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심리게임 - 인간관계에서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는 법!
울리히 데너.레나테 데너 지음, 안성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혼자라서 외롭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가끔은 차라리 외로운게 낫다 싶을 만큼 피곤할 때가 있다. 사람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 생각보다 쉽지 않다. 피곤해도 웃어야 할 때가 있고 하기 싫은 일에도 발을 들여야 할 때가 있다. 게다가 그렇게 하기 싫은 일에 발을 들이고 나면 시간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억지로 떠맡은 일을 하다가 자신의 일조차 밀려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번번이 그런 식을 일을 떠넘기는 사람을 보면 부아가 치민다. 그런데 이 모든 결과가 치밀한 심리게임의 결과물이라면 어떨까. 자신도 모르는 새에 상대가 벌인 심리게임에 휘말려서 하지 않아도 좋을 일을 떠맡는다는 것이다.

심리게임은 사실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무의식적으로 희생자, 구원자, 공격자의 역할 중에 하나를 맡아서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로 심리게임이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습득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게임을 시작하고 다른 사람의 게임에 휘말린다고 한다. 오히려 참는 것이 어려울 만큼 노련하게 게임을 진행하고 기꺼이 그 게임에 몸을 던진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교묘히 조정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었던 사람들은 노련하게 사람을 조정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가련한 희생자를 자처해 상대를 움직였던 사람은 불행한 희생자 역할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모에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여 갖고 싶은 것을 얻었다면 공격자 역할을 맡는 식으로 말이다.

한 예로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를 누군가에게 떠넘기려는 상사가 있다. 그는 그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면 자신이 승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부하직원들은 전부 다른 일에 치이고 있어서 그 프로젝트를 맡을 만한 여력이 없다. 이제 그는 심리게임을 진행한다. 자신을 낮추어 무력한 희생자로 규정하고 도와줄 기사를 찾는 것이다. 자의식이 불안해서 다른 사람을 도와 그것에서 우월감을 느끼려는 희생양을 점찍는다. 그리고 그 사람만이 그 프로젝트의 적임자고 그것을 맡아달라고,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한다. 자의식이 약한 사람의 입장에서 타인을 도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는 그 프로젝트를 맡으면 일이 과중하고 실제로 기간 내에 달성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는 심리게임에 휘말려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른 일과 병행해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상사 역시 일을 맡긴 부하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단지 그가 희생양에 적합해서 일을 떠넘긴 것이지 정말 적임자라서 맡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일의 진행 상황을 체크하려고 말을 거는데 그 말 역시 물 밑 심리게임의 일환이다. 잘 되어가냐는 물음에 부하직원은 퉁명스럽게 반응한다. 당장의 진행상황이나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기간이 끝난 후에는 당연히 일은 마무리 되어 있지 않다. 아니 거의 진행도 되지 않았다. 상사의 승진 기회는 물거품이 되었고 프로젝트의 결과를 기다리다 지친 고객은 경쟁사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상사는 마음 약해서 희생양이 되었던 부하 직원에게 비난의 말을 쏟아낸다. 자신의 역할을 희생자에서 공격자로 전환한 것이다. 이에 구원자의 역할을 하던 부하직원 역시 약한 자의식이 무너져 내리면서 희생자로 전락한다. 자신은 실패자라고 체념한 것이다. 이것은 직장에서 일어난 심리게임의 예지만 심리게임은 가정, 이웃 심지어 자기 자신 내부에서까지 일어난다.

