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의 지혜>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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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의 지혜 - 혼돈의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기
앤디 메리필드 지음, 정아은 옮김 / 멜론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소설 '사슴남자'에는 신의 사자를 자칭하는 사슴이 등장한다. 그 사슴이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있다. 자신들은 다른 종에게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하지만 인간만은 다른 종에게서 아름다움을 읽어낸다는 것이다. 그 사슴은 한 여자가 '너는 참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못했다. 다른 종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기괴한 종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보들보들한 털을 가진 강아지를 보면서 귀엽다고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자연 속의 야생동물을 보면서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당나귀에 와서는 고개가 갸웃해졌다. 당나귀에 대해 찬사를 퍼붓는 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에 많이 읽은 '이솝우화' 속의 당나귀는 미련함의 상징과도 같다.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사자 행세를 하던 당나귀는 그 울음소리 때문에 탄로가 나고 만다. 요새 들어 애니메이션 속의 당나귀는 수다쟁이라는 느낌이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당나귀에 대한 생각은 고집붙통에 미련한 동물이었다. 허나 생각해보면 이런 편견 자체가 우습다. 동물은 그저 그 곳에 있을 뿐인데 인간의 시선으로 이렇다 저렇다 하고 판단했던 것이다. 심지어 당나귀를 실제로 본적도 없는데 말이다.
이 책 '당나귀의 지혜'는 일단 당나귀와 함께 여행을 떠난 학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앤디 메리필드는 첫 장부터 읽는 사람의 속도를 늦춘다. 책이 재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한 조각의 얼음을 깨물어 먹는 것이 아니라 입에 물고 그 시원함을 음미하는 것만 같은 감각을 선사한다. 그야말로 '느림'에 대한 미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글을 읽다보면 심장박동 마저 느려 지는 것 같다. 심신이 안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글의 내용은 대부분 당나귀에 대한 예찬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나귀만큼 아름다운 생물은 없는 것만 같다. 흔히 비교대상이 되는 말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경질적이며 오르막을 오르는데 적합하지 못하고 다리도 못 생겼다고 말한다.
반면 당나귀는 낙원 속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상징물 같다. 갈기의 털은 이 세상 무엇보다 부드럽고 온순한 성품과 초연한 눈빛을 가진 선한 동물이라고 한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만으로 읽었다면 그저 웃어버렸을 것이다. 조랑말의 경우에는 좀 덜하지만 평소 말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농부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묘사했을 때 베르테르가 감탄했던 것은 농부의 눈을 통해 여인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같은 경우로 저자의 눈을 통해서 본 당나귀는 너무나 아름답고 정다운 생물이었다. 덕분에 혹시 주변에서 당나귀를 실제로 본 사람이 없나 물어보고 다녔다.
부드러운 털을 가진 사교적인 생물을 실제로 만나보고 싶다는 열망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내내 그랬다. 거기에 저자의 여행에는 딱히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 여행을 간 것인지 그 땅을 한 번 밟아보고 부리나케 돌아오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길이 아니라 딱히 목적도 없이 길을 나선 느낌이었다. 동네에서 당나귀 '그리부예'를 만나 그를 동반자 삼아 길을 걸어간다. 그 도중에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인 그리부예에게 감화되기도 하고 당나귀와 공존하는 법을 배워간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치유하는 '느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특히 도망친 말을 만났을 때 그리부예가 초연한 태도로 그를 보호한 이야기, 앞에서 깨달음을 얻고 후에 야생마를 만났을 때 오히려 그가 그리부예를 보호한 이야기는 한 동안 생각을 잠기게 했다. 마지막에 이르러 한 사람과 한 마리의 당나귀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바로 처음 길을 떠났던 집이었다. 당나귀 그리부예는 떠났을 때의 그 당나귀였지만 같이 간 사람은 결코 같은 사람이지 않았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동물과의 교감이 치료에 쓰인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지만 당나귀에게서 진정한 행복에 대한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 인상적인 책이었다. 언젠가 당나귀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심어준 책이기도 했다. 당분간은 이 책에 만족해야 할 것 같지만 말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는 것 같은 책이라 더욱 좋았어요. 글을 읽으면서 심장박동조차 느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모든 것이 빠르게만 흘러가는 시간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30세 이상이신 분들에게 더 좋을 것 같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당나귀는 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깜빡 졸 때, 걸을 때, 상념에 잠겨 있을 때에도 그리부예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존재감과 충정을 느낀다.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