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지하철을 즐겨 이용하는 편이다. 어린 시절 멀미를 해서 차 타는 것을 진저리 친 탓도 있지만 일정한 시간을 유지하는 그 안정감이 좋다. 하지만 그런 지하철에도 복병이 있다. 자리에 앉기만 하면 누군가 슬그머니 다가온다. 심지어 책을 읽느라 모르고 있으면 발을 슬며시 밟으며 쳐다보길 요구한다. 자리 양보를 바라는 것이다. 실제 성격은 그렇지 않은데 인상은 딴 판인지 길을 걷다가도 도움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다. 하물며 갇힌 공간으로 변하는 지하철에서는 일상다반사다. 덕분에 몸이 상당히 안 좋거나 여유로운 시간대가 아니면 자리에 앉는 것을 꺼리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터라 지하철을 탄 시간에도 읽으면서 이동하는데 불편하기는 하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서서 책을 읽노라면 손목이 아파오기도 한다. 눈이 나빠질 수 있다는 위험은 제외하더라도 그렇다. 그런데 어느 날 책을 읽다가 다가오는 노인을 발견했다. 항상 그렇듯 자리 양보를 요구할 것으로 알고 미리 일어나는데 그 분이 손사래를 치셨다. 앉아서 책을 더 읽으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내게 습관에 가깝다. 그런 행위를 대단한 일인냥 우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결국 자리 양보는 했지만 기분은 정말 좋았다. 그 때 읽었던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 일이 잊혀지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책을 읽다보면 의외의 일과 마주치게 되는 일이 많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다음이 너무 궁금해서 걸으면서 읽다가 나무에 부딪힌 적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친구가 실은 같은 책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친해지는 일도 생기고 소설책을 읽다가 얻은 잡다한 지식을 자랑해 해박한 인물로 오인 받는 경우도 있다. 책 욕심에 들어서는 자신이 이렇게 탐욕스러웠구나 하고 놀라게 될 때도 있다. 아직 쌓여 있는 책이 있는데도 새로운 신간이 나오면 눈길이 절로 간다.

그런데 이런 기분을 이해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닉 혼비다. 휴 그랜트가 주연한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동명 원작 소설의 작가로 이름만은 익숙한 작가였다. 그가 <빌리버>라는 잡지에 연재한 서평 칼럼을 모은 것이 이 책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다. 유명한 작가의 독서라고 해서 다를 것 같지만 흔히 생각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할 만한 행동과 다르지 않다. 여기저기서 추천받은 책을 사기도 하고 정말 못 읽겠다 싶은 책은 던져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이 책은 정말 대단할거라고 생각해서 구입했고 산 이후에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읽지 않고 방치한다. 다른 책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쌓인 책들을 읽는 데만도 몇 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책을 사들인다. 가끔 생각하는 것이지만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평생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까. 하루에 한 권씩 읽고 그 상태로 백 년을 살아도 삼만 육천 오백 권이다. 십만은커녕 사만 권도 못 된다. 책은 계속 쏟아지는데 그 중에서 못 읽은 책들을 생각하면 책으로 가득 채운 거대한 무덤에 안장돼도 눈을 못 감을 것 같다. 아무리 읽어도 읽고 싶은 책은 줄어들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지인이 쓴 책은 일 순위로 읽고 평을 해줘야 한다. 결코 좋아하지 않는 분야라도 그렇다.

이처럼 닉 혼비의 책 읽기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금연 관련 서적처럼 현재의 관심사를 반영한 책이 꼬리를 물기도 하고 매제나 친구의 책처럼 지인의 것이라서 읽게 되기도 한다. 그 와중에 SF소설에 도전해보겠다고 장담했다가 좌절하기도 한다. 독서애호가가 아니라 문학가의 이름을 짧은 책에서 쉽게 지키려다가 그 내용에 몸서리를 치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전부 일어날 법한 일들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슬며시 미소 짓게 된다.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예전보다 책을 읽지 않게 변해버렸다. 닉 혼비처럼 열렬한 축구팬은 아니지만 눈을 돌릴 것들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책의 매력만큼은 그만의 고유의 것이다.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전자책이 나와도, 책의 무게에 운동부족을 실감하게 되어도 그렇다. 닉 혼비의 유쾌한 독서일기가 마음에 들은 것은 그런 점이 잘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상에 치여도 읽게 되는 책이기에 그가 읽는 책에 호기심이 더해졌다. 닉 혼비는 잡지 <빌리버>의 편집 방침 때문에 재미없었던 책에 대해서는 제목도 언급할 수 없다고 투덜거리지만 그만큼 읽지 말아야 할 책이 아니라 읽어봐야 할 책 쪽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가 언급하는 책의 반 수 이상이 아직 안 읽은 책이어서 읽지 않은 책이 크게 늘 위험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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