사람들은 각기 자기가 바라는 바에 따라 심리게임에 나선다. 희생자를 가장해서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상대에게 떠넘기기도 하고 많은 사실을 왜곡하고 배우자를 비난해서 참가하기 싫었던 모임에서 발을 빼기도 한다. 또한 무력한 사람들을 더 무력하게 만들고 구원자의 역할에 나섬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계속 인정하게 만들려고 하기도 한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심리게임에 휘말리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로 인해 자신이 원하지 않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가끔은 싸우고 난 다음에 그 이유가 한심할 때가 있다. 별 이유도 아닌데 싸우고 감정의 공백을 맛보기도 하고 화해를 하기 위해서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심리게임의 결과물이다. 상대방도 무의식적으로 했다지만 자기도 모르게 휘말렸던 것이다. 때로는 분노해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기꺼이 뛰어들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우쭐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없다. 시간과 감정을 낭비했다는 허망함만이 있을 뿐이다. 심리게임에 이기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심리게임 자체가 누군가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상대가 휘말리게 하는 것이 목적인만큼 휘말리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 자신이 휘말리게 되는 통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냉정하게 대응하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것이 어떤 심리게임인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당장 모든 심리게임을 노련하게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다른 사람의 심리게임에 휘말려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것, 이제는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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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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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하철을 즐겨 이용하는 편이다. 어린 시절 멀미를 해서 차 타는 것을 진저리 친 탓도 있지만 일정한 시간을 유지하는 그 안정감이 좋다. 하지만 그런 지하철에도 복병이 있다. 자리에 앉기만 하면 누군가 슬그머니 다가온다. 심지어 책을 읽느라 모르고 있으면 발을 슬며시 밟으며 쳐다보길 요구한다. 자리 양보를 바라는 것이다. 실제 성격은 그렇지 않은데 인상은 딴 판인지 길을 걷다가도 도움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다. 하물며 갇힌 공간으로 변하는 지하철에서는 일상다반사다. 덕분에 몸이 상당히 안 좋거나 여유로운 시간대가 아니면 자리에 앉는 것을 꺼리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터라 지하철을 탄 시간에도 읽으면서 이동하는데 불편하기는 하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서서 책을 읽노라면 손목이 아파오기도 한다. 눈이 나빠질 수 있다는 위험은 제외하더라도 그렇다. 그런데 어느 날 책을 읽다가 다가오는 노인을 발견했다. 항상 그렇듯 자리 양보를 요구할 것으로 알고 미리 일어나는데 그 분이 손사래를 치셨다. 앉아서 책을 더 읽으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내게 습관에 가깝다. 그런 행위를 대단한 일인냥 우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결국 자리 양보는 했지만 기분은 정말 좋았다. 그 때 읽었던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 일이 잊혀지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책을 읽다보면 의외의 일과 마주치게 되는 일이 많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다음이 너무 궁금해서 걸으면서 읽다가 나무에 부딪힌 적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친구가 실은 같은 책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친해지는 일도 생기고 소설책을 읽다가 얻은 잡다한 지식을 자랑해 해박한 인물로 오인 받는 경우도 있다. 책 욕심에 들어서는 자신이 이렇게 탐욕스러웠구나 하고 놀라게 될 때도 있다. 아직 쌓여 있는 책이 있는데도 새로운 신간이 나오면 눈길이 절로 간다.

그런데 이런 기분을 이해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닉 혼비다. 휴 그랜트가 주연한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동명 원작 소설의 작가로 이름만은 익숙한 작가였다. 그가 <빌리버>라는 잡지에 연재한 서평 칼럼을 모은 것이 이 책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다. 유명한 작가의 독서라고 해서 다를 것 같지만 흔히 생각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할 만한 행동과 다르지 않다. 여기저기서 추천받은 책을 사기도 하고 정말 못 읽겠다 싶은 책은 던져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이 책은 정말 대단할거라고 생각해서 구입했고 산 이후에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읽지 않고 방치한다. 다른 책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쌓인 책들을 읽는 데만도 몇 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책을 사들인다. 가끔 생각하는 것이지만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평생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까. 하루에 한 권씩 읽고 그 상태로 백 년을 살아도 삼만 육천 오백 권이다. 십만은커녕 사만 권도 못 된다. 책은 계속 쏟아지는데 그 중에서 못 읽은 책들을 생각하면 책으로 가득 채운 거대한 무덤에 안장돼도 눈을 못 감을 것 같다. 아무리 읽어도 읽고 싶은 책은 줄어들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지인이 쓴 책은 일 순위로 읽고 평을 해줘야 한다. 결코 좋아하지 않는 분야라도 그렇다.

