사상을 설명하는 식으로 전개 되었다. 그래서 세계의 주요 사상을 담은 지식사전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통해서 제자들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하고 자신이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내용부터 몽테뉴의 교육법에 이르기까지 교육법에 대한 생각을 보는 것도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많은 사람, 사상을 다루고 있는 만큼 목차가 더 상세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생겼다. 다시 한 번 그 부분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생각도 들고 이리 저리 비교해보고 싶은데 목차가 '유럽의 도약'이라는 식의 큰 분류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의 주요 사상인데 중국은 그렇다 치고 일본의 사상이 들어 있는 것은 조금 의아했다. 우리나라에 관련된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제외하면 예전에 세계사나 윤리 시간에 배웠던 세계사상사를 주요부분만 다시 짚어주는 기분이라 나쁘지 않았다.

공자가 학문에 그치지 않고 현실 정치에 참여하려 해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부분부터 논리학자 왕충의 이야기나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이야기까지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특히 춘추 초나라 혜왕의 일화가 재미있었다. 산채를 먹다가 거머리를 발견한 혜왕이 그것을 빼내지 않고 그대로 삼켰다고 한다. 만일 자신이 빼내면 요리사가 처벌을 받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리사를 가엽게 여긴 혜왕의 행동은 득으로 돌아왔다. 거머리는 그 날 밤 배설되었고 병도 나았다는 것이다. 조금 이색적인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부터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다양한 컬러 사진들이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대한 생각을 설명하면서 뭉크의 절규가 나온 것이 좋았다. 지루할 만하면 화려한 사진이 눈길을 사로잡으니 꾸준히 읽을 수 있었다. 단지 세계의 거의 모든 주요 사상을 담은 책이니 지식이 약간 지나치게 조밀해서 찰떡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꼭 씹어 삼켜야 하는 찰떡처럼 내용이 가득 차 있어 대충 넘기려다가는 목에 걸려버릴 것만 같았다. 물론 인류사상사의 한 획을 그은 내용들이 대부분이니 좀 더 자신을 잘 이해하고 넘어가라고 그들이 발목을 붙잡은 것인지도 모른다. 묵직한 책의 무게만큼 내용도 무게감 있는 책이라 꽤나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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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남자 - The fantastic Deer-Man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2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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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광골의 꿈'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여자가 등장한다. 눈도 코도 입도 각각은 볼 수 있지만 조합해서 하나의 얼굴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사회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는 편이라 초반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여자에게 원한을 가진 자가 나타나자 상황은 급변했다. 그리고 그녀가 얼굴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사람에게 얼굴은 단순한 신체 기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를 광기에 사로잡히게 한 것은 자신의 얼굴이 망가진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약혼자가 죽게 된 데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 자신의 얼굴이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면 자아를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얼굴이 타인과의 교류에 크게 작용하기도 하지만 자신에게도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사슴남자'에서는 말 그대로 얼굴이 사슴으로 변해가는 남자가 등장한다. 결코 자신이 바란 바가 아니었으며 사슴이 남자에게 표시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자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을 되찾기 위해서는 사슴이 해달라는 데로 해줘야 했다.

'사슴남자'는 동명 드라마의 원작이기도 하지만 2대 교토작가로 불리는 '마키메 마나부'의 소설이다. 소심한 한 남자가 사슴에게 선택되어 신의 보물을 찾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슴처럼 얼굴이 변해간다는 특이한 소재를 쓰고 있다. 판타지와 코믹 로맨스의 경계를 적절히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향토색과 코믹함이 잘 버무려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진하지 않고 은은한 먹을거리를 씹는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나'가 여학교에 임시부임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원래는 대학연구실에서 연구를 하는 입장이었지만 동료의 자료를 날려 중요한 승진 기회를 날리면서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된다. 조교와의 불화로 인해서 신경질적이 되던 그는 자신의 실험에서조차 실패하고 갈등은 극에 달한다. 이에 지도교수님은 그가 신경쇠약이라고 판단하고 환경을 바꿔보라고 권한다. 정확하게는 지난 번 조교수 승급에 실패한 조교가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나'가 쓰던 기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실에 한 대뿐인 기자재가 필요하니 그가 밀린 것이다.

칙칙한 연구실을 벗어나 활기찬 여고생들의 틈새에 있다 보면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핑계였지만 그건 여고생의 심술 맞음을 모를 때 이야기였다. 여자 고등학교의 실태를 알았다면 신경쇠약으로 의심되는 청년을 요양차 밀어 넣는 짓은 하지 않았으리라. 그는 별 수 없이 교수님의 친구가 교장으로 있는 여고에 임시교사로 부임한다. 그런데 첫 날 부터 쉽지가 않았다. 지각한 여학생이 도리어 그에게 대들었고 다음 날 부터는 급우들을 선동해서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의 가냘픈 신경은 쉴 날이 없었고 점차 짜증을 낸다. 거기에 자신이 정말 미친 것이 아닌가 의심할 만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의 앞에 말하는 사슴이 등장한 것이다. 그는 당연히 미친 듯이 도망친다. 자신을 적대시하는 여학생과 말하는 사슴, 약한 신경이 그를 압박하는 와중에 더 끔찍한 재난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말하는 사슴을 도와 재난을 막아야 하고 그로 인해 사슴의 얼굴이 되어가는 남자의 이야기라니 신선한 느낌이었다.

소심한 것으로는 나라 최고인 남자가 세상을 구하고 그 와중에 자신도 구하는 상황에 빠진다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사슴 센베이를 맛있다며 사슴과 나눠먹는 주인공에 실소를 터뜨리기도 하면서 읽은 터라 그가 빠진 지경이 그리 위험해보이지는 않았다. 알아서 잘 흘러가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강렬한 맛이 남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은은하게 입에 맞는 책이라 더욱 좋았다. 나라에도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슴에게 센베이를 주면서 혹시 말 못하냐고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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