이처럼 닉 혼비의 책 읽기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금연 관련 서적처럼 현재의 관심사를 반영한 책이 꼬리를 물기도 하고 매제나 친구의 책처럼 지인의 것이라서 읽게 되기도 한다. 그 와중에 SF소설에 도전해보겠다고 장담했다가 좌절하기도 한다. 독서애호가가 아니라 문학가의 이름을 짧은 책에서 쉽게 지키려다가 그 내용에 몸서리를 치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전부 일어날 법한 일들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슬며시 미소 짓게 된다.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예전보다 책을 읽지 않게 변해버렸다. 닉 혼비처럼 열렬한 축구팬은 아니지만 눈을 돌릴 것들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책의 매력만큼은 그만의 고유의 것이다.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전자책이 나와도, 책의 무게에 운동부족을 실감하게 되어도 그렇다. 닉 혼비의 유쾌한 독서일기가 마음에 들은 것은 그런 점이 잘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상에 치여도 읽게 되는 책이기에 그가 읽는 책에 호기심이 더해졌다. 닉 혼비는 잡지 <빌리버>의 편집 방침 때문에 재미없었던 책에 대해서는 제목도 언급할 수 없다고 투덜거리지만 그만큼 읽지 말아야 할 책이 아니라 읽어봐야 할 책 쪽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가 언급하는 책의 반 수 이상이 아직 안 읽은 책이어서 읽지 않은 책이 크게 늘 위험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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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서평단 활동 종료 설문 안내

•  서평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비밀의 요리책>
요리책에 세상의 온갖 비밀과 중요 지식이 숨겨져 있고 요리사가 지식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는 소재가 인상적이었어요. 지금은 흔히 먹는 토마토가 당시에는 독이 있는 악마의 식물처럼 여겨졌다는 것도 이색적이었구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평소 팩션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책은 정말 재미있더군요. 덕분에 거의 손대지 않았던 팩션에까지 독서의 영역을 넓힐 수 있어서 정말 기뻤구요. 좋아하지 않았던 분야까지 좋아하게 만든 책이라 기억에 남네요.
 

 

  


•  서평단 도서의 문장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구절
"다섯 번이나요. 게다가 우리를 키우시느라 겪으셨던 그 수많은 일을 생각해 보면..."
"다 좋았단다."
엄마가 말했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글쎄,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엄마..."
"다 좋았었어."
엄마가 단호하게 되풀이했다.
"그 모든 것이 말이야."
(P268, 카트린과 엄마의 대화)

<엄마의 은행통장>에 등장하는 대화에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마법사 같은 엄마의 이야기에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어요. 힘든 일이 많았는데도 단호하게 모든 것이 좋았다고 하는 말에 많이 감동했구요.
 


•  서평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 엄마의 은행통장
제목만 들으면 재테크 도서 같지만 미국에 이민온 노르웨이 가정의 애환을 담고 있는 소설이에요. 하지만 애잔하다기보다 마법사 같은 솜씨로 가정에 활기를 불어넣는 엄마의 이야기에 많이 웃게 되는 책이기도 하구요. 수전노 같은 의사의 부인을 교묘히 설득해 남편이 수술을 받게 하거나 인기가 없던 딸을 순식간에 인기인으로 만드는 솜씨라니 놀랍더군요.

 

2. 꿈꾸는 토르소맨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지금이 좋다고 말하는 당당한 더스틴의 모습에 많이 감명받은 책이었어요. 토르소맨이라는 별명을 기분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니 감탄했구요.
 

 


3. 내 심장을 쏴라
정신병원에 갇힌 두 남자의 탈출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에요. 소재만으로는 별로 좋아하는 소재가 아닌데 한 번 읽기 시작하니 뒤가 궁금해서라도 계속 읽게 되더군요. 그들이 세상을 향한 비행에 성공한 순간 많이 감동했어요.
 

 


4.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런 추리소설도 있을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한 책이에요. 살인사건이나 탐정이 등장하지도 않아서 정통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이 흔들리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놀라운 책이었구요.
 

 


5. 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
미국 드라마 <트루 블러드>를 봐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책이에요. 한 장을 읽고 나니 1권부터 보고 싶어서 1권을 주문하게 만든 책이기도 하구요. 뻔하다면 뻔하지만 재미있더군요.

 

 

 


알라딘 2기 서평단을 하면서 굉장히 즐거웠어요. 어떤 책이 배송될지 알 수 없어서 두근 거리기도 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분야의 책을 좋아하게 되기도 했거든요. 읽고 싶었던 책이 손에 들어오는 행운도 있었고 기대 안한 책이 의외로 재미있어서 독서의 영역을 좀 더 넓혀야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어요.

다 좋았는데 하나 불만이 있다면 가제본으로는 서평단 진행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제본이라도 읽은 것은 읽은 거라 괜찮았지만 차라리 서평을 올린 후 책을 보내주겠다는 글을 함께 동봉하지나 말일이지 리뷰를 올린 후에 책...안 오더군요. 한 달 넘게 기다리고 포기했지만 기분은 별로 였어요.

그것만 제외한다면 이번 2기 서평단도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3기에서도 활동하고 싶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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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을 리뷰해주세요.
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2
샬레인 해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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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즈>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대량의 피를 사용한 남자가 나왔다. 남자는 언젠가 자신을 추적할 사람이 나올 것을 알고 오랜 기간 자신의 피를 채혈해서 모아뒀다.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있지만 시체가 없다면 살인사건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장소에 사람의 목숨을 잃을 정도의 대량의 피가 있다면 경찰은 살인 사건으로보고 수사에 나서기 마련이다. 자신이 죽은 것으로 오해하게 하는 것만큼 추적자를 따돌리기 좋은 방법도 없다. 이처럼 피는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성분이지만 가끔은 그 이상의 의미로 표현된다. 피는 생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생명의 상징을 마시고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는 자들이 바로 뱀파이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조금 묘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뱀파이어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이해가 가기는 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자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의 생명이 한정되어 있다고 하면 그런 기분은 더해진다. 그런 마당에 지금의 자신을 유지한 채로 죽지 않을 수 있는 존재에 대해서는 귀가 솔깃해진다. 물론 이야기 속의 뱀파이어는 대개 사악한 존재이니 정말 지금의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살이 썩어가고 사람의 살을 먹지 않으면 몸을 유지하기 어려운 좀비보다는 매혹적인 소재이기는 하다.

이 책 <댈러스의 살아있는 시체들>에서는 그런 뱀파이어가 세상 속으로 나온 상황을 그리고 있다. 제목 자체는 '살아있는 시체들'이라고 해서 좀비들이 댈러스를 휩쓰는 내용 같지만 이 책에서 표현되는 살아있는 시체들은 뱀파이어를 말한다. 미국 드라마 <트루 블러드>의 원작 소설인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 권에서 바이러스라는 교묘한 핑계로 세상에 편입된 뱀파이어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온갖 괴이쩍은 존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주인공 수키는 여전히 술집 멀롯스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멀리 갈 일이 생긴다.

전 권에서 6만 달러 횡령 사건을 조사하면서 수키의 능력이 남김없이 발휘된 터라 그 지역의 우두머리 뱀파이어인 에릭이 그녀의 능력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주요 자산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키를 보호하기 위해 뱀파이어 사회에 편입되어 제5구역 조사원으로 일하게 된 뱀파이어 빌과 함께 댈러스에 가서 그 지역 뱀파이어를 도우라는 명령을 한 것이다. 상당한 보수도 있기는 했지만 아무리 봐도 명령에 가까웠다. 빌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수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남북전쟁 당시에 뱀파이어가 된 빌보다 에릭은 몇 세기나 더 오래 산 비사망자였으며 수키를 다른 뱀파이어로부터 보호하려면 호의와 관습에 기대야 했던 것이다.

결국 투덜대면서도 수키는 익숙한 본템프스를 떠나 댈러스로 향한다. 빌은 표지에 등장하는 것처럼 관에 담겨서 아누비스 항공을 통해 이송된다. 그런데 댈러스에 도착하자마자 가짜 신부가 접근해 온다. 수키를 납치하려는 시도였는데 이미 3번 뱀파이어의 피를 마셔 힘이 꽤 세진 수키는 격렬히 저항했고 마침 날이 저물어 빌이 관에서 나오자 납치범은 도망친다. 댈러스의 뱀파이어들이 부탁하려는 사건과 공항에서 수키를 납치하려는 사건은 전부 연결되어 있었다. 단지 한 사람과 한 뱀파이어가 그것을 몰랐을 뿐이었다.

<댈러스의 살아있는 시체들>은 뱀파이어를 연인으로 등장시키고 있지만 코지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수키가 자신이 맞닥뜨리게 된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세상이 뱀파이어가 돌아다니고 초자연적 사건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런 것들은 양념이라고 할 수 있다. 뱀파이어 빌조차도 무적은 아니고 다른 뱀파이어한테서 수키를 지키기에 급급하기도 하다. 거기에 우두머리 뱀파이어 에릭이나 술집 주인이며 변신 인간인 샘이 연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코지 미스터리의 특징대로 남자 주인공들은 여자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나 스웬슨 시리즈에서 주인공이 살인범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지만 프라이팬 같은 것으로 자체 해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달랐던 점은 전작 <어두워지면 일어나라>에서 연쇄살인범이 빤히 보였던 것과 달리 두 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어서 범인을 알아차리는 시기가 약간 늦었다. 각각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별개의 다른 사건이었던 것이다. 굳이 말하면 <트와일라잇>보다는 애니타 블레이크 시리즈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해결사이자 특이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뱀파이어나 독특한 존재와의 연애가 양념으로 들어가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코지 미스터리와 뱀파이어 로맨스가 결합되었다는 점이 가장 특색있었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웃는 시체'를 비롯한 애니타 블레이크 시리즈가 떠오르네요. 둘 다 특이한 능력을 가진 여주인공이 등장하고 뱀파이어나 이종족이 연애 대상으로 등장하구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
일단 소재가 뱀파이어 로맨스라서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소설도 재미있게 읽으신 분 아니면 다소 부담스러우실지도 모르거든요. 뱀파이어가 등장하지만 공포물 같은 느낌은 없어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갑자기, 터무니없게도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결 낫군."
고드프리가 말했다. 고드프리의 목소리는 벌써 저만치 멀리서 들렸다.
"최후에 누군가 나를 위해서 울어 주다니, 누군가 그렇게 해주리라고는 기대도 안 했는데."
고드프리는 내가 안전할 거리만큼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태양이 떠올랐다.
(P225)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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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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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작품은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우울한 날만은 피하게 되는 편이다. 킹의 작품은 대개 평범한 가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파국을 맞는다. 초반에는 지루한 듯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지만 그 와중에도 눈을 뗄 수 없는 흡입력이 있어 그의 작품을 떠올리면 여름 날의 무더위를 떠올리게 된다. 끈적끈적하게 달라 붙지만 떨쳐 버릴 수가 없는 시간을 말이다. 그런데 이 책 '심플 플랜'을 읽게 된 것은 실은 스티븐 킹이 '이 책에 견줄 만한 서스펜스가 없다'고 격찬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단숨에 흥행작에 오른 책이라는 뒷배경까지는 몰랐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한 책이라는 흥분에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고 있었다. 스티븐 킹이 추천할 만한 스릴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심플 플랜'에서는 거대한 행운과 마주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회계사인 행크는 형인 제이콥, 형의 친구인 루와 함께 형의 트럭을 타고 있었다. 형제는 친하기는 커녕 일 년에 한 번 대화할까 말까 한 사이였지만 일 년의 마지막 날 오후만큼은 함께 보내는 편이었다. 몇 년 전에 죽은 아버지의 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성묘를 가던 형제는 중간에 루를 내려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 앞에 가서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둘 중 하나가 이제 되었으니 내려 가자라는 말을 신호로 헤어지면 되는 것이었다. 신년을 맞이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였다.

그런데 이들은 도중에 사고를 겪는다. 피더슨 농장의 닭을 입에 문 여우가 도로에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핸들을 꺾어 큰 사고를 면했지만 헤드라이트는 부서져 있었다. 거기에 형 제이콥의 개 메리 배스가 여우를 쫓아 가버린다. 개를 찾을 겸 여우를 사냥하겠다는 형과 루의 말에 행크는 만류하려 하지만 그 일은 묘한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고 셋은 할 수 없이 동행하게 된다. 문제는 그들이 불시착한 비행기를 발견했다는 데에 있었다. 그저 보안관에게 신고했으면 되었을 일을 형 제이콥과 루는 굳이 안을 조사하겠다고 했다. 생존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안에 들어갈 사람은 행크였다. 들어가지 않으면 놀릴 기세였고 서른이 다 되어서 청소년기에 할 만한 담력시험을 할 처지가 된 행크는 한숨을 쉰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으므로 그는 비행기 안으로 들어선다. 조종사는 예상대로 죽어 있었고 흉측스럽게도 눈은 까마귀에게 쪼아 먹혀 없어진 상태였다. 사람의 살맛을 본 까마귀는 대담하게도 행크를 공격하기까지 해서 행크는 기겁한다. 행크는 급하게 비행기를 빠져 나온다. 도중에 발에 걸린 더플 백 역시 끌고 내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지만 더플 백 안에는 돈 뭉치가 가득 들어 있었던 것이다. 회계사이며 여유로운 가정을 유지하고 있던 행크는 보안관에게 신고하고 넘겨주자고 하지만 실직 상태라 돈이 궁했던 형과 루는 한 뭉치씩만 챙기자고 제안한다. 언뜻 봐도 3백만 달러가 넘게 들어 있으니 1만 달러에 해당하는 한 뭉치씩을 꺼내도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공범이 되기 싫었던 행크는 거부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도 탐욕이 싹트고 있었다. 그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성적이 원하는 것만큼 나오지 않아 회계사가 되었고 대도시가 아닌 고향 마을의 사료상에서 일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체념하고 있던 부분들이 거액을 눈 앞에 두자 조금씩 하찮아진다. 행크는 두 사람을 제지하면서 한 뭉치씩 가진 후 신고하면 잡힐 테니 전부를 챙기자고 말한다. 단, 조건이 있었다. 6개월 동안 그가 돈 전부를 보관하고 비행기가 발견된 이후에도 그 돈을 찾는 사람이 없으면 나눈다는 것이었다. 만약 찾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이 잡힐 것 같으면 전부 불에 태우겠다고 했다. 형 제이콥과 루는 머뭇거리다가 챙긴 돈 뭉치를 다시 가방 속에 넣는다. 이제 주도권은 행크의 손에 있었다. 그가 몰랐던 것은 그 역시 그 돈을 누구보다도 원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비밀은 한 사람만이 알고 있어야 비밀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알고 있어도 비밀은 깨어지기 쉽다. 그런 마당에 세 사람이 알고 있는 비밀은 사실상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다. 6개월 동안 쓸 수 없는 거액의 돈과 돈에 궁핍한 사람들이 맞부딪히다보면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마구 돈을 쓰면 돈의 원래 임자나 경찰에게 꼬리를 잡힐 수 있음에도 눈앞의 일확천금에 이성이 마비되는 것이다. 중산층으로 보였던 행크와 그의 아내 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실에 순응하고 살던 그들은 거액을 보자 그들이 포기했던 것들을 떠올린다. 그 순간 현실은 보잘 것 없어지며 그 돈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거기에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형제와 믿을 수 없는 한 사람이 끼면 그 결과는 뻔 한 것이다. 거액과 서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으킬 수 있는 일의 최악을 불러들인다. 그들은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불태우는 재앙의 불은 이미 시작되었고 모든 것을 다 재로 만들기 전까지 불은 꺼지지 않을 예정이었다. 더 오싹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돈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라고 주장한다는 점이었다. 누구나 지키고 싶은 '우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무서워졌다. 하지만 자신의 탐욕을 위해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방패막이로 쓰는 순간 '우리'는 이미 부서진 후라는 것을 그들은 왜 몰랐을까. 거대한 행운에 눈이 멀어 양심이 마비된 순간 결말